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랑, 이별, 상실, 추억, 희망이라고 불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더 남았을까. (이반 부닌,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231쪽)


알라딘 서재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 그러니까 어느덧 8년째인가 9년째인가 그렇다.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고, 다락방님 같은 분에 비하면 그렇게 오랜 세월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간 이 서재라는 공간에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오간다. 이웃으로 알고 지내지는 않았는데도 이 서재에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은 떠나고 남겨진 글과 서재를 보면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다.

꼭 죽음과 같은 극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글을 쓰다가 어느 날 문득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고, 미처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그렇겠지, 온라인 공간이니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지. 며칠, 몇 주. 몇 달…몇 년........ 궁금하다가 별일 없기를 무탈하기를, 건강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편으로는 다락방님처럼 저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자기 공간을 가꾸는 사람은 참 대단하다 싶어지기도 한다.

나의 서재도 언젠가는 공간과 글로만 남겨질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전에 알라딘에서 서재라는 공간을 없앨지도…….(얼마 전에 이글루스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느 날 문득 보이지 않는 분들 모두 무탈하고 건강하시길…….



산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리움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만나는 것
그리고 숨겨진 악을 주의 깊게 거부하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운다는 것
웃는다는 것
화낸다는 것
자유라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딘가에서 병사가 상처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는 것
지금 이순간이 지나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개짓 한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 <시를 쓴다는 것>, 2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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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1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남아있고 글이 남아 있다면 존재는 지워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 곳에 글을 쓰시고 댓글을 다셨던 분들이 자신의 존재 조각을 여기에 남기시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모든 글을, 모든 흔적을 감사하고 소중하게 보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

잠자냥 2023-03-16 17:28   좋아요 1 | URL
ㅎㅎ 그래서 작가들이 글로 불멸하려고 하는가 봅니다.

책먼지 2023-03-16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다락방님은 혹시 개국공신이신가요???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온갖 플랫폼이 각축을 벌이는 와중에도 여기 서재에서 꾸준히 읽고 쓰며 오래 자리를 지켜오신 분들 다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런 글에 이런 시라니.. 하아.. 봄이네요🌱

잠자냥 2023-03-16 22:30   좋아요 1 | URL
개국공신! ㅋㅋㅋㅋㅋ 그 개국공신 오늘은 왠지 술 마시고 있을 듯합니다!? ㅎㅎㅎ 알라딘 서재는 서재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책환자들 득시글한 곳이라 알라딘이 망하지(?) 않는 한 없애지는 않을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3-03-16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가 분명 온라인 공간인데도 서재 활동 하시다가 소식 없는 분들의 소식이 궁금해져요.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사는구나를 생각하게 돼요. 언젠가는 어떤 모습으로든 떠날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봐요.
그래도 저를 포함해 서재 친구들이 다들 무탈하기를 바래요^^

잠자냥 2023-03-16 22:31   좋아요 1 | URL
네 요즘 갑자기 안 보이는 분들이 있어서 문득 안부가 궁금해지더라고요….

단발머리 2023-03-16 20: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한 분들 있어요. 갑자기 사라지시면.... 궁금하고요.
다락방님이랑 영생하시기로 한 거 잊지 마세요. 두 분 계시면 서재는 굳건할 듯 해요.

잠자냥 2023-03-16 22:32   좋아요 3 | URL
ㅎㅎ 저는 성격상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라져야겠다 싶을 땐 글 다 지우거나 ㅋㅋㅋㅋㅋ 서재 닫기?! ㅎㅎ 암튼 안 보이는 분들 건강하시길.

꾸준하게 2023-03-16 2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네이버로 블로그를 옮긴 지 5년쯤 됐지만, 예전에 다음 블로그에서 14년 동안 꾸준히 활동했었어요. 엄청 초창기 때부터 활동했었죠. 작년에 다음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했어요. ㅠ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블로그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는 동안 잠자냥님 같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가끔 있었어요. (돌아가신 분 소식을 들은 적은 아직 없지만) 제가 다음에서 블로거를 하던 시절에 활발히 활동을 하시던 이웃 블로거분들이 어느 순간 블로그 글을 모두 비공개로 돌리거나, 방치한 상태로 내버려둔 경우는 참 아쉽고 왠지 그립기까지 하더라고요. 종종 소통하는 이웃 블로거라는 좀 외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는데도요.

그래서 유명 유튜버들과 스타 블로거들도 책을 쓰나 봐요. 서비스 제공 사이트에서 해당 서비스를 종료하면 (물론 백업 서비스를 제공해서 내 데이터는 지킬 수 있지만) 온라인상에서의 추억은 사라져버리니까요. 근데 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종이책은 내가 죽어도, 심지어 책을 내준 출판사가 망해도, 나라가 망해도(삼국유사 원문을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살아남을 수가 있으니까요.

물론, 종이책이라고 해서 꼭 사라지지 않는 것만은 아니지만, 절판된 지 오래됐어도 헌책방에서 발견되는 헌책을 생각해보면 온라인 서비스보다는 수명이 길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알라딘 서재는, 그리고 지금 가끔 저와 댓글을 나누는 분들도 14~15년 이상, 혹은 그 이상 오래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혹시 언젠가 알라딘 서재가 사라지더라도 글을 볼 수 있게... 잠자냥님, 책을 내실 생각은 없으신지? 서재에 있는 모든 글을 책으로 낼 수는 없겠지만, 리뷰만이라도요. ^^:;

잠자냥 2023-03-16 22:37   좋아요 1 | URL
온라인 서비스는 진짜 갑자기 서비스 종료합니다! 하면 사라지니까 참 허무하죠. 그렇게 사라진 플랫폼이 한둘이 아니니까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도 문득, 아 백업해야 하는데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갑자기 소통하던 관계가 사라지면 그것도 참 허무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또 역설적으로 종이책이라는 매체에 연연하는가 봅니다. 제 글을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끼 2023-03-16 2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자냥님이 계셔서 좋아요. 읽지 못한 (못할) 많은 책들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서재 계시는 분들이 소개해주신 모든 책들을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서도… 이런 책이 있구나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이라 ㅎㅎ 왠지 온기어린 이번 글이 제게는 열린 문처럼 느껴져서 감사댓글 하나 남겨 봅니다

잠자냥 2023-03-16 22:39   좋아요 3 | URL
아이고야, 제가 이런 센티멘탈 글은 잘 안 쓰는데 봄바람이 그만 저에게! ㅋㅋㅋㅋ 그래도 우끼 님이 좋으셨다니 덜 쑥스럽네요.

난티나무 2023-03-17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바람 분다~~ 살랑살랑~~~ 잠자냥님 서재에도~~~ ㅎㅎㅎ 라고 저도 센티멘탈한 1인으로 댓글 남겨요~~~^^

잠자냥 2023-03-17 08:48   좋아요 0 | URL
거기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 2023-03-17 0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가 안보여서 서운했구나?

잠자냥 2023-03-17 08:47   좋아요 1 | URL
이런 사람 꼭 있을 줄 알았지만 이런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 ㅋㅋㅋㅋㅋ

- 2023-03-17 08:50   좋아요 1 | URL
난 항상 잠자냥이 궁금해요. 보고 있어도 내가 너무 작고작은 사람이라 내가 보는 것 이상인 잠자냥.

잠자냥 2023-03-17 10:13   좋아요 2 | URL
왜 이래 아침부터 술드링킹?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3-17 10:53   좋아요 2 | URL
드링킹은 오늘 밤에 할겁니다....!@! 오늘을 기다렸어 이런 밤이 오기를~~~
이런 말랑달캉한 페이퍼를 써놓고..............

coolcat329 2023-03-1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잠자냥님 갑자기 이런 글 쓰셔서 순간 놀랐다가, 아니구나 했네요.
떠나신다는 글인줄 알고...😅
정말 꾸준히 글 쓰시는 분들 존경해요.
그리고 저도 말 없이 떠나신 몇 분들이 떠오르네요. 다 잘 지내시길요...

잠자냥 2023-03-17 08:50   좋아요 2 | URL
떠나긴요! ㅋㅋㅋ 책 읽고 기록하는 낙으로 사는 인간이라 별일 없으면 여기 계속 있을 겁니다요! 요즘 안 보이는 분들 안부가 궁금해서 끼적여봤어요. 특히 미니 님이 좀 오래 안 보이셔서 걱정도 되고 뭐 그렇더라고요.

coolcat329 2023-03-17 08:5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미니님 궁금해서 마지막 글 보니 사정이 있으신 거 같더라구요.
온라인 우정이지만 북플 이웃들과 정이 들었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물감 2023-03-17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 님께 인사는 꼭 하고 떠날게요ㅋㅋ

잠자냥 2023-03-17 15:38   좋아요 1 | URL
까칠보이가 이런 약속을! ㅎㅎ

다락방 2023-03-17 14: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단발머리 님 말씀처럼 우리 영생하기로 한 것 잊지말아요.

제 관심사가 다양하진 않지만, 저는 한 번 하면 성실하게 꾸준히 오래 합니다. 직장 생활도 그렇고 알라딘에 글쓰는 것도 그렇고 사람 좋아하는 것도 그래요. 잘 안좋아해서 그렇지 좋아하면 그 사람만 계속 좋아해요. 재이슨 스태덤...

잠자냥 2023-03-17 15:39   좋아요 2 | URL
영생이라니까 웃기지만 암튼 영생합시다.....ㅋㅋㅋㅋㅋ
저도 관심사가 많은 건 아니지만 한번 꽂힌 거는 진짜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
암튼 오늘 다부장님하고 공통점 여러 개 찾네?
사실 나도 많이 먹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3-17 15:55   좋아요 2 | URL
저는 이제부터 적게 먹을건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3-17 16:24   좋아요 2 | URL
책 안 산다는 말과 똑같은 뻥............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3-19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여기 떠나거나 알라딘 서재 망하면 저한테 번호는 알려주고 가야돼요 꼭 네?!

잠자냥 2023-03-20 08:40   좋아요 2 | URL
번호 말고 주소 남길게요. 인터넷 주소 ㅋㅋㅋㅋ

은오 2023-03-20 17:07   좋아요 0 | URL
🤭 인터넷 공간 옮기는 김에 떨궈버리려고 생각하시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희 사랑의 희망을 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3-20 17:23   좋아요 0 | URL
희망고문의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