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대에서 알게 된 바, 갑질은 기세(氣勢)다. 명분도, 분노도 뭣도 아닌 기세가 핵심인거라, 일단 덮어놓고 야, 이 미친 놈아- 하고 질러 놓으면 그 뒤로는 정신만 바짝 차리면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잘 뒤져보면 소소한 잘못 한두 개쯤은 해 놓고 사는 게 세상 이치이며, 설사 후임으로 간디에 마더 테레사가 왔다한들, 선임이 마음 먹고 털고자 하면 불가능이 없는 게 또 이놈의 더러운 세상 돌아가는 모양인 것이다. 결국 내가 알게 된 갑질의 진짜 비밀은 이렇다. 내가 갑이라서 갑질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갑질을 해서 갑질을 하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허튼 소리가 다양한 방향으로 변용되면서 은근히 진실을 건드린다. 내가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저 화를 내서 화를 내는 것이다. 내가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그저 웃다보니 웃는 것이다. 네가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슬픈 똥문장들을 분당 30개는 지어낼 수 있는 내가 똥구멍이냐, 아니면 이놈의 세상이 똥구멍이냐!
글도 매일 쓰다 보면 매일 써지고 며칠 거르다가 쓰려면 어쩐지 잘 안 써지므로, 매일 기세 좋게 모니터 앞에 앉고 보자는 교훈적인 말로 시작하고 싶었던건데,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보시라. 이런 잡글을 쓰고 있는 상황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분, 글을 띄엄띄엄 쓰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니면, 나만 쓰레긴가?
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어 보니, 평소 내가 쓰던 글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원래 이런 놈인데, 근래 좀 칭찬받더니, 내가 뭐라도 되고, 내 글이 뭐라도 된 줄 알았나보다. 허허.....
나는 책을 쓰는 저자가 아니다. 내 과제는 내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직업이며 유일한 소명이다.
-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에서 재인용
2
놀러 가고 싶은데, 그게 여행은 아니다. 자고로 여행은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여행에는 고고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여행을 제대로 다녀왔다고 뽐내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보자. 우선, 새로운 땅에서 내밀한 자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현지인과 소통하는 가운데 나의 지평을 넓혀야 하며, 가끔은 지도 없이 무작정 걷다 길을 잃고 우연히 너무 좋은 펍도 발굴해야 하고, 비운의 인생을 살다 간 어느 마이너한 예술가의 무덤을 찾아가 그 묘비명을 가슴에 새겨 보기도 해야 하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한적한 카페에 앉아 독창적인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두꺼운 페이퍼백 한 권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도 봐야 하고, 이유 없이 끌리는 사막에 호기롭게 도전하여 죽을 것 같은 한낮을 자책하며 보내다가 밤이면 하늘을 뒤덮은 별을 올려다보며, 아 나는 얼마나 작은 사람이며 이 세상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 감탄도 해야 하고..... 할 것이 너무 많다! 차라리 패키지 관광이 더 마음 편하겠어!
syo는 이렇듯, 변변한 여행 한 번 못 가보고 그저 여행을 글로 배운 짐승입니다. 하지만 물진 않아요.
아바나에서 끝없이 걷는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아바나에 대한 독서 행위나 마찬가지다. 낱말을 읽듯 집집마다 기웃거리고, 행간을 읽듯 골목마다 헤집고 다니고, 문단을 읽듯 지역을 훑는다. 나중엔 책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 듯 아바나 전체를 알게 되거나, 알게 되었다고 자신을 속이게 된다.
_ 백민석,『아바나의 시민들』
"내가 티티카카 호수에서 잘 때 일이야. 호수안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섬이 있었어. 밤에 오줌이 마려워 밖에 나갔는데 코에 뭔가 딱 부딪혔어."
"뭐였어?"
"별."
_ 정혜윤,『인생의 일요일들』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종종 세계지도 앞에 가 섰더랬다. 내가 있는 곳을 손으로 짚고, 그가 있는 곳을 손으로 짚었다. 어디쯤에서 만나야 할까, 어디가 우리의 중간쯤일까. 아니, 중간이 아니어도 좋다, 나도 날아가고 그도 날아가 아주 엉뚱한 곳,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아주 멀리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설고 서로가 서로에게만 익숙한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_ 이유경,『잘 지내나요?』
3
무위의 시 / 박해석
우두커니가 우두커니 먼산만 바라보다가
오늘도 별 탈 없이 하루가 가는구나 하고
지친 다리 좀 쉴까, 고개 꺾어 아래를 바라보니
거기 고즈넉이가 고즈넉이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제 그림자인 줄 알고 손짓을 해도 꿈쩍도 않아
이봐, 너는 누군데 내 자리에 들어와 앉아 있지
그런 뜻의 눈짓을 보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고즈넉이가 고즈넉이 올려다보는 눈빛에
우두커니는 또 우두커니가 될 수밖에요
세상에는 때로 이런 말없는 동무가 있어
살고 살아지는 게 아니겄에요
이런 시를 만나면 쓰고, 읽고, 다시 쓰고, 외우느라 삼십 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며 나는 우두커니가 되고,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으며 나는 고즈넉이가 된다. 내가 우두커니가 되면 세상이 고즈넉이가 되어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내가 고즈넉이가 되면 세상이 우두커니가 되어 나를 바라봐 준다. 가끔 좋은 시를 만나면 이런 경험을 한다. 시가 부스스 기지개를 켜며 종이에서 일어섰다. 시가 시 밖으로 나왔다. 밖이 다 시가 되었다.
4
어릴 적 남의 논 메고 남의 밭 갈며 자란 아버지는 평생을 거대한 트럭에 양파를 싣고 떠돌다가 오십이 다 넘어서야 자그마한 땅 얻어 감나무를 심었다. 아버지는 농사운이 없었고, 감은 큰 돈이 되지 않았다. 양파가 많은 곳에서 양파가 적은 곳으로 트럭을 움직였던 젊은 날에,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쯤 벌써 번듯한 도회지에 4층짜리 건물을 지어 올린 아버지였으므로, 감 판 작은 돈이 더 작게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옛날 생각 나시죠? 아버지는 쓰게 웃었다. 내가 인자 와가 뭐한다꼬 큰 돈 필요하겠노. 내는 좋다. 땅이 좋다. 좋은 땅은 아이지만, 내는 이 땅이 좋데이. 이런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대답은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 이름조차 몰랐을 책 속에 나오는 바로 이 말을 아버지는 하고 싶었을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구먼.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사람이 자기 땅을 걸으면서 땅을 관리하고, 흉작이 들면 슬퍼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고, 그러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데. 그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더 커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데."
소작인은 계속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땅을 직접 보지 않거나, 시간이 없어서 땅을 손으로 만져 보지 못하거나, 땅 위를 걸어볼 수 없다면, 그래도 그 땅은 그 사람을 닮아가지.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걸 생각할 수 없어. 땅이 그 사람이니까. 그 사람보다 더 강하니까. 그 사람은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아져. 그냥 재산이 많을 뿐이지. 그 사람은 땅의 하인일 뿐이야. 그것도 원래 다 그런 법이라고."
_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