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돌아온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 <증언들>은 전편인 <시녀 이야기>만큼 강렬하다. 또한 반드시 필요했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만일 <시녀 이야기>에서 끝났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작품만으로도 강렬한 충격을 던져주기는 했다.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하게 줄어든 가까운 미래의 가상 국가 ‘길리어드’- 그곳에서는 이 엄청난 위기를 피하기 위해 가임기 여성을 징집해서 필요한 가정에 ‘배급’한다.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어지러운 틈을 타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탄생한 이 괴물 같은 국가는 가장 먼저 여성들의 은행 거래를 정지하고 일터와 가정으로 들이닥쳐 여자들을 잡아들인다. 그 후 여성들은 이름과 가족을 빼앗긴 채 오직 국가를 위한 애를 낳는 의무에만 동원되는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낸다. <시녀 이야기>는 그런 끔찍한 국가에서 ‘시녀’로서 살아간 ‘오브프레드’의 이야기였다. 전작에서는 오브프레드가 임신한 채 탈출을 시도하면서 끝났다. 과연 오브프레드는 어떻게 됐을까? 탈출에 성공했을까? 아이를 낳았을까? 온갖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 끔찍하고도 어딘가 묘하게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는 줄로만 알았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증언들>에서 ‘시녀 이야기’ 그 이후의 삶을 그려나간다. 오브프레드가 탈출한 뒤 15년 뒤의 세상이다. <증언들>이라는 제목답게 ‘증언녹취록 369A’, ‘증언녹취록 369B’ 등 누군가의 증언들로 이루어진다. 오브프레드가 안타깝게도 붙잡혀서 증언을 하는 것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369A의 증언자인 ‘아그네스’는 길리어드에서 나고 자란 소녀로, 상류층 집안 출신이다. 체제에 복종하는 ‘귀한 꽃’으로 길러진 그녀는 증언을 통해 길리어드를 향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길리어드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기억밖에 없으리라 상상하겠지만 다른 곳이나 마찬가지로 길리어드에서도 많은 아이가 사랑받고 소중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그녀는 증언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길리어드에도 많은 어른이 흠결이 있지만 친절하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 또한 길리어드는 사라져 마땅하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녀가 보기에도 길리어드는 잘못된 구석이, 거짓된 구석이, 하느님의 의도에 어긋나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에는 길리어드에 대한 복잡한 마음, 그러니까 일종의 그리움이나 애정 같은 게 스며나온다.
또 다른 증언자는 <증언들>에서 가장 충격적인 화자라고 볼 수 있는 ‘리디아 아주머니’이다. 그녀는 길리어드의 여성 관련 제도를 만들고 총괄하는 권력자이다. 전편인 <시녀 이야기>에서는 잔혹한 권력자로 그려져, 이 여인이 과연 후속작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나갈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증언 369B’의 화자인 한 소녀는 길리어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데이지’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캐나다에 살면서 미디어를 통해서만 옆 나라인 길리어드를 접하고 있다. 데이지가 보기에 길리어드는 말도 안 되는 국가이다. 거기에 갇힌 채 출산을 위한 도구로만 쓰이고 있는 여자들을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길리어드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조금은 제멋대로이고 반항적인 10대 소녀이다. 이렇게 <증언들>은 길리어드 최상위 권력자인 리디아 아주머니와 길리어드 상류층 출신의 소녀 아그네스, 그리고 길리어드 밖에서 그 지옥 같은 나라를 지켜보는 또 다른 소녀, 세 화자가 번갈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이야기가 정교하게 펼쳐진다. 그러면서 길리어드 체제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고, 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전편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대리모 ‘시녀’의 이야기였다면 후편은 그런 착취와 억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강력하게 유지하는 데 일조한(아니 큰 역할을 한) ‘리디아 아주머니’와 그렇게 유지된 체제에서 안온하게 살아온 상류층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거기에 외부의 목소리까지 덧붙여져 이야기는 한층 풍요로워진다. 아그네스는 그렇게 만들어진 강력한 체제 안에서 편안하게만 살아온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아주머니’ 계급이 만들어낸 온갖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억압적인 교육 아래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외모와 생김새를 떠나서 불가피한 덫이자 유혹이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 가르침에 따르면 여성은 순진하고 무구한 죄의 원인이라서 타고난 본성으로 남자를 욕정에 취하게 만들어 휘청거리고 비틀거리다 선을 넘게 만들 수 있는 존재이다. 순진한 아그네스는 무슨 ‘선’을 말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럼에도 자신들의 존재를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곳에서 소녀들은 더없이 ‘귀한 꽃’이라 유리 온실 속에서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암암리에 습격을 받아 꽃잎이 뜯겨 나가고 그들의 ‘보물’을 도둑맞을 테니까. 공원에 그네가 있지만 길리어드의 소녀들은 치마 때문에 혹시나 바람에 날려 치마 속이 들여다보일까 봐, 감히 그네를 타는 주제넘은 짓은 할 수가 없다. 그런 자유를 맛볼 수 있는 건 오로지 남자아이들뿐이다. 소년들만이 낙하하고 비상할 수 있다. 남자아이들만이 공중에 떠오를 수 있다. 길리어드는 그런 국가이다. 그런데 왠지 이 세상 곳곳에서 펼쳐지는 풍경 같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여자아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도 금지한다. 읽기와 쓰기는 여자를 타락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아그네스와 친구들은 아주머니들이 만든 교육을 받는다. 그곳에서 불복종은 반항으로 이어지고 반항적인 소녀는 반항적인 여자가 된다. 반항적인 여자는 반항적인 남자보다 더 나쁜데, 그 이유는 반항적인 남자는 반역자가 되지만 반항적인 여자는 간음하는 ‘음부(淫婦)’가 되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음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이런 교육을 받는다.
아무리 봐도 성인 여성의 몸은 거대한 함정 덫이었어요. 구멍이 있으면 뭔가가 반드시 처넣어지고 또 다른 게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고, 하긴 원래 종류를 막론하고 구멍이 다 그렇긴 하죠. 벽에 뚫린 구멍, 산에 난 구멍, 땅에 난 구멍도 그렇고. 성숙한 여성의 몸이라는 건 거기다 할 수 있는 짓도 너무 많고, 그러다 잘못될 길도 너무나 많아서, 난 차라리 그런 몸 따위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증언들>, 122쪽)
아그네스는 궁금하다. 아주머니들은 우리와 똑같은 여자인데, 왜 우리와 다를까? 어떻게 읽기와 쓰기가 가능하고, 어떤 부름을 받았기에 그런 힘을 받은 것일까? 여자도 남자도 아닌 특별한 두뇌를 소유한 걸까? 그 유니폼 아래의 몸이 심지어 여자이기는 한 걸까? 위장한 남자는 아니겠지? 온갖 의문이 든다. <증언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그네스가 궁금하듯이, 이 ‘아주머니’ 계급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이다. 살아 있는 전설이자, 교실을 가질 만큼 신분이 높은 여자, 아이들 교실 뒤편에 액자로 표구되어 걸려 있는 머리로서 음침한 미소를 띠고 말없이 설교하는 존재이자, 본받아야 할 완벽한 도덕성의 모범. 그리고 상상 속의 모호한 종교 재판을 주재하는 판관이자 입법자인 ‘리디아 아주머니’는 길리어드 공화국의 가장 큰 공범자이자 가해자이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무력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반대세력을 진압하려는 움직임이 있게 마련이다. 반대세력은 주로 지식인이 이끈다. 그렇기에 지식인이 가장 먼저 제거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전직 판사신분으로 지식인에 속했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탄생했을 무렵 은행 계좌가 막히고 갑자기 끌려간 수많은 지식인 여성 중 한 사람이었다. 길리어드 정권을 잡은 남자들은 그런 지식인 여성을 미리 제거하거나 협박을 통해 자기편으로 삼는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온갖 고문과 협박을 자행한 뒤에 지식인이자 전문직 직업을 가졌던 여성들에게 선택권을 준다. 길리어드 체제에 협력하든지, 개처럼 죽임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리디아 아주머니 또한 선택한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제거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노새 같은 하층민 아이로, 결의에 찬 시궁창 쓰레기로 분에 넘치는 출세를 노리는 꾀돌이로 한 칸씩 사다리를 올라가는 전략가’로 돌아가야만 했다. 애초에 그런 힘으로 그녀는 이제는 박탈당한 그 사회적 위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녀는 상황을 파악한 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략해 나간다. 그리하여 저드 사령관과 맞먹을 정도, 아니 어쩌면 그조차 쥐락펴락 할 정도의 길리어드 최대 권력자가 되어 체제를 만드는 데 앞장서 나간다. 리디아처럼 길리어드에 협력하기로 한 또 다른 지식인 여성무리도 그 체제를 만들고 공고화 하는 데 협력한다. 그들은 한주, 한주 법, 유니폼, 슬로건, 찬송가, 이름들을 만들어낸다.
<증언들>는 시작부터 길리어드가 무너졌음을, 그래서 그 끔찍한 국가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증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리디아 아주머니도 체제를 배신해서 길리어드에 불리한 증언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음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리디아는 왜 그 체제를 만들고 강화하는 데 일조했으면서 그 국가를 무너뜨리는 일에 은밀히 앞장섰는지. 복수심? 죄책감? 사명감? 이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리디아를 지켜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주머니’ 무리는 길리어드라는 가상 국가에만 존재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온갖 종교 교리로 여성의 성(性을) 억압하고 순결을 강요하는 일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증언들>의 ‘아주머니’ 계급은 어찌 보면 이 세계의 수녀 계급의 은유로도 읽힌다. 한편으로는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높이 올라갔지만, 자신만의 안위를 지키는 데 급급한 이 세계의 수많은 명예남성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리디아 아주머니가 길리어드를 무너뜨리는 데 그 기막힌 머리로 크게 일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공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체제를 만들고 공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권력자로 살아온 그 수많은 세월을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이 아주머니 계급에 대해서는 여전히 복잡한 생각이 든다.
<증언들>34년이나 지난 오랜 세월 뒤에 우리 앞에 찾아왔지만 꼭 나왔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마거릿 애트우드도 해야 할 말이 아직 남았다고 생각했기에 펜을 들었으리라. 그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어쩌면 이토록 기막히게도 이야기를 잘 엮어 낼까? 내가 이 리뷰에 쓴 이야기는 <증언들> 600페이지의 극히 일부에 속할 뿐이다. 세 여성이 엮어내는 이 놀랍도록 다채로운 이야기, 온갖 비밀과 암투로 점철된 이 작품은 누구라도 숨 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시녀도, 아주머니도, 상류층 소녀도, 길리어드가 아닌 다른 세계에 사는 또 다른 소녀도 이혼이 범죄이고, 낙태도 범죄이며, 출산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여자의 몸은 낭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서로 절대 타인일 수 없다. 1985년에 쓰인 <시녀 이야기>와 2019년에 세상에 선보인 후속작 <증언들>- 이 두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는 2020년, 지금 이 땅이나 또 다른 지구촌 어디선가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지독히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