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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우선 책 곳곳에 있는 강아지 그림이 무척이나 귀엽다. 이런 일러스트가 없었다면 책의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그림들이라지만 어떻게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은 이렇게 작게 적을 수 있지?? 나라도 이름을 적어줘야겠다. 이세실. 넘넘 귀여운 삽화를 그린 삽화가!  

예전에,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나도 공황같은 걸 느꼈다. 가슴이 뻥 뚫어진 것 같은 느낌을. 그래서 읽은 책이 <너, 외롭구나?>였는데, 더 기분이 나빠졌다. 지는 얼마나 잘랐다구! 사람에 따라 반응은 달라서 찬반논쟁도 참 많은 책이었다. 오히려 따끔하게 혼이 나서 정신을 차렸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같이, 반감이 생긴 사람도 꽤 있었다. (다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논조가 좀 거칠었어야지..쯧)

그 책의 시각은 '인생의 방향의 개인(의 노력)이 결정한다' 였는데, 매우 미시적인 시각으로서 사실 그 저자 자체도 나로서는 크게 존경할 만한 업적이 없었다고나 할까. "너네 어린 놈들은 근성이 부족해! 눈물 젖은 빵은 먹어봐야 인생을 알 수 있지!? 내가 다 너넬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하는 70년대스러운 사고를 가진, 매우 꼰대같은 책이었다. (아, 내 책 값 내놔ㅠㅠㅠㅠㅠㅠㅠㅠ애들한테 욕 실컷하고 돈 벌으니 좋수?) 

아, 왜 그 책에다 리뷰를 안 달고 여기서 난리냐.. 하면, 그 당시는 짜증이 나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 

<위풍당당 개청춘>은 그런 점에서 바람직하고 유쾌한 책이었다. 역시 상큼한 언니들은 다르다니깐.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를 지망하여 공부를 했지만 낙방하고, 끝내 공사에서 일하게 된, 이대 나온 여자인데... 언론사를 준비해서 그런지 글을 웃기게 잘 쓴다. 허세도 별로 없고. 

공사에서 일할 정도면 안정적인데 '꿈을 갈아먹고 있다'는 말을 배부른 소리로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싸이월드 댓글이 다 그런 식이다. 가령 '나 방금 출근했는데 퇴근하고 싶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배부른 소리한다, 네 상사에게 다 찔러버리겠다, 짤려 봐야 알지..'등등. 그리고 뷰티, 패션 기사에는 '돈지랄, 돈 있으면 다 돼.. " 같은 힘빠지는 말도 많이 한다. 

아무리 직업이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더라도 크게 원하지 않는 일을, 단지 생계를 위해서만 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할까? 난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 말이 투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 일이란 거는 진짜 모르는 일이니까, 나도 본능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할 지도 모르고. (그니까 나는 이런 데 배알 꼬이는 '찌질이'는 아닌 것이다. 휴.)

지루한 일의 반복, 그러니까 내 능력이 조금도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면서 하는 일은 참으로 김빠지는 일이다. 푸코나 들뢰즈를 읽어도 직장에서는 작성하는 문서의 폰트의 크기 같은 것에만 고민하고, 문서의 형식에 맞게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은, 자괴감이 느껴지는, 힘든 일이다. 

매우 마음에 드는 꼭지의 제목.<이십대, 까도 우리가 깐다>. 그러니까, 까도 우리가 깐다구!! 

커피빈이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상황. 이건 싸구려 커피밖에 없던 시절이 태어나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좌절감이다. p.166    

어른들 세대랑 우리 세대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니 까도 우리가, 우리 식으로 까야지. 어른들은 선동(이것 또한 그들의 방식)하지 말지어다. 

또, 약간, 아니다 꽤 많이 공감되는 말. 이 불필요한 소비. 그 클릭질 때문에 나는 약 다섯 시간 더 근명히 노동해야 한다. 이럴 땐 내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다. p.178 

거참, 난 이십오 년 동안 이 기업에 입사할 준비도 안 하고 뭐 하고 살았단 말인가! p.22 

요즘은 입사는 아니더라도 기업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만든 프로그램에 원서를 넣어보게 되는데(사실 이것도 시류에 따라서..), 그 때마다 나는 저 생각을 한다. 갑자기 인생이 허무해지면서, 나는 정말 뭐 하고 살았는지 머리를 주먹으로 콩콩 칠 뿐이다. 

같은 80년대 생이라서 그런지 공감되는 게 많았다. 비록 신분(?)은 다르지만. 진정한 언니의 위로 같다고나 할까. 개콘의<분장실의 강선생님>처럼 "우린 땐 생각도 못했어, 이것듀라~" 라고 하는 여왕벌 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언니.  

나도 한 때는 꿈나무로 자라서 이 나라를 책임질 줄 알았는데... 학교에선 꼭 이런다. "이 나라를 짊어질 어쩌구..." 지금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흑흑. 차라리 이런 환상이나 안 심어줬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공사에 취직한 주제에 왠 푸념이냐~ 라고 말할 것 같은 사람들은, 패스! 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요즘 단순히 심심하거나, 자신이 한 때 꿈나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존재 자체로 까이고(?) 있는 80년대 생에게는 일독을 권합니다!

 

P.S. 아, 재인언니, 조선일보 주말 매거진에 글 좀 써주면 안 될까. 조선일보에서 유일하게 읽는 게 주말 매거진인데, (그뤠요, 우리 아직 조선일보 봅네다.. 뭐 어차피 돈은 엄마가 내는 거니까.)신정구랑 어떤 기자랑 쓴 <무리한 농담> 이후엔 읽을 게 없어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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