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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최고의 10경 - 영화평론가 김소영이 발견한
김소영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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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어렵다. 그게 맞다. 나처럼 영화를 재미, 혹은 기분전환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보다 전문적인 분석과 철학적인 맞물림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흥미롭고 즐거운 글을 것이다. 어렵긴 했지만,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보지 못한 영화들이 더욱 많았기에 이해도가 떨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건 나의 탓이지 그녀의 탓은 아니니까.  

 눈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많아, 어렵지만 더듬더듬 읽어낼 수 있었다. 영화의 시퀀스, 미장센에 담긴 의미, 이야기에 담긴 함의, 시대와 상황을 반영한 영화들. 역시, 영화도 시와 소설, 또 수많은 글과 같이 구석구석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그 의미를 찾아내고 분석하고 평하는 게 평론가의 몫. 깊이와 사고를 더해 그녀가 밝히는 그녀의 평론은 공감을 떠나, 하나의 학문처럼 보였다. 

그녀가 말하는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이란, 
경계, 근대의 원초경, 미묘한 감흥, 근접 섹스, 이만희 무드, 트라우마의 지형, 백 번째 경관, 홍상수가 발견한 경관, 김기덕의 집과 시간, 섹슈얼리티의 경계이다. 
10경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영화들이 등장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시각을 볼 수 있다. 

1경 '경계'를 주제로 설명된 영화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 중 재중 동포의 디아스포라 문제를 다룬 <망종>이 인상 깊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작년에 알게된 서경식 씨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김치를 파는 최순희와 그녀를 둘러싼 상황들. 한 나라에 속하지 않고 타인으로 살 때 느끼는 박탈감과 부당함. 그리고 그녀의 복수. 

   
 

 여기서 조선족의 기표인 김치는 일종의 카타스트로프catastrophe, 즉 재앙의 기호로 바뀐다. 김치는 쥐약과 인접한 죽음의 기호가 된다. 이러한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최순희의 김치는 여러 사물과 치환되는 은유이면서, 동시에 7위안의 돈과 교환되는 사물이었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김치를 담그기 위해 무를 손질하고 배추를 씻는 그녀의 노동 과정이 차지하고 있다. 이 영화는 조선족 여성이 구성하는 기호적 공간의 미장센을, 김치를 만드는 과정과 김치가 팔리고 빼앗기며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과정으로 구성한다. 김치 파는 사람이 몸도 판다는 조롱과 질타는-남편의 감옥살이로 말미암아 조선족이 주로 사는 길림성 연길 시에서 북경 근처의 산업 지역으로 이주한- 가부장의 보호를 받지 않는 조선족 여자가 생존을 위해 무엇을 매매해야 하는지를 드러낸다. - 31p

 
   

김치가 재앙의 기호로 설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들의 죽음. 살아서도 죽어서도 머무르거나 소유할 수 없는 집과 소수자의 관계. '친밀한 낯설음의 깊은 동요'. 재중 동포 '장률' 감독으로 그려진 경계에 대한 시선은 가슴을 울린다. 서로 다른 영역이 마주치는 경계. 경계에 대한 갈등과 불화 해소되지 않은 긴장. 풀리지 않는 숙제를 담은 장률 감독의 시선이 아리다. 

5경의 '이만희의 무드' 또한 흥미로웠다. 이만희의 영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봤을 때 잡은 범주 '무드'. 이만희 영화의 7가지 스펙트럼. 범죄 스릴러 영화,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리얼리즘 영화, 엔터테인먼트 영화, 냉전, 분단 이데올로기가 가미된 영화, 난데없는 영화, 스릴러 영화이다. 

   
 

 사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나누었으나, 나는 이만희 감독을 보는 기존의 범주들을 좀 교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천재 이만희'라는 표현은 그 사람에 대해 범재인 누구로서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 되니 일단 기각하자. 리얼리스트/모더니스트라는 이분법은 위의 스펙트럼을 통해 본 것처럼 그의 작품들을 상당수 버리고서야 가능하다. 이만희 영화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려고 하는 경우, 그나마 적합한 범주는 '무드'다. - 107p

 
   

 그만이 가진 무드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그만의 무드를 만들기 위한 장치, 노 스토리, 노 세트, 노뮤직 상황, 그리고 심리적 서스펜스가 가미되었다고 한다.  

   
 

 사실 <귀로>에는 하나로 범주화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코드들이 부유하고 있다. 남편의 성불능과 혼외정사 같은 멜로드라마적 스토리에 심리적 스릴러물의 코드인 삐걱거리는 계단, 비밀을 숨긴 시선과 응시의 협주, 대상을 보는 기능을 초과하는 시선 자체에 부여된 중요성이 드러내는 모더니스트적 충동, 돌발적 총성의 사운드 효과가 갖는 서스펜스, '픽션을 모방하는 삶 혹은 삶을 모방하는 픽션'이라는 모더니즘 영화의 경향이 함께 웅성거리고 있다. 일종의 느슨한 미장 아빔(한 작품 안에 또 하나의 작품을 집어 넣는 예술 기법) 식의 거울구조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영화적 현실은 영화 속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고, 그 소설은 다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 116p

 
   

세태를 반영하고, 그에 잘 적응하며 무질서 그 자체가 그만의 무드이다. 난세에 따르는 시대적 우울과 그에 반하는 저항적 활력의 변주. 그것이 그녀가 평하는 이만희의 무드이다. 많은 장르와 다양한 표현 안에서도 자신만의 무드를 유지하며 가는 이만희 감독을 알았기에 그녀가 말하는 이만희 무드는 의미 있었다. 

6경 '트라우마의 지형'. 마더에 관한 해석은 재미있었다. mother와 murder의 차이. 약재를 다듬는 마더와 머더(살인)을 하는 마더, 엄마와 어머니의 변주. 생명과 죽음의 짜임을 만들어 내는 마더와 머더. 음습한 영화의 분위기 만큼이나 그녀의 해석도 음습하다.  
영화의 하나의 기표인 침술. 침술이 자위이자 자학의 행위이며, 치유이자 망각, 성욕이자 금욕이라는 해석. 영화를 재미로만 바라본 나에게 던져주는 의문과 호기심. 성장하지 못하는 아들과 성숙하지 못한 엄마의 원초적 결합. 탯줄 관계의 회복, 욕망 충족 끝에 놓은 또 다른 심연, 터널, 블랙홀. 
눈에 보일 것 같은 세세한 설명과 의미의 파헤침.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흥미롭고 다채롭다. 그녀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영화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단정짓지 않아 더 가치 있다.  

그 외에 홍상수가 발견한 경관이나, 김기덕의 집과 시간에 대한 '경'들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한 감독이 한국영화의 '경'을 만든 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영화를 잘 모르는 내게 던진 숙제 같은 물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의 탐구는 나의 몫일 것이다. 그녀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영화의 최고의 10경은 이론서처럼 하나 하나 집어 나가기에 좋은 해설서가 될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이런 책읽기는 나에게도 유익하며, 나의 지식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에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래서, 난 이책을 감히 좋다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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