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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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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돈을 쓰는 걸까? 돈에 의해 쓰임 당하는 걸까?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살 수 있다. 세상에 돈 있으면 안 되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다. 상품을 넘어, 권력, 지위, 감정마저 사고파는 세상이 되었으니 사람들의 마음은 차가워져 간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뭐가 있을까?", "공기, 잔디, 산, 새....." 아이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많은 것들이 대부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며, 허무해져 버렸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일수록 돈에 묻혀버린 것들이 많다. 

 

세상은 돈에 의해 발전한다. 그리고 돈 때문에 발전한다. 돈을 떠나선 구닥다리 삶만 있을 뿐이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도시에서 적응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돈은 소비되고 있고, 집 밖을 나가는 순간에 시작되는 모든 행동에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황폐해져가고, 이기적이 되고, 은둔생활을 하게 되는 것도 대부분 돈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 풍요로워진 대신, 따뜻함과 아늑함을 잃어간다.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돈의 유혹이 달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나온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도 돈에 의해 거래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후, 충격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예측이 가능하지 못한 것,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 등은 물론, 윤리적으로 그래서는 안 될 것, 도덕적으로 거래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이미 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해도 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미 신념이나 결정권마저 돈으로 거래되고 있으니, 이제 돈은 수단과 목적을 넘어 그 자체로 주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례들은 미국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시기만 조금 다를 뿐이지, 우리에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아마도 형태만 다를 뿐 어디선가 이런 사례들을 롤모델 삼아 적극 활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돈으로 사고 팔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존재한다.

 

 

돈의 잔인함, 그 안에서 조종당하는 인간

 

경제학을 인센티브의 학문으로 생각하는 것은 시장의 영향력을 일상생활까지 확대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생각은 경제학자를 행동주의자로 묘사한다. 1970년대에 게리 베커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했던 '그림자 가격'은 실질적이지 않고 암시적이었다. 그림자 가격은 경제학자들이 상상하거나 가정하거나 추론하는 은유적인 가격이었다. 하지만 인센티브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가 고안하고 만들어내고세상에 부여한 제도다. 인센티브는 사람들이 체중을 감량하거나 더욱 열심히 일하거나 환경오염을 자제하는 데 더욱 분발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 본문 125쪽

 

흔히 인센티브는 성과급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가 회사 이익이나 발전에 성과를 냈을 때, 그에 따른 보상으로 주어지는 성과급. 격려나 포상의 개념인 인센티브는 이미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버렸다. 이민을 허용하며 받는 금액이라든가, 오염권을 사는데 쓰는 금액이라던가, 바다코끼리나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권리를 사는 금액이라던가, 약을 복용하거나 금연, 체중 감량을 독려하는 건강유지금이라던가.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다이어트 워>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며, 체중 감량의 목적을 미션에 맞게 잘 이루어내면 거액의 상금을 주며 축하해 준다. 다이어트라는 쇼를 보여준 대가다.

 

사실 '인센티브', 즉 대가를 지불한다 라는 말로 포장되었을 뿐, 과연 '인센티브' 자체가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마약 중독자에게 불임시술을 장려하며 돈을 준다는 게 옳은 일일까? 마약에 중독된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다는 것 뿐, 출산의 권리도 태어날 권리도 고려하지 않았다. 불임 수술을 한 것에 따른 성과급이란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이 지구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지구를 오염시키고 파괴할 권리를 갖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 권리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지고 만다. 지구의 환경이 돈만 지불했다고, 회복되고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지구는 깨끗해지지도 복귀되지도 않는다.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돈'으로 덜려는 마음, 그것을 받아들여야 옳은 것일까?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을 보면, 돈이면 안 될 게 없다. 1박에 82달러면 교도소 감방을 업그레이드해서 즐길 수 있고, 러시아워에는 8달러를 받고 나 홀로 운전자가 카풀차로 이용하도록 허용한다. 인도인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는 6250달러면 충분하고 어떤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다. 미국으로 이민하는 권리는 50만 달러에 살 수 있고, 멸종 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는 15만 달러만 주면 사냥할 수 있다. 1500달러에서 2만 5천 달러까지 연회비를 지불하면 의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받고 원할 때 진료 받을 수 있다. 1톤에 13유로를 지불하면 탄소배출권을 살 수 있고, 자격미달이어도 거액의 금액만 기부하면 명문대 입학도 가능하다.

제약회사의 약물 안전성 실험대상이 되면 7500달러를 받을 수 있고, 민간 군사기업에 고용되어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가하면 매달 250달러에서 매일 1천 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 의회 공청회를 참과하려는 로비스트를 대신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밤새 줄을 서고 좌석을 확보하면 시간당 15~20달러가 지급된다. 학력이 부진한 댈러스 소재 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이 책을 읽으면 권당 2달러가 지급되고, 비만인 사람이 4개월 안에 체중 6킬로그램을 감량하면 378달러를 받을 수 있다. 아프거나 나이 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보험 증권을 사서, 피보험자가 살아있는 동안 보험료를 불입하고 당사자가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피보험자가 일찍 죽을수록 투자자의 수익은 올라간다.

 

돈의 활용도가 놀라울 정도다. 어떠한 권리도, 어떠한 서비스도, 어떠한 의무도 돈만 있으면 해결된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망설일 필요도 없다. 돈이 있기 때문에, 돈을 벌고 싶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돈으로 교환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이 윈윈하는 것이다. 철저한 수요와 공급 형태다. 그 안에 윤리나 도덕적 가치는 사라진지 오래. 그것은 돈과 교환되었다. 삶과 죽음마저 거래되는 시장,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돈을 버는 세상. 죽음마저 거래된다면 돈의 한계는 과연 있는 것일까?

 

청소부 보험을 둘러싸고 제기될 수 있는 도덕적 반박의 근거에는 동의의 부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원이 이런 제도에 동의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못마땅한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정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직원에 대한 회사의 태도다. 청소부 보험은 직원이 살아 있는 것보다 죽었을 때 더욱 가치가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직원을 사물화한다. 즉 회사는 직원의 가치를 직원의 업무에서 찾지 않고 직원을 상품선물(商品物, 일반 상품을 매매 대상으로 하는 선물 계약-옮긴이)로 다루게 된다. 기업 소유의 생명보험이 생명보험의 목적을 왜곡한다는 반박도 있다. 한때 유족에게 안전망 역할을 했던 생명 보험이 지금은 기업을 위한 세금혜택 정책의 일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세금 체계가 왜 재화와 용역의 생산보다는 직원의 사망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회사를 부추기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 본문 189쪽

 

직원의 죽음도 돈으로 환산하는 회사.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면서,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일까? 거대 기업 또한 인간이 만들고 세운 회사이거늘, 직원을 회사의 부속품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면 기업이 원하는 것은 돈 그 이상 이하도 아닐까? 삶과 죽음마저 시장이 되어야 하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돈이 결국 인간을 잠식하며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 '돈'의 잔인함 앞에서 가치를 논한다는 게 아이러니해지고 있다.

 

결국 인간의 몫

 

마이클 센델은 해결방법을 말해주지도,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런 사례들과 경제학자들의 견해, 경제 흐름의 추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쪽과 저쪽에 선 견해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한쪽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이미 나마저도 돈으로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돈으로 해결해도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을 때도 많다. 이 모든 사례는 어쩌면, 극히 극단적이고 일상 속에서 접하기 어려운 사례들이기 때문에 놀라웠고 충격적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돈으로 해결하는 일들은 타인이 보기에는 놀랍거나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만큼, 시장은 다양해졌고 한계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디까지 돈으로 해결되어야 할까? 라는 의문과 걱정이 든다. 인간의 이성과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돈으로 거래되는 많은 것들. 그것들을 제재하지 않고 돈의 흐름과 필요의 흐름에 내맡긴다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 파괴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고, 돈만 있으면 갖지 못할 게 없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만 가고 삶보다는 죽음을 택한다.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수단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개인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식상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마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사고 팔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지구가 파괴되어 사라지기 전에 인간이 파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분명 살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사지 말아야 했던 것들이 있었기에 삶이 소중하고 인간이 가치로웠다고 믿는다. 위기 의식을 느끼고 각성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 그 이유마저도 희미해질지 모른다.

 

'살 수 없는 것들을 셀 수도 없게 된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과연 행복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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