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념과 체제를 떠나서, 절망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국적과 신분과 계급을 떠나서, 절망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_백민석,『아바나의 시민들』




2


절망의 때를 헤아려 보다가, 난 헤아릴 수 있을만큼만 절망했구나, 하고 행복해졌다. 헤아린 절망들을 꼼꼼히 뒤적거리다가, 이런 것까지 절망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하고 또 행복해졌다. 하나씩 접은 손가락이 펴지면서 점점 행복해졌는데, 모든 손가락이 다 펴진 순간 모든 행복이 다 사라졌다. 너는 똑바른 삶을 살지 못했거나 너를 속이고 있구나.



아이들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당신과 나는, 휴우, 우린 이미 과거야. 한순간의 분노,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 그게 바로 우리라고. 이 땅, 이 붉은 땅이 우리야. 지금까지 있었던 홍수, 흙먼지, 바람, 가뭄이 다 우리야.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없어. ...... 우린 죽을 때까지 그런 신세일 거야. 캘리포니아로 가든 어디로 가든 우린 모두 쓰라린 심정을 안고 행진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맨 앞에 서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 도 다른 사람들이 쓰라린 심정을 안고 똑같은 길을 지나겠지. 

_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1』


문장과 행간이 절망으로 흠뻑 젖은 책을 야금야금 쪼개 읽으며, 매일 조금씩 절망을 배우고 있다. 절망을 어떻게 책으로 배우나 싶었지만, 책으로 된다, 의외로. 세상은 사람이 책을 통해 배운 희망을 두드려 깎아 먹지만, 책을 통해 배운 절망에는 크게 이자를 붙여주므로, 좋은 절망이라는 건 없겠지만 좋은 책을 만나면 배울 수 있는 절망이라는 건 있겠다. 


그렇게 배운다고 해서 내가 이 순간 절망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내가 겪은 절망을 되새김질해도 똑같다. 남이 겪고 있는 절망은 추측될 뿐이고, 내가 겪은 절망은 추억될 뿐이다. 사람은 오직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절망에만 절망한다. 절망은 현재진행 시제만 갖는 가난한 동사니까, 그래서 더욱 무서운 감정이다.




3


분노가 먼저냐, 절망이 먼저냐. 분노로 들고 일어섰다 엎어지면 절망하지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분노다. 나는 이놈의 사회가 미친 덕에 분노도 쉽고 절망도 참 쉽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고 있다. 진짜 분노는 행동을 낳기에 내가 분노라 믿었던 것들은 사실 짜증이었던 것 같다. 절망할 일이 너무 많기에 체념과 냉소로 방파제를 쌓는 습관이 생기고, 결국 절망적인 기분은 들어도, 밑바닥을 차고 올라오기 위해서 제대로 침잠하는 절망은 하기 어렵다. 그래서 행동은 더욱 희박해지기만 한다.




분노는 나를 이웃의 지평으로 끌어올리는 사회적 행위지만 사회적 짜증은 나를 거슬리게 하는 것에 대한 사적 반응이다.

_김규항,『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_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객관적이어야 하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파악한 사실들과 주장들이 여러분에게 확고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데도 그러기를 회피하거나, 그 사실과 주장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행동을 거부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행동을 촉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_버텔 올먼,『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무언가가 변화하는 전이의 순간들이 우리의 척추를 만든다. 우리가 기억하고자 한 순간순간들은 살아남거나 사라진다. 변화가 우리의 존재에 뼈대를 만든다. 나머지는 대개 망각된다.

_줌파 라히리,『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권력은 우리의 몸이 의자에 파묻혀 나약해지기를, 우리의 감정이 스크린 속에서 허비되기를 원한다. 밖으로 나가라. 당신의 몸을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함께 전진하라

_티모시 스나이더,『폭정』




4


입진보로 사는 일이 참 피곤하다. 분명히 입 밖으로 분노를 내뱉었는데, 내가 싸 놓은 분노의 빅똥이 내 눈에도 보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여전히 내 안에 분노가 있다. 분노는 분노를 낳는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그러나 만약, 내가 입진보가 아니라 진짜 행동형 몸진보였다면, 이 분노들이 표출되는 순간 내 안에서 즉시 방을 빼 줄까?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어차피 그 빈자리에 입주할 분노의 불쏘시개들은 매일 폭발적으로 재생산되고, 세상은 어째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기미를 보여주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얼마간 내 입이 분노청정지역이 되는 일은 없겠다. 글도 여전히 똥이겠다. 입진보는 지치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가끔 말이 헛나온다

 혀가 이를 피해갈수록

 말이 자꾸 교묘해진다

 말이 교묘해질수록

 발은 자주 덫에 걸린다


 잇몸 위에 솟아 있는 어금니 반쪽

 혀가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밥알을 좌편향으로 굴릴 수밖에 없다

 왼쪽 어금니를 착취하지 않을 수 없다

 혀가 더 교묘해지지 않을 수 없다

 

 _ 김태정 <혀와 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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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7-09-15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곤과 지치는 것. 이 두가지가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요즘 저쪽사람들은 난린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그간 싸우느라 많이 지치고, 빨리 변하지 않는 세상이 (이유는 알지만) 힘든 건 아닌가 싶네요. 분노와 절망이라는 연속성이 절묘하네요..

syo 2017-09-15 06:48   좋아요 0 | URL
저쪽 사람들도 참 대단합니다. 지치지 않는 거(혹은 지쳐도 하는 거) 하나만큼은 인정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독서괭 2017-09-1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 글 정말 좋습니다. 요즘 인용하시는 글들 보니, 분노의 포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절망할 일이 너무 많기에 체념과 냉소로 방파제를 쌓는다는 말도 공감이 갑니다...

syo 2017-09-15 08:36   좋아요 0 | URL
분노의 포도는 정말 자신있게 권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대목을 옮겨놓을거면 차라리 사서 밑줄을 그을 것을- 하는 중입니다.

sprenown 2017-09-15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읽지 않은 세계문학작품중에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와 감동을 느낀 소설입니다. 문체도 훌륭하고요.

막시무스 2017-09-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어딘가에서 잠자고있는 분노의 포도를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syo 2017-09-15 10:42   좋아요 0 | URL
제가 감사받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스타인벡이 다 한 건데 말이지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막시무스님!
 


1


군대에서 알게 된 바, 갑질은 기세(氣勢)다. 명분도, 분노도 뭣도 아닌 기세가 핵심인거라, 일단 덮어놓고 야, 이 미친 놈아- 하고 질러 놓으면 그 뒤로는 정신만 바짝 차리면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잘 뒤져보면 소소한 잘못 한두 개쯤은 해 놓고 사는 게 세상 이치이며, 설사 후임으로 간디에 마더 테레사가 왔다한들, 선임이 마음 먹고 털고자 하면 불가능이 없는 게 또 이놈의 더러운 세상 돌아가는 모양인 것이다. 결국 내가 알게 된 갑질의 진짜 비밀은 이렇다. 내가 갑이라서 갑질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갑질을 해서 갑질을 하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허튼 소리가 다양한 방향으로 변용되면서 은근히 진실을 건드린다. 내가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저 화를 내서 화를 내는 것이다. 내가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그저 웃다보니 웃는 것이다. 네가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슬픈 똥문장들을 분당 30개는 지어낼 수 있는 내가 똥구멍이냐, 아니면 이놈의 세상이 똥구멍이냐!


글도 매일 쓰다 보면 매일 써지고 며칠 거르다가 쓰려면 어쩐지 잘 안 써지므로, 매일 기세 좋게 모니터 앞에 앉고 보자는 교훈적인 말로 시작하고 싶었던건데,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보시라. 이런 잡글을 쓰고 있는 상황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분, 글을 띄엄띄엄 쓰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니면, 나만 쓰레긴가?


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어 보니, 평소 내가 쓰던 글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원래 이런 놈인데, 근래 좀 칭찬받더니, 내가 뭐라도 되고, 내 글이 뭐라도 된 줄 알았나보다. 허허.....



나는 책을 쓰는 저자가 아니다. 내 과제는 내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직업이며 유일한 소명이다. 

-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에서 재인용




2


놀러 가고 싶은데, 그게 여행은 아니다. 자고로 여행은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여행에는 고고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여행을 제대로 다녀왔다고 뽐내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보자. 우선, 새로운 땅에서 내밀한 자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현지인과 소통하는 가운데 나의 지평을 넓혀야 하며, 가끔은 지도 없이 무작정 걷다 길을 잃고 우연히 너무 좋은 펍도 발굴해야 하고, 비운의 인생을 살다 간 어느 마이너한 예술가의 무덤을 찾아가 그 묘비명을 가슴에 새겨 보기도 해야 하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한적한 카페에 앉아 독창적인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두꺼운 페이퍼백 한 권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도 봐야 하고, 이유 없이 끌리는 사막에 호기롭게 도전하여 죽을 것 같은 한낮을 자책하며 보내다가 밤이면 하늘을 뒤덮은 별을 올려다보며, 아 나는 얼마나 작은 사람이며 이 세상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 감탄도 해야 하고..... 할 것이 너무 많다! 차라리 패키지 관광이 더 마음 편하겠어!


syo는 이렇듯, 변변한 여행 한 번 못 가보고 그저 여행을 글로 배운 짐승입니다. 하지만 물진 않아요.



아바나에서 끝없이 걷는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아바나에 대한 독서 행위나 마찬가지다. 낱말을 읽듯 집집마다 기웃거리고, 행간을 읽듯 골목마다 헤집고 다니고, 문단을 읽듯 지역을 훑는다. 나중엔 책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듯 아바나 전체를 알게 되거나, 알게 되었다고 자신을 속이게 된다.

_ 백민석,『아바나의 시민들』 


"내가 티티카카 호수에서 잘 때 일이야. 호수안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섬이 있었어. 밤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갔는데 코에 뭔가 딱 부딪혔어."


"뭐였어?"


"별."

_ 정혜윤,『인생의 일요일들』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종종 세계지도 앞에 가 섰더랬다. 내가 있는 곳을 손으로 짚고, 그가 있는 곳을 손으로 짚었다. 어디쯤에서 만나야 할까, 어디가 우리의 중간쯤일까. 아니, 중간이 아니어도 좋다, 나도 날아가고 그도 날아가 아주 엉뚱한 곳,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아주 멀리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설고 서로가 서로에게만 익숙한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_ 이유경,『잘 지내나요?』




3



 무위의 시 / 박해석


 우두커니가 우두커니 먼산만 바라보다가

 오늘도 별 탈 없이 하루가 가는구나 하고

 지친 다리 좀 쉴까, 고개 꺾어 아래를 바라보니


 거기 고즈넉이가 고즈넉이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제 그림자인 줄 알고 손짓을 해도 꿈쩍도 않아

 이봐, 너는 누군데 내 자리에 들어와 앉아 있지

 그런 뜻의 눈짓을 보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고즈넉이가 고즈넉이 올려다보는 눈빛에

 우두커니는 또 우두커니가 될 수밖에요


 세상에는 때로 이런 말없는 동무가 있어

 살고 살아지는 게 아니겄에요


이런 시를 만나면 쓰고, 읽고, 다시 쓰고, 외우느라 삼십 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며 나는 우두커니가 되고,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으며 나는 고즈넉이가 된다. 내가 우두커니가 되면 세상이 고즈넉이가 되어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내가 고즈넉이가 되면 세상이 우두커니가 되어 나를 바라봐 준다. 가끔 좋은 시를 만나면 이런 경험을 한다. 시가 부스스 기지개를 켜며 종이에서 일어섰다. 시가 시 밖으로 나왔다. 밖이 다 시가 되었다.





4


어릴 적 남의 논 메고 남의 밭 갈며 자란 아버지는 평생을 거대한 트럭에 양파를 싣고 떠돌다가 오십이 다 넘어서야 자그마한 땅 얻어 감나무를 심었다. 아버지는 농사운이 없었고, 감은 큰 돈이 되지 않았다. 양파가 많은 곳에서 양파가 적은 곳으로 트럭을 움직였던 젊은 날에,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쯤 벌써 번듯한 도회지에 4층짜리 건물을 지어 올린 아버지였으므로, 감 판 작은 돈이 더 작게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옛날 생각 나시죠? 아버지는 쓰게 웃었다. 내가 인자 와가 뭐한다꼬 큰 돈 필요하겠노. 내는 좋다. 땅이 좋다. 좋은 땅은 아이지만, 내는 이 땅이 좋데이. 이런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대답은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 이름조차 몰랐을 책 속에 나오는 바로 이 말을 아버지는 하고 싶었을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구먼.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사람이 자기 땅을 걸으면서 땅을 관리하고, 흉작이 들면 슬퍼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고, 그러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데. 그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더 커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데."


 소작인은 계속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땅을 직접 보지 않거나, 시간이 없어서 땅을 손으로 만져 보지 못하거나, 땅 위를 걸어볼 수 없다면, 그래도 그 땅은 그 사람을 닮아가지.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걸 생각할 수 없어. 땅이 그 사람이니까. 그 사람보다 더 강하니까. 그 사람은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아져. 그냥 재산이 많을 뿐이지. 그 사람은 땅의 하인일 뿐이야. 그것도 원래 다 그런 법이라고."


_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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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1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테뉴의 문장을 보면서 제가 리뷰를 써야할 소명이 뭔지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 사라진 절판본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것. 그 영혼을 소환하려면 리뷰를 써야 합니다. ^^

syo 2017-09-12 20:41   좋아요 0 | URL
크- cyrus님을 유네스코 인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제가 뭘 해야 됩니까? 제가 유네스코가 되라면 되어 볼게요 까짓거.

cyrus 2017-09-12 20:42   좋아요 1 | URL
유네스코의 짝퉁(?) 북네스코가 세워져야 합니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애서가들이 모이는 단체입니다. ㅎㅎㅎ

2017-09-12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2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7-09-1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패키지 관광이 더 마음 편하겠어! 이 구절 너무 공감가네요 ㅎㅎ

syo 2017-09-12 23:55   좋아요 0 | URL
여행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부담을 주는 책입니다.....

다락방 2017-09-13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둥- 분노의 포도!

syo 2017-09-13 08:5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분노의 시간이 도래하였습니다.

독서괭 2017-09-1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글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네요. 소개해 주신 시와, ˝시가 부스스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는 글도, 여행과 땅에 관한 글과 인용구도 참 좋습니다.

syo 2017-09-13 12:23   좋아요 0 | URL
칭찬감사합니다 ㅎㅎ

인용구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항상 더 초라해지는 제 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7-09-15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의 포도‘의 세상이나 지금의 세상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화가 나던 것이 기억납니다. 최근에 이 책을 읽은 저희 아버지도 그런 말씀을 하더라구요.. 약간의 법제화된 보호장치가 있을 뿐 결국 같은 놈들이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우정치화된 민주주의체제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syo 2017-09-15 06:53   좋아요 1 | URL
국가는 지배계급의 민원처리기구니까요. 점차 직접민주적 성격이 확대되고 지식과 정보의 독점이 조금씩 무너지다보면 좀 더 괜찮은 민주주의가 오지 않을까요.
 

 

1

 

누구를 만나지도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뭐 특별한 것 먹지도 않고, 그저 침대에 책 서너 권 올려놓고 뒹구는 것. 읽고 싶을 때 읽고, 읽다 지치면 졸고, 졸다 깨면 기지개를 켰다,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네이버에 물어도 봤다 하면서 빈둥빈둥, 침대 위에서 하염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밑줄을 치거나 귀퉁이를 접어가며 하루를 탕진하는 것. 매주 하루씩 뺄 수는 없었지만, 한 달에 두 번은 꼭 그렇게 별다른 '아무 것'도 없는 시간을 가지는 것. 창 밖으로 잔잔히 빗방울 떨어져 똑똑똑 유리 두드리는 소리 들려 주기라도 하면 더할 나위 없는. 내가 오래 사랑해 온 나의 휴식은 대충 이런 야트막한 그림이다. 커피 맛 잘 알지는 못하지만 90도에서 25도로 차근차근 식어가는 사이에 숨어있는 모든 온도의 맛을 칭찬하는 마음을 배우고, 소소한 것들을 얻는 데 드는 기다림을 고마운 마음으로 덧칠하는 법도 배우고. 그러다보면 어쩐지 마음에 가득 힘이 생겨 오래도록 소홀했던 옛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해 보기도 하는. 어떻게 내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기특하고 예쁜 나의 휴식. 충분하면 그걸로 충분한 시간.

 

그 시간들이 다 어디로 갔나.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서너 권의 책과, 자꾸자꾸 식어가는 한 잔의 커피와, 거친 숨을 자주 내쉬는 고물 노트북과, 그 모든 것들이 올려져 있는 작은 내 침대와, 그 사이를 뒹굴고 있던, 뒹굴 수 있던 나는. 모두들 어디로 갔나. 

 

  

...... 용기를 내 침대 밖으로 나오기로 한다. 일상이 망가져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자질구레한 일들을 방치해서 일상이 망가진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침대에서 멀어지는 걸음걸음마다 나는 거듭해서 마음을 먹는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마음까지 먹어야 하다니.

_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문장들』

 

 

 

2

 

처음 욕심을 가졌을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욕심이 그려준 지도를 따라 길을 걷다 보면, 이미 그 길을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과 저 앞에서 쉬지도 않고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뒷통수를 발견하는 일이 있다. 기진맥진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 보면 저 아련하게 먼 곳, 더 높은 봉우리에 이미 깃발이 꽂혀 펄럭이고 있음을 깨닫고 벼락맞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마침내 그때는 모를 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천재가 있음을. 천재가 나를 길 잃게 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으므로 내가 갈 수 없을 곳에 이미 가 있는 이들의 존재가 내 삶을 박해한다. 내 의지를 굶긴다. 세계는 벌써 정복되었거나 정복되는 중이다. 자유를 욕심내는 사람만이 지금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고 분노하거나 슬퍼할 수 있듯, 나는 삶의 많은 국면에서 좌절할 자유를 얻었다. 천재를 인정하고 나의 둔재를 시인하는 것은 천천히 100년을 해야 하는 일이지만 120년을 지치는 일이다. 

 

   

성실하다는 말이 듣기 싫었던 건, 내가 천재들을 동경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게 너무 싫었나 보다. 뭐 어쨌든 이제는 내가 성실하다는 걸 알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마치 내게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_이유경,『독서공감, 사랑을 읽다』

 

엥겔스는 이렇게 회고한다. "누가 어떻게 천재를 질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 능력은 너무나 특별한 것이기에,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처음부터 그것을 자신이 획득할 수 없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런 것에 질투를 느끼게 된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히 가공할 정도로 속이 좁을 것이다.

_프랜시스 윈,『마르크스 평전』,『자본론 이펙트』

 

"아니요, 사라졌어요, 제리. 난 두 번 다시 예전처럼 할 수 없어요. 사람은 자유롭거나 자유롭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예요. 자유로워서 쌩쌩하게 실재하는 진짜 재능을 가졌거나 아무것도 없거나 둘 중 하나라고요. 난 더는 자유롭지 않아요.

_필립 로스,『전락』

 

 

 

3

 

천재는 더 남길 것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겠지만, 범재는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다. 내가 죽은 오늘을 생각한다. 슬픔만이 남을 것이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므로 이내 슬펐다는 기억만이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일에만 나를 기억할 것이다. 기일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추억할 만한 것을 달리 세상에 남겨 놓지 못하고 떠난 이들을 위해 관습이 제공하는 사회안전망 같은 것이므로. 나는 기일의 혜택을 입어 간신히 기억되다가, 남아 있는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 결혼 기념일이나, 직장 상사의 생일이나 출신 학교처럼 기억해야 할 것들이 늘어남에 따라 천천히 사라질 것이다. 이미 가고 난 마당에 남아 있는 이들이 기억해 주는지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으면서도,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버릴 수 없는 치명적인 욕심이다. 산다는 게 그런 것 아닐까? 잊히고 싶은 욕심과 기억되고 싶은 욕심 사이에서 하는 고무줄 놀이 같은 것.

 

그러나 우리에겐 너무나 슬프게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기억을 둘러싸고 징징거리는 것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해야 좋겠다.

 

   

페소아는 베개에다 뺨을 갖다 대며 피로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 모라, 페르세포네가 자기 왕국에서 나를 원해요. 이제 떠날 시간이에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이미지들의 극장을 떠날 시간입니다. 내가 영혼의 안경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당신이 알까요. 나는 저 위 무한한 공간 속에서 오리온의 버팀대를 보았고, 이 지상의 발로 남십자성 위를 걸었고, 빛나는 혜성처럼 무수한 밤을 가로질러갔고, 별들 사이의 공간, 쾌락과 두려움을 가로질러갔고, 또한 나는 남자이자 여자, 노인,소녀였고, 서양 세계 수도들의 커다란 대로에 모인 군중이었고, 우리가 평온함과 지혜를 부러워하는 동양 세계의 온화한 부처였고,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자들, 내가 될 수 있었던 모든 타자였고, 명예와 불명예, 열광과 쇠잔함을 알았고, 험준한 산들과 강들을 가로질러갔고, 평화로운 양떼를 보았고, 머리 위로 햇살과 비를 맞았고, 타오르는 여성이었고, 길에서 노니는 고양이였고, 태양이자 달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삶이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 충분합니다. 사랑하는 안토니우 모라. 내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무수한 삶을 사는 것과 같았어요. 이제 피곤해요. 내 촛불은 소진되었어요.

_ 안토니오 타부키,『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우리는 더 이상 '기억 속의 한국'에 머무를 수 없다. 어둡고 불편한 기억이 순서없이 등장하는 낯선 꿈처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풍경들과 얼굴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중심이 없는 풍경들과 익명의 얼굴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는다. 우린 속수무책으로 그 풍경을,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 풍경이, 얼굴이 전하려는 바는, 우리가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 시간 속에 머무르길 바란다는 것이다.

_ 김은산,『기억극장』

 

우리에게는 공동의 빛이 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빛은 우리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전에,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살고,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죽어간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담긴 빛이야. 그 모든 눈빛을 기억하는 빛이야. 푸른빛이 감도는 모닥불. 그 주위에 가득한 어둠. 어둠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 영원히 잠긴 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눈빛을 기억해

_윤해서,「우리의 눈이 마주친다면」,『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행복의 과학』

 

11. 15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모험이 되는 때가 있다. 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 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 시간의 연장, 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 지루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내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

_ 롤랑 바르트,『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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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3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3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04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런 휴식... 정말이지 딱 하루만 누리고 싶네요. 흑흑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의 문장이 좋아 보관함에 담아 봅니다. 책장에 꽂혀만 있던 <불안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syo 2017-09-04 07:13   좋아요 2 | URL
저도 불안의 책 꽂아놓기만 하고 하루하루 불안해하는 중입니다.....
 

 

1

 

위로 가면 가을이고, 아래도 꽤 서늘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여기는 대구다. 어젯밤 11시 기온이 27도였다. 그래도 오늘밤은 살 만하다. 

 

 

 

내가 대구는 덥니 뜨겁니 할때마다 사람들은 나한테 더위부심 좀 그만 부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더위고 더위부심이고, 전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세요. 가져가시라구요.

 

 

2

 

내일이나 모레 쯤 하순에 읽은 책을 정리하는 페이퍼가 올라오겠지만, 8월은 이러구러 100권을 채워 읽게 될 것 같다. 사실 그럴려고 악을 쓴 감이 있다. 20일까지 읽은 책이 66권에 이르지 못하자, 21일부터는 얇고 작은 책을 골라 양을 채우는 책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권모와 술수를 부린 결과라 해도, 100권이라는 것은 자못 무식한 양이 아닐 수가 없다.

 

장르의 편식도 심했다. 읽기/쓰기와 문학 부문이 파이를 와구와구 잡아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엄하게 찬밥 취급 받은 아이가 페미니즘이다..... 나는 도서관 3곳을 이용하면서 항상 12-15권을 대출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문학 장르는 먼저 소비되서 빠져나가고 자꾸 페미니즘 책들이 쌓이는 것이다. 심지어 구매한 책들까지 있는 마당이라 열나흘 안에는 다 읽어줘야 할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지금 7권이나 내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해서 얼추 2500페이지쯤 되니까, 하루 178.5714285714쪽씩 읽으면 되겠네? 와, 열라 쉽군? 자, 그럼 7권의 사무라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3

 

   

 

 

길 위의 인생 / 글로리아 스타이넘

: 제일 먼저 읽고 반납해야 할 책인데, 한 50쪽 읽은 상태다. 이론서가 아니기 때문에 착착 넘어갈 것을 기대하였으나, 이게 또 부분 부분 재미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는 바람에 캄캄하다. 기약이 없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이민경

: 이전에 읽은 경험이 있다. 게다가 7권의 사무라이 가운데서 가장 말랑말랑하므로 숨통을 좀 틔어 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 권김현영 외

: 많은 독자들이 읽고 인류애 상실을 호소하는 악명 높은 책이다. syo 역시 분노하는 남자이므로, 분량에 비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한다. 심지어 팔랑팔랑 넘겨 봤더니 본격 학술서. 아아.....

 

젠더와 사회 / 한국여성연구소

: 말 다했다. 가장 방대한 양. 최고의 난적. 명실공히 얘가 두목. 두 챕터를 읽은 상황이나, 다시 봐도 처음 본 것 같을 것이다. 그나마 내 책이라 반납 기한 같은 것이 없으므로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룰 수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페미니즘의 개념들 / (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

: 이것은 사전이다. 사전은 모름지기 발췌독이지. 중학교 국어시간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사전을 한 장 한 장 다 읽고 있다는 말을 했던 아이는 칭찬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오랑캐 조선말 배우냐, 그걸 다 읽고 앉았게. 오랑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 리베카 솔닛

: 사실은 제일 기대하고 있는 책이지만 그리 촉박한 느낌이 아니라 뒤에 읽으려 했다. 그런데, 조만간 학교 앞으로 방을 구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동생이 자꾸 눈독을 들이는 것 같다. 좋은 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긴 한데, 이대로 손놓고 내줄 수는 없는 일이지. 무려 리베카 솔닛 신작인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 그래서 이 책이 전작이므로 반드시 이것부터 읽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뻥을 쳤다. 잘도 낚인다. 나는 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으므로 여유롭다. 동생은 책 읽는 속도가 느리므로, 이 책을 다 읽고 오라버니의 신묘한 계략에 걸려들었음을 깨달을 때쯤이면 넌 이미 나가 있고 난 이미 신작을 다 읽었을 것이다. 하하하, 넌 그렇게 또 당하는 거고, 앞으로도 영원히 당하는 거란다, 이 무지렁이야.    

 

아, 저 무지막지한 사무라이들과 syo의 대결, 과연 승부의 결과는 어찌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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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08-3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다독가 시네요... 부럽습니다.

syo 2017-08-30 13:05   좋아요 0 | URL
아.... 제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다가 얇고 쉬운 책을 주로 고른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전 그리 다독가도 아닙니다....

sprenown 2017-08-3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사무라이들과 syo의 대결결과는 syo의 승! 이 확실하네요.

syo 2017-08-30 13:52   좋아요 0 | URL
syo가 감사를 전합니다!
제일 작은 놈으로 한 놈 격추시킨 상황입니다.

cyrus 2017-08-3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어느 분의 리뷰에서 리베카 솔닛이 남성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내용을 봤어요. 저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만 읽었어요. 그 책을 읽은지 오래 돼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는데, 솔닛이 책에서 남성 페미니스트를 공격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어제 자꾸 그 내용이 마음에 걸러서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yo 2017-08-30 14:22   좋아요 0 | URL
저도 그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직은 이런들 저런들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내로 두 권 다 읽게 되겠네요. 저도 한 번 같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17-08-30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 위의 인생> 부분 부분 재미 있었다가 없었다가~~ 에서 박수 칩니다.
저도 그래서 다 읽지 못 하고 반납을... ㅠㅠ

사무라이들과의 대결에서 꼭 승리하시길^^

syo 2017-08-30 15:0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도 이기지 못한 무시무시한 사무라이가, 이제 겨우 25%만을 보여줬을 뿐인데 벌써 힘이 부쳐하는 조무라기라며 저를 도발하고 있습니다...
 

 

1

 

 홍시

 

 아버지가

 감을 보내셨다

 바쁘게 다니다

 이제서야 열어 보았더니

 물크러진 붉은 얼굴이다

 어디서 본 듯도 하다

 어느 늙은 마음이

 조용히 바람 맞는 언덕에서

 내게 온 얼굴이다

 익은 그리움이다

 말간 놈으로 몇을 골라

 방 나누어 쓰는 친구 건네고 나는

 무른 놈

 짓무른 데부터

 혀를 대 본다

 술맛이 난다

 노인이 술을 즐겨 자셨다

- 2010. 11. 24

 

 

2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일이다. 가을이면 아버지는 감을 보내오곤 했다. 먼 길을 밟아 온 감은 꼭 어딘가 터져 있었다. 어차피 터져서 절반은 못 먹게 되니 이런 거 그만 보내라고 말을 하면 아버지는 절반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됐다며 고집을 피웠다. 늙어도 고집은 늙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도 두 번 거절하지 않았다. 저 시를 쓰게 된 건,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글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이제 감밖에는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랬다. 다 물크러진 감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난 아버지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하지만, 내 마지막 선물이 저 시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될 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3

 

아버지는 중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지만 아들이 학교에서 받아 온 가정조사서류에는 꼭 고졸이라고 적는, 기왕 하는 거짓말이라면 통 크게 대졸이라 속일 수도 있었을텐데도 고졸이라고 써 넣고는 마치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아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고, 책을 적게 사 주는 무심한 사람이었다. 고집이 세 당신 한 몸은 당신이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당신을 닮아 고집 센 아들의 팔목을 비틀어 법대를 보내지는 못한 허술한 사람이었다. 딸처럼 키운 조카가 기대에 썩 못미치는 신랑감을 데려와 결혼을 통보했을 때, 안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한 시간을 목놓아 울어 놓고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에서 나와 부은 눈으로 결혼을 허락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당신 딸은 그 남자 친구 한 번 제대로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성미 급한 사람이기도 했다. 암으로 간의 절반을 떼어내 놓고도 끝내 술을 버리지 못해 아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모질고 모자란 사람이었다.  

 

 

4

 

처음 병실에 들어선 날을 기억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싯누런 미소를 처음 마주한 순간, 아들은 이미 애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곧 괜찮아 질거라는 허튼 말로 아들을 맞았지만 그 말은 지금 당신이 괜찮지 않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는 잠이 많아졌다. 바늘처럼 가느다래진 그 초라한 생명의 옆에 앉아서 아들은 감을 생각했다. 물러터진 감의 달면서도 시큼한 맛을 떠올렸다. 그리고 옆에 누워있는, 저 금방이라도 흐물흐물 터져 병실 바닥으로 쏟아질 것 같은 누런 감의 빈약한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조금 울 수 있었다. 울음의 냄새를 맡은 아버지가 일어나 말없이 웃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가 다시 미워졌다. 미우므로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버지, 나는 당신이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날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나는 애도를 시작했습니다. 의사가 당신의 눈을 감기며 어떤 시간을 불러줄 때, 눈동자를 흔들지 않고 당신이 식어가는 모습을 또렷이 바라볼 겁니다. 당신의 영정 옆에 서면 곡을 하겠으나, 영전에 향을 바치는 이가 나의 오랜 친구라면 나는 괜찮다, 슬쩍 미소를 보내기도 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얀 베옷을 입고 재가 되기 위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갈 때쯤에 나는 아마도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될 겁니다. 당신께는 퍽 야속하겠으나 이 모든 것이, 지금 당신이 그 얼굴에 칠해 놓은 누런 분장을 지우며, 이게 다 재밌는 농담이었다고, 그 좋아하는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며 환자복을 벗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벌어질 일들입니다.  

 

 

5

 

아버지는 겨울에 떠났지만 아들은 가을이 오면 기일처럼 아버지를 생각한다. 여름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늘 우연히 세 권의 책을 읽다가 가을이면 감을 보내주던 사람을 생각했다. 다시는 배송되지 않을 감을 한번 더 생각했다. 애도는 옛날에 끝났고, 가을이 와도 더는 슬프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한 박스의 감을 생각한다. 절반이 아니라 전부가 터져나갔더라도, 한 상자의 감을 다시 받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감은 누런 색이어도 밉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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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8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8-2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와도 더는 슬프지 않다는 말이 마음아파요.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고 사람들의 빈 자리를 만나게 되더라구요.;;

syo 2017-08-29 06:50   좋아요 1 | URL
제가 죽음에 대해 뭔가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그 이후의 시간을 겪어나간 방식이 앞으로 또 다른 죽음들을 맞아 애도하는 방식을 결정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8-2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버지를 여읜 적이 있어서 쇼 님의 애도가 구구절절 와닿습니다.

syo 2017-08-29 11:42   좋아요 0 | URL
어느 정도는 본질적으로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거군요...

sprenown 2017-08-3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라는 시가 생각나네요...늦었지만 삼가 명복을 빕니다. 주소 알려주신다면 감 한박스 보내드리고 싶네요..주황색으로 밝으시레하면서 물컹한 놈으로.

syo 2017-08-30 15:04   좋아요 1 | URL
하하하, 감사합니다.
문태준은 제가 제일 사랑하는 시인이지요.
감은 말씀만으로도 먹은 기분입니다. ˝밝으시레하다˝는 표현은 살면서 첨 듣는데, 어쩐지 말맛이 있습니다.

sprenown 2017-08-3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그스레하다˝가 옳은 표현이네요..철자법도 제대로 모르고 엄벙덤벙 적었네요.

syo 2017-08-31 15:03   좋아요 0 | URL
어차피 모양을 나타내는 말인데 굳이 옳은 표현에 집착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발그스레하다˝는 말은 빨갛다는 느낌이 들지만 ˝밝으시레하다˝고 쓰니까 밝다는 느낌이 더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7-09-0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이상하게 절절입니다! 절절맨다 그거 말고요.

syo 2017-09-02 18:44   좋아요 0 | URL
절절맨다 그것도 매력적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5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남자의 자리>읽고 난 한 어머니가 남편의 부재의 슬픔에 잠겨 펑펑 울었다해서 읽고싶은데 품절이고. 근데 syo님 글 읽으니 가슴이 쒜 해지고 코끝은 시큼해지고 눈은 퀭해지네요~마음이...^^

syo 2018-10-05 20:36   좋아요 0 | URL
대출을 이용해서 한 번 읽어 보세요 ㅎㅎㅎ 아니 에르노는 뭘 읽어도 좋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5 21:12   좋아요 0 | URL
아니 에르노 <한 여자>읽으면서 가슴이 갑자기 멍했지요! 그런 느낌은 ‘벌거벗은 글쓰기’의 아니 에르노만이 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syo님 굿뜨!

공쟝쟝 2019-03-26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 동....ㅠㅠㅠㅠ

syo 2019-03-27 09:2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뭘 또 이렇게까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