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것이고, 모름에서 앎으로 가는 것이며, 멈춰있던 희식이 흐르는 것이다. '읽다'에 내포된 많은 것들이 이 세계를 만들어 냈으며, 많은 것을 창조해왔고, 전달과 전달을 거듭해 많은 것이 공유되어 왔다. 세상에 태어나 읽게 되면서, 알게 되는 모든 것들. 또 읽은 것을 해석하고 소화하면서 받아들이고 걸러지는 것들이 있다. 때론 같은 것을 읽어도 생각이, 의식의 형성이 달라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다름을 제쳐두고라도 읽는다는 것은 '새로움'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라고.

 

대학을 졸업 후, 개인적인 일들과 고통. 그 안에서 나를 달래기 위해 열중했던 것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읽으면서 만나게 된 세계는 때론 충격적이었고, 때론 절망적이었으며, 때론 새로웠다. 읽게 되면서 쓰기 시작했다. 읽고 쓰고를 반복했다. 그 과장 속에서 의식이 성장하는 것을 느꼈으며, 지나온 시간들을 성찰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어제와 다른 내가 되어감을 느꼈다. 읽으면서 성장한다고 믿기에, 책을 놓을 수도 버릴 수도 없게 됐다. 책을 읽는 것은 나만의 세계에 빠져,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었으므로.

읽기에 빠진 사람은 행동할 수 있다는 것도 몸소 경험했다. 행동하지 않고 방관하는 사람이야 말로 아무것도 읽지 않으려 하고,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세상은 '읽고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변화시킨다. 읽는다는 것은 나 자신과 사투하는 일이기에, 세상을 향한 싸움과 많이 닮아있다.

 

원리주의자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수 없음'과 '읽기 어려움'에 맞설 용기도 힘도 없습니다. 나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말해왔습니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광기의 행위라고. 책을 읽으면, 읽고 말면, 아무래도 - 내가 잘못된 건지 세상이 잘못된 건지, 몸과 마음을 애태우는 이 물음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게 된다고. 사람들은 모릅니다.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는 책을 그래도 읽는다는 것, 그 안에 있는 텍스트의 이물감, 외재성, 생생한 타자성을 모릅니다. 가혹하기까지 한 그 무자비함을 모릅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모릅니다. 그 놀랄 만한 '읽어라'라는 명령의 열정을 모릅니다.   - 본문 153쪽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구절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읽는다는 것에서 탄생한 모든 것, 그가 예를 들고 있는 루터의 혁명과 무함마드와 하디자의 혁명의 근원은 모두 '읽기'에 있다. '성서'를 읽음으로써 일어난 혁명. '전태일'이 이루어낸 노동혁명도 분명 '읽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읽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 이루어지지 않았을 변화. 읽기가 만든 파급력은 곱씹을 수록 무섭고 대단하다.

 

읽게 된다는 것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알게 된다는 것은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은 이루어 낸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루어 낸다는 것은 읽은 것을 받아들이고 소화시켜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읽을 수 있는 것은 기회를 갖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무엇을, 혹은 원하던 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다는 것. 그것들이 모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무리 읽어도 정말 그것이 그 책에 쓰여 있었는지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책이란 그런 것입니다. 책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정확한 근거를 보여준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저 자신의 망상일지도 모릅니다. 책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망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준거의 공포에 사로잡히면서, 그래도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추궁해야 합니다. - 반복하겠습니까?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반복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 본문 81쪽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싸움은 시작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책이 말하는 것과의 싸움. 이것은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유쾌하다.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해야 한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맞는지, 옳은지, 이대로 나아가야 하는지. 싸움과 싸움을 거듭한 끝에 가치관이 형성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받아들인 많은 것들이 나를 만들어낸 것이다. 혼란에 빠졌을 때, 고뇌에 빠졌을 때, 분노에 휩싸였을 때. 읽기를 통해 만난 순간 순간들은 결국 내가 되었다. 읽기를 통해 내가 계속 달라지고, 만들어지면서 이것은 끝이 없는 싸움이여 끝나지 않을 성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읽기는 다양한 형태로 계속되어 왔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읽기를 통해 문학, 철학, 예술, 역사 등 많은 것이 발달되어 왔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살아간다는 것, 창조한다는 것,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모두 혁명이다. 혁명은 읽기와 함께한다. 사사키 아타루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통해 말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핵심이다. 세계가 나아가고 있는 것은 '읽는다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그의 기록 조각조각은 치밀했으며, 또다른 사유와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가 쓴 것들을 읽게 함으로써, 나를 다른 세계로 끌어들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시인, 그들은 누구인가?

똑같은 시대를 살아도, 한 발 더 사는 사람들. 가슴 아픈 것을 보면, 가슴 아파할 줄 알고, 고통스러운 것을 보면, 남들보다 몇 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자신의 아픔보다 시대의 아픔을 더 빠르게 느낄 줄 아는 사람들. 내가 아는 시인은 그렇다. 진짜 시인이라면 그렇다. 아름다운 말보다, 뼈 아픈 말을 꺼낼 줄 아는 이들이 시인 아니던가. 세상 사람들이 느끼고 있으나, 차마 말로 내뱉을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이들이 시인 아니던가. 그래서, 시인은 아름답고도 슬픈 존재 아니던가. 김수영, 그야말로 찬란하고도 슬픈 존재다. 시대를 꿰뚫어 보며 온몸으로 고통스러워 했고, 시와 자신을 일치시키면서 살았다.

 

 

강신주는 그 열정과 자유, 인문학적 정신을 이 책에 담았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한 개인이, 김수영에게 바치는 책이다. 김수영을 해석하고 해설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책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이야기 되어지는 것들은 우리 시대에 들어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수영이 비판하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한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반복을 거듭한 시대는 진화하기는커녕 제자리를 걷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어쩌면 더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노해야하는 시대에서 시대에 분노했던 김수영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시원하고 즐거우면서도 반성해야하고 되돌아보아야 하는 일이었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가 이야기했던가? 인간의 자유는 '대상적 활동(objective activity)'에 있다고 말이다. 앞에(ob) 던져져(ject) 나의 활동을 방해하는 저항에 대해 능동적(active)으로 개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다. 급류를 헤엄치는 물고기를 생각해 보라. 강풍에 몸을 맡기고 활공하는 까마귀를 생각해 보라. 급류를 따라 흘러가는 물고기는 오직 죽은 물고기뿐이고, 강풍에 날려 가는 새는 오직 죽은 새 뿐이다. - 본문 30쪽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자유를 놓아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리고,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하나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이들,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 자유라는 것은 그냥 놓여진 것일 뿐 얻어내야 하는 것임을 망각한 이들. 누군가의 삶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이들. 자유 의지를 멀리 날려버린 이들. 생각하지 않고, 각성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못한다면 결국, 저 위의 권력이 원하는대로 사는 것임을 부인해도 부인될 수 없는 시대.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고 몸부림친 김수영의 시와 정신은 시대의 부끄러움을 또렷히 보여주는 글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것을 다시 일깨웠고, 작가의 이야기에 덧붙여 그를 마음과 정신을 상상하게 되면서 그가 내게 다가오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는 분명 쓰고 싶은 것을 썼지만, 그것이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삶의 즐거움이라던가 이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의 삶은 시대의 급류와 맞물리며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는 누군가를 원망할 대상이 필요한 시절도 있었다. 그는 전쟁에 휩쓸려 거제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의 나락에 빠져 보았고, 죽을 힘을 다해 돌아왔지만 아내는 친구의 아내가 되어 집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를 찾으려 갔지만, 아내는 쉽게 따라나서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온 아내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는 고통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닌척해도 상처난 정신은 돌이킬 수 없는 일. 불행은 쉽게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설움은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온몸에 내재되어 있는 참혹한 상처와 설움, 분노의 씨앗들이 김수영을 김수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시여, 침을 뱉어라>(1968.4)

 

 

온몸으로 쓰는 시, 온몸이 살아서 나오는 시, 온몸이 밀어내어 나오는 시, 그것은 시의 진실, 그리고 시의 의미일 것이다. 또한, 그의 모든 시들은 온몸으로 썼다는, 온몸을 밀어내며 썼다는 말일 것이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시를 완성해내기 위해 그는 상처와 고통으로 온몸을 밀어내었고 그렇게 탄생된 시들은 읽는 이 마저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김수영의 이상은 분명하다. 모든 사물이나 사태처럼 각 개인은 단독적인 존재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가 단독적인 존재가 아닌데 단독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단독성을 되찾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은 교육과 관습, 권력이라는 외적 압력 때문에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외부가 강제하는 제스처로 살아가는 순간, 우리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것이 원하는 바대로 살아가는 것은 우울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 반대로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노예다. 그러나 그 누가 노예로 살고 싶겠는가? 이것은 교복을 입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 특히 여고생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보면 분명해진다. 획일화를 강요하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자신이 입는 교복에 깨알 같은 변형을 주면서 자신의 단독성을 표출한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교복 양식이 계속 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것이 시의 원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본문 152쪽

 

 

개인은 시대에 잡아 먹힌지 오래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슷한 방향으로 비슷하게 수긍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잡음 없고, 피곤하지 않게 사는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한 '개인'을 '모두'에 집어 넣는다. 개인은 '우리'가 되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우리' 속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나혼자 튀는 것, 그것은 언제나 미움을 받아왔다. 튀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하지만, 생각해보면 튀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몸부림 치는 이들이었다. 튀고 싶어서가 아니라, 똑같은 것이 싫어서, 비슷한 삶을 거부하기 위한 반항이었다. 그것은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행위였다. 이제야 안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가 '단독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지만, '단독적인 존재'를 향한 야유는 생각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남 생각이 내 생각인 것처럼 덧칠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생각대로 살면서도 내 생각대로 산다는 착각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다. 생각해보면, '단독적인 존재'를 유지하고 산다는 것은 조금 더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깨어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신의 단독성을 표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 몸부림 속에서 나오는 것들은 김수영의 '시'였고, 김수영의 '글'이었다.

 

 

김수영은 시인만큼은 모든 사람이 시인일 수 있는 사회를 꿈꾸어 왔다. 그래서, 동시대의 시인들이 현실의 낡음은 자각하지 않고 남의 제스처를 흉내내 시만 새롭게 쓰려는 모습을 보며 절망했다. 억압된 시대에 자신만의 제스처로 단독적인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시를 써내려고만 했으니, 그의 고민은 컸을 것이다. 설움도 없고, 자신만의 제스처도 없는 시인들에게 "뒤떨어진 현실에서 뒤떨어지지 않은 것 같은 시를 위조해 내놓"고 있다고 일갈할 수 있었던 것은 시인들의 태도에 대한 강한 분노였다. 온몸을 밀어내며, 온몸으로 살아내며 쓰는 그에게는, 시대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시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슬펐을지.

시대는 흐르고 있었다. 혁명인 듯 보였지만, 혁명이 아니었고, 권력을 깨부순 듯 보였지만 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있는 대중을 속이고, 결국 다른 권력이 모습만 바꾼 채 지배한다. 4.19혁명을 온몸으로 경험한 그는 실패를 인정했지만, 또 다른 혁명을 꿈꿨다. 완전한 혁명은 모든 사람이 혁명가가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것. 그는 혁명의 좌절을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자유를 꿈꿨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재와 억압에 대한 분노로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할지라도, 그들 내면은 이미 권위주의로 훈육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 가난한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권력이 없던 사람이 소망하던 권력을 얻으면 권력이 없는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로 이 점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선(善)과 정의(正義)의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피해의식 탓에 그들은 언제든지 억압받는 자로 변신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예는 주인이 되기를 소망할 뿐, '주인과 노예'라는 억압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의 왕조를 붕괴시킨 혁명이 항상 화장을 새롭게 고친 또 다른 왕조로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억압으로부터 인간, 혹은 자유를 회복하고자 한 혁명의 결말치고는 아이러니하다. - 본문 346쪽

 

 

온몸이 더러워지는 진창에 빠져, 나를 알아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고 하여도, 끝까지 나아가겠다는 시인의 신념과 의지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유 의지와 살아있음을 이야기 했고, 그 어떤 것도 그를 막아설 수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억압과 독재 위에 살고 있다. 아무리 자유로워졌다고 하여도, 정신은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어딘가를 서성이며 헤매이고 있다. 권력에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시간들은 자유의지를 희미하게 했고, 오로지 힘이 나의 존재를 구원해줄 것이라 믿고 살아 왔다. 그것은 '나 자신', '나의 온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던가? 그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김수영은 현재의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우리가 혁명을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쳇바퀴 돌 듯 계속 회전만 하기 때문이리라.

 

 

그의 시는 정신이다. 이루어내야할 정신이다. 삶이다.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혁명가가 되는 세상을 바라는 꿈이다. 모두가 시인이 되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희망이다. 자각이다. 일깨움이다. 서러움이자, 고통이다. 뼈아픈 일침이다. 진실이다.

외면하고 싶은 것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 그것이 시작일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의 시가 더욱 소중하다. 모두가 외면했던 진실들과 당당히 마주하며, 거대한 시대와 맞선 그. 그리고 그를 다시 한번 읽게 해준 강신주.

거대한 도끼가 되어 시대를 내리찍은 그의 시. 그의 시와 그의 마음, 그의 모든 것이 이 시대를 나아가는 열쇠가 되길 바란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푸른 하늘을>(1960. 6. 15)

 

 

 

 

시인을 생각하다

이 세상의 시인들은, 온몸을 밀어내 시를 쓰는 시인들은, 시인이었고, 시인인, 시인일 것인 시인들은 이 세상을 참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속적이나 벗어날 수 없는 자신들의 공간에 갇혀, 그 순수한 마음을 감추어 보려고 술을 마시고, 어둠을 벗삼고 세상과 단절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눈을 뜨기만 해도 괴로운 세상 속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는 걸 알기에, 온 몸을 밀어내 혼자 시를 쓰고 있으면서도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시를 쓰지 않는 시인도 시를 쓰는 시인도 어딘가에서 고통에 몸부림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리다. 시인의 시는, 시 속의 시인은, 시 밖의 시인은 항상 진실과 마주하며 고통을 걷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을 아껴야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7-2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돈을 쓰는 걸까? 돈에 의해 쓰임 당하는 걸까?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살 수 있다. 세상에 돈 있으면 안 되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다. 상품을 넘어, 권력, 지위, 감정마저 사고파는 세상이 되었으니 사람들의 마음은 차가워져 간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뭐가 있을까?", "공기, 잔디, 산, 새....." 아이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많은 것들이 대부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허무해져 버렸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일수록 돈에 묻혀버린 것들이 많다. 

 

세상은 돈에 의해 발전한다. 그리고 돈 때문에 발전한다. 돈을 떠나선 구닥다리 삶만 있을 뿐이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도시에서 적응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돈은 소비되고 있고, 집 밖을 나가는 순간에 시작되는 모든 행동에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황폐해져가고, 이기적이 되고, 은둔생활을 하게 되는 것도 대부분 돈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 풍요로워진 대신, 따뜻함과 아늑함을 잃어간다.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돈의 유혹이 달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나온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도 돈에 의해 거래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후, 충격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예측이 가능하지 못한 것,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 등은 물론, 윤리적으로 그래서는 안 될 것, 도덕적으로 거래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이미 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미 신념이나 결정권마저 돈으로 거래되고 있으니, 이제 돈은 수단과 목적을 넘어 그 자체로 주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례들은 미국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시기만 조금 다를 뿐이지, 우리에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아마도 형태만 다를 뿐 어디선가 이런 사례들을 롤모델 삼아 적극 활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돈으로 사고 팔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존재한다.

 

 

돈의 잔인함, 그 안에서 조종당하는 인간

 

경제학을 인센티브의 학문으로 생각하는 것은 시장의 영향력을 일상생활까지 확대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생각은 경제학자를 행동주의자로 묘사한다. 1970년대에 게리 베커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했던 '그림자 가격'은 실질적이지 않고 암시적이었다. 그림자 가격은 경제학자들이 상상하거나 가정하거나 추론하는 은유적인 가격이었다. 하지만 인센티브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가 고안하고 만들어내고세상에 부여한 제도다. 인센티브는 사람들이 체중을 감량하거나 더욱 열심히 일하거나 환경오염을 자제하는 데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 본문 125쪽

 

흔히 인센티브는 성과급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가 회사 이익이나 발전에 성과를 냈을 때, 그에 따른 보상으로 주어지는 성과급. 격려나 포상의 개념인 인센티브는 이미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버렸다. 이민을 허용하며 받는 금액이라든가, 오염권을 사는데 쓰는 금액이라던가, 바다코끼리나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권리를 사는 금액이라던가, 약을 복용하거나 금연, 체중 감량을 독려하는 건강유지금이라던가.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다이어트 워>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며, 체중 감량의 목적을 미션에 맞게 잘 이루어내면 거액의 상금을 주며 축하해 준다. 다이어트라는 쇼를 보여준 대가다.

 

사실 '인센티브', 즉 대가를 지불한다 라는 말로 포장되었을 뿐, 과연 '인센티브' 자체가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마약 중독자에게 불임시술을 장려하며 돈을 준다는 게 옳은 일일까?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다는 것 뿐, 출산의 권리도 태어날 권리도 고려하지 않았다. 불임 수술을 한 것에 따른 성과급이란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이 지구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지구를 오염시키고 파괴할 권리를 갖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 권리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지고 만다. 지구의 환경이 돈만 지불했다고, 회복되고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지구는 깨끗해지지도 복귀되지도 않는다.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돈'으로 덜려는 마음, 그것을 받아들여야 옳은 것일까?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을 보면, 돈이면 안 될 게 없다. 1박에 82달러면 교도소 감방을 업그레이드해서 즐길 수 있고, 러시아워에는 8달러를 받고 나 홀로 운전자가 카풀차로 이용하도록 허용한다. 인도인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는 6250달러면 충분하고 어떤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다. 미국으로 이민하는 권리는 50만 달러에 살 수 있고, 멸종 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는 15만 달러만 주면 사냥할 수 있다. 1500달러에서 2만 5천 달러까지 연회비를 지불하면 의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받고 원할 때 진료 받을 수 있다. 1톤에 13유로를 지불하면 탄소배출권을 살 수 있고, 자격미달이어도 거액의 금액만 기부하면 명문대 입학도 가능하다.

제약회사의 약물 안전성 실험대상이 되면 7500달러를 받을 수 있고, 민간 군사기업에 고용되어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가하면 매달 250달러에서 매일 1천 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 의회 공청회를 참과하려는 로비스트를 대신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새 줄을 서고 좌석을 확보하면 시간당 15~20달러가 지급된다. 학력이 부진한 댈러스 소재 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이 책을 읽으면 권당 2달러가 지급되고, 비만인 사람이 4개월 안에 체중 6킬로그램을 감량하면 378달러를 받을 수 있다. 아프거나 나이 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보험 증권을 사서, 피보험자가 살아있는 동안 보험료를 불입하고 당사자가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피보험자가 일찍 죽을수록 투자자의 수익은 올라간다.

 

돈의 활용도가 놀라울 정도다. 어떠한 권리도, 어떠한 서비스도, 어떠한 의무도 돈만 있으면 해결된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망설일 필요도 없다. 돈이 있기 때문에, 돈을 벌고 싶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돈으로 교환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이 윈윈하는 것이다. 철저한 수요와 공급 형태다. 그 안에 윤리나 도덕적 가치는 사라진지 오래. 그것은 돈과 교환되었다. 삶과 죽음마저 거래되는 시장,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돈을 버는 세상. 죽음마저 거래된다면 돈의 한계는 과연 있는 것일까?

 

청소부 보험을 둘러싸고 제기될 수 있는 도덕적 반박의 근거에는 동의의 부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원이 이런 제도에 동의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못마땅한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정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직원에 대한 회사의 태도다. 청소부 보험은 직원이 살아 있는 것보다 죽었을 때 더욱 가치가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직원을 사물화한다. 즉 회사는 직원의 가치를 직원의 업무에서 찾지 않고 직원을 상품선물(商品物, 일반 상품을 매매 대상으로 하는 선물 계약-옮긴이)로 다루게 된다. 기업 소유의 생명보험이 생명보험의 목적을 왜곡한다는 반박도 있다. 한때 유족에게 안전망 역할을 했던 생명 보험이 지금은 기업을 위한 세금혜택 정책의 일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세금 체계가 왜 재화와 용역의 생산보다는 직원의 사망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회사를 부추기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 본문 189쪽

 

직원의 죽음도 돈으로 환산하는 회사.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면서,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일까? 거대 기업 또한 인간이 만들고 세운 회사이거늘, 직원을 회사의 부속품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면 기업이 원하는 것은 돈 그 이상 이하도 아닐까? 삶과 죽음마저 시장이 되어야 하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돈이 결국 인간을 잠식하며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 '돈'의 잔인함 앞에서 가치를 논한다는 게 아이러니해지고 있다.

 

결국 인간의 몫

 

마이클 센델은 해결방법을 말해주지도,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런 사례들과 경제학자들의 견해, 경제 흐름의 추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쪽과 저쪽에 선 견해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한쪽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이미 나마저도 돈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돈으로 해결해도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을 때도 많다. 이 모든 사례는 어쩌면, 극히 극단적이고 일상 속에서 접하기 어려운 사례들이기 때문에 놀라웠고 충격적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돈으로 해결하는 일들은 타인이 보기에는 놀랍거나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만큼, 시장은 다양해졌고 한계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디까지 돈으로 해결되어야 할까? 라는 의문과 걱정이 든다. 인간의 이성과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돈으로 거래되는 많은 것들. 그것들을 제재하지 않고 돈의 흐름과 필요의 흐름에 내맡긴다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 파괴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고, 돈만 있으면 갖지 못할 게 없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만 가고 삶보다는 죽음을 택한다.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수단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개인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식상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마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사고 팔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지구가 파괴되어 사라지기 전에 인간이 파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분명 살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사지 말아야 했던 것들이 있었기에 삶이 소중하고 인간이 가치로웠다고 믿는다. 위기 의식을 느끼고 각성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 그 이유마저도 희미해질지 모른다.

 

'살 수 없는 것들을 셀 수도 없게 된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과연 행복한 일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불편해도 괜찮아>의 뒤를 잇는 <욕망해도 괜찮아>

그는 어떤 욕망을 괜찮다고 말하는 걸까? 괜찮은 욕망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그의 글이 좋은 이유는 쉽다. 어려운 말로 사람 주눅들지 않게 하고, 그냥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

 알기 쉽게 까발린다. 법조계에 몸담으며, 쉽고 자유롭게 까발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언제나 욕망을 억누르는 척 하며, 점잖은 척 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었을 때의 유쾌함과 즐거움, 진지함 만큼 이번 책도 기대된다!

 

 

 

 

 

 

 

더욱 자유로워진 듯한 세상이지만, 더욱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세상임을 느낀다. 진실을 이야기할 땐 더욱 더.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용기있는 자라고 말하는 세상이 왔다. 갖은 협박과 미행, 툭하면 고소, 비난.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자들은 정직하고 진실된 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이 불편하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자들은 극히 소수이지만, 그들이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진실이 퍼져나가는 것만큼 두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현정권이 들어서면서, 진실을 말하는 이들이 피해받기 시작했다. 상식은 사라진지 오래고, '내 말대로 하지!', '까라면 까는 거야.', '무슨 말이 그리 많아'라는 이상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초등학생들도 알법한 상식마저 무시하기 시작했으니, 사람들은 분노의 수위가 넘어선지 오래다. 하지만 저쪽도 강적이다. 굽힘이 없다. 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몰라서 당한다. 그래서 알고 싶다. 법이라는 무서움에 덜덜 떨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비밀들을!

 

 

 

 '멘토'가 화두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본받고 싶어하고, 본받고 싶은 이를 만들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묻는다. '당신의 멘토는 누구입니까?'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멘토에 대해 이야기한다. 광고 카피에서도 멘토가 넘쳐난다. 당신의 소비에 멘토가 되겠다느니, 집안일에 멘토가 되겠다느니. 우리는 왜 이렇게 멘토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책은 누군가의 '멘토'로 떠오르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단다. 왜 그들이 멘토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멘토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멘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멘토들이 궁금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2-06-0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해도 괜찮아, 가 요즘 인기가 많던데..ㅎㅎ 저자의 전작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저로서는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알라딘 인문/사회/과학/예술 서평단. 그렇기에, 조금 더 열정적으로 도전해보려 합니다. ^^

페이퍼가 뜨기 전, 4월 신간을 쭉 둘러보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봤습니다.

 

  1. 점거, 새로운 거버먼트

 

  '고추장'으로 유명한 고병권 님의 신간이 눈에 띕니다. 쉽지만 날카로운 이야기로 속 시원한 이야기를 종종 해주시는 고병권 님이 이번에는 몸으로 뛰어들어 체득한 이야기들을 전하실 모양.

2011년 9월 17일부터 11월 15일까지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났던 '점거(Occupy)'에 직접 참여하고, 관찰한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라고 합니다. 세계 금융자본의 심장부를 점거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쏟아냈을까요? 그들이 그곳을 점거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닥쳐올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이 지배하는 자본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세상을 바꾸는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듣고 싶습니다. 고병권 님이 다녀온 그곳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의 과제를.

 

 

 

 

 2.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다시, 마이클 샌델입니다. '정의'를 이야기했던 그가 이번에는 '시장', '자본'에 관해 이야기 하려나 봅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정부와 기업이 '돈'을 쫓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진정한 삶'이나 '진정한 가치' 따위는 잊어야 합니다. 시장은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만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왜 '돈'은 힘이 셀까요? 때로는 인간의 생명이나 존엄성 따위를 무시하는 '돈'이라는 실체가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인간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돈'의 힘을 믿고, '돈'의 노예가 된 것이죠. 마이클 센델이 말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리고 '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를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사물의 민낯

 

 '나는 누구인가' 태어나서 한 번쯤 해봤음직한 질문입니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 근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책은 '나'에 관해 이야기해 줄 수 없지만, 우리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나 봅니다. 은밀하고, 익숙하고, 맛있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책입니다. 익숙한 물건들을 탐구해보는 것도, 생활 속의 작은 즐거움이 될 것 같네요. 때론 작은 발견으로 놀라운 것들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수많은 사연을 가진 사물의 민낯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연 2012-05-0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번에 파트장이 된 가연입니다. 얼마나 이렇게 댓글 남기며 체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사물의 민낯, 이라는 도서는 저도 리스트에 올린 도서네요.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