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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콜렉션 박스세트 (11disc) - 할인행사
기타노 다케시 감독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갖고 싶던 박스세트 중 하나를 손에 넣었다. 5년도 더 전에 '하나비'와 '소나티네'를 보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비디오 대여점에 갈 때마다 테이프를 만지작거리곤 했었는데 드디어 박스세트를 사버린 것이다. 잘 기억나지 않는 작품은 있어도 여기 수록작 중에서 내가 보지 못한 건 '브라더'와 '돌스'뿐이다. 그렇지만, 거장의 작품 10편을 소장하고 계속 볼 수 있다는 건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지금도 벅찬 일이다.
기타노 다케시 영화는 비정하다. 그 비정함은 흉포한 남자 3부작에서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연출, 편집과 함께 크게 부각된다. 그리고, 관객을 어이없이 웃긴다. 활짝 깔깔대며 웃게 하는 게 아니라 어이없는데 웃겨서 결국은 박수를 치며 웃게 되는 것이다. 저런 장면에 어떻게 저런 유머를 넣었을까 싶게 관객의 혼을 살짝 빼놓고 바로 빠지는 식의 코미디를 구사한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비트 다케시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아쉽다.
대부분은 흉포한 남자 3부작으로 '그 남자 흉포하다', '3-4x10월', '소나티네'를 꼽는다는데 흉포한 남자 3부작이라는 건 기타노 다케시가 그렇게 명명한 게 아니다. 때문에 '소나티네' 부록에 있는 이동진 기자의 말처럼 죽음의 행위가 점점 커지는 순으로 '그 남자 흉포하다'를 제외하고 '3-4X10월', '소나티네', '하나비'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 안에는 100세의 노인과 7살의 어린 소년이 함께 들어 있다는 말처럼 흉포한 남자 3부작에는 폭력과 죽음, 순수함과 유치함이 기가막히게 섞여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득 생각난 건데, '3-4X10월'에서 우에하라(기타노 다케시 분)는 자기 아내와 부하보고 성관계를 가지라고 장난스럽게 몰아붙인다. 처음엔 안 하려 하던 두 사람이 우에하라의 강권에 못 이겨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메마른 성관계를 억지로 맺는데, 그 후 우에하라는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고 여자를 떼어낸다. 그런데 그 방법이 어찌나 치사하고 못됐는지 아마도 우에하라의 아내였던 여자는 내내 우에하라를 원망했을 것 같다.
많은 평론가들이 '3-4X10월'과 '소나티네'를 닮은꼴 영화라 말하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런 게 느껴진다. 기타노 다케시는 바닷가, 그 중에서도 오키나와의 바닷가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은... ^^;; 어릴 때 아버지가 늘 어머니와 자기를 때렸다고 하고, 야쿠자 영화를 많이 만드는 이유가 야쿠자의 세계에 대해 정말 많이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기타노 다케시. 사람 냄새만 맡아도 야쿠자인지 아닌지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무표정으로, 혹은 언뜻 보면 비웃는 표정으로 총질을 해대고, 심지어 기관총을 난사한다. 총을 맞을 상대방도 언제나 무표정하다. 벌벌 떨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대처하거나 그냥 총에 맞거나 할 뿐이다. '소나티네'에서 돈을 안 내는 빠찡코 업자를 기중기에 매달아 익사시키는 장면은 무표정 살인의 최고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위에 썼듯 죽음을 앞둔, 모든 걸 달관한 100세 노인처럼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다. 죽음을 앞둔 그의 모습은 무서움이 지나쳐 섬뜩하다. 그의 죽음은 장엄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다. 그저 너무나도 담담히 죽어버리는 모습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갖고 노는 흉포한 남자 3부작이 무섭고 섬뜩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3부작이 좋고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