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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데리다는 <차이>에서 차이와 힘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다. 니체를 참조하면서 데리다는 차이를 "제각기 노는 활동적인 불협화음의 힘에게 부여해야 하는 이름"이라고 정의한다. 이 힘은 바로 곳곳에서 "문화, 철학, 과학을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문법의 체계"에 대항하는 범주다. -229p  
   

 이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아닐까? 차이의 연결, 그 연결의 힘을 가진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일 것이다. 폭넓은 사고와 사유를 하며, 머릿속에 다른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것.  가진 것들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으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 어렵지만, 가치있는 그게 인문학이 아닐까? 

<인문 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를 보면, 철학자들에게 성큼 성큼 다가갈 수 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하이데거, 사르트르, 벤야민, 라캉, 루카치, 데리다, 랑시에르, 지젝, 바디우.  사실, 겉핥기 식으로 알아온 이들이 대부분이고, 이름만 들었지 그들의 철학에 대해서 모르는 게 다반사였다. 한 줄 한 줄, 되새김질하며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세계를 아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 세계를 연결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 이론과 실재는 다르다. 하지만, 이론을 알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의미있는 이유다. 모든 철학자들은 혼자, 우뚝 선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연결 되어 있고, 영향을 받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고, 작가는 그것을 차근 차근 풀어낸다.  
쉽지는 않다. 차근 차근 풀어준다 하여도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등장하니 그것들을 정리해 나가며 읽기도 바쁘다. 하지만, 그건 분명 의미있는 일이고, 커 나가는 일이다. 

   
 

 데카르트가 '회의하는 주체'를 발견했던 까닭도 기존의 지식체계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 이런 회의를 안겨준 것이 바로 "야만인도 이성을 사용해서 사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유의 평등에 대한 확인에서 근대적 주체는 태어났던 것이다. 새로운 이론은 없다. 다만 '다른' 이론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 14p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틀린'이 아닌 '다른' 생각들. 그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고 뜯고 싸우고, 내 이론이 아니라면 배척하는 사회. 인문학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볼 힘을 가진다면 넓게 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은 변화와 변혁의 힘을 갖고 있다. 충분한 에너지를 가졌지만, 이론으로 끝나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 이론을 토대로 변화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도 인문학 아니겠는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 시키는 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가 인문학을 놓지 못하는 이유, 당위, 그리고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빠질 수 없는 마르크스, 그리고 마르크스 주의. 벤야민과 프로이트. 유물론과 지젝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새로운 시각으로 철학자들을 결합해, 새롭게 기획해 풀어낸 이야기들은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방식이기에 흥미를 끈다. 작가의 바람처럼 그렇게 다른 것들이 결합해 새로운 해석과 시각이 보여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벤야민의 이론을 설명했던 <벤야민, 프로이트와 손잡다>라는 챕터가 인상적이었는데,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글이 벤야민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벤야민에게 '집단적인 꿈'은 노동계급이든 부르주아지든 모두에게 해당되는 바이지만, 여기에서 깨어나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의 몫이었다. 부르주아지는 결코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군중'은 호도당하고 가상적인 인식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이런 '집단적인 것'은 단지 외양일 뿐이다. 벤야민은 자유시장경제가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군중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했고, 전체주의 국가가 이런 군중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벤야민에게 프롤레타리아는 자유시장경제와 전체주의 국가가 진작시키고 이용하는 군중을 종식시킬 수 있는 메시아이다. - 127p

 
   

노동계급만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리 벤야민은 혁명적이라는 프롤레타리아의 속성이 아니라 이 속성이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보다 의식의 구조, 다시 말해서 '주체'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벤야민의 이론에 동감했다. 그는, 이러한 자기만의 이론을 정신 분석이론에 영향을 받아 구축해 나갔다. 프로이트와 벤야민의 연결이다.  

이론이 뻗어나가는 방향, 서로의 이론이 영향을 주는 모습을 차근 차근 설명해준다. 가끔은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많은 것을 주고 있으며, 명료하고 집약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고 있다. 이론에 대한 깊은 사유와, 현실 반영을 바라는 작가의 관점도 흥미롭고 즐겁다.  

현실을 어떻게 맞서야 할 지, 어떤 사유와 사고, 성찰이 필요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책이 책으로 남는 것이 아닌, 다른 문을 두드리게 하는 힘을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다른 이론의 문을 두드리고, 더 깊은 이야기의 문을 두드리고 싶은 자극을 받았다. 이론이 주는 힘, 작가가 바란 힘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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