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이던가, 히구치 이치요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키재기 외》라는 책. 몇 편의 단편을 읽었고, 그때 감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작가도 있구나. 여성으로 이런 작품도 썼구나 했던 것 같다. 최근 쏜살문고에서 히구치 이치요의 책이 세 권이나 동시에 출간됐을 때도 처음에는 무덤덤했다. 을유문화사 책과 목록을 비교하면서 이미 읽은 작품을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꽃 속에 잠겨》에 실린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처음 보는 작품들이 아닌가. <키 재기>나 <섣달그믐> <십삼야> 등, 이미 읽은 작품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쏜살문고에는 이치요의 모든 작품 22편을 3권으로 나눠 실었다니, 흥미가 생긴다. 결국 세 권 모두 샀다. 2권인 《꽃 속에 잠겨》에는 이치요 최고 단편이라 불리는 <키 재기>를 비롯, <섣달그믐>, <십삼야> 등이 실렸으니 옛 기억도 되살릴 겸,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만연체를 좋아하지 않기에 처음에는 작품이 잘 읽히지 않았다. 한 문장이 꽤 길다. 더욱이 첫 번째 작품인 <파묻힌 나무>는 세상과 담쌓고 사는 고집스러운 화공의 이야기인가 싶어서 몇 쪽 읽다 말고, 다시 앞부터 시작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여성 작가이면서도 예술을 한답시고 세상과 담쌓고 사는 남자 이야기를 쓴 까닭은 무엇일까, 차라리 작가 자신의 고된 삶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풀어놓지 그랬을까, 살짝 의아한 마음이 들 즈음, 한 여성이 등장한다. 열세 살에 화필을 쥐고 16년 동안 부귀를 뜬구름으로 보며 살아온 화공 ‘라이조’의 여동생 ‘오초’가 바로 그 인물이다. 오빠의 재주가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생활력도 강하면서 다분히 희생적인 오초. 이 두 남매 사이에 ‘다쓰오’라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작품에서 오초는 히구치 이치요가 살았던 무렵, 즉 메이지 초기 시대 일본 여성답게 다분히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면이 강하게 그려진다. 그리 좋아할 만한 대상이 아님에도 어떤 모습에 반해서 누군가를 연모하게 되고, 그 사람에게 행여 누를 끼칠까 애정을 억누르는 모습은 희생적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지점이 보인다. 다쓰오에게 선택되기를 바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을 내리는 사람은 오초 그녀 자신이다. 게다가 다쓰오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유도 그가 부유하거나 외모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의 어떤 선한 행동을 보았기 때문이다.

《꽃 속에 잠겨》에 실린 몇 편의 단편 속 여자들은 ‘오초’처럼 순종적인 면도 있고 가족을 위해 자기 한 몸을 희생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는 1900년대 초, 일본 여성의 봉건적인 삶을 보여주는 듯해 답답한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나름 살기 위해 제 스스로 애써 나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빠를 대신해 살림을 꾸려나가는 오초는 물론이며, 가난한 삶 속에 남의 집 하녀 노릇하며 제 한 몸 돌보기도 힘들 텐데 외삼촌 식구들까지 돌보고자 애쓰는 ‘오미네’(<섣달그믐>), 유곽에서 일하는 언니 뒤를 이어 자신도 언젠가는 유녀가 되어 자기 한몫을 오롯이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어린 소녀 ‘미도리’(<키재기>),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들을 홀로 키워낸 ‘오치카’(<꽃 속에 잠겨>),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오치카네 집에 기거하고 있지만, 자신이 피해를 줄 것 같아지자, 선뜻 집을 떠나겠노라 말하는 ‘오신’(<꽃 속에 잠겨>) 등등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인물들은 남자에 의지해 살아가지 않는다. 결혼한 여자라도 남편과의 생활에 불만을 품고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십삼야>). 이렇듯 히구치 이치요가 그리는 여성 인물들이 희생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음에도 독립성을 잃지 않은 까닭은 그 자신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와 큰오빠의 죽음으로 16세에 호주가 된 이치요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계 수단을 소설로 삼은 전업 작가였다. 그녀 작품 속 여성들처럼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그녀는 그런 생활 속에서도 소설 쓰기에 매진해 스물넷이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도 이런 빛나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래서 작품 속 여성들은 가난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섣불리 기대지 않는다. 사랑에서도 적극적이지는 않지만(못하지만),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남자보다 결단력이 있다. 자기 마음을 결정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요노스케’에게 혹시라도 짐이 될까봐, 그 곁을 먼저 떠나기를 선택하는 ‘오신’은 그에게 이렇게 담담히 자기의 심정을 말하기도 한다. “덧없는 세상이란 것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슬픈 것도 기쁜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며 포기한 신세에는 괴로울 때는 ‘괴로운 때가 왔구나.’하고 생각하고, 기쁜 때는 ‘기쁜 때가 왔구나.’하고 생각해요.” (<꽃 속에 잠겨>, 79쪽) 그림을 배우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하는데, 그림을 배워서 뭐 하려고 그러느냐는 요노스케에게 “그리울 때 모습을 그려서라도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요.”라고 똑똑히 자기감정을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그저 가슴속으로 눈물만 짓는 요노스케에 비하면 오히려 당찬 느낌이다. 아들이 번듯하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요노스케의 어머니 ‘오치카’도 어떤 면에서는 대장부 같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아들에게 그녀는 ‘사람 마음은 제각각이니, 위태롭게 뜬구름에 오르려는 것보다 얽히고설킨 덩굴에 비쳐 드는 달빛을 팔베개로 바라보며 저 혼자 즐거운 게 더 흡족하다면’(63쪽) 그렇게 살라고 하면서도 자못 정색하며 이렇게 말한다.


불우한 덧없는 세상에 어떤 희망도 버리고 이끼에 내리치는 빗소리를 듣는 낙을 띳집의 처마 끝에서 맛본다면 달리 평온한 세월이 있을 테니 그건 그것대로 또 풍류가 있겠지만, 네 아버지가 서글픈 건 이도저도 아니셨던 인생사 때문이었다. 월급으로 날품팔이와 다름없는 일을 하며 길지 않은 삶을 조촐한 풍치도 없이 하직하신 것. (......) 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랏줄에 매인 채 남의 말을 지키고 남의 지시에 따르다 공은 후세에 남을 것도 없이, 죽고 나서는 지기가 명복을 빌어 주고 자손이 제사를 지내주는, 그것만을 다름으로 삼으며 개나 고양이와 별반 차이도 없이 꿈속에서 지내다 연기처럼 사라진대도 너는 만족하느냐. 차라리 꿈을 꾼다면 미륵보살이 나타날 세상까지를 눈으로 감싸, 거짓이나 참이나 허위나, 아름다움이나 추함도 모조리 마음먹고 딱 삼켜 버리고는 이 세상에서 높이 날 마음은 없느냐. (<꽃 속에 잠겨>, 66~67쪽)



유녀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유곽에서 성장하는 소녀와 소년의 성장담인 <키재기>의 ‘미도리’도 당차기는 매한가지다. 이제 겨우 열네 살, 어린 미도리의 눈에는 남자라는 것이 조금도 겁나지 않고, 무섭지도 않다. ‘매춘을 그다지 천한 일로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과거에 언니가 고향을 떠날 당시 울면서 배웅한 일이 꿈처럼’만 느껴진다. 언니가 매우 잘 나가게 되어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고 있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그러나 일을 쉬지 않는 언니의 신세가 얼마나 시름겹고 고달픈지 모르는 열네 살 소녀에겐 그 삶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머리를 올리고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 미도리에게 더 이상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첫사랑의 꿈도 좌절되고, 이제 자기가 알던 삶과는 다른 고단한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리라. 히구치 이치요는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 미도리처럼 어리고 젊은 여인들의 고단한 삶, 또는 그러해질 것이 분명한 삶을 섬세하고 예리한 눈으로 그려나간다. 그러나 그 시선을 한결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서정성에 있다. 아래와 같은 구절들을 읽노라면 깊어 가는 가을밤, 아름다운 한 편의 하이쿠를 읽는 듯해 책을 쉬이 덮을 수 없더라.



단풍 위에서 빛나는 달은 누가 숫돌에 얹어 갈았을까. (53쪽)

꽃에 뜨는 덧없는 이슬 같은 사랑이 다 뭐란 말인가. 우습구나. (61쪽)

활기에 넘쳐 뛰어 들어오는 저녁과는 반대로 새벽녘의 이별에 꿈을 싣고 떠나는 인력거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153쪽)

하늘에서 내리는 달빛과 햇빛은 모든 이에게 다름없고 봄에 피는 꽃이 주는 한가로움은 덧없는 세상의 만인에게 똑같을 텐데, 어째서 우듬지에 부는 폭풍은 여기서만 야단일까. (49쪽)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0-09-2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세기 일본 여성의 다양한 삶을 아름다운 문체로 썼네요. 처음 듣는 작가인데 24세에 요절했다니 그 능력이 아깝습니다.ㅠ

잠자냥 2020-09-21 16:50   좋아요 0 | URL
한 번 읽어보세요~ 그 이른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coolcat329 2020-09-2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권중 하나 추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잠자냥 2020-09-21 17:19   좋아요 1 | URL
대표작이 많이 실린 책은 아무래도 제가 읽은 <꽃 속에 잠겨> 이 책인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책을 읽으신다면, 순서대로 읽지 마시고, 섣달그믐, 십삼야, 키 재기 등 이런 작품부터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syo 2020-09-21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련님의 시대>에서 히구치 이치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뭐지뭐지 하면서 을유판 <키재기 외>를 읽었었거든요. 저는 만연체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런가, 아우 좋아 막 이러면서 읽었습니다. 근데 다 까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독서가 무슨 소용이죠?? ㅋㅋㅋㅋㅋ큐ㅠㅠㅠㅜ

잠자냥 2020-09-21 22: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예전에 읽은 게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다니 참, 허무하더라고요. 을유판 <키재기>에 달려 있는 쇼 님 글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0-09-21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꽃 속에 잠겨> 추천해주신 순서도 같이 기억할게요. 감사합니다 ☺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꺼내 읽었다. 여러 번 읽어도 여전히 좋은 작품. 다시 읽고 싶어진 까닭은 최근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눈사태>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작품은 ‘불륜’을 소재로 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현실의 나는 불륜을 극도로 혐오한다.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두 사람이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면 서로 배신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윤리를 지녔다면 그래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결혼 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숨겨서는 안 된다고, 배우자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헤어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인생, 그리고 그와 얽힌 다른 이들의 인생도 거짓이 되고 만다. 이런 까닭에 현실의 나는 그 어떤 불륜 커플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떤 소설, 아니 몇몇 소설에서 그려지는 불륜의 사랑이야기에는 그처럼 단호할 수가 없다. 때로는 마음이 흔들린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그런 작품 중 단연 압도적이다. 매우 짧은 단편인데도 어쩌면 그토록 흡인력 있게 써내려갔는지 그 둘의 사랑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구로프’와 ‘안나’의 사랑이 깨지지 않기를, 그들의 작은 호텔 방이 산산조각 나지 않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그런 작품 중에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 ‘그 시절의 연인들’도 있다. 이 작품도 어떤 면에서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떠올리게 한다. 불륜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애잔하고 쓸쓸한, 윤리에 어긋나는데도 왠지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간절함까지 닮았다. 그 사랑이 그들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을지, 앞으로 또 어떤 의미로 남을지 짐작할 수 있기에 책을 덮은 후에도 그들이 그 사랑을 온전히 마음속에 간직하기를 바라게 된다.

<눈사태>는 이 두 작품의 계보를 잇게 될 것 같다. 나만의 계보랄까.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눈사태’처럼 밀어닥친 불륜의 사랑을 그려나간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구로프와 안나처럼 여기에는 ‘이고리’와 ‘률랴’가 있다. 이고리는 어느덧 쉰 줄에 들어선 사내로, 제법 성공한 피아니스트이다. 고르바초프의 개방, 개혁 정책 덕분에 유럽 곳곳으로 투어를 다니며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유럽에서 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내와 딸, 아들에게 주려고 정성껏 고른 값비싼 선물을 여러 개의 가방에 담아서 갖고 올 만큼 가정적이기도 하다. ‘구료프’가 마흔이 아직 되지 않은 나이에 열두 살 난 딸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을 둔 것과 조금 차이가 있다. ‘이고리’나 ‘구료프’나 모두 아내와 일찍 결혼했다. 자신의 아내를 천박하고  촌스럽다고 여기면서 집에 있기를 꺼리는 구료프와 달리, 이고리는 아내를 사랑한다. 그에게 아내는 늘 숨 쉬는 공기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눈사태’는 벌어진다. 어느 날, 홀로 휴양지로 떠난 이고리는 그곳에서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려고 공중전화 앞에 서 있게 된다. 그런데 전화기 부스 안에서 통화 중이던 한 여인이 이고리를 돌아보며 눈물 가득한 눈으로 동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이고리는 자기가 쓸 동전 밖에 없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동전을 건넨다. 그녀가 바로 ‘률랴’이다. 구료프와 안나가 휴양지에서 만나는 장면과 닮은 듯 다른 지점이다. 구료프는 휴양지에서 흰 스피츠를 산책시키는 안나를 멀리서 흥미롭게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여자가 남편이나 친구와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사귀어 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 애초부터 관찰하면서 마음속으로 약간의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고리는 률랴를 관찰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동전을 빼앗기고 만다.
 
구료프는 내내 흰 개를 산책시키는 안나를 지켜보면서 휴양지에서 하룻밤 정도 상대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안나와 그런 사이가 된다. 이고리와 률랴는 동전을 주고받은 그 첫날부터 불꽃이 튄다. 아니 불꽃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순간의 일탈이라고 해야 하리라. 전화를 마친 률랴가 굳이 동전을 갚겠다며 이고리에게 말을 건네고 그들은 어쩌다 보니 그날 술을 함께 마시게 된다. 그러고는 무려 야외, ‘눈’ 밭에서 서로 몸을 탐한다. 하얗게 내린 눈 위에서 광폭하게 정사를 나눈 뒤 그들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률랴의 외투는 얼룩과 물기로 망가진 상태다. 그 얼룩처럼 두 사람의 섹스는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다. <눈사태>에서는 이렇듯 ‘눈’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후 이고리는 이상하게도 률랴를 잊지 못하고, 계속 그녀를 찾는다. 휴양지에서의 하룻밤 일탈로 생각한 사이였는데 현실로 돌아와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구료프와 안나, 그리고 이고리와 률라. 그들은 모두 둘 만의 비밀스러운 생활을 위태롭게 유지해 간다. 이고리와 률라, 구로프와 안나에게는 두 사람만이 은밀히 만나는 작은 호텔 방이, 그 호텔에서의 짧은 시간이 차츰 진짜 삶이 되어 버린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만큼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눈사태가 속도를 내게 되면, 그 앞의 모든 것들을 몽땅 휩쓸어버린다. 집들도, 나무들도, 전신주들도, 눈사태 직전엔 특히 고요해진다고 한다. 아마 자연은 행동하기 전에 숨 고르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 눈사태는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 길은 아무도 모른다. 눈사태 스스로도. (<눈사태>, 66~68)


<눈사태>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가장 다른 지점은 이 뜻밖의 눈사태, 이고리와 률랴의 격정적인 사랑이 빚어내는 뜻하지 않은 여파가 주변 인물들, 그러니까 이고리의 가정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과정까지 내밀히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고리는 률랴에 대한 사랑을 숨길 수 없어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아내에게 털어놓게 되고, 그 폭풍은 뜻하지 않은 결과로 흐른다.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 눈사태처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와 달리 구료프와 안나 커플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견딜 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뜯는다. 조금만 더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테고, 그때는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되리라 생각하면서 둘만의 은밀한 만남을 이어나간다. 그렇듯 불안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남들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며 호텔 방 안에서의 ‘진짜’ 삶을 지켜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 지나갈 걸세.” 장모는 침착하게 약속했다.
 “만일 이게 지나간다면, 당치도 않은 거죠….”
 이고리의 눈에 진짜 두려움이 서렸다.
 “자네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세. 하지만 조심하게.”
 “무슨 뜻이죠?” 이고리가 눈을 들었다. 장모가 마주 쳐다보았다.
 “자네를 짓밟을 걸세.”
 “누가요?”
 “삶이.”  (<눈사태>, 110쪽)


떨어져 내린 눈사태는 언젠가는 속력을 잃고 결국은 멈추기 마련이다. 그런 후에는 ‘무사히 살아남은 자들은 질서를 향해서 신의 세상으로 기어나갈’(<눈사태>, 93쪽) 것이다. 구로프와 안나의 ‘눈사태’는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끝이 나고, <눈사태>는 눈사태가 마침내 멈춰버린 지점,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고리의 장모가 경고했듯이 그 모든 눈사태가 지나간 뒤에 그에게 남은 것은 폐허뿐이다. 눈사태를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몰려오는 눈사태가 위험함을 알아차리고 피했다면, 그날 그 새하얀 눈 위에 그 여자의 몸 위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이고리의 삶에 그런 폐허는 생기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이고리는 률랴에게로, 그 새하얀 눈 위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행복을 맛보았다. 외투에 생긴 얼룩쯤은 지우면 그만이었다.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면 새 외투를 사주면 그만이었다. ‘정말 의미 없는 매일 밤이고, 흥미도 가치도 없는 나날들이다! 미친 듯한 카드놀이, 폭식, 폭음, 끝없이 이어지는 시시한 이야기들. 쓸데없는 일과 시시한 대화로 좋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고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날개도 잘린 삶. 실없는 농담뿐이다. 정신 병원이나 감옥에 갇힌 듯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266쪽) 외치던 구로프의 삶이 안나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은 의미를 찾았듯이…….

꼭 불륜이 아니더라도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둘만의 세계가 존재할 때 다른 모든 것은 의미를 잃고, 자신들만의 삶이 진짜라고 여기게 된다. 다른 것들은 중요성을 잃어버린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깊이 헤아리지 않고, 아니 그럴 틈도 없이 그 사랑에 몸을 던지는 것이리라. <눈사태>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눈사태처럼 갑자기 닥친 사랑과 그 불가항력적인 운명 앞에 나약하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저마다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9-03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참... 제가 잠자냥 님의 서재를 끊어내야지 이거 원 책 사는데 전재산 탕진하겠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예전부터 보관함에 넣어두고 있던 책인데 비로소 구매해야 겠습니다. 눈사태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아주 관심이 많거든요.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별하는지, 그 후에는 어떤 삶을 사는지요. 좋은 글 감사해요,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잠자냥 2020-09-03 09:58   좋아요 1 | URL
아니, 탕진하면 아니되옵니다.... 그치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꼭 읽으세요. 사세요~ ㅎㅎ
<눈사태>는 책값이 비싸서.. 참 뭐라 사라고 말씀드리기 뭣합니다요. ㅠ_ㅠ 200쪽도 안 되는데 책값이... ㅠㅠ
암튼 저는 토카레바 작품이 좋아서 걍 샀습니다만, 다락방 님은 지난번에 산 토카레바 단편집 먼저 읽으시고 그 작가 느낌이 괜찮으면 그때 생각해보세요.ㅎㅎㅎ

다락방 2020-09-03 10:05   좋아요 0 | URL
제가 토카레바 단편집을 샀나요? 검색해보고 올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03 10:06   좋아요 0 | URL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6월달에 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딨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아- 점심 먹을 자격도 없네요, 저는... 하아-

잠자냥 2020-09-03 10:11   좋아요 0 | URL
크하하하하하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쳐 이 사람아! <티끌 같은 나> 그것도 제 리뷰 보고 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ㅋㅋㅋㅋㅋ 다락방 님 머릿속에서 기억력 눈사태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9-03 10:14   좋아요 0 | URL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도 산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9-03 10:16   좋아요 0 | URL
티끌 같은 나 표지 보고 생각났어요. 잠자냥 님 리뷰 보고 땡투하고 샀다는게요. 지금은 어딨는지 모르겠지만...지가 어딘가엔 있겠죠.

잠자냥 님 댓글 보고 헉! 하고 구매리스트 가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검색해봤는데 다행스럽게도 없네요. 이건 안산게 맞는가봐요. 휴... ㅠㅠ

케이 2020-09-0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오랜만이예요. 엄마 때문에 정신이 없다가 오랜만에 아는 책 나와서 댓글 드려요. 전 안톤 체호프 선생이 쓴 불륜 소설 중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보다 ‘사랑에 관하여‘ 가 더 좋았어요. 나중에 두 남녀가 기차에서 헤어지기 싫어서 눈물만 하염없이 쏟을 때 저도 카페에서 그 책 읽으며 눈물을 질질 짰답니다. 여자가 남자한테 일부러 고약하게 구는 것도 좀 공감갔고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대학교 때 읽었는데, 유부남인 주제에 심심풀이처럼 가벼운 불륜을 일삼아온 남자 주인공이 마음에 안들었어요. 나중에 서른 넘어 읽어보니 남자가 이제서야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단 말에 그 둘의 사랑이 조금은 수긍이 가더군요. 그 둘은 어찌 되었을까요? 결국 시간이 지난 뒤 그 호텔에서 이별을 고하지 않았을까요. 삭막한 시기지만 즐겁게 지내시길 기도해요.

잠자냥 2020-09-03 14:16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에요. ㅎㅎ 안 그래도 엄마가 많이 안 좋아지셨나 조금 걱정했습니다. ㅎㅎ 별일 없으시길 바라고요.
‘사랑에 관하여‘도 분명 읽었을 텐데 생각이 안 나네요; ㅎㅎㅎ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자꾸 오타나서 ‘게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으로 쓰게 되는데, ㅐ ㅔ 차이 하나로 참 느낌 달라지네요. ㅋㅋㅋㅋㅋ 암튼)에서 그 두 사람도 결국에는 이별을 고하게 되겠지요. <눈사태>는 그런 이야기도 담겨 있어요.

케이 님도 건강하시고, 가족 모두 평안하길 바랄게요.

Alex 2020-09-0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보는 좋은 독후감이었는데... 마지막 설명이 몰입감을 떨어뜨립니다. 그래도 너무 감사합니다. ˝체호프 /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눈사태˝.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0-09-07 21:07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책 만나시길 기원합니다.

2020-10-15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15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34년 만에 돌아온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 <증언들>은 전편인 <시녀 이야기>만큼 강렬하다. 또한 반드시 필요했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만일 <시녀 이야기>에서 끝났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작품만으로도 강렬한 충격을 던져주기는 했다.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하게 줄어든 가까운 미래의 가상 국가 ‘길리어드’- 그곳에서는 이 엄청난 위기를 피하기 위해 가임기 여성을 징집해서 필요한 가정에 ‘배급’한다.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어지러운 틈을 타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탄생한 이 괴물 같은 국가는 가장 먼저 여성들의 은행 거래를 정지하고 일터와 가정으로 들이닥쳐 여자들을 잡아들인다. 그 후 여성들은 이름과 가족을 빼앗긴 채 오직 국가를 위한 애를 낳는 의무에만 동원되는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낸다. <시녀 이야기>는 그런 끔찍한 국가에서 ‘시녀’로서 살아간 ‘오브프레드’의 이야기였다. 전작에서는 오브프레드가 임신한 채 탈출을 시도하면서 끝났다. 과연 오브프레드는 어떻게 됐을까? 탈출에 성공했을까? 아이를 낳았을까? 온갖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 끔찍하고도 어딘가 묘하게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는 줄로만 알았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증언들>에서 ‘시녀 이야기’ 그 이후의 삶을 그려나간다. 오브프레드가 탈출한 뒤 15년 뒤의 세상이다. <증언들>이라는 제목답게 ‘증언녹취록 369A’, ‘증언녹취록 369B’ 등 누군가의 증언들로 이루어진다. 오브프레드가 안타깝게도 붙잡혀서 증언을 하는 것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369A의 증언자인 ‘아그네스’는 길리어드에서 나고 자란 소녀로, 상류층 집안 출신이다. 체제에 복종하는 ‘귀한 꽃’으로 길러진 그녀는 증언을 통해 길리어드를 향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길리어드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기억밖에 없으리라 상상하겠지만 다른 곳이나 마찬가지로 길리어드에서도 많은 아이가 사랑받고 소중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그녀는 증언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길리어드에도 많은 어른이 흠결이 있지만 친절하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 또한 길리어드는 사라져 마땅하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녀가 보기에도 길리어드는 잘못된 구석이, 거짓된 구석이, 하느님의 의도에 어긋나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에는 길리어드에 대한 복잡한 마음, 그러니까 일종의 그리움이나 애정 같은 게 스며나온다.

또 다른 증언자는 <증언들>에서 가장 충격적인 화자라고 볼 수 있는 ‘리디아 아주머니’이다. 그녀는 길리어드의 여성 관련 제도를 만들고 총괄하는 권력자이다. 전편인 <시녀 이야기>에서는 잔혹한 권력자로 그려져, 이 여인이 과연 후속작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나갈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증언 369B’의 화자인 한 소녀는 길리어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데이지’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캐나다에 살면서 미디어를 통해서만 옆 나라인 길리어드를 접하고 있다. 데이지가 보기에 길리어드는 말도 안 되는 국가이다. 거기에 갇힌 채 출산을 위한 도구로만 쓰이고 있는 여자들을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길리어드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조금은 제멋대로이고 반항적인 10대 소녀이다. 이렇게 <증언들>은 길리어드 최상위 권력자인 리디아 아주머니와 길리어드 상류층 출신의 소녀 아그네스, 그리고 길리어드 밖에서 그 지옥 같은 나라를 지켜보는 또 다른 소녀, 세 화자가 번갈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이야기가 정교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 길리어드 체제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고, 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전편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대리모 ‘시녀’의 이야기였다면 후편은 그런 착취와 억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강력하게 유지하는 데 일조한(아니 큰 역할을 한) ‘리디아 아주머니’와 그렇게 유지된 체제에서 안온하게 살아온 상류층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거기에 외부의 목소리까지 덧붙여져 이야기는 한층 풍요로워진다. 아그네스는 그렇게 만들어진 강력한 체제 안에서 편안하게만 살아온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아주머니’ 계급이 만들어낸 온갖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억압적인 교육 아래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외모와 생김새를 떠나서 불가피한 덫이자 유혹이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 가르침에 따르면 여성은 순진하고 무구한 죄의 원인이라서 타고난 본성으로 남자를 욕정에 취하게 만들어 휘청거리고 비틀거리다 선을 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순진한 아그네스는 무슨 ‘선’을 말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럼에도 자신들의 존재를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곳에서 소녀들은 더없이 ‘귀한 꽃’이라 유리 온실 속에서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암암리에 습격을 받아 꽃잎이 뜯겨 나가고 그들의 ‘보물’을 도둑맞을 테니까. 공원에 그네가 있지만 길리어드의 소녀들은 치마 때문에 혹시나 바람에 날려 치마 속이 들여다보일까 봐, 감히 그네를 타는 주제넘은 짓은 할 수가 없다. 그런 자유를 맛볼 수 있는 건 오로지 남자아이들뿐이다. 소년들만이 낙하하고 비상할 수 있다. 남자아이들만이 공중에 떠오를 수 있다. 길리어드는 그런 국가이다. 그런데 왠지 이 세상 곳곳에서 펼쳐지는 풍경 같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여자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도 금지한다. 읽기와 쓰기는 여자를 타락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아그네스와 친구들은 아주머니들이 만든 교육을 받는다. 그곳에서 불복종은 반항으로 이어지고 반항적인 소녀는 반항적인 여자가 된다. 반항적인 여자는 반항적인 남자보다 더 나쁜데, 그 이유는 반항적인 남자는 반역자가 되지만 반항적인 여자는 간음하는 ‘음부(淫婦)’가 되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음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이런 교육을 받는다.


아무리 봐도 성인 여성의 몸은 거대한 함정 덫이었어요. 구멍이 있으면 뭔가가 반드시 처넣어지고 또 다른 게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고, 하긴 원래 종류를 막론하고 구멍이 다 그렇긴 하죠. 벽에 뚫린 구멍, 산에 난 구멍, 땅에 난 구멍도 그렇고. 성숙한 여성의 몸이라는 건 거기다 할 수 있는 짓도 너무 많고, 그러다 잘못될 길도 너무나 많아서, 난 차라리 그런 몸 따위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증언들>, 122쪽)


아그네스는 궁금하다. 아주머니들은 우리와 똑같은 여자인데, 왜 우리와 다를까? 어떻게 읽기와 쓰기가 가능하고, 어떤 부름을 받았기에 그런 힘을 받은 것일까? 여자도 남자도 아닌 특별한 두뇌를 소유한 걸까? 그 유니폼 아래의 몸이 심지어 여자이기는 한 걸까? 위장한 남자는 아니겠지? 온갖 의문이 든다. <증언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그네스가 궁금하듯이, 이 ‘아주머니’ 계급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이다. 살아 있는 전설이자, 교실을 가질 만큼 신분이 높은 여자, 아이들 교실 뒤편에 액자로 표구되어 걸려 있는 머리로서 음침한 미소를 띠고 말없이 설교하는 존재이자, 본받아야 할 완벽한 도덕성의 모범. 그리고 상상 속의 모호한 종교 재판을 주재하는 판관이자 입법자인 ‘리디아 아주머니’는 길리어드 공화국의 가장 큰 공범자이자 가해자이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무력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반대세력을 진압하려는 움직임이 있게 마련이다. 반대세력은 주로 지식인이 이끈다. 그렇기에 지식인이 가장 먼저 제거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전직 판사신분으로 지식인에 속했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탄생했을 무렵 은행 계좌가 막히고 갑자기 끌려간 수많은 지식인 여성 중 한 사람이었다. 길리어드 정권을 잡은 남자들은 그런 지식인 여성을 미리 제거하거나 협박을 통해 자기편으로 삼는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온갖 고문과 협박을 자행한 뒤에 지식인이자 전문직 직업을 가졌던 여성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길리어드 체제에 협력하든지, 개처럼 죽임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리디아 아주머니 또한 선택한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제거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노새 같은 하층민 아이로, 결의에 찬 시궁창 쓰레기로 분에 넘치는 출세를 노리는 꾀돌이로 한 칸씩 사다리를 올라가는 전략가’로 돌아가야만 했다. 애초에 그런 힘으로 그녀는 이제는 박탈당한 그 사회적 위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녀는 상황을 파악한 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략해 나간다. 그리하여 저드 사령관과 맞먹을 정도, 아니 어쩌면 그조차 쥐락펴락 할 정도의 길리어드 최대 권력자가 되어 체제를 만드는 데 앞장서 나간다. 리디아처럼 길리어드에 협력하기로 한 또 다른 지식인 여성무리도 그 체제를 만들고 공고화 하는 데 협력한다. 그들은 한주, 한주 법, 유니폼, 슬로건, 찬송가, 이름들을 만들어낸다.

<증언들>는 시작부터 길리어드가 무너졌음을, 그래서 그 끔찍한 국가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증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리디아 아주머니도 체제를 배신해서 길리어드에 불리한 증언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리디아는 왜 그 체제를 만들고 강화하는 데 일조했으면서 그 국가를 무너뜨리는 일에 은밀히 앞장섰는지. 복수심? 죄책감? 사명감? 이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리디아를 지켜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주머니’ 무리는 길리어드라는 가상 국가에만 존재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온갖 종교 교리로 여성의 성(性을) 억압하고 순결을 강요하는 일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증언들>의 ‘아주머니’ 계급은 어찌 보면 이 세계의 수녀 계급의 은유로도 읽힌다. 한편으로는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높이 올라갔지만, 자신만의 안위를 지키는 데 급급한 이 세계의 수많은 명예남성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리디아 아주머니가 길리어드를 무너뜨리는 데 그 기막힌 머리로 크게 일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공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체제를 만들고 공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권력자로 살아온 그 수많은 세월을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이 아주머니 계급에 대해서는 여전히 복잡한 생각이 든다.

<증언들>34년이나 지난 오랜 세월 뒤에 우리 앞에 찾아왔지만 꼭 나왔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마거릿 애트우드도 해야 할 말이 아직 남았다고 생각했기에 펜을 들었으리라. 그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어쩌면 이토록 기막히게도 이야기를 잘 엮어 낼까? 내가 이 리뷰에 쓴 이야기는 <증언들> 600페이지의 극히 일부에 속할 뿐이다. 세 여성이 엮어내는 이 놀랍도록 다채로운 이야기, 온갖 비밀과 암투로 점철된 이 작품은 누구라도 숨 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시녀도, 아주머니도, 상류층 소녀도, 길리어드가 아닌 다른 세계에 사는 또 다른 소녀도 이혼이 범죄이고, 낙태도 범죄이며, 출산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여자의 몸은 낭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서로 절대 타인일 수 없다. 1985년에 쓰인 <시녀 이야기>와 2019년에 세상에 선보인 후속작 <증언들>- 이 두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는 2020년, 지금 이 땅이나 또 다른 지구촌 어디선가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지독히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0-08-19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녀 이야기 후속편이 나왔군요. 잠자냥님 덕분에 강력하게 보고싶은 책 한 권을 추가해서 오늘도 보람찬 하루가 되었습니다. ^^

잠자냥 2020-08-19 16:41   좋아요 0 | URL
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작품, <증언들>로 작년에 부커상까지 받았습니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단발머리 2020-08-1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작년에 읽었는데 잠자냥님 페이퍼 읽고 나니까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요^^
전에 읽었던 페미니즘 책에서는 중세 시대에 여자가 읽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수녀‘가 되는 거라고. 아니면 귀족 부인의 남편이 일찍 죽은 경우라고 하더라구요. 이 책에서도 ‘Ants‘만 공부할 수 있다고 하는게, 딱 맞는 거 같아요. 애트우드는 현실에 기반한 소설을 쓰시지요.
이게 다 우리의 현실이라는 게 슬프기는 하고요ㅠㅠ

잠자냥 2020-08-19 22: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애트우드는 현실에 기반해서 참 묘하게도 잘 비틀어 쓰는 작가죠. 단발머리 님이 다시 읽고 또 글 쓰셔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2020-08-19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9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0-08-20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녀이야기 재밌게 봤는데 이 책도 꼭 봐야겠어요!

잠자냥 2020-08-20 09:16   좋아요 0 | URL
네, 이 작품도 <시녀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유부만두 2020-08-2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책 전자책 다 갖춰두고 안 읽는 사람, 여기요!!!!
어디 이 책 뿐이겠어요?;;;

잠자냥 2020-08-23 11: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죠, 저도 그런 책 많아요. ㅋㅋㅋㅋ
 

보통 나는 매달 초와 15일 이후에 각각 한 번씩 책을 사는 것 같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알라딘 굿즈가 매달 초, 15일 이후에 각각 업데이트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굿즈 땜에 책을 사니??? 엉?) 암튼 7월 중순부터 8월 14일까지 구매한 책. 이중에는 벌써 읽은 책도 있고, 책꽂이에서 얌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책도 있다.


산 책


켄 리우,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종이 동물원> 읽고 반한 켄 리우의 또 다른 단편집. 미출간 단편 중 12편을 엄선해서 엮었다고 한다. 특히 이중에는 한글에서 영감을 얻은 ‘매듭 묶기’라는 작품도 있다는데 무척 궁금하다. <종이 동물원>을 읽어 보니, 켄 리우는 한자 등 ‘글자’에 관심이 많고, 그걸 작품 안에 녹여서 완전히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한글로는 무슨 이야기를 펼치려나? (그럼 빨리 읽어 사놓기만 하지 말고)



엔도 슈사쿠, <바보>
구매해서 벌써 읽고 100자평에 리뷰까지 남긴 책. <침묵>이나 <깊은 강>으로 유명한 엔도 슈사쿠. 그는 죽을 때 관속에 <침묵>과 <깊은 강>을 넣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깊은 강>에 비하면 울림이 아주 큰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몇 번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지지리도 못나고 어리숙한 나폴레옹의 후예 ‘가스통 보나파르트’의 행적을 뒤쫓다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리라.



유리 바블로비치 카자코프,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이 책, 사자마자 읽을 것 같았지만 아직 안 읽었네. 내가 또 러시아 작가라면 깜빡 죽잖아요? 이 책은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집이라는데, 이곳에서 나온 첫 번째 작품인 빅토르 펠레빈의 <아이퍽10>도 궁금하다(아마 사볼 듯). 앞으로 나올 다른 작품집도 그렇고. 유리 카자코프는 러시아에서 산문 쓰는 시인이라 불리며 서정성과 섬세한 문체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단다. 국내 첫 번역서로 1954년~1977년까지 발표한 대표작 14편이 담겨 있다고. 어떤가, 궁금하지 않은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판사와 형리>
<뒤렌마트 희곡선> 읽고 반한 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그의 전작 읽기에 도전!-물론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이 책은 특히 이웃 폴스타프 님도 극찬한 바, 더 관심이 갔다. 게다가 추리/미스터리 소설이란다!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책에는 ‘판사와 형리’, ‘혐의’ 두 작품이 실려 있다. 두 작품 모두 괴물이 되어버린 범죄자를 쫓는 노회한 수사관을 그리고 있다고. 사실 출간된 지 좀 된 책이라 중고로 나오는 거 노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알라딘 직배송 중고로 뜨는 게 없어서 그냥 샀다.

하오징팡, <인간의 피안>
사실 관심 밖의 책이었는데, 알라딘 100자평 리뷰대회에 포함된 책이라 한 번 사서 읽어 보았다(100자평 이벤트에서는 떨어짐). 생각보다는 흥미로웠던 책. 분신, 복제인간, AI 등 인간과 똑같은 존재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영생병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영화화하기로 했다는데, 영화로 만들어져도 흥미로울 듯. 다만 이 작가는 중국에서도 상을 주는 등 자국에서 인정받고 있어서 그런지, SF라는 형식으로 중국의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게 없어서 아쉽더라.

비 윌슨, <식사에 대한 생각>
이것도 100자평 리뷰대회에 포함된 책이라 구매해서 봤다. 그래도 이 책은 궁금했던 터라, 겸사겸사 사봄. 이 책으로 100자평 이벤트 당첨! 적립금 15만원 받았다. 역시 마음에 있던 책을 사서 읽어야 진심으로 글이 써지는 것인가? 이 책에 대한 나의 100자평은 다음과 같다. -음식은 넘쳐나는데 정작 허기진 오늘날 식문화를 파헤쳐 ‘자신만의 달콤하고 푸른 잔디’를 찾아내는 법까지 명민하게 제시한다. 단순히 식문화뿐만이 아니라 풍요 속의 빈곤인 현대인의 삶도 돌아보게 되는 책.


에마 미첼, <야생의 위로>
이 책도 100자평 리뷰대회 도전용으로 샀다. 사실 내 취향의 책은 아니다. 이것 말고도 아니 에르노 <빈옷장>, 루시아 벌린, <내 인생은 열린 책> 등에 도전했는데, <빈옷장>이나 <내 인생은 열린 책>은 애초부터 사뒀던 책이라 딱히 100자평 리뷰 대회 응모용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암튼 <야생의 위로>는 25년 동안 우울증 앓던 지은이가 자연을 거닐면서 치유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으로 읽다 보면 정말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난 이 책 보면서 새, 꽃, 나무 등 내가 문외한인 분야에서 좀 깨우칠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토르 에벤 스바네스, <물범 사냥>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이는 노르웨이 작가 토르 에벤 스바네스. 이 낯선 저자의 책을 덜컥 사는 데는 그리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성과 동물을 대비시키며 약자로 산다는 것의 공포’를 이야기한다는 소개만으로도 충분했다.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세상이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펼쳐 보이는 세상’이라니, 대략 그려질 내용이 짐작 가지만, 그럼에도 꼭 내 눈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출판사가 믿음이 간다. 동물과 관련해 좋은 책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 ‘책공장더불어’에서 나온 책이다.

토마스 핀천, <브이.>
읽기 참 난해하지만, 어쩐지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작가 토마스 핀천. 그의 전설적인(?) 책 <브이.>가 출간되었으니 꼭 사야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이 책은 ‘서구 문명의 몰락과 인류 문명의 위기를 포스트모던한 시각과 기법으로 묘사해’ 1963년에 출간, 그해 최우수 첫 작품에 수여되는 윌리엄 포크너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독서가들을 흥분시키고도 남을 책이다. 단, 사기는 샀지만 내가 이거 언제 읽을지는 아무도 몰라.


 

그랜트 스나이더, <책 좀 빌려줄래?>
곳곳에서 터지는 엄청난(?) 상찬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에서는 딱히 사서 볼만 한 책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서점에서 쓱쓱 읽어도 될 그런 책이랄까. 그럼에도 구매한 까닭은 그놈의 굿즈죠 뭐. 이 책 사면 주는 피너츠 유리컵, 피너츠 보냉백이 더 탐이 나서 그만 이 책을 지르고 말았습죠. 일러스트가 무척 사랑스럽고 귀엽다는데 내 취향으로는 딱히 그 의견에 동의하긴 어려웠다.... 암튼 이 책보다는 굿즈로 받은 유리컵과 보냉백에 더 만족했다는 후문이.....;

마르그리트 뒤라스, <파란 눈 검은 머리>
요즘 아니 에르노 책도,  뒤라스 책도 꾸준히, 자주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두 작가 모두 처절할 정도로 솔직한 자기 고백적인 작품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또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소설에 대해  뒤라스 스스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내가 글로 쓰게 되었던 사랑, 그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끔찍한 한 사랑 이야기다.” 아아, 이 단 두 줄 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증폭하지 않는가? 아니라고? 아님 말고. 난 그렇거든.

에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입센의 희곡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와 제목이 똑같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헨리크 입센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 남성 예술가이자 사상가가―우리가 아는 대로―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작품 속에 여성들을 이용하고, 한 여성이 자신의 삶이 이용당했음을 서서히 깨닫고 투쟁하는 서사에 대한 희곡이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성 인권 및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해 여성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세계를 담고 있다. 몇 꼭지만 읽었는데도 이미 별 다섯을 예감하는 책.

옥타비아 버틀러, <킨>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여태 <킨>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참에 리커버 에디션이 나와서 드디어 구매. 이미 많은 이들이 읽어서 내가  더 소개할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혹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그리고 여성. SF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작가이자,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머쥔 작가로 손꼽히’고 있으며 <킨>은 그의 대표작이자 최고 성공작이라고 한다. 이 책 읽고 나서는 최근에 새로 나온 <쇼리>도 볼 예정.

중고


문윤성, <완전 사회>
표지가 좀 색다르다. 이 책은 전혀 알지 못했던 책인데, 얼마 전 알라딘에서 2021년 문윤성 SF문학상 공모전을 한다는 광고를 봤다. 공모전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문윤성이라는 사람이 누구기에 이런 공모전을 하나 궁금해서 클릭했다가 알게 됐다. 아니, 이 사람이 우리나라 최초 장편 SF <완전사회>를 쓴 작가란다. 이 작품은 1965년 <주간한국> 추리소설 공모전 당선작이라고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를 뒤로하고 다시 번영하기 시작한 인류는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타임캡슐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UN은 타임캡슐의 궁극적인 형태로 살아있는 인간을 미래로 보내기로 했다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알라딘 중고에 올라왔기에 구매.

조르주 페렉, <생각하기 / 분류하기>
페렉 선집을 야금야금 모으고 있다. 그런 중 새것 같은 중고가 나타나서 망설임 없이 구매. 이 책은 1982년 3월 조르주 페렉이 죽고 난 후에 묶어 펴낸 첫 산문집으로. 1976년부터 1982년까지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 열세 편을 묶었다. ‘내 작업대에 있는 물건들에 관한 노트’, ‘ 책을 정리하는 기술과 방법에 대한 간략 노트’, ‘열두 개의 삐딱한 시선’, ‘초보자를 위한 여든한 개의 요리 카드’, ‘이상 도시를 상상하는 데 있어 존재하는 난관에 대하여’ 등 목차만 봐도 벌써 궁금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그렇지 않은가?

제럴드 그로스, <편집의 정석>
궁금했던 책인데, 책값이 비싸서 선뜻 사지는 못했던 책. 중고로 나타나서 덥석 구매. ‘글로 쓰인 원고’가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기까지 편집 과정의 불변의 진리를 보여주는 고전이라고. <편집의 정석(Editors on Editing)>(1962, 1985, 1993)은 1962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래 현재까지 편집자, 편집자 지망생, 특히 출판 과정을 알고자 하는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지침서가 되어온 책이라고 한다. 발행인, 편집자, 작가, 에이전트라면 본인을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이 탄생하는 과정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권하는 책이라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블로그 이웃분이 최근 이 책이 무척 좋았다고 추천해서 한 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는 꽤 좋아하는데, 산문이나 에세이는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이웃분이 발췌해서 올린 글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움직이더라. 그런데 왠지 새 책은 사기 좀 아깝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자니 대출 중이고. 그러던 참에 중고에서 보여서 구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의 또 다른 에세이인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도 읽을 예정.

I.A.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1,2
내가 계속 추천하는 책. 이러다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마니아 될라. 그래도 좋다. 이 책 정말 좋습니다요. 그런데 왜 책을 중고로 사느냐고요? 예전에 이 문학과지성사의 이 책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때는 이 작가에 대한 확신이 없던 터라 덜컥 사기 뭐해서 빌려 읽었는데, 너무 좋잖아? 그 뒤로 책 사야지 했는데, 책 1,2권 값 다 합하면 좀 비싸서 차일피일 미루던 참에... 요즘 이 책이 다시 읽어 보고 싶어지더라. 그런데 떡하니, 중고로 올라옴. 재빨리 구매했다. 조만간 다시 읽고 리뷰 쓰고 싶다. 예전에는 리뷰를 쓰지 않아서 이 책의 위대함을 널리 전파 못했네.

막심 고리키, <마부>
이 출판사에서 ‘러시아 고전산책’ 시리즈가 속속 나오고 있는데, 관심 갖고 지켜보는 중.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엔 투르게네프 <파우스트>와 이 막심 고리키 <마부>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막심 고리키의 초기 단편들 10편을 묶어놓은 책으로, ‘이제르길 노파’ 외에 9편은 모두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작품들이라고. 문학동네에서 나온 고리키의 <은둔자>와 거의 겹치지 않는 목록.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5
책 읽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도전해보겠다는 로망을 품고 있으리라.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내가 이런 장편 읽기에 좀 약해서(중간에 자꾸 다른 책 읽고 싶어짐) 섣불리 도전은 못하고 있는데, 죽기 전에는 꼭 읽을 생각이다. 그런데 민음사, 이 책을 몇 권으로 조각조각내서 내고 있는지! 제값주고 사자니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중고로 모으고 있는데, 최근 3권에서 5권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래서 냉큼 구매. 이제 1권부터 5권까지 중고로 다 모아 놨다. 그런데 거의 새것 같음. 어차피 민음사도 아직 다 완역하지는 못했으니, 나도 이렇게 중고로 차근차근 모아서 언젠가는 다 읽어야지.

전자책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미시시피 씨의 결혼>
뒤렌마트 전작 읽기 도전 중이라, 이 책도 구매. 종이책을 사고 싶지는 않고(생김새가 영 사고 싶지 않은;;) 그런 참에 전자책으로 저렴하게 나와 있어서 구매. 내용은 전혀 모른다. 출판사 책 소개도 부실하다. ‘뒤렌마트는 기발한 착상과 현란한 대사, 날카로운 비평의식에 있어 발군한 재능을 보인 극작가로, 이 책에 소개된 <미시시피 씨의 결혼> 역시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가 전부. 그럼에도 믿고 사는 뒤렌마트.



루쉰, <방황>
출퇴근길에 읽으려고 구매.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인 <방황>은 11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하여 1926년에 출판되었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1924년에서 1925년에 이르는 기간에 집필된 것으로 5.4운동 퇴조기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쓰였다. 중국 근대화 과정의 격변하는 사회 현실과 민중의식을 가식 없이 반영하고 있으며 근대화를 위한 계몽사상의 고취로 점철되어 있다고 한다. 계몽사상 고취! 살짝 예상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루쉰이니까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선은 전자책으로 저렴하게 볼 수 있다. 심지어 90일 대여는 2250원. 매일 100원씩 주는 쿠폰 모으면 공짜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책도 90일 대여로 구매.

선물한 책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1,2
도스토예프스키 좋아하는 친구가 콕 찝어서 이 책을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해서 구매. 기프티북으로 보냈다. 친구도 나도 이미 도선생의 <죄와 벌>은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지만 이번에 새로 나온 문학동네 버전은 어떨지 궁금. 번역이 괜찮다는 말도 있고 해서 나도 이 문학동네 버전으로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터라 이렇게 나이 든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샬롯 브론테, <빌레뜨>1,2
다락방 님께 생일 선물 겸 위로의 선물로 기프티북 보냄. 아니 이 사람, 100자평 리뷰 대회에 4개 응모하고 4개 다 될 줄 알았다고, 15*4=60해서 60만원어치 책 살 꿈에 부풀었던 그녀는..... 한 개도 당첨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름에 잠긴 기나긴 포스팅을 했는데, 그 포스팅이 왜 이렇게 재미나던지 실컷 깔깔거리고 웃었는데(그러면서 나는 당첨됐다고 얄미운 자랑질까지 함 ㅋㅋㅋ), 웃고 나니 뭔가 미안한? 그런 것이다. 그런 데다가 그즈음 다락방님 생일이라 이 책을 조공. 이 책은 ‘창비우롱상자’ 사태 때 다락방 님이 ‘빌레뜨’가 나온 줄 모르고 너무나 재빨리 ‘주군의 여인’을 보내달라고 한 바람에, 안타깝게도 다락방 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다락방 님은 이 책을 돈 주고 사보기에는 왠지 억울한 심정이었다고. 영원히 다락방 님 위시리스트에만 있을 거 같아서 내가 구원해주기로 결정.



 첫 번째로 구매한 목록....


두 번째로 구매한 목록...



모두 중고로 사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거의 새 책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0-08-17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고로 ‘잃어버린 시간들‘ 사고 있는데 언제 읽게 될는지요 ㅎㅎ~~
상금 15만원은 대단한데요^^
축하해요^^

잠자냥 2020-08-17 13:14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 님도 중고로 잃어버린 시간들을 모으고 계시다니! 저의 경쟁자?! ㅎㅎㅎ 언젠가는 읽게 되겠죠?
실은.... <빈옷장>까지 2개 당첨되어서 30만원 받았어요..... ㅎㅎㅎ 덕분에 한동안 책값 굳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8-1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히히 여기 저 나왔네요. 역시 사람은 글을 재미있게 쓰고 볼 일이야. 책이 막 생긴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감사해요, 잠자냥 님. 부지런히 읽고 재미있는 글을 앞으로도 계속 쓰도록 하겠습니다. 뽜샤!!!

잠자냥 2020-08-17 16:2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이에요. 얼마나 재미나게 쓰셨는지, 요즘 다락방 님 선물 받으신 책이 몇 권이더라!! ㅎㅎ
앞으로도 많이 읽고 많이 쓰세요~
 

10여 년 전, 테니스라켓을 처음 잡았다. 신세계였다. 내가 왜 이걸 여태 배우지 않았을까 후회도 됐다. 운동 신경이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서 포핸드, 백핸드, 발리 등등 금세 익혔다. 30도가 넘는 여름에도,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에도 레슨 받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실내 코트가 많지 않아서 한 겨울에도 실외에서 테니스를 배웠다. 몹시 추운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레슨을 빠지는데,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자 보다 못한 코치가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면 공이 제대로 튕기지 않으니까 나오지 말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가니까 코치가 헛웃음을 웃었지.

그렇게 2년쯤 배우니까 제법 상대와 랠리도 되고, 같은 코트에서 레슨 받던 어르신들이 게임에도 끼워주더라(우리나라 테니스 코트에는 젊은이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 더 많다). 그 무렵에 다니던 회사가 쫄딱 망했다. 몇 년 치 퇴직금은 물론 몇 개월이나 밀린 월급까지 받지 못했다. 그것만 해도 몇 천만 원..... 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월급 밀릴 때 생활하느라 적금도 깨버린 상태였고, 설상가상 빚까지 있었다. 한 번에 해결해주겠다던 사장 말을 믿은 내가 바보였다. 그때 내 직업은 카피라이터. 그 전에 다니던 회사도 망해서 이직했던 참인데, 또 망한 것이다. 같은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요즘 승승장구하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말하기를 말하기>의 김하나 씨도 있는데,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내가 카피라이터로 재직했던 회사는 지금도 건재한 첫 번째 회사 빼고는 다 망했다. 놀기 좋아한 나 때문인가? -_-?

아무튼 그렇게 거리로 나앉.....지는 않았고, 못 받은 돈에 빚까지 졌던 나는 실업급여를 받아서도 테니스 레슨을 받으러 갔다. 회사 다닐 때는 퇴근 후 한 시간쯤 레슨을 받거나, 가끔 주말에 테니스를 칠 수 있었는데 백수가 되니 남는 게 시간인지라, 아침 여덟시부터 코트에 나가 점심때까지 있었다. 오는 사람마다 상대해주며 마치 무림의 고수(?)라도 되는 듯이 랠리를 해주곤 했다. 물론 진짜 고수 앞에서는 깨갱. 주로 초보인 사람들을 상대했는데(코치가 시킴), 남자들은 (초보 주제에도) 좀 비웃는 듯한(?) 태도로 도전했다가 내 공을 받으면서 당황하곤 했다. 코트에 눈이 녹기 시작한 그 봄부터 한낮의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른 여름까지 쭉, 거의 아침 8시부터 점심까지 코트에 있었으니, 그때 내 얼굴과 몸은 농사꾼처럼 시커멨다. 다시 직장을 알아볼 생각도 안하고 백수 딸이 시커먼 얼굴로 테니스만 치고 다니니 그때 엄마 속은 내 얼굴보다 더 시커멨을 것이다.

사실 내 속은 더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때까지 광고일로 밥 벌어 먹고 살아왔지만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네버,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화려하지만 속빈 강정 같은 업계에 신물이 났던 참에 회사가 망했던 것이니 역시 내 탓인가? -_-? 그러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무작정 테니스만 쳤다. 공을 쫓는 눈, 라켓으로 공을 때릴 때 탕탕 울리는 그 상쾌한 소리. 공을 따라다니느라 땀에 흠뻑 젖어서 모든 걸 잊을 수밖에 없던 그때- 그렇게 몇 시간을 내리 테니스만 치다가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에 코트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 한낮의 평온한 하늘은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돌아간 뒤는 아니었다. 그때 그 벤치에 늘 함께 앉아 있던 사람이 애인이 되어서 지금도 여전히 곁에 있다...... 음, 테니스가 선물한 내게 가장 고마운 것 중 하나랄까. 백수라 시간이 남으니 그즈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절대 방영해주지 않는 온갖 테니스 중계도 인터넷으로 새벽 내내 찾아보곤 했다. 밤에는 테니스를 보고 아침부터 점심까지는 테니스를 하고. 그게 그 시절 내 일과였다. 어느 날은 코치가 “잠자냥 씨는 테니스에 미친 사람 같아”라고 했지.

테니스는 그때 내 마음속 절망을 잊게 해준 존재였다. 그렇게 일 년을 넘게 보내고, 그 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씩 테니스 코트에 머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직업으로 돌아가지 않고도 밥벌이를 다시 하는 행운도 찾아왔다. 이것도 테니스 덕분일까? 가끔은 그때 한낮의 빈 코트에서 애인과 함께 나란히 앉아 보던 하늘이 그립기도 하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을 읽는 내내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 또한 테니스에 미친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는 친구와 함께 미치광이처럼 테니스에 몰두했던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아스팔트에서 최면에 걸린 듯 행군하는 둔주 상태, 밋밋하면서도 무성하고 멍하면서도 격렬하게 느껴지는 정신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젊었고 언제 그만둬야 할지 알지 못했다. 몸뚱이가 지긋지긋해서 다치게, 닳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52쪽)라고. 나 또한 어쩌면 그 시절에 그런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우울증이 심해서 몸뚱이를 다치게 하고 싶은 그런 상태.


테니스는 가만있지 않는 공을 가지고 하는 당구요, 생각할 시간이 없는 체스다. 미식축구를 보병과 소모전에 비유한다면 테니스는 포병과 공습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끈이론>, 30쪽)


이 책은 ‘끈이론’이라는 제목보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라는 부제가 더 매력적이다. ‘끈이론’이라는 제목은 뭐랄까 내가 미치도록 싫어하는 수학이나 과학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테니스에 수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각도까지 헤아리면서 샷을 날린 모양인데, 사실 난 그런 거 절대 모르고 동물적 감각으로 공을 두들겼을 뿐이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약간 강박적인 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저 백수 시절 얼마나 우울했던가! 백수라서가 아니라,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음울한 어린(?) 양은 테니스에서 빛을 찾았다. 더욱이 테니스는 스포츠이면서도 상대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은 경기 중 코트를 바꿀 때에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경기 시작 전, 후로 나누는 포옹과 악수 정도가 전부랄까. 타고나기를 무리 지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스포츠의 거리두기는 정말 완벽에 가깝게 취향에 맞았다. 물론 이 좁은 땅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아마추어로서는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대부분 복식 경기를 하자고 주장해서 ‘고독한’ 경기를 지향하는 나를 진저리 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애인은 오직 둘이서만 테니스를 친다. 동호회에 들어오라는 말도, 같이 복식을 치자는 낯모르는 이들의 제안도 모두 거절한다. 코트에는 저 너머 애인과 나 둘 뿐이다. 서로 상대를 너무 잘 알아서 우리 실력은 더 늘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둘이서만 칠 것 같다.

아무튼 테니스는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을 보라. 그는 서브를 넣을 때 항상 하는 강박적인 버릇이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말을 한껏 순화해서 서브 넣기 전 나달이 엉덩이를 ‘꼬집는다’고 표현했는데, 꼬집는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나달의 경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그는 똥꼬가 팬티를 먹은 것처럼 서브를 넣기 전에 늘 똥꼬에서 팬티를 뺀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똥꼬 언저리를 오간 그 손가락을 이용해 귀 뒤로 (이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정성껏 넘기고 상대를 쏘아보다가 서브를 날린다. 나달은 또 본인이 마시는 물병 세 개를 딱 나란히 정렬해 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물론 이런 강박증은 그 완벽해 보이는 페더러에게도 있다. 다만 페더러는 나달처럼 볼썽사납거나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조용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파란 끈으로 묶은 라켓을 몇 번째에는 꼭 바꾸는 등등 그만의 강박이 있다.


단언컨대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 테니스는 신체 통제, 손과 눈의 협응, 재빠름, 최고의 속도, 지구력, 그리고 조심과 (우리가 용기라고 부르는) 놓아버림의 기묘한 조합을 필요로 한다. 두뇌도 필요하다. 수준 높은 경기의 한 포인트에서의 한 번의 공방에서의 단 하나의 샷은 역학적 변수의 관점에서 악몽과 같다. 네트의 (가운데) 높이가 91.4센티미터이고 두 선수의 위치가 (비현실적이게도) 고정되었다고 가정하면 샷 하나의 위력을 결정하는 것은 각도, 깊이, 속도, 스핀이다. 이 요인들은 각각 또 다른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끈이론>, 117쪽)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테니스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힘겹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테니스는 정말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무척 힘들다. 내가 이런저런 운동을 하면서 몸을 다친 적은 거의 없는데, 테니스 때문에 다리에 깁스를 두 번이나 했다. 왼쪽,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찢어져서 저마다 한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근육이 찢어질 때의 그 고통은................. 음. 종아리를 누가 총알로 쏘는(실제로 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으으) 듯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테니스를 포기하지 못하니, 확실히 이 스포츠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는 일정 수준 이상의 테니스는 일종의 기예라고 말한다. 진짜 최상급 선수들은 우리 앞에서 기예를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예를 펼치는 선수들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얼마나 잘 묘사하는지, 그 적절한 비유에 배꼽이 빠질 만큼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는 안드레 애거시를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렇게 말한다. ‘애거시는 깡말랐고 계집애처럼 생겼으며 밀어버린 머리와 베레모스러운 모자와 검은 신발과 양말과 듬성듬성한 염소수염 덕분에 소년원에서 갓 출소한 사람 같다’(141쪽). 마이클 창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얼기설기 꿰맨 모습’이라고 하며, ‘머리통은 버섯 모양이고 머리카락은 칠흑 같으며 표정에는 심각한 난치성 불행이 묻어난다.’고 말한다. ‘대학원 글쓰기 강좌를 제외하면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불행해 보이는 얼굴’이라나. 테니스 역사상 미남으로 따지면 상위권에 들고도 남을 선수인 마크 필리포시스를 스파르타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피트 샘프러스와 경기하는 그를 ‘크고 느린 기계와 같은 베이스라이너로 눈에는 싸늘한 적의가 감돈다’고 표현한다. 그에 비해 샘프러스는 ‘허약하고 지적이고 (슬기롭고 슬픈) 시인처럼 보이며 민주주의만이 그렇게 지칠 수 있는 듯한 방식으로 지쳐보인다’(158쪽)고 말하는데,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지 너무 웃겨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2008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의 테니스계는 지켜보지 못했는데, 그 후로 크게 활약한 노박 조코비치나 앤디 머레이 같은 선수들을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완벽한 비유를 하고도 남았으리라.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라는 글만 봐도 그가 얼마나 테니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점과 특징을 잘 알고 있는지, 또 그리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페더러를 좋아하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를 거의 숭배하는 관점에서 묘사한다(그런데 테니스를 즐겨 보는 이가 페더러를 숭배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그는 ‘아름다움은 경기 스포츠의 목표가 아니지만 높은 수준의 스포츠는 인간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최상의 분야’(194쪽)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최상급 운동선수의 아름다움을 직접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환기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줄곧 페더러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페더러의 포핸드는 거대한 액체 채찍이요, 백핸드는 한 손으로도 플랫 드라이브를 날리거나 톱스핀을 먹이거나 슬라이스를 깎을 수 있다.’(200쪽) ‘페더러는 나이키에서 올해(2006년) 윔블던에서 입도록 한 버터밀크색 스포츠 코트 차림이다. 페더러는 어쩌면 오직 그만이 스포츠코트를 반바지와 운동화에 받쳐 입어도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는다.’(198쪽), ‘고전적 스토아주의와 강한 정신력과 훌륭한 스포츠맨 정신과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는 품위와 신중함과 아낌없는 자선’ 등등의 아낌없는 찬사에 이어 페더러의 경기를 보면 ‘지독하게도 종교에 가까운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을 겪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까지 찬양한다. 이 모든 주장에 104% 동의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내내 감동으로 복받쳐 올랐다.


 2006년 윔블던 결승 이후. 보라, 페더러는 운동화에 반바지에 버터밀크색 스포츠 코트를 입어도 이토록 아름답다!


페더러는 천재, 돌연변이, 화신이라고 불릴 만한 유형이다. 그는 서두르거나 균형을 잃는 법이 없다. 그에게 날아오는 공은 실제로 그래야 하는 것보다 몇 분의 1초 오래 머물러 있다. 그의 동작은 운동의 동작보다는 무용의 동작에 가깝다. 페더러는 살과 빛의 몸을 입은 존재다. (<끈이론>, 208쪽)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는 2006년, 그러니까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쓰인 글이다. 그의 또 다른 에세이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에도 실려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페더러는 스물다섯 나이로 현재 살아 있는 테니스 선수 중에서 최고다. 영영 최고일지도 모르겠다.’(193쪽) 말하는데,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20년인 지금도 페더러는 최고다. 물론 이 최고가 1위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 페더는 랭킹 4위이다. 그런데 그는 1981년생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마흔이다! 마흔의 나이에 여전히 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그는 정말이지 살과 빛의 몸을 입은 존재이자, 천재이자, 영영 최고의 테니스 선수일 것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살아있었다면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페더러의 경기를 보면서 종교적인 고양까지 느끼며 행복해 했을 텐데……. 같은 페더러 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지난 1월에 열렸던 호주오픈을 제외하고는 모든 투어 경기가 열리지 않고 있다. 페더러의 경기도 올해는 그때를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다. 페더러가 더 나이 들기 전에 그 우아한 경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 코로나가 어서 끝나야 할 텐데……. <끈이론>은 테니스와 관련해서는 가장 우아한 에세이임에 틀림없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처럼 말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8-14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테니스를 전혀 모르고 흥미도 없지만 이 글이 아름답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겠어요. 잠자냥 님이 테니스를 배우고 열중해 주어서, 그래서 결국 이런 글을 써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가 항상 요가 3년 했는데 왜이렇게 다 못하는거야, 라고 얘기하지만 이 글을 보니 알겠네요. 저는 요가를 매일 하지도 않고 한다고 해도 삼십분이 전부이니..이래가지고 뭐가 되겠어요? 뭔가 이거다 싶은 결과물을 내놓으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많이 들여야 할텐데 말입니다. 저는 노력을 들이지 않고 결과만 가져가기를 바랐네요.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잠자냥 님. 그 시절 잠자냥 님께 테니스가 있어서 너무 좋네요. 그리고 잠자냥 님이 사랑하는 스포츠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고요.
애인이라는 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겹치는 것이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이이지만, 그러나 겹치는 게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축복입니까.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다니, 잠자냥 님 복 받으신 분.....

잠자냥 2020-08-14 10:26   좋아요 0 | URL
테니스 정말 아무리 오래 배워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은 다다르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순간 정말 1cm 정도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테니스 배우면서 글쓰기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진짜 꾸준히 해도 좀처럼 늘지 않는데,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조금 늘어난 걸 발견하는 기분. 그러다 또 슬럼프 오고.... 요가를 전 잘 모르지만, 아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스포츠나 글쓰기나 정말 꾸준히 하다 보면 아주 쪼오금 상승한 게 보이는. 그렇지만 정말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거. ㅎㅎ 다락방 님은 글쓰기와 책읽기는 정말 꾸준히 하는 분이니까 요가도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날 살짜쿵 실력 향상이 된 걸 느끼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테니스는 파트너가 있어야만 가능한 운동인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 너머 코트에 있으니 참 행운이죠. ㅎㅎ 그러니 다락방 님도 요가장에서 파트너를.........? 응(?) ㅋㅋㅋㅋ

Falstaff 2020-08-14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 잠자냥 님이 테니스 (아마추어로는) 고수시군요! 스매싱 하듯 휘두르는 손바닥으로 귀싸대기 한 대 맞으면 참으로 볼만 하겠습니다. 후다닥.....

잠자냥 2020-08-14 10:45   좋아요 0 | URL
무림(?)의 고수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무림의 고수 아줌마들 테니스 대회가 있는데(‘진달래부‘,‘국화부‘라고 합니다), 국화부 아줌마들 대회 동영상 보면 정말 장난 아니에요. ㅎㅎ 스매싱은 생각보다 어려운 기술이라 귀싸대기 잘못 날리다가는 제 어깨가 먼저 나갈 수도 있지요. ㅋㅋㅋㅋㅋ

박균호 2020-08-14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십년 테니스에 빠져 살았는데 테니스의 묘미는 단식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마이클 창 참 오랜 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저는 고란 이바니세비치의 팬이었어요. 윔블던 결승전에서 우승한 순간이 아직 생생하네요. 그 양반이 사용한 헤드 프레스티지660도 생각나고...

잠자냥 2020-08-14 11:27   좋아요 2 | URL
단식이 짱이죠. 문제는 우리나라 코트 여건상 단식 치기 참 힘들다는 것이죠. ㅎㅎ 마이클 창 정말 오랜만인 이름이죠. 이 책에서는 아무래도 정말 오랜만인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이바니세비치 이야기도 나와요.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는 그가 잘생겼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냥 호락호락(?) 인정해주지는 않지요.ㅋㅋㅋㅋㅋ

박균호 2020-08-1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저도 테니스를 좋아해서 저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긴 했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읽다가 집어 던졌어요. 다시 테니스로 돌아갈려고 준비중인데 반가워서 댓글 남겨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잠자냥 2020-08-14 11: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저자 말이 좀 현학적인 면은 있죠? ㅎㅎ 저도 다리 다친 뒤로 한 1년 테니스 쉬었는데, 이 책 읽고 나니 암튼 다시 코트에 나가야지! 불끈불끈하더군요. 테니스 즐겁게 치세요~!!

페넬로페 2020-08-1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테니스경기 시청하는걸 참 많이 좋아했어요~~
경기를 볼 때마다 테니스를 배우고 싶었는데 운동만 하면 몸에 탈이 생기는 저에게는 무리이다 싶더라구요!
그나저나 잠자냥님의 훌륭한 필력의 출처를 알게 되었네요^^

잠자냥 2020-08-14 12:17   좋아요 1 | URL
테니스는 보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스포츠이지요.
몸에 탈이 나지 않는다면 한 번 직접 해보시라고 권유하고 싶은데 아쉽네요. ㅎㅎ
회사는 망했어도 필력은 챙긴 것일까요?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0-08-1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께서도 테니스를 좋아하시는 군요. 겨울철에도 돌멩이 같은 테니스공을 치실 정도면, 정말 좋아하시는 분이시라고 여겨집니다. 저도 예전에는 테니스 경기도 즐겨보고 보리스 베커와 나달을 좋아했던 기억도 납니다. 한동안 테니스를 안 쳤는데, 조만간 딸아이와 함께 라켓을 잡을 날을 기다려 봅니다. 잠자냥님 덕분에 테니스에 대한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0-08-14 12:48   좋아요 2 | URL
와, 이 글이 알라딘의 숨은 테니스 팬들을 소환했군요. ㅎㅎ 겨울철의 돌멩이 같은 테니스공을 아시는 거 보니 겨울호랑이 님도 테니스를 꽤 좋아하셨나 봅니다. 딸과 함께 치는 테니스는 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꼭 연의랑 함께 테니스 치는 날이 오기를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