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자각몽을 꾸는 중이었다. 꿈 속의 syo는 요게 꿈이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꿈을 쥐락펴락하며, 어차피 꿈인데 뭐 어때, 평소 한 번쯤 어떨까 생각해봤던 온갖 짓거리를 다 해 보았다. 어차피 꿈인데 한남대교에서 투신도 해 보고(미친 놈아), 어차피 꿈인데 사람도 막 쥐어 패 보고(으아, 미친 놈아!!!), 어차피 꿈인데 세상 사악한 표정으로 책을 한 장 한 장 뜯어 불살라도 보고(으아으아 왜 그랬어 미친 놈아아아!!!!!!!!!!!!), 뭐 이런 짓 저런 짓 다 해 봐도 역시 그건 꿈이었다. syo는 죽지도 않았고, syo한테 얻어터진 정치인은 암만 패도 한결같이 개소리에 개소리를 얹었으며, syo가 태운 책들도 여전히 책장에 기세등등 꽂혀 있었다. 자각몽을 꾸는 것은 신나면서도 허망한 일이군. syo가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아등바등 살고 있는 이 세상도 꿈은 아닐까? 오늘 한 번 확 진짜 한강에서 확 그냥 막 그냥 응?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다. 아니면 어쩔 거야. 인생 한 갠데. 꿈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똑바로 살아나가자, 이 험한 세상에. 아자아자 화이팅.
하고 힘차게 다짐했는데 눈 떠보니 그것도 꿈임.
자각몽은 몇 번 꿔 봤지만, 자각몽을 꾸는 꿈은, 심지어 '자각몽을 꾸는 꿈인데 그 자체는 꿈이라고 자각을 못하는 꿈' 같은 희한발광한 꿈은 또 처음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싸다구라도 한 대 먹여(먹어) 볼까 했지만 진짜 안 아플까봐 겁나서 못 하고, 대신 이렇게 일기를 남긴다. 하루의 시작부터 아주 야무지게 농락당한 느낌입니다.
"사비에르는 내 동생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노인은 잔인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검지를 쳐들었다. "사비에르는 존재하자 않소. 그저 환상일 뿐이오." 그가 방 전체를 껴안는 몸짓을 했다. "우리는 모두 죽었소. 아직도 그걸 몰랐단 말이오? 나도 죽었고, 이 도시도 죽었소. 전투, 땀, 피, 영광, 나의 권력, 이 모든 건 죽었소. 아무짝에도 소용없게 되어버렸소."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어떤 것은 영원히 남아 있어요."
"뭐가 말이오?" 그가 따졌다. "그의 추억이? 당신네들 기억이? 아니면 이 책들이?"
노인이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온몸이 오싹했다. 노인 무얼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발치에 있던 조그만 주머니 같은 것을 장화로 걷어찼다. 보니까 그건 죽은 쥐었다. 그걸 바닥에 굴리더니 조롱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이 쥐가 영원하다는 건가?" 노인이 다시 웃었다. 그 웃음에 내 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다!" 노인이 부르짖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부드러워졌고, 나를 교수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깨웠다면 용서해주시오."
_ 안토니오 타부키, 『인도 야상곡』
오른손
어제는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른손이 왼손을 막 꼬집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만 오른손을 써 보기로 했다. 밥이 자꾸 볼을 때렸다. 국물이 돌아오지 않는 번지점프를 시도했다. 밥 한 끼 먹고 났더니 거지꼴이 되었다. 위대한 오른손. 그럼에도 오른손을 포기하지 않았다. 뭔가 더 재밌고 웃긴 일이 벌어질 거라고 기대하며. 그러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역시 날로 먹으려 한 것이 패착이다. 시트콤의 길은 지난하다.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제 칸트의 멱살을 노린다.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는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있나....
프랜시스 윈, 『마르크스 평전』우리 마르크스가 대학생이 되었어요.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치버가 본격적으로 남자를 만나고 다녀요.
박민영,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를 마침.
이진우 외, 『대통령의 책읽기』를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