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오만과 편견 Timeless Stories 1
제인 오스틴 지음, 김지선 옮김, 휴 톰슨 그림 / 천지인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로 옆에서 수다 떠는 듯한 매끄러운 구어체 번역. 다아시를 가두고 있었던 오만한 틀에 균열을 낸 건 엘리자베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오해와 편견의 거센 물살을 헤치며 용감하게 다가간 건 다아시 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 말부터 한국인 작가의 소설을 잘 안 읽게 되었다. 한국소설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그냥 소설이 아닌 다른 책, 소설이더라도 외국소설에 더 끌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선옥, 박정애의 작품집은 ‘의리로’ 꼬박꼬박 사려 애썼지만, 사놓고는 쟁여놓기만 했다. 그러다 작년에 동료의 추천으로 김종광, 손홍규 같은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박영한, 전상국 같은 좀 오래된(^^) 이름들에도 새로이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경찰서여, 안녕}.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단편소설집이다. 1998년 여름 문학동네 문예공모로 등단하고 나서 발표한 소설 11편을, 등단작 [경찰서여, 안녕]부터 발표 순서대로 묶었다는데, 네 번째 작품을 읽을 때까지, 신기하게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한 걸음씩 더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찰서여, 안녕]은 썩 좋지는 않았다. TV에서 그럭저럭 볼 만한 베스트 극장 한 편을 본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음 작품 [분필 교향곡]은 꽤 인상 깊었고, 그런 인상의 깊이가 네 번째 [전당포를 찾아서]까지 조금씩 더 깊어지다가, 잠시 소강상태, 그리고 여덟 번째 [정육점에서]는 최고점을 쳤다. 그 뒤는 조금씩 하강.

단편소설에서 주인공이 한두 명으로 압축되지 않은 경우는 내가 알기로 별로 없는데([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에서야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지만), 이 작가는 한 가지 작은 사건(이라기보다 일화)이 흘러가는 데 따라 관계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점을 이동한다. 그 일이 벌어지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사람 모두, 각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정이 있었음을, 그들 모두 자기 인생에서는 주인공임을, 장황한 설명 없이 간결하게 보여주려는 것 같다. 주인공 한 사람에게 주목하는 작품에서라면 행인 1, 2나 경비 정도로 처리될 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이홍수, 68세’ ‘양미정, 30세’ ‘박순복, 54세’ 하는 식으로 이름과 나이를 부여하고, 그 순간 그 인물의 기분과 그 인물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밝히 드러낸다.

[분필 교향곡]의 시대 배경은 1989년쯤, 아마 전교조 사태가 처음 벌어졌을 무렵 한 남자고등학교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었는데, 정말로 그랬을 법한 풍경을, 교실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모두 조명하며, 희망도 절망도 없이 간결하게 펼쳐 보인다.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종필, 승만, 영삼, 대중, 일성, 정일, 게다가 건희, 주영, 심지어 봉주, 찬호까지, TV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이름으로 짜놓은 것이 재미있다.

[많이많이 축하드려유]가 어느 읍내의 원동기 면허시험 전후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 푸근한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면, [전당포를 찾아서]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줄거리를 굳이 압축하자면 대책 없이 순진한 농촌 출신 대학생이 서울로 시위하러 왔다가 닭장차에 실려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게 되어, 낡은 싸구려 시계라도 잡혀 차비를 마련할 요량으로 전당포를 찾아 헤매다가, 어찌어찌하여 학교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학생을 잡았다가 떨궈버리는 전경 한 사람도 그냥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익명의 ‘전경’이 아니라 이름과 나이가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무 살 남짓, 주변머리 없는 시골아이가 10원 한 장 없이 서울거리를 헤맬 때의 막막함.

[정육점에서]는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작품이다. 성매매 집결지의 어느 성판매 업소에서 하룻밤 동안 일어난 이야기인데, 현실에서 흔히 있는 대로 파는 쪽이 여자, 사는 쪽이 남자가 아니라, 남녀의 성을 바꾸어놓았다. 현재에도 있는 호스트바 정도를 배경으로 성판매 남성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미아리나 청량리 등등에 있을 법한 업소를 배경으로 하여 ‘군복을 입은 년’이나 ‘사업상 접대하는 년’을 ‘삼촌’이나 ‘아빠’가 붙잡아 오면, ‘연미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들’이 낙점을 받아 쇼를 하고 ‘좆’을 판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완전히 가상인데, 나는 이 이야기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어서, 이 리뷰를 쓰는 것이다.(‘리뷰’란 말에는 왠지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뭔가 그럴듯하게 써야 할 것 같은’ 리뷰를 피하고 페이퍼 난에다 ‘별점 없는 리뷰’라며 편하게 주절거렸더랬는데.)

[짚가리, 비릊다]는 등단하기 직전, 농사짓는 부모님 댁에 한심하게 얹혀살면서 글쓰기의 진통을 겪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나에겐 가장 생동감이 떨어졌다.

-뒷말-
이 책을 다 읽은 지는 한 달이 넘었지만, 맨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서평은 오늘 이 리뷰를 읽기 직전에야 보았다. 이 문학평론가와 나의 소감은 얼추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엇갈리곤 하는데, [편안한 밤이 오기 전에]에 대해서 “작가는 최 노인의 완고한 어투를 빌려,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거나, [중소기업 상품설명회]에 대해 “시골에까지 침투한 경박한 소비풍조의 일단을 그리고 있”다고 간단히 평해버리고 만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느끼기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게 아니라 세상 변하는 데 그토록 가늘게 길게 적응하면서도 자기만의 여유를 마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모 그 자체이고, 작가가 그리고자 한 것은 “시골에까지 침투한 경박한 소비풍조”가 아니라 그런 장삿속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농촌 부인네들의 욕구와 생활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끝의 사람들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절판


그에게 국적을 따지는 것은 비글 해협 연안의 픽튼 섬, 레녹스 섬, 누에바 섬에 서식하는 물개나 기러기나 펭귄에게 아르헨티나 출신인지 칠레 출신인지를 묻는 거나 다름없는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이었다.-10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구판절판


오늘날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교육’이라고 불리는 과정은, 똑같은 가정(假定)과 똑같은 유럽 중심의 모델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동떨어진 사실과 수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책들은 지구 전체에 적합한 것으로 의도된 정보를 전파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생태계나 문화와는 동떨어진 종류의 지식만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합성된 것이고 살아있는 맥락에서 유리된 것이다. <중략> 서구의 교육체계는,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환경에서 나오는 자원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사용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우리 모두를 더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교육은 인공적인 결핍을 만들어내고 경쟁을 유발한다.-1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이제 보니 루이스 세풀베다는 남자이고, 먹물이었다.
당연한 일인데, 그걸 여태 깨닫지 못했다.
남성성이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교육받고 살다 보니,
예민하게 굴지 않으면 ‘당연한 일’로 취급되는 일 중에서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 남성적인 생각과 판단에 따른 일일 뿐이란 걸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뭐, 봐줄 만하다. 나에게 파타고니아를 보여주었으니까.
파타고니아를 그리워하게 해주었으니까.
[세상 끝으로의 항해](열린책들에서 [지구 끝의 사람들]로 다시 나온)를 읽었을 때부터
파타고니아는 내게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리운 곳’이 되었다.

작가가 칠레를 떠나게 된 이야기, 떠나서 남미를 떠돈 이야기,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파타고니아로 온 이야기,
그리고 마침내 할아버지의 고향인 스페인 마르토스를 찾아간 이야기...
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 이야기다. 작가가 만나고,
바로 이 작가를 만든 사람들.
저항, 자유와 자신감, 그리고 자연 앞에서 삼가는 태도가
마치 핏속에 흐르는 유전자와 같은 사람들.
팔라시오스 기장, 그는 어디로 갔을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인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그는.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이제 없어졌다고 한다.
아, 예전에 수원과 인천을 다니던, 수인선 같았을 것 같은 그 열차는
이제 수인선처럼 영영 탈 수 없겠지.

사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 이따위 생각은 환상일 뿐일지 모르지만,
내게도 꿈꾸는 건 허락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 책은 꿈을 좇아 힘들게 몸을 놀린 기록이니까.

공화파, 혹은 사회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인 할아버지는
스페인 파시스트 정부를 피해 남미의 칠레로 도망쳤고,
손자는 반대로 칠레의 독재 정부를 피해 남미를 떠돌다 스페인으로 간다.
그러나 손자에게 고향은 칠레임이 틀림없다.
그가 할아버지의 고향인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마르토스에서 자신의 ‘뿌리’를 만났다 해도.
그랬으니까 [귀향]이란 소설을 썼을 것이다.
마르토스는 할아버지의 꿈이 시작된 곳이니까, 그곳은 ‘꿈’의 상징이니까.

이 책에서 알게 된 새로운 작가, 브루스 채트윈.
그가 쓴 [파타고니아], 찜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