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랑, 이별, 상실, 추억, 희망이라고 불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더 남았을까. (이반 부닌,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231쪽)


알라딘 서재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 그러니까 어느덧 8년째인가 9년째인가 그렇다.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고, 다락방님 같은 분에 비하면 그렇게 오랜 세월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간 이 서재라는 공간에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오간다. 이웃으로 알고 지내지는 않았는데도 이 서재에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은 떠나고 남겨진 글과 서재를 보면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다.

꼭 죽음과 같은 극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글을 쓰다가 어느 날 문득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미처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그렇겠지, 온라인 공간이니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지. 며칠, 몇 주. 몇 달…몇 년........ 궁금하다가 별일 없기를 무탈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편으로는 다락방님처럼 저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자기 공간을 가꾸는 사람은 참 대단하다 싶어지기도 한다.

나의 서재도 언젠가는 공간과 글로만 남겨질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전에 알라딘에서 서재라는 공간을 없앨지도…….(얼마 전에 이글루스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느 날 문득 보이지 않는 분들 모두 무탈하고 건강하시길…….



산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리움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만나는 것
그리고 숨겨진 악을 주의 깊게 거부하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운다는 것
웃는다는 것
화낸다는 것
자유라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딘가에서 병사가 상처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는 것
지금 이순간이 지나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개짓 한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 <시를 쓴다는 것>, 21~23쪽)





댓글(3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YDADDY 2023-03-1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남아있고 글이 남아 있다면 존재는 지워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 곳에 글을 쓰시고 댓글을 다셨던 분들이 자신의 존재 조각을 여기에 남기시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모든 글을, 모든 흔적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보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

잠자냥 2023-03-16 17:28   좋아요 1 | URL
ㅎㅎ 그래서 작가들이 글로 불멸하려고 하는가 봅니다.

책먼지 2023-03-16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다락방님은 혹시 개국공신이신가요???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온갖 플랫폼이 각축을 벌이는 와중에도 여기 서재에서 꾸준히 읽고 쓰며 오래 자리를 지켜오신 분들 다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런 글에 이런 시라니.. 하아.. 봄이네요🌱

잠자냥 2023-03-16 22:30   좋아요 1 | URL
개국공신! ㅋㅋㅋㅋㅋ 그 개국공신 오늘은 왠지 술 마시고 있을 듯합니다!? ㅎㅎㅎ 알라딘 서재는 서재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책환자들 득시글한 곳이라 알라딘이 망하지(?) 않는 한 없애지는 않을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3-03-16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가 분명 온라인 공간인데도 서재 활동 하시다가 소식 없는 분들의 소식이 궁금해져요.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사는구나를 생각하게 돼요. 언젠가는 어떤 모습으로든 떠날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봐요.
그래도 저를 포함해 서재 친구들이 다들 무탈하기를 바래요^^

잠자냥 2023-03-16 22:31   좋아요 1 | URL
네 요즘 갑자기 안 보이는 분들이 있어서 문득 안부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단발머리 2023-03-16 2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한 분들 있어요. 갑자기 사라지시면.... 궁금하고요.
다락방님이랑 영생하시기로 한 거 잊지 마세요. 두 분 계시면 서재는 굳건할 듯 해요.

잠자냥 2023-03-16 22:32   좋아요 3 | URL
ㅎㅎ 저는 성격상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라져야겠다 싶을 땐 글 다 지우거나 ㅋㅋㅋㅋㅋ 서재 닫기?! ㅎㅎ 암튼 안 보이는 분들 건강하시길.

꾸준하게 2023-03-16 2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네이버로 블로그를 옮긴 지 5년쯤 됐지만, 예전에 다음 블로그에서 14년 동안 꾸준히 활동했었어요. 엄청 초창기 때부터 활동했었죠. 작년에 다음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했어요. ㅠ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블로그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는 동안 잠자냥님 같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가끔 있었어요. (돌아가신 분 소식을 들은 적은 아직 없지만) 제가 다음에서 블로거를 하던 시절에 활발히 활동을 하시던 이웃 블로거분들이 어느 순간 블로그 글을 모두 비공개로 돌리거나, 방치한 상태로 내버려둔 경우는 참 아쉽고 왠지 그립기까지 하더라고요. 종종 소통하는 이웃 블로거라는 좀 외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는데도요.

그래서 유명 유튜버들과 스타 블로거들도 책을 쓰나 봐요. 서비스 제공 사이트에서 해당 서비스를 종료하면 (물론 백업 서비스를 제공해서 내 데이터는 지킬 수 있지만) 온라인상에서의 추억은 사라져버리니까요. 근데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종이책은 내가 죽어도, 심지어 책을 내준 출판사가 망해도, 나라가 망해도(삼국유사 원문을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살아남을 수가 있으니까요.

물론, 종이책이라고 해서 꼭 사라지지 않는 것만은 아니지만, 절판된 지 오래됐어도 헌책방에서 발견되는 헌책을 생각해보면 온라인 서비스보다는 수명이 길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알라딘 서재는, 그리고 지금 가끔 저와 댓글을 나누는 분들도 14~15년 이상, 혹은 그 이상 오래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혹시 언젠가 알라딘 서재가 사라지더라도 글을 볼 수 있게... 잠자냥님, 책을 내실 생각은 없으신지? 서재에 있는 모든 글을 책으로 낼 수는 없겠지만, 리뷰만이라도요. ^^:;

잠자냥 2023-03-16 22:37   좋아요 1 | URL
온라인 서비스는 진짜 갑자기 서비스 종료합니다! 하면 사라지니까 참 허무하죠. 그렇게 사라진 플랫폼이 한둘이 아니니까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도 문득, 아 백업해야 하는데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갑자기 소통하던 관계가 사라지면 그것도 참 허무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또 역설적으로 종이책이라는 매체에 연연하는가 봅니다. 제 글을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끼 2023-03-16 2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자냥님이 계셔서 좋아요. 읽지 못한 (못할) 많은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서재 계시는 분들이 소개해주신 모든 책들을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서도… 이런 책이 있구나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이라 ㅎㅎ 왠지 온기어린 이번 글이 제게는 열린 문처럼 느껴져서 감사댓글 하나 남겨 봅니다

잠자냥 2023-03-16 22:39   좋아요 3 | URL
아이고야, 제가 이런 센티멘탈 글은 잘 안 쓰는데 봄바람이 그만 저에게! ㅋㅋㅋㅋ 그래도 우끼 님이 좋으셨다니 덜 쑥스럽네요.

난티나무 2023-03-17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바람 분다~~ 살랑살랑~~~ 잠자냥님 서재에도~~~ ㅎㅎㅎ 라고 저도 센티멘탈한 1인으로 댓글 남겨요~~~^^

잠자냥 2023-03-17 08:48   좋아요 0 | URL
거기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공쟝쟝 2023-03-17 0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가 안보여서 서운했구나?

잠자냥 2023-03-17 08:47   좋아요 1 | URL
이런 사람 꼭 있을 줄 알았지만 이런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17 08:50   좋아요 1 | URL
난 항상 잠자냥이 궁금해요. 보고 있어도 내가 너무 작고작은 사람이라 내가 보는 것 이상인 잠자냥.

잠자냥 2023-03-17 10:13   좋아요 2 | URL
왜 이래 아침부터 술드링킹?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17 10:53   좋아요 2 | URL
드링킹은 오늘 밤에 할겁니다....!@! 오늘을 기다렸어 이런 밤이 오기를~~~
이런 말랑달캉한 페이퍼를 써놓고..............

coolcat329 2023-03-1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잠자냥님 갑자기 이런 글 쓰셔서 순간 놀랐다가, 아니구나 했네요.
떠나신다는 글인줄 알고...😅
정말 꾸준히 글 쓰시는 분들 존경해요.
그리고 저도 말 없이 떠나신 몇 분들이 떠오르네요. 다 잘 지내시길요...

잠자냥 2023-03-17 08:50   좋아요 2 | URL
떠나긴요! ㅋㅋㅋ 책 읽고 기록하는 낙으로 사는 인간이라 별일 없으면 여기 계속 있을 겁니다요! 요즘 안 보이는 분들 안부가 궁금해서 끼적여봤어요. 특히 미니 님이 좀 오래 안 보이셔서 걱정도 되고 뭐 그렇더라고요.

coolcat329 2023-03-17 08:5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미니님 궁금해서 마지막 글 보니 사정이 있으신 거 같더라구요.
온라인 우정이지만 북플 이웃들과 정이 들었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물감 2023-03-17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 님께 인사는 꼭 하고 떠날게요ㅋㅋ

잠자냥 2023-03-17 15:38   좋아요 1 | URL
까칠보이가 이런 약속을! ㅎㅎ

다락방 2023-03-17 14: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단발머리 님 말씀처럼 우리 영생하기로 한 것 잊지말아요.

제 관심사가 다양하진 않지만, 저는 한 번 하면 성실하게 꾸준히 오래 합니다. 직장 생활도 그렇고 알라딘에 글쓰는 것도 그렇고 사람 좋아하는 것도 그래요. 잘 안좋아해서 그렇지 좋아하면 그 사람만 계속 좋아해요. 재이슨 스태덤...

잠자냥 2023-03-17 15:39   좋아요 2 | URL
영생이라니까 웃기지만 암튼 영생합시다.....ㅋㅋㅋㅋㅋ
저도 관심사가 많은 건 아니지만 한번 꽂힌 거는 진짜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
암튼 오늘 다부장님하고 공통점 여러 개 찾네?
사실 나도 많이 먹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3-17 15:55   좋아요 2 | URL
저는 이제부터 적게 먹을건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3-17 16:24   좋아요 2 | URL
책 안 산다는 말과 똑같은 뻥............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3-19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여기 떠나거나 알라딘 서재 망하면 저한테 번호는 알려주고 가야돼요 꼭 네?!

잠자냥 2023-03-20 08:40   좋아요 2 | URL
번호 말고 주소 남길게요. 인터넷 주소 ㅋㅋㅋㅋ

은오 2023-03-20 17:07   좋아요 0 | URL
🤭 인터넷 공간 옮기는 김에 떨궈버리려고 생각하시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희 사랑의 희망을 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3-20 17:23   좋아요 0 | URL
희망고문의 현장.
 
사소한 삶
피에르 미숑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 내려간 어느 일족의 역사- 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은 대부분 인간의 사소한 삶 그 자체이다. 다만 가끔 내가 왜 이 집안의 족보를 들여다보고 있나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제시카 아우 지음, 이예원 옮김, 김화진 독서후기 / 엘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와 딸, 연인 등 가장 가까운 사이 같지만 서로 완벽히 알지 못해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 그 사이의 낯섬과 외로움. 그러나 그 거리감을 좁혀보려는 과하지 않은 노력들이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태도와 닮아 있어서 공감이 간다. 헌데 엄마와 여행 간 건 과연 진실일까? 기억 또는 상상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샀다. 월요일의 책탑은 다부장님 전용이라 나는 지난 금요일에 올릴 계획이었는데(다른 사람들이 책 산 거 보고 행복해하는 알라디너들의 즐거움을 금욜-월욜로 분산해주려는 큰 그림ㅋㅋㅋㅋㅋㅋ 뭐래), 알라딘에서 약속한 시간에 책 배송을 해주지 않았고, 책탑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이렇게 월요일에 올린다(월요일이라 우울한 알라디너들을 책탑 사진으로 위로하려는 큰 그림으로 급 변경 ㅋㅋㅋㅋㅋ)



윌리엄 포크너, <나이츠 갬빗- 여섯 편의 추리소설>
어라라?! 포크너의 추리소설?! 어머 이건 사야 해!  1949년 발표된 윌리엄 포크너의 추리소설집으로 총 여섯 편의 작품에 검사 개빈 스티븐스가 등장한다. 개빈 스티븐슨은 포크너가 창조한 가상의 공간, 미시시피주 요크나파토파 카운티 제퍼슨 출신의 카운티 검사로 <8월의 빛> 등을 비롯하여 포크너 작품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 법보다 정의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라고 하는데.....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닌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





부스 타킹턴, <위대한 앰버슨가>
오호라, 휴머니트스 세계문학 이번 시즌에는 좀 관심 가는 책이 많다. 이번에 같이 출간된 그라치아 델레다의 <악의 길>과 <여행자 달빛>도 궁금한데 일단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위대한 앰버슨가>부터 샀다. 부스 타킹턴은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단 네 명의 소설가(윌리엄 포크너, 존 업다이크, 콜슨 화이트헤드) 중 한 사람으로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국내 초역이다. 망나니 주인공의 일생일대 사랑이야기라는데....




버나드 맬러머드, <점원>
위의 책들 주문하고 난 다음 날이었나, 이 책이 새로 출간된 것이다. 하루만 빨리 나왔어도 같이 주문했을 텐데!!! 지금 오고 있는 중(오늘 도착 예정, 그래서 책탑 사진에는 없다)-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유대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끈 거장 버나드 맬러머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이렌 네미롭스키, <뜨거운 피>
<무도회> 읽고 나서 반해서는 계속 읽고 있는 작가 이렌 네미롭스키. 이 작품도  좋았다(부피가 얇아서 금방 읽음). 피가 뜨겁던 시절, 그 시절에 모든 걸 던져버리고 그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는 인생들-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 회한이 잘 묘사되고 있다. 약간 추리소설 같은 면모가 있는데 눈치 빠른 독자는 다 예상 가능하다는 게 함정.

이렌 네미롭스키는 문장과 묘사가 절묘한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절절히 와 닿는다.


큰 도시의 삶은 사람들이 늘 서로 만나거나 절대 만나지 않아서 훨씬 단순하다. 하지만 여기는.... 이미 말했듯이, 사람들이 물 위를 떠도는 코르크 마개 같다. 짠, 하고 나타나서는 온갖 소란을 피우고 오래된 기억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훌쩍 사라져서는 십 년 동안 잊히고 만다. (.....) 나는 내 집이 좋다. 불이 사그라든다. 불이 더는 놀지 않고 춤추지 않을 때, 더는 눈부신 불꽃을 사방으로 내던지지 않을 때, 수많은 불티가 빛도 열기도 없이,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은 채 꺼져가며 그저 냄비를 천천히 데우기만 할 때, 그때 내 집은 참 좋다. (<뜨거운 피>, 23쪽)

육체의 욕망은 헐값으로도 채워진다.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 사랑하고 절망하고 어떤 불로든 타오르길 갈망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원했던 건 그것이었다. 타오르는 것, 우리 자신을 불사르는 것, 불이 숲을 집어삼키듯 우리의 나날을 집어삼키는 것. (<뜨거운 피>, 151쪽)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뉴욕을 넘나 사랑하는 뉴요커 비비언 고닉의 대도시 사랑 에세이- <사나운 애착>이후 고닉 에세이는 다 사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리뷰대회도 있어서 겸사겸사 읽었다. 이 책의 자매품으로는 고닉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와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를 들 수 있겠다. 도시가 싫어질 때 이 세 권의 책을 읽으면 다시 도시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필립 K. 딕.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필립 K. 딕의 말- 광기와 지성의 SF 대가, 불온한 목소리>
SF소설을 잘 안 읽던 시절(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잘 안 읽던 시절)에도 필립 K. 딕의 작품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그만큼 내겐 뭔가 있는 작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음울한 분위기와 통찰력 어쩔........! <필립 K. 딕의 말>이 나왔으니 당장 사볼 수밖에.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다락방, 다부장님이 자신은 구판으로 이미 갖추고 있으나 여태 안 읽었다고 자랑하는 그 책. 그렇다 <감각의 박물학>이 무려 19년 만에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다(아니 근데 다부장님 19년 동안 이 책을 안 읽고 묵힌 것?!). 예술과 철학, 인류학과 과학을 넘나들면서 여섯 가지 감각의 기원과 진화과정을 탐구하고, 감각이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는 책- 겁나 재미있어 보이는데 다부장님 이번에 저랑 같이 읽으시죠?




가토 게이지, <편집자의 시대- 일본 출판의 황금기를 이끈 편집자 가토 게이지 회고록>
일본 출판계 좀 부럽다. 부러움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러운 면도 있다. 그런 일본 출판의 황금기를 이끈 편집자의 회고록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탐독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깨달은 한 소년이 인문서 편집자가 되어 제너럴리스트다운 면모를 십분 발휘하며 일한 사적 회고이자, 뛰어난 편집자들이 당대의 주요 사상과 지식을 앞 다투어 소개하며 일본 사회의 지적 성장을 이끌던 ‘편집자의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이라는 책 소개만 읽어도 가슴이 뛴다.




김선기 외, <공부하는 일- 인문잡지 한편이 만난 저자와 편집자 6인이 연구하고 글 쓰는 방법>
남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연구하는지 궁금해서 사본 책. 연구와 글쓰기 등의 태도에서 자극 받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 책값도 저렴하다. (다 읽고 어디 뒀는지 못 찾아서 사진에 없음;;;)



그리고 희망도서

읽어보고 싶고 궁금한 책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받아왔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행복한 장례식>
1991년 8월, 뉴욕시의 아파트에서 러시아 이민자들이 임종 직전의 예술가 주위에 모인다. 죽어가는 남자와 러시아에서의 삶에 대한 그들의 회상이 빚어내는 이야기- <행복한 장례식>이라는 제목이 약간 뻔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루드밀라 율리츠카야 작품이므로 믿고 주문-




레일라 슬리마니, <타인들의 나라>
사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다른 책들에 밀려서 내 지갑을 여는 데는 실패하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 공쿠르상 수상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이국에서,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욕망을 그리고 있다고. 골드문트 오별 책이라 기대해본다.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고양이-여성성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에 관한 책인가 싶은데 아니다. “여성성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 때문에 이 책 흥미 100% 상승(물론 나는 <고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눈이 가지만....) 이 책의 주제 분류를 보면 ‘인문학>심리학/정신분석학>교양 심리학’이고 이 책을 출간한 곳은 ‘한국융연구원’-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책이야?! 민담과 꿈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한 책을 여럿 남긴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가 루마니아 민담 속 고양이를 소환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해본다. 책값이 비싸서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





댓글(28)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목련 2023-03-13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일라 슬리마니, <타인들의 나라>, 버나드 맬러머드, <점원>은 읽고 싶은 목록에 올라갑니다.
음, 그리고 저도 구판으로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지 않았고요. 앞에만 살짝 읽다가 ㅎ
팔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이번에 한 번 읽어볼까 싶어요.

잠자냥 2023-03-13 11:50   좋아요 1 | URL
<감각의 박물학> 구판 갖고 있으면서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 간증이 이어지는 것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DYDADDY 2023-03-13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도 책이지만.. 초판본 발매트라니!!!! 사은품에 눈이 더가니 어쩌죠. ㅋㅋㅋㅋ

잠자냥 2023-03-13 11:51   좋아요 3 | URL
음 저도 그거 갖고 싶어요. 근데 제가 책 사고 나니까 그 이벤트 하더라고요? 제길...ㅋㅋㅋㅋ
그 발매트 위에 울 고냥이들 앉아 있으면 엄청 귀여울 거 같은데....(그래서 또 사겠구먼요. 에혀 ㅋㅋㅋㅋ)

DYDADDY 2023-03-13 11:55   좋아요 0 | URL
너무 빨리 사셨군요. ㅠㅠ 6호가 그 위에서 딩굴거린다면..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지지만.. 더 사실 책이 있는지가 걱정이에요.. ㅠㅠ

잠자냥 2023-03-13 12:03   좋아요 2 | URL
더 살 책은 늘 많습니다. 지금도 장바구니 합산 가격이 305,430원, 그러고도 보관함에는 총 93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호가 그 발매트를 좋아할지...(이미 산다고 가정ㅋㅋㅋㅋ) 현재 6호 최애 발매트는 욕실 앞 발매트ㅋㅋㅋ.

DYDADDY 2023-03-13 15:12   좋아요 1 | URL
서재 사진을 보면 더이상 그정도 공간이 나올지.. 역시 책도 부동산이 관건입니다. ㅠㅠ 발매트를 과연 몇호가 쓸지 모르겠지만 (0호 전용이실 수도.. ㅋㅋㅋㅋ) 나중에 사진이라도 올려주세요. ㅎㅎㅎ

다락방 2023-03-13 12: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망나니 주인공의 일생일대 사랑이야기‘ 라니, <위대한 앰버슨가> 담아갑니다. ㅋㅋㅋㅋ

<감각의 박물학>은 구판을 오래전에 사귀던 남자한테 선물 받은 걸로 기억하는데요, 책은 좋아보이는데 그.. (이하 생략) 아무튼 조만간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제가 그러려고 한 책이 얼마나 많게요? 껄껄..

그나저나 잠자냥 님의 실패한 큰 그림.. 인류애가 느껴집니다. 아니 알라디너에 대한 애정이라고 축소해야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3-13 12:42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실패한 큰 그림...ㅋㅋㅋ 큰 그림은 무슨 개뿔 ㅋㅋㅋㅋㅋㅋ

2023-03-13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3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3-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감각의 박물학> 구판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읽지도 않고 버린 것 같네요ㅋㅋㅋㅋㅋ 신판은 뭔가 표지가 딱히 와닿지는 않습니다^^;;;
잠자냥님의 책탑을 월요일에 보니 신선하군요!ㅎㅎㅎ

잠자냥 2023-03-13 14:00   좋아요 0 | URL
버리다니!!! 아이고 아깝다 ㅋ

거리의화가 2023-03-13 14:02   좋아요 0 | URL
그게... 이사할 때 책이 너무 많아서 어디 갖다주거나 버렸어야 했어요ㅠㅠ 읽지도 않은 책이었고 딱히 읽을 것 같지도 않아서ㅎㅎ 갖고 있었어야 하나^^;;;

건수하 2023-03-1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의 책탑은 금요일이었군요? 매주인 줄 몰랐어요 ^^;;
다락방님 말씀하신 대로 박애정신이 느껴집니다 ㅎㅎ

고양이 책이 궁금하네요… :)

잠자냥 2023-03-13 14:19   좋아요 0 | URL
매주는 아닙니다! ㅎ
주로 올린 요일을 보니 목요일이나 금요일이 많았던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3-03-13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각의 박물학 구판이 있어. 안 읽었어. 19년을 묵혔어. 푸하하 게으름뱅이 다락방님... ㅋㅋ 그런데 나도 있구나. 안 읽었구나....ㅠㅠ

잠자냥 2023-03-13 20:58   좋아요 1 | URL
푸하하 감각의 박물학 대체 무슨 일?!

coolcat329 2023-03-13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각의 박물관이란 책 구판을 많이들 갖고 계신데 왜 다들 안 읽었을까요? 재밌을 거 같은데요.

잠자냥 2023-03-13 20:58   좋아요 1 | URL
그쵸? 그래놓고 저도 19년 뒤에 개정판으로 갖고 있는데 아직 안 읽었다고 그러는 거 아닐까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3-13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각의 박물학 왠지 나도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찾아보니 있네요 ㅋㅋㅋㅋ 저도 10년 넘게 갖고 있는 듯 합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3-03-13 22:0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감각의 박물학 박물관에 모셔둔 사람들 모임 발족!

다락방 2023-03-14 09:21   좋아요 2 | URL
아니 진짜 감각의 박물학 무슨 일입니까 대체!!

잠자냥 2023-03-14 10:37   좋아요 1 | URL
다른 책 읽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궁금해서 감각의 박물학부터 읽으려고요. ㅋㅋㅋㅋㅋㅋ
여러분들 10년 만에 이 책을 읽게 만들겠음! 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3-14 13:34   좋아요 1 | URL
저는 한때 멋있어 보이는 책들 사제끼고는 읽기는 소설만 읽었던 시기에 이 책도 산 것 같습니다… 개정판이 훨씬 예쁘네요. 판본갈이 하고 싶다 ㅋㅋㅋ 잠자냥님 리뷰 보고 많은 사람들이 구판 먼지를 털어내게 되길요 ㅋㅋ

책먼지 2023-03-14 1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책탑에 자냥님 책탑까지 올라오니 두배로 행복합니다..💕 제가 산 책과 세 권 겹쳐서 엄청 반가워하면서 읽었어요!!! <타인들의 나라> 완전 끌립니다!!

잠자냥 2023-03-14 10:37   좋아요 2 | URL
세 권 겹치는 거 궁금한데........ 먼지 님도 책탑을...ㅋㅋㅋㅋ
<타인들의 나라> 저도 궁금합니다! ㅎㅎㅎㅎ

책먼지 2023-03-14 11:18   좋아요 2 | URL
책탑 올리는 거 은근 큰일이더라고요..?? 그냥 실토하고 갑니다ㅋㅋㅋ 앰버슨가, 뜨거운피, 고닉 에세이 겹칩니다!!
 
칠흑 같은 아침
브랫 앤더슨 지음, 이경준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울과 멜랑콜리, 퇴폐미가 흐르는 스웨이드 음악을 들으며 청춘을 보낸 이들이라면 브렛 앤더슨의 이 회고록이 보물 같을 것이다. 게다가 성공한 아티스트, 밴드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웨이드 음악과 함께 청춘을 보낸 이들의 그것처럼 방황과 실패의 기록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 더 와닿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3-13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체적으로 잠자냥 님의 높은별점 책들에 호감과 관심이 생기곤 하지만 이 책에 있어서는 ‘나는 별로일 것 같다‘는 느낌이 훅- 오네요. 방황과 실패의 기록... 에서 어쩐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3-13 11:26   좋아요 1 | URL
일단 이 책은 이 아티스트랑 밴드를 알지 못하면 딱히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에요. ㅋㅋㅋㅋㅋ 부장님에게는 저도 비추입니다.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3-13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저는 계속 알랭 들롱만 생각나는지 모르겠네요~~
밴드 음악 한 번 들어볼께요^^

잠자냥 2023-03-13 21: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닮았나요? 둘다 꽃미남에 미중년으로 늙어가기는 했습니다. ㅎㅎ스웨이드 음악 중에 들어보면 아아, 이 노래하시면서 다들 아시는 거 있을 거예요. ‘뷰티풀 원스’ 시대를 풍미한 노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