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程

인가에 들었다
밤이 다하기 전에
길쌈의 여인네 알콜의 사내들도
새벽 이슬로 눈붙일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군
좀 더 가깝게 껴안는 법
좀 더 따뜻하게 가슴을
열어 보이는 법
다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충분히
쉬었다 가야지
마른 자리를 보아주고
내일은 편자를 다시
두드려 박아야겠어
내일은 좀 더
많이 가야 해

어둠의 갈피를 잡으며
얼핏 헛발
소등

그렇군
착하고 편안한 일꾼들이
밤참을 드는 게 보이는군
낮게 매복하고 기다리는
세월의 火器도 어른거리는군
잘 자요
끝 간 데 없이 늘어선 나무들의
고단함이예요.

- 원재길, 『지금 눈물을 묻고 있는 자들』, 문학과비평사, 1988 

 산 자들을 위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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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늦잠을 자는데, 출장 간 옆지기에게서 문자가 왔다.
“노무현 자살 기도설 뉴스 속보 봐라”
이게 뭔 소리야, 하며 TV를 켠 그때가 아침 9시 50분쯤.
뉴스 특보에서는 “사망 확인”을 알렸고,
믿어지지 않아 멍하니 TV만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하루를 꼬박 TV 앞에 잡혀 있었다.
“사망 확인”은 “추락사”로, 다시 “자살 확인”으로 이어지고,
곧 유서가 공개되었다.

처음에는, 뭐랄까 배신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이보세요, 이건 아니잖아요...
꿋꿋이 버티고 극복하는 모습 보여주어야 하잖아요...
전두환도 살아 있고 김영삼도 살아 있는데, 왜 죽어요!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으려 애쓰는 사람은,
직접 저질렀든 아니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과오 앞에서
부끄러움을 이길 수 없고,
더욱이 그 과오를 돌이킬 수 없을 때에는
바닥 모를 절망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 마음, 내가 다 헤아릴 수도 없겠지...

대통령이던 당신에게는 화내고, 비난하기도 했고,
지금도 당신이 한 몇 가지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의 웃음과 목소리를 좋아했고,
멋진 퇴임 대통령으로 오래 살아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전직과 현직을 막론하고 세상의 어느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토록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마련하고 밤새워 줄지어 애도하겠어요.
생전에 누구보다 많은 비판, 미움, 질시와 공격을 견뎌야 했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삶과 죽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이 모습에 그 마음의 상처 다 위로받고 가시기를 빕니다...

하지만 남은 아내는 어떻게 사실까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아마, 당신도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으시겠지요. 
삶의 무게 앞에서 사람은 결국 혼자인가 봅니다. 
권 여사께서 부디 잘 이겨내시기를 빕니다.
...

그건 그렇고, 이번에 뉴스를 통해 국장과 국민장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국가’가 주관하는 국장이 ‘국민장’보다 상위 개념이네?
‘국민’보다 ‘국가’가 더 높은 것이다, 이 나라 법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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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처럼 가벼워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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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5-1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마음도 같이 가벼워지실거죠

가랑비 2009-05-15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행복나침반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인사도 없이 대뜸 닉네임 바꾼다는 고지 한 줄만 띄웠네요. 한 1년간 무겁디무겁게 보냈답니다. 주위 사람들도 무겁게 하면서... 가볍고 촉촉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바람돌이 2009-05-1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에요. 무거운 1년이라니....
이름 바꾸는 김에 등에 진 짐들도 좀 내려놓으세요.

조선인 2009-05-1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랑비님, 헥헥, 이름 따라가기 벅차요. *^^*

가랑비 2009-05-1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조선인님, 고마워요. 가랑비 내리는 날 충동적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서재 검색해보니 "가랑비"라는 닉네임이 많아서, 이거 다른 걸로 또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이... 하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있는 그대로 참 아름다운 너... 
이현주 목사님께서 보내신 새해 덕담이랍니다.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하기...
새해 목표로 삼아 보심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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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9-01-0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아우 새해 꼭 그 목표 이루길 바래.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

가랑비 2009-01-02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만두 언니. 쉽진 않겠지만... ^^ 언니도 여전히 기운 내시고요~

진주 2009-01-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관 크기를 볼 때 저것은 연하장 정도 크기가 아니라 대형 사이즈인 것 같아요?
목사님께서 우리벼리꼬리님을 얼마나 이뻐하시길레 저런 정성을....^^
잘 지내시죠?

가랑비 2009-01-0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진주님. ^^ 사실은 [풍경소리]라는 잡지의 구독자에게 보내는 선물이랍니다. B4 용지 크기쯤 되지요. 진주님도 새해 복 많이~

조선인 2009-01-0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리꼬리님 부비부비 새해 복많이, 건강하고, 가내 무고하시길.

chika 2009-01-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당신! ^^

가랑비 2009-01-0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새벽별을보며님, 조선인님, 치카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1년 반쯤 된 것 같아요. 다른 생각을 도무지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기분...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은 아직 그 거울이 투명하게 보이지도 않아요.
뭔가를 얻고, 또 뭔가를 잃고...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도 아직 모르는...
그런 상태입니다.

아, 회사는 잘 다니고 있고요. 가정도 그럭저럭 무탈합니다. ^^
그러나 내 안에,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났어요.
지금 거울에 비치는 내가 굉장히 낯설고, 조금... 쓸쓸합니다.

아, 이럴 때 만날 술친구도 만들어놓지 못했구나, 하는
허전한 기분.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다시 제자리 찾아갈 거예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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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오셨는데 그간 뭔가 일들이 많으셨던듯...
뭐라 말씀드리기는 힘드네요. 그냥 힘내세요.

2008-10-1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8-10-1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이네요 :-)

2008-10-15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8-10-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가랑비 2008-10-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고맙습니다. 저는 제가 보낸 시간에 자꾸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부질없는 습관이 있어서요. 그냥 놓아버릴 줄을 모르나 봐요. 흘려보낼 줄을 모르나 봐요.
10-15 00:04 속닥님, 앗, 제가 1년 반 전에도 이랬나요? 이런... 보고 싶어요.
라주미힌님도 보고 싶어요. 정말루.
10-15 09:23 속닥님, 하핫, 부지런해져야겠네요. 고맙습니다. 하, 하지만 자기 전에 30분 빠르게 걷기라니... 으윽.

가랑비 2008-10-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 고마워요. ㅠ.ㅠ

울보 2008-10-1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뵈어요,
벼리꼬리님,,
잘 지내셨군요
저도 요즘 많이 힘든시기를 보냇는데 만나서 술마실 친구가 없네요,,제가 술을 못해서 ㅎㅎ

가랑비 2008-10-15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오랜만이에요. 다정하고 맘 약한 우리 울보님은 힘든 시간을 어떻게 버티실까...

가랑비 2008-11-0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나침반님, 고마워요. 이제는 덧입고 더 커진 모습보다는 버리고 더 가벼운 모습이 되고 싶어요.

새벽별 2008-11-05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제야 뒤늦은 댓글 보탭니다. 힘내셔요.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랑비 2008-11-0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고마워요. 아, 사는 게 다 그런가요?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