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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
마사 너스봄 외 지음, 오인영 옮김 / 삼인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베로니카의 두 가지 삶(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이란 영화가 있다(한국 개봉 제목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베로니카라는 여자가 폴란드와 프랑스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두 여자는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난, 완전한 남남이다. 외모도 같고 감성도 같은 두 여자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지만, 어딘가 두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 있는 듯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갑자기 죽을 때 프랑스의 베로니카도 왠지 모를 아픔을 느끼며, 두 베로니카가 끌리는 대상도 서로 비슷하다.(이 영화 원제를 확인하려고 네이버에서 검색했더니 성인 인증 화면이 뜨더라. 참나, 이 영화가 왜 성인 인증 대상이지?! ‘이중생활’이란 묘한 단어 때문이겠지? -.-)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에서 “우리가 태어난 장소라는 우연은 바로 우연, 그것도 하나의 우연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아 이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일본이나, 베트남이나, 쿠르드족의 아이로 태어날 수도 있었다. (물론 소나 말로 태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선 일단 ‘인간’으로 한정하자.) 그렇다면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아닌 남은,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다. 내가 칼에 찔리면 아프고 자칫하면 죽듯이,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난 다른 ‘나’들도 칼에 찔리면 아프고 자칫하면 죽는다. 다른 나라 군대가 나와 내 가족, 친지들을 괴롭히면 분노가 일듯이 그들도,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나’들도 내 나라 군대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분노한다. 그런데 나는,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마사 너스봄은 바로 이런 전제에 따라, ‘나’는 근본적으로 어느 나라 국민이기 전에 세계의 한 시민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는 애국자를 길러내려 하지 말고 ‘세계시민주의 교육’을 실시하자고 한다. 이 책은 마사 너스봄의 이러한 제안(1부)과, 이 제안에 반응한 열여섯 명의 반론이나 보론(2부), 그리고 다시 그 반론이나 보론에 대해 마사 너스봄이 응답한 글(3부), 이렇게 열여섯 편을 한데 묶은 것이다. 마사 너스봄의 애초 제안은 다소 추상적이고 그래서 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열여섯 명의 반론이나 보론을 읽으며 되새기다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이 발전하게 된다. 응당 구별해야 할 세계시민주의와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경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다만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글쓴이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본래 그런지 특히 2부의 글 첫 세 편을 읽는 데는 아주 애먹었다. 콰미 앤서니 애피아의 글은 처음엔 잘 읽히다가, 중간 무렵부터 그 문단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한눈에 이해되지 않았다. 각각 철학이나 정치학, 문학 교수인 글쓴이들의 지적 배경을 모르는 탓일 수도 있겠지만, 워낙 영문이란 대명사 it 하나를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문장이 확 달라지는 법, 번역이 매우 친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와 3부는 읽기 쉬운 편이다.
딱딱한 문장을 오래 읽기 싫은 사람에게는 다 읽을 필요 없이 1부, 2부 중 세 편 곧 콰미 앤서니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적인 애국자”와 일레인 스케리의 “타자 상상하기의 어려움”, 임마누엘 월러스타인의 “애국주의도 아니고 세계시민주의도 아니다”, 그리고 3부, 이렇게 다섯 편만 읽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 밖의 글에서도 물론 나름대로 생각의 씨앗을 건질 수 있다. 하지만 세계시민주의를 논박하는 글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이란 나라가 어찌나 세계시민적인 도덕과 가치를 바탕으로 해서 세워졌으며 그 헌법이 얼마나 도덕적인지, 슬쩍 비위가 틀리면서 그러면 오늘날 미국이 세계에 하는 짓이 왜 그 모양이냐고 묻고 싶어진다.
마사 너스봄이 근본적으로 충성해야 할 대상은 ‘인류’라며 하도 ‘인류애’와 ‘도덕’을 강조하기에 너무 인간중심적인 생각 아닌가 했는데, 마사 너스봄도 3부에서 “비판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인간의 도덕적 요구에 초점을 맞춘 이유를 묻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고 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