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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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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이 책은 내게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내 남동생. 남동생은 천안함 생존자다. 5월 1일 제대를 하고, 한 달 조금 넘게 지났다. 언제나 밝은 녀석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제대를 하고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받으며,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요즘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주기가 짧아져 녀석도 난감한 듯 보였다. 

제대 후 정신과 치료를 권유했는데,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한 달에 한 번의 치료는 동생에게 별 효과를 보이지 못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말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조금만 큰 소리가 오가도(그녀석에게 그런 것이 아닌데도) 이유 모를 화를 낸다. 그 상황이 지나가고 나면 모든 게 자기 탓인 거 같다며 죄책감이 든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울증의 감정, 행동양상들이 동생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동생에게 권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과 분노 

우울증은 분노의 또 다른 면이다. 미라 체이브존스는 자신의 책 <우울증에 대처하기>에서 우울증을 '얼어붙은 분노(frozen rage)'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울증과 분노의 연관성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대화를 해본 우울한 사람들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사람은 화를 표출할 만큼의 안전함을 느끼지 못할 때 화를 무의식 속으로 짓누르게 된다. 그때 우리의 몸은 화를 속으로 삭이기 위해 애를 쓰는데, 그게 실패하면 우울증(또는 위궤양이나 심장병)이 야기된다. - 69p

 
   

 동생은 자신의 안에 분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왜 그 사건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죄도 없이 동료들이 죽어야 했는지. 동료 가족들의 아픔을 보면서, 상처받은 자신을 보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분노를 아무렇지 않게 느끼다가도 표출하곤 한다. 그 안에 분노가, 상처가 되어 충동적인 행동이 밖으로 나타날 때가 있나 보다.  

   
 

 우리가 망각하는 두 가지 고통이 있다. 하나는 정도가 너무 약해 우리를 전혀 괴롭히지 않는 고통이고, 두 번째는 기억하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이다.  - 루이스 스머즈  
- 91p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은 대체로 두 번째 고통이다. 기억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고통이 불쑥 불쑥 찾아올 때, 감정의 굴곡은 커진다. 마음 속에 짓눌리고 숨겨진 감정들이 어떤 불씨때문에 되살아날 때 화를 내거나, 숨거나, 절망하게 된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좀먹는 정신과 즐거움, 행복들이 안타까워 보인다.  

   
 

 우울증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 실은 우울증 저편에 숨어 있는 존재가 더 끔찍했다. 숨어 있는 존재들을 나는 '아주 의미심장한 것들'이라고 부른다. 각자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우울증 극복에 있어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 101p

 
   

우을증을 극복하는 것은 쉬워보이지 않는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자신이 걸려보지 않았기에 굴 속으로 파고드는, 불쑥불쑥 화를 내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울증이라고 공개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이해받을 수 있겠지만, 공개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거리는 사람의 겨우 더욱 외롭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우울증이 자살로 가기 쉬운 것 같다.  

   
 

 화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우울증을 탈출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가슴 아프고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우울증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성적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죄책감을 넘어서서 "신이시여! 나에게 이렇게 굉장한 느낌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194p

 
   


솔직함, 그것이 우울증 탈출의 첫 번째 단계인 것 같다. 동생이 말한다. "자신이 죄를 지은 거 같고, 그래서 한없이 작아져." 그래서 난 그랬다. "니가 죄를 지은 게 없다. 죄를 지은 게 있다면, 이러한 상황을 만든 나쁜 정치인 새끼들이다. 관계의 악화가 그런 사건으로 일어난 것이다. 살아남은 자에게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그래 니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 동생은 절망할 것이다. 자신의 늪으로 더 빠져들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이에게 용기를 주는 것. 우울증을 극복하도록 돕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감정을 조절하고, 기분을 바꿀 수 있는 방법. 무엇인가를 배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 그런 것들로 조금씩 극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 안으로 파고들지만 않는다면 감정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 안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는 방법. 어쩌면 이 책은 그것을 위한 작은 답을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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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사마천 지음, 이수광 엮음, 이도헌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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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의 지도자는 백성의 마음에 따라 다스리고, 차선의 지도자는 이익을 미끼로 백성을 다스리고, 보통의 지도자는 도덕으로 백성을 설교하여 다스리고, 최악의 지도자는 형벌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다스리고, 최하의 지도자는 백성과 다투면서 다스린다. 

<사기열전> - 사마천  25p

 
   

 이책의 초반에 이런 말이 나온다. 무릎을 탁 쳤다. 하하, 이렇게 통쾌하고 정확한 말이 어디있느뇨. 그 후, 지방 선거가 있었고 우리의 지도자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났다. 우리의 지도자는 최하도 안 된다는 게 서글펐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이 그만큼 느끼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심했다.  

그렇게 유쾌하게 펴든 이책에는 각 주제별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람, 열정, 신념, 타인의 마음, 인생의 원칙, 자신감 별로 나누어 인물과 사건을 묶었다. 이책은 20대를 타겟으로 <사기>에는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들이 있으니 읽고 교훈을 얻으라고 말하지만, 사실 <사기>는 모든 이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역사적 사건이나 과거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준다. 그리고, 분명 어떤 원인 때문에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이기에, 생각보다 잔인한 이야기도 있고, 전쟁이나 정치에 한정되어 있어 지루하거나 반복된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은 분명 의미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죽음을 택하는 전제의 노모,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최저, 대쪽같은 법관 장탕, 나라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을 고수한 위앙, 하나에 꽂혀 죽을 때까지 그 원을 풀고 싶었던 오자서, 잘못을 칭송으로 둔갑시킨 동방삭 등 한 명 한 명의 인물들을 뜯어보면, 작고 큰 교훈들이 숨겨져 있다.  

20대가 읽고, 작은 깨달음을 얻는 것도 좋겠지만, 권력을 어리석게 휘두르는 못난 정치인들도 좀 봤으면 싶다. 하긴, 이 책을 보면서 다른 곳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 사람을 죽인다라던가, 모략으로 이간질한다던가. 사람은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하니 말이다.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또, 권력을 갖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란다. 하지만,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어리석은 상태로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자 우리, 사기를 읽자. 그리고 이 판국을 뒤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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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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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 봤지만, 그림과 음악이 크로스된 책은 처음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림과 음악이라기 보다는 화가와 음악가의 크로스지만 말이다. 이 책은 에세이와 예술의 이야기가 혼합된 책이다. 초반에는 사랑에 대한 감성으로 가득찬 서두 때문에, 정보와 감정의 혼란이 오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생이 작가의 감정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이 책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예술가, 그 주변 사람, 상황 등의 서술로 이끌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클래식은 그림보다 생소하기 때문에, 낯설은 이야기가 많았다. 작가는 음악을 전공했고, 그림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화가와 음악가를 비교, 대조하여 설명했고, 사랑, 창조, 자유, 일상이라는 주제를 놓고 예술가들을 분류했다. 사랑을 사랑하는 작가의 성격이 잘 드러날 정도로 각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소재로 등장한다. 누가 누구와 사랑을 했으며, 그 사랑 때문에 어떤 작품이 탄생된 건지 확인할 수 있다.  

<1장, 괜찮아, 슬픔은 곧 지나갈거야>에서는 좀 과도하다 싶은 작가의 감정 표현 때문에 예술가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2장을 지나 3장, 4장에 도달하면 그 과함이 누그러들어 예술가들에게 잘 집중할 수 있다. 뒷 장으로 갈수록 작가는 어떤 아포리즘을 전하려고 하고 있고, 그 아포리즘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어 보이긴 한다. 어쩌면, 작가는 이 책을 쓸 때 사회의 통념에 대한 거부를 예술가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림이나 음악에 관한 책을 많이 접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림과 음악에 대해 잘 모르고, 이제 알아보고 싶다는 초보한테는 쉽게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술 에세이라고 해두자. 너무도 너무도 여성적인 예술 에세이. 감정이 많이 삽입된 예술에 관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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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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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다는 <차이>에서 차이와 힘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다. 니체를 참조하면서 데리다는 차이를 "제각기 노는 활동적인 불협화음의 힘에게 부여해야 하는 이름"이라고 정의한다. 이 힘은 바로 곳곳에서 "문화, 철학, 과학을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문법의 체계"에 대항하는 범주다. -229p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아닐까? 차이의 연결, 그 연결의 힘을 가진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일 것이다. 폭넓은 사고와 사유를 하며, 머릿속에 다른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으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 어렵지만, 가치있는 그게 인문학이 아닐까?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보면, 철학자들에게 성큼 성큼 다가갈 수 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하이데거, 사르트르, 벤야민, 라캉, 루카치, 데리다, 랑시에르, 지젝, 바디우.  사실, 겉핥기 식으로 알아온 이들이 대부분이고, 이름만 들었지 그들의 철학에 대해서 모르는 게 다반사였다. 한 줄 한 줄, 되새김질하며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세계를 아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 세계를 연결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 이론과 실재는 다르다. 하지만, 이론을 알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의미있는 이유다. 모든 철학자들은 혼자, 우뚝 선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연결 되어 있고, 영향을 받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고, 작가는 그것을 차근 차근 풀어낸다.  
쉽지는 않다. 차근 차근 풀어준다 하여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등장하니 그것들을 정리해 나가며 읽기도 바쁘다. 하지만, 그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커 나가는 일이다. 

   
 

 데카르트가 '회의하는 주체'를 발견했던 까닭도 기존의 지식체계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 이런 회의를 안겨준 것이 바로 "야만인도 이성을 사용해서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유의 평등에 대한 확인에서 근대적 주체는 태어났던 것이다. 새로운 이론은 없다. 다만 '다른' 이론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 14p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틀린'이 아닌 '다른' 생각들. 그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고 뜯고 싸우고, 내 이론이 아니라면 배척하는 사회. 인문학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볼 힘을 가진다면 넓게 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은 변화와 변혁의 힘을 갖고 있다. 충분한 에너지를 가졌지만, 이론으로 끝나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 이론을 토대로 변화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도 인문학 아니겠는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 시키는 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가 인문학을 놓지 못하는 이유, 당위, 그리고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빠질 수 없는 마르크스, 그리고 마르크스 주의. 벤야민과 프로이트. 유물론과 지젝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새로운 시각으로 철학자들을 결합해, 새롭게 기획해 풀어낸 이야기들은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방식이기에 흥미를 끈다. 작가의 바람처럼 그렇게 다른 것들이 결합해 새로운 해석과 시각이 보여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벤야민의 이론을 설명했던 <벤야민, 프로이트와 손잡다>라는 챕터가 인상적이었는데,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글이 벤야민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벤야민에게 '집단적인 꿈'은 노동계급이든 부르주아지든 모두에게 해당되는 바이지만, 여기에서 깨어나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의 몫이었다. 부르주아지는 결코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군중'은 호도당하고 가상적인 인식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이런 '집단적인 것'은 단지 외양일 뿐이다. 벤야민은 자유시장경제가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군중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했고, 전체주의 국가가 이런 군중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벤야민에게 프롤레타리아는 자유시장경제와 전체주의 국가가 진작시키고 이용하는 군중을 종식시킬 수 있는 메시아이다. - 127p

 
   

노동계급만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리 벤야민은 혁명적이라는 프롤레타리아의 속성이 아니라 이 속성이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의식의 구조, 다시 말해서 '주체'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벤야민의 이론에 동감했다. 그는, 이러한 자기만의 이론을 정신 분석이론에 영향을 받아 구축해 나갔다. 프로이트와 벤야민의 연결이다.  

이론이 뻗어나가는 방향, 서로의 이론이 영향을 주는 모습을 차근 차근 설명해준다. 가끔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많은 것을 주고 있으며, 명료하고 집약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고 있다. 이론에 대한 깊은 사유와, 현실 반영을 바라는 작가의 관점도 흥미롭고 즐겁다.  

현실을 어떻게 맞서야 할 지, 어떤 사유와 사고, 성찰이 필요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책이 책으로 남는 것이 아닌, 다른 문을 두드리게 하는 힘을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다른 이론의 문을 두드리고, 더 깊은 이야기의 문을 두드리고 싶은 자극을 받았다. 이론이 주는 힘, 작가가 바란 힘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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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국영화 최고의 10경 - 영화평론가 김소영이 발견한
김소영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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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어렵다. 그게 맞다. 나처럼 영화를 재미, 혹은 기분전환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보다 전문적인 분석과 철학적인 맞물림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흥미롭고 즐거운 글을 것이다. 어렵긴 했지만,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보지 못한 영화들이 더욱 많았기에 이해도가 떨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건 나의 탓이지 그녀의 탓은 아니니까.  

 눈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많아, 어렵지만 더듬더듬 읽어낼 수 있었다. 영화의 시퀀스, 미장센에 담긴 의미, 이야기에 담긴 함의, 시대와 상황을 반영한 영화들. 역시, 영화도 시와 소설, 또 수많은 글과 같이 구석구석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그 의미를 찾아내고 분석하고 평하는 게 평론가의 몫. 깊이와 사고를 더해 그녀가 밝히는 그녀의 평론은 공감을 떠나, 하나의 학문처럼 보였다. 

그녀가 말하는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이란, 
경계, 근대의 원초경, 미묘한 감흥, 근접 섹스, 이만희 무드, 트라우마의 지형, 백 번째 경관, 홍상수가 발견한 경관, 김기덕의 집과 시간, 섹슈얼리티의 경계이다. 
10경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영화들이 등장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시각을 볼 수 있다. 

1경 '경계'를 주제로 설명된 영화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 중 재중 동포의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룬 <망종>이 인상 깊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작년에 알게된 서경식 씨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김치를 파는 최순희와 그녀를 둘러싼 상황들. 한 나라에 속하지 않고 타인으로 살 때 느끼는 박탈감과 부당함. 그리고 그녀의 복수. 

   
 

 여기서 조선족의 기표인 김치는 일종의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 즉 재앙의 기호로 바뀐다. 김치는 쥐약과 인접한 죽음의 기호가 된다. 이러한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최순희의 김치는 여러 사물과 치환되는 은유이면서, 동시에 7위안의 돈과 교환되는 사물이었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김치를 담그기 위해 무를 손질하고 배추를 씻는 그녀의 노동 과정이 차지하고 있다. 이 영화는 조선족 여성이 구성하는 기호적 공간의 미장센을, 김치를 만드는 과정과 김치가 팔리고 빼앗기며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과정으로 구성한다. 김치 파는 사람이 몸도 판다는 조롱과 질타는-남편의 감옥살이로 말미암아 조선족이 주로 사는 길림성 연길 시에서 북경 근처의 산업 지역으로 이주한- 가부장의 보호를 받지 않는 조선족 여자가 생존을 위해 무엇을 매매해야 하는지를 드러낸다. - 31p

 
   

김치가 재앙의 기호로 설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들의 죽음. 살아서도 죽어서도 머무르거나 소유할 수 없는 집과 소수자의 관계. '친밀한 낯설음의 깊은 동요'. 재중 동포 '장률' 감독으로 그려진 경계에 대한 시선은 가슴을 울린다. 서로 다른 영역이 마주치는 경계. 경계에 대한 갈등과 불화 해소되지 않은 긴장. 풀리지 않는 숙제를 담은 장률 감독의 시선이 아리다. 

5경의 '이만희의 무드' 또한 흥미로웠다. 이만희의 영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봤을 때 잡은 범주 '무드'. 이만희 영화의 7가지 스펙트럼. 범죄 스릴러 영화,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리얼리즘 영화, 엔터테인먼트 영화, 냉전, 분단 이데올로기가 가미된 영화, 난데없는 영화, 스릴러 영화이다. 

   
 

 사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나누었으나, 나는 이만희 감독을 보는 기존의 범주들을 좀 교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재 이만희'라는 표현은 그 사람에 대해 범재인 누구로서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 되니 일단 기각하자. 리얼리스트/모더니스트라는 이분법은 위의 스펙트럼을 통해 본 것처럼 그의 작품들을 상당수 버리고서야 가능하다. 이만희 영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려고 하는 경우, 그나마 적합한 범주는 '무드'다. - 107p

 
   

 그만이 가진 무드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그만의 무드를 만들기 위한 장치, 노 스토리, 노 세트, 노뮤직 상황, 그리고 심리적 서스펜스가 가미되었다고 한다.  

   
 

 사실 <귀로>에는 하나로 범주화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코드들이 부유하고 있다. 남편의 성불능과 혼외정사 같은 멜로드라마적 스토리에 심리적 스릴러물의 코드인 삐걱거리는 계단, 비밀을 숨긴 시선과 응시의 협주, 대상을 보는 기능을 초과하는 시선 자체에 부여된 중요성이 드러내는 모더니스트적 충동, 돌발적 총성의 사운드 효과가 갖는 서스펜스, '픽션을 모방하는 삶 혹은 삶을 모방하는 픽션'이라는 모더니즘 영화의 경향이 함께 웅성거리고 있다. 일종의 느슨한 미장 아빔(한 작품 안에 또 하나의 작품을 집어 넣는 예술 기법) 식의 거울구조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영화적 현실은 영화 속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고, 그 소설은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 116p

 
   

세태를 반영하고, 그에 잘 적응하며 무질서 그 자체가 그만의 무드이다. 난세에 따르는 시대적 우울과 그에 반하는 저항적 활력의 변주. 그것이 그녀가 평하는 이만희의 무드이다. 많은 장르와 다양한 표현 안에서도 자신만의 무드를 유지하며 가는 이만희 감독을 알았기에 그녀가 말하는 이만희 무드는 의미 있었다. 

6경 '트라우마의 지형'. 마더에 관한 해석은 재미있었다. mother와 murder의 차이. 약재를 다듬는 마더와 머더(살인)을 하는 마더, 엄마와 어머니의 변주. 생명과 죽음의 짜임을 만들어 내는 마더와 머더. 음습한 영화의 분위기 만큼이나 그녀의 해석도 음습하다.  
영화의 하나의 기표인 침술. 침술이 자위이자 자학의 행위이며, 치유이자 망각, 성욕이자 금욕이라는 해석. 영화를 재미로만 바라본 나에게 던져주는 의문과 호기심. 성장하지 못하는 아들과 성숙하지 못한 엄마의 원초적 결합. 탯줄 관계의 회복, 욕망 충족 끝에 놓은 또 다른 심연, 터널, 블랙홀. 
눈에 보일 것 같은 세세한 설명과 의미의 파헤침.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흥미롭고 다채롭다. 그녀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영화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단정짓지 않아 더 가치 있다.  

그 외에 홍상수가 발견한 경관이나, 김기덕의 집과 시간에 대한 '경'들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한 감독이 한국영화의 '경'을 만든 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영화를 잘 모르는 내게 던진 숙제 같은 물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의 탐구는 나의 몫일 것이다. 그녀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영화의 최고의 10경은 이론서처럼 하나 하나 집어 나가기에 좋은 해설서가 될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이런 책읽기는 나에게도 유익하며, 나의 지식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에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래서, 난 이책을 감히 좋다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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