syo가 사는 고시원 이 작은 방의 하나뿐인 창문은 욕실에 나 있다. 고시원을 전전하던 시절 syo가 들어가 살았던 방은 다들 침대 머리쪽에 창이 나서 밤에 누워 창문을 열면 좁게나마 밤하늘이 열렸었는데. 처음 이 방 문을 열어보았을 때, 창이 욕실을 통해 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늘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땅만 내려다보며 허방 짚지 않고 한 발 한 발 디딜 자리를 찾기에도 바빴으므로. 어차피 하늘은 아무데도 가지 않고 거기 있을 거니까. 기다려줄 거니까. 나중에 늘어지게 한 번 올려다보면 되지 뭐. 하지만 한 달을 다 보내도 좀처럼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는 방안에서의 삶을 살며 이제는 생각한다. 혹시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이제는 걱정한다. 잠깐 멈춰 하늘을 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을, 어쩌면 하늘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딱 한 뼘밖에 열리지 않고, 창틀의 꼭대기가 눈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 작은 창문은 보기 위해 있다기보다는 그저 있기 위해 있는 것 같다. 고시원에, 그리고 거기에 사는 어떤 인생에게 참 잘 맞는 창문이라고, 세수를 하며, 이를 닦으며,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저 있기 위해 있는 삶. 어떤 구실도 하지 못하기에 어떤 구실도 갖다 붙이지 못한 사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형용사가 겨우 '있다' 뿐인 사람. '있다'에서 다른 무엇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있었다'로 건너가는 옅은 사람. 저 창은 그런 사람을 위한 창이야. 저 좁은 하늘은 그런 사람에게 주어진만큼의 하늘이야. 하늘 보는 법을 잊은 사람들에게서 달아나느라 조금씩 작아지는 하늘의 먼 뒷모습이야.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달이 뜬다는 소식을 듣고, 치약을 짜면서 창 밖을 훑다가 그 달과 눈이 마주쳤다. 내게 주어진 이 작은 하늘 안에 참 낯선 달이 떴다는 사실. 그건 아마도 몇 겹의 우연과 행운이 엉켜 이루어진 만남일 것이다. 창이 난 방향과 달이 뜬 방향이 만났다. 하늘이 그 만남에 구름을 보태지 않았다. 그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누군가 골방 안의 syo에게 알려왔다. 혼자 있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은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창이 낮고 달은 높아서, syo는 칫솔을 문 채로 욕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한껏 쳐들고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좁은 구멍을 통해 달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낱낱이 훔쳐보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달과 달의 주변을 끈기있게 매만졌다. 달의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그만 만져. 양치나 해. 


두 시간 가까이 양치질하며, 잊어버린 하늘 보는 법을 차근차근 다시 배우고 있었다.  




어두운 시간이 찾아오면 당신을 구원하는 데 재산은 쓸모가 없다. 오랫동안 다녔던 스키장이나 시냇물에 이르는 오솔길도 마찬가지다. 그보다 더 위대한 무엇을 당신은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_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


성장한다는 것은 오직 보편성과 유사성, 존재의 유형에만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숲, 산, 평야..... 그리고 자기 집 주변의 모든 것은 똑같아진다. 어른에게 산책길은 똑같이 광할한 풍경 속에 포함된다. 어른은 그가 살아온 햇수의 높이에서 모든 것을 본다. 경험의 전망이 모든 것을 평평하게 하고 압축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다 똑같다.

_ 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살아왔던 길을 모두 폐지하고 널따랗게 새로 뚫린, 뚫렸다기보다 침범해 들어온 큰길을 향해 우리를 너나없이 달려가게 하는 이 욕망은 실상 비어 있는 욕망이지만, 그 비어 있음을 가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욕망이 필요했다. 욕망이 욕망을 몰고 온다.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잠시 비켜섰을 때에야, 또는 더 이상 그 발걸음을 따라길 수 없을 때에야, 문득 사람들은 뿌리도 없이 유령들과 싸우고 있는 제 처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_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 보기』


난 달을 사랑해서 울어요, 그 사람이 말했다. 어렸을 때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단 한 번 봤어요, 하지만 이 궁전에 갇혀 있어 달에 닿을 수가 없어요, 밤중에 풀밭에 드러누워 달빛에 입을 맞추기만 해도 좋을 거예요, 하지만 이 궁전에 갇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이 궁전에 갇혀 있어요. 그리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_ 안토니오 타부키, 『꿈의 꿈』





윤성근,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 마침.

고병권, 『철학자와 하녀』마침.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반환점.

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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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8-02-0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창으로 넘치게 해가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를

syo님도
나님도
가십시다.

6개월을 잘 보내야 하겠습니다. (묵념).

syo 2018-02-01 12:42   좋아요 0 | URL
그렇겠습니다......6개월 참 짧으면서 길면서....

페크pek0501 2018-02-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치버의 일기』가 맘에 끌리네요. 그런데 9백 쪽이 넘다니...
끌리면서도 이 부담스러움!!! 때문에 고민에 들어갑니다.

달.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syo 2018-02-01 12:43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에 90페이지씩 10일에 돌파하자 해놓고 여직 100쪽 읽고 해메고 있습니다...... 좋다가 졸다가 막 그렇습니다.

cyrus 2018-02-0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에는 달이 잘 보였다고 하더군요. 반면에 남부 지역은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아서 달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어요. 저는 그럴 줄 알고 달 보러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ㅎㅎㅎ

syo 2018-02-01 15:32   좋아요 0 | URL
잘 보여서 오래 봤습니다.
다음번에 만나려면 십 년 단위로 기다려야된다더군요.

비로그인 2018-02-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다’에서 다른 무엇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있었다’로 건너가는 옅은 사람.
이 구절이 마음 깊은 곳을 훅, 치네요. 밑줄 그어 봅니다...
그 앞과 뒤에 있는 문장들에도 조금씩.

syo 2018-02-02 07:59   좋아요 0 | URL
아니, syo의 문장에 밑줄씩이나요.....
슬프고 우울한 구절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도 좋다면 좋겠지만, 그건 참 어려운 일이려나요.

아무튼, idahofish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