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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기 인문/사회/과학/예술 신간 평가단으로 활동하며, 12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도 있었고, 읽기 힘든 책도 있었고, 가벼운 책도 있었습니다. 취향에 맞는 책은 빨리 읽혔지만, 낯선 책들은 읽는 게 힘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네요~

 

 

- 11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베스트

 

단독성을 갖고 단독적인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단독적인 존재로서 시를 쓰는 김수영을 만난다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관습과 사회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저항했던 시인 김수영 그는 저에게 숙제를 던져 주었고, 세상에 휩쓸려 사는 삶을 반성하게 했습니다. 매순간 생각과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세상은 나를 갉아 먹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공포마저 느꼈네요.  

온몸으로 썼던 시, 그의 시들. 거대한 시대에 맞선 그의 시들 앞에서 경건해졌고, 그의 삶 앞에서 다시 한 번 경건해졌습니다.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었던 책이기에 베스트로 선정해봅니다.

 

 

 

언제나 그렇듯 노동은 아픕니다. 노동하는 자는 자유롭지 못하며, 인정받지 못하고, 삶을 삶답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생존을 위해 싸우며, 삶과 사투하는 삶을 직접 체험한 작가가 경의로울 따릅입니다. 그리고,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 고통스러웠고 아팠습니다. 내일을 걱정하며 노동을 하는 그들의 삶이 변화되길 바라고, 변화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랍니다.

 

 

 

 

 

 

 

 

유동하는 근대 세계의 위기와 불안, 공포, 정신의 피폐, 외로움.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곁에 있는 것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고독을 잃어버린 만큼, 더 외로워진 시대입니다. 껍데기로 사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불안한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를 자각하지 않는다면, 그 시대에 묻혀버리고 말 우리입니다. 파괴된 삶을 회복시키고, 치유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겠죠. 결국, 고독은 우리 스스로 버렸으니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편지 한 통 한 통이 마음에 박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기나 한가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에서 우린 살 수 있는 게 많아졌지만, 가치로운 것들은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을 보며 절실히 느끼고 있네요. 돈은 수단일 뿐인데, 이미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돈의 잔인함, 그 앞에서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존재의 가치를 찾으려면, 돈에 대해 재정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황폐해져버린 많은 것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돈보다 인간에게 눈을 돌려야할 때입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들을 다시 뒤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 내맘대로 베스트 중에 단 한권만을 고른다면?

 

김수영을 위하여를 선정하겠습니다~

한 인물의 삶과 글을 따라가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네요.

억압의 시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을, 그를 통해 확인하고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자유 의지로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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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사실, 사람에게 와닿는 진정한 공포는 음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쟁, 기아, 살인, 질병 등 세상에는 수많은 공포가 있지만, 풍요로운 현대에 사는 사람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공포는 음식이다.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음식들은 가장 가깝고 현실적이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 몸에 큰 해를 끼친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외면해버린다. 위의 공포들은 내게 닥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희박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음식은 오늘 당장 내가 생존을 위해 해결해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때떄로 음식 파동이 일어나곤 한다. 쓰레기 만두 파동, 불량 단문지 파동, 심지어 미국 소고기 파동까지. 어느날 갑자기 청천벽력처럼 찾아온 식재료들의 불량함이 들통나면서 사람들은 얼마나 경악했던가. 불량하지 않았던 만두, 단무지까지도 불량하게 취급받고 한동안 외면받아야 했다. 조류독감이 유행하며, 닭과 계란을 생산하던 농가가 풀썩 주저 앉기도 했으며, 불량 라면 사건으로 암묵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자각없이 섭취한 음식들이 내게 배신을 때렸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곤 한다. 실제로, 우리는 웰빙을 추구하고 나서 나쁜 성분에 극도로 민감해졌으며, 더 비싸고 까다로워도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원초적인 반응에 기업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쁜 성분을 빼고, 좋은 성분을 넣었다고 광고해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하는 말 뿐이다. 사실, 누구도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 있을 뿐. 용감한 전문가가 폭로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자각하지 못한채로 먹고 먹고 먹는다.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에는 이러한 공포의 뒷면에 대해 말한다. 세균, 쇠고기, 우유, 유산균, 비타민, 지방 등. 어떻게 사람들을 공포에 파뜨리거나, 좋은 것이라고 믿게 했는지. 소비자의 인식은 연구하는 과학자의 말이나 기업의 광고에 이리저리 흔들리기 마련.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정보에 의존한채 음식은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경이로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균을 옮기는 주범이 파리라고 생각하며, 파리를 잡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건강식품이었던 우유가 아이를 죽이는 살인범으로 지목되다 극적으로 회생하기도 하며, 지금까지 광고 마케팅으로 쓰이는 메치니코프의 요구르트는 불로장생의 명약이었다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부활한다. 우리에게도 뜨거운 감자였던 쇠고기의 유해함은 정치적인 이해와 맞물려 은폐되고 조작되기도 한다. 비타민 열풍이 불고, 때아닌 티아민 논란으로 강화 밀가루가 등장하며, 통밀보다는 하얀 밀가루가 좋다는 선전은 어이없는 이유로 이루어진다. 가공식품이 인간의 몸에 해를 끼친다는 이론은 장수 마을 훈자로 뻗어나가 자연식품에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것도 그 마을의 진실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따라 움직인다.

 

음식에 대한 두려움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두려움 뒤에 숨겨진 이해관계다. 거대기업들은 환경이 파괴되든,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인체에 유해한 화학약품 등이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유해 식품들을 생산해왔다. 지나친 정제와 가공은 음식의 수명은 늘리나, 인간의 건강한 수명은 줄이고 있다. 하지만, 거대 기업과 유착해 있는 정치는 이 위험성에 대해 스스럼없이 방관한다.

 

음식물들의 유해성이 공표될 때마다, 그것을 막으려는 거대 기업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안다면 사실 우리의 소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뒷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고, 어떤 것을 위해 노력한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만큼 들었는데, 음식에 대한 두려움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배후와 실체는 이제 지겹게 들었으니,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 것이냐고 묻고 싶다. 정확한 대안이 아니라도, 읽는 이를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작은 팁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이 잘못된 상식인지, 옳은 상식인지에 대한 구별이 불분명하다. 그냥 '음식에 대한 공포의 역사' 그 자체에 대한 책일 뿐.

 

자료는 넘쳐 기술되었으나, 결론을 찾을 수 없는 이 씁쓸한 뒷맛.

분명, 이러한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거대 기업들은 아무렇지 않게 유해한 화학 성분을 첨가해 식재료들을 만들어내고 가공할 것이며, 지금도 콜레스테롤과 지방에 대한 공포는 산재해있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의견도 있었으면 좋았을 아쉬운 책이다. 수많은 정보 뒤에는 분노와 짜증만이 남았다. 나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길 바라는 독자의 마음도 조금 헤아려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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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함께 있지만, 외로움을 느낀다. 대화를 나누지만, 진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기쁨을 이야기해도 함께 기뻐하기 힘들다. 슬픔을 이야기해도 누구의 슬픔인지 알려하지 않는다. 그게, 지금 사회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정작 진짜 가진 것이 없는 사회. 그래서 함께 있어도, 포근하고 친밀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혼자 있기에는 사회에서 밀려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다.

 

"때로는 '혼자' 있고 싶다."라고 말하면, 이상한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꼭 별나라나 외계에서 온 사람인듯, 때로는 혼자 책을 읽고 싶고, 때로는 혼자 갤러리에 가서 전시 관람을 하고 싶고, 때로는 혼자 여행을 떠나고, 카페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기도 하고, 길거리를 쏘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시간을 아끼고 싶을 때가 있다. 이해받지 않아도, 이상하게 바라봐도, 그게 전혀 유쾌하지만 않은 것을 알아도 그런 시간들이 소중할 때가 있다. 이러한 시간이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하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와 말하지 않을 권리, 눈을 감거나 물을 먹는 순간도 타인에 대한 의식 따위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가 때로는 필요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거창한 말을 빼고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수백수천가지다. 그것이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고독'의 시간이라 하겠다. 내가 박탈당하고 싶지 않은 시간, 때때로 찾고 싶은 시간, 강요받고 싶지 않은 시간 말이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 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본문 31쪽

내가 공개하고 싶은 만큼 공개할 수 있고, 전하고 싶은 만큼 전할 수 있다. 남들이 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뒤떨어졌다는 마음이 들며, 타인의 생각이 내 생각인 것처럼 비판없이 흡수하고 만다. 누군가가 먼저 달려가면, 이기지 못해 안달을 내며, 누군가가 돌아서면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안녕'하고 만다. 언제나 누군가와 접속되어야 하며,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 하는 마음. 사실, 네트워크의 작동이 충분한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 것도 아니며, 외로움을 위로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비판없이 시대의 조류에 흘러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판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그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입밖에 내지 않았던 말들로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미 온라인에 익숙해진 우리는 쉴 사이 없이 '접속'한다. 스마트폰의 활성화로 어디서든 언제든 누군가에 접속하는 것은 쉬워졌고, 누군가의 소식을, 의견을 듣는 것에 익숙해졌고, 내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말들과 의견 속에서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내뿜기도 한다. 생각보다는 말이 먼저 나가며, 그 말을 맞받아치는 행위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에서 감정이 파괴된다. 프라이버시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공개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를 알리기도 위함이지만, 집단에서 이탈해 외로워질까봐 두려워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다.

 

지지 않으려 하며, 소유하길 좋아하고, 그것이 옳지 않아도 나빠도 모두가 그렇게 산다면 나도 그렇게 살기를 허락하는 시대. 이런 시대에서 문화, 관계, 성향마저도 기형적으로 드러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넘치듯 흘러나온 풍요로움과 함께 우리가 얻게된 것은 풍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풍요 속에서 나타나는 정신적 빈곤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고, 그 현상 자체를 서로 부추기고 있는 이상한 형태를 띄고 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지 오래며, 중요하지 않아보이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되는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10대들은 필요 이상의 선택과 기회의 과잉에 노출되어 있으며, 신용카드로부터 자유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정신마저도 파산하고 만다. 아이는 이미 아이의 감성을 잃어버린지 오래이며,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성형 중독에 이르게 되고,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유행 속에서 자신의 개성 따위는 던져버렸다. 소비지향적 사회는 쇼핑을 독려하며, 공포와 불안이 질병을 권하며, 이런 질병 속에서도 건강을 찾는 것은 부에 따라 불평등하게 이루어진다. 고독하지 않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찾아왔다. 해결하려해도 끝이 없는 되물림과 도돌이표. 한쪽에서는 무너져 감을 알면서도, 한쪽에서는 박수치며 환영한다. 불평등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이익과 특권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공포, 욕망, 획일화, 불평등. 방심하고 있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스며들어 누군가의 삶을 죄의식없이 파괴한다.

 

그렇다면, 왜 자각하지 않는가? 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가? 풍요가 가득찬 세상에서 우리는 왜 점점 외로워지고 있는가? 사회는 점점 나를 밀어내고 있는데,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는데도 왜 받아주지 않는가? 사회가 권하는 것들은 왜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 왜 비판하지 않는가? 왜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가?

 

언제나 위협당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 해결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시대에 사는 것은 이러한 의문마저도 지워버렸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도 또 다른 강함을 찾게 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우리에게 전하는 편지 곳곳에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따뜻한 비판 뒤에 인간에 대한 응원이 담겨 있다. 점점 파괴되어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인간이지만, 그 사이에서 다시 대안을 찾아가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도 있지만 분명 굴욕적인 것들도 있다. 나는 그 사명이 어떤 어려움을 안겨준다 할지라도, 결코 그처럼 굴욕적인 것들이든 아름다움이든 간에 둘 중 그 어느 하나에도 불성실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비법들을 전달하면서 철저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많은 작가들은 결국 그처럼 확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려는 저 신앙고백이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도발에 불과하다고 매도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카뮈는 조금의 그럴듯한 의심도 없이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바로 그와 같은 두 가지 임무들 중에서 언뜻 보기에 다른 한 임무를 더 많이 달성했다는 이유 때문에, 어느 '한쪽 편을 들어서' 다른 어느 한쪽을 희생하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양쪽 임무 모두를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내팽개쳐버리는 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카뮈는 자신의 표현대로, "비참한 고통과 태양 사이의 중간 쯤 어딘가에" 자기 자신을 위치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참한 고통이 나에게 '태양 아래의 모든 것들은 보기 좋았다'라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게 했다면, 그 태양은 나에게 '역사가 모든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던" 셈이라고. 결국 카뮈는 자신이 "인간의 역사에 관해서는 비관적이지만, 인간에 관해서는 낙관적"이라고 고백했다. 왜냐하면 그가 주장했던 대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작 자신이 바로 그러한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를 거부하는 유일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란 카뮈가 지적했던 것처럼, "단지 더 나아질 수 있는 하나의 기회에 지나지 않을뿐"이며, 그렇기에 "그처럼 자유롭지 못한 어떤 세계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지 당신이 실존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반항의 행위가 되도록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 본문 386쪽 

유동하는 근대 세계의 위기와 불안, 공포, 정신의 피폐, 외로움. 많은 것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곁에 있는 것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시대. 이 시대는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바꿔나가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비되어버린 의식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돌리지 않고, 연대하고 합심하여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이 모든 현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결함이며, 그 결함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인간이기에. 인간의 삶은 '획득'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며, 아주 특별한 희망'이 되어야 한다. 잃어버린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던지는 그의 일갈에 눈을 떠야 겠다. 이미 행복의 의미조차 잊고 사는 인간의 어리석음.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수많은 네트워크에서 헤엄치며 떠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성찰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껍데기로 사는 시간을 버려야, 진정한 '나'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음을. 그것을 깨달아야 좀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임을. 이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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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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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공산주의'는 막연한 공포였다. 우리의 교육은 '공산주의'를 알고 싶어하는 것 자체를 금지했고, 큰일이 나는 것처럼 굴었다. 그것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두 개의 사상이 존재하는 독특하면서 슬픈 현실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무조건 '적'으로 간주되던 공산주의가 '적'이 아니라 하나의 '학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대학에 입학해서 깨달았다. 맑스에 열광하던 선배들이 꽤 많았고, 무슨 이야기인지 뚜렷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한 때는 '적'으로 간주되었던 공산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공산주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 태동부터, 지난한 시대를 거쳐 소멸하기 까지의 정황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역사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노동자가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나, 그 과정 속에서 혁명을 이루어내려 했던 사람들은 종국에 독재자로 전락했다. 모두가 평등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권력이 강요되었다.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게 공산주의의 모토이지만, 결국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피를 흘렸다. 자신의 이념과 맞지 않으면 숙청되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의식 속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게 된다.

 

물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한 이념의 실현은 결국, 어떤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변질되기 마련이다.

누구나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갖는 평등주의를 실현하려 했지만, 사실 지도자들 조차도 그 평등주의에 맞도록 실천하고 살아온 것인지는 의문이다. 공산주의는 모두에게 희망적인 이념이었을지는 모르나, 결국엔 '괴물'로 변해 제 몸을 삼켜버렸다.

 

요즘에는 자본주의에 지친 이들이 모여 '코뮌'을 만들고 있다. 경쟁으로 피 터지게 싸우며,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함께 일하고, 함께 살고자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이 코뮌들의 기원은 '공산주의'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조금 더 건강하며, 작지만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공산주의가 이미 무너져 버린 세계는 분명하나, 그것의 씨앗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를 생각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여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 둘 태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은 '협력'이다. '협력'하지 못하는 세계는 무너져 내린다. 지탱할 힘을 갖지 못하면, 무너져 버리는 게 진실.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다 함께 잘사는 방법을 택하고, 유지하는 것도 뼈아픈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원-실험-도약-확산-변형-종언으로 끝난 이 책은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세세하다. 사실 공산주의에 대한 자세한 이념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황들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기에, 책을 따라가다보면 그 흐름을 놓치기 쉽다. 관심있고, 필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부분만 발췌해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제는 학문이 되어버린 하나의 이념. 그 역사적 사실 앞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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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허연이 책을 이야기한다. 고전 탐닉 1을 읽고 느꼈던 그의 매력, 분명 2권에서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읽지 않은 고전 마저도 읽고 싶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는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딱 그가 쓴 시만큼 매력적이다.

 

 

 

 

 

 

 

 

 

 

 미디어 안에서 진중권은 성질이 더럽다. 욱하고, 비아냥 거리고, 짜증을 심하게 낸다. 강연을 하는 진중권은 정말 진지하다.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책을 쓰는 진중권은 무겁다. 미디어 안에서의 진중권이 보이질 않는다. 각양각색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의 신간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 제발, 지구를 생각하고 살았으면. 환경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우리가 살아갈, 내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았으면. 작은 움직임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알았으면~

 

 

 

 

 

 

 

 

 

 

 

 

 전쟁이 없어지는 세계를 꿈꾼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삶의 터전을 빼앗고, 정신마저 빼앗는 전쟁. 이러한 전쟁 안에서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인간들, 나라들. 인간이 모두 사라지기 전까지 전쟁도 사라지지 못할 테지. 전쟁 뒤에서 셈을 하고 있는 그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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