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심리학 / 꿈꾸는 20대, 史記에 길을 묻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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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어쩐지 이 책은 내게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내 남동생. 남동생은 천안함 생존자다. 5월 1일 제대를 하고, 한 달 조금 넘게 지났다. 언제나 밝은 녀석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제대를 하고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받으며,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요즘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주기가 짧아져 녀석도 난감한 듯 보였다.
제대 후 정신과 치료를 권유했는데,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한 달에 한 번의 치료는 동생에게 별 효과를 보이지 못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던 말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조금만 큰 소리가 오가도(그녀석에게 그런 것이 아닌데도) 이유 모를 화를 낸다. 그 상황이 지나가고 나면 모든 게 자기 탓인 거 같다며 죄책감이 든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우울증의 감정, 행동양상들이 동생에게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동생에게 권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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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분노
우울증은 분노의 또 다른 면이다. 미라 체이브존스는 자신의 책 <우울증에 대처하기>에서 우울증을 '얼어붙은 분노(frozen rage)'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울증과 분노의 연관성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대화를 해본 우울한 사람들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사람은 화를 표출할 만큼의 안전함을 느끼지 못할 때 화를 무의식 속으로 짓누르게 된다. 그때 우리의 몸은 화를 속으로 삭이기 위해 애를 쓰는데, 그게 실패하면 우울증(또는 위궤양이나 심장병)이 야기된다. - 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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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자신의 안에 분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왜 그 사건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죄도 없이 동료들이 죽어야 했는지. 동료 가족들의 아픔을 보면서, 상처받은 자신을 보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분노를 아무렇지 않게 느끼다가도 표출하곤 한다. 그 안에 분노가, 상처가 되어 충동적인 행동이 밖으로 나타날 때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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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망각하는 두 가지 고통이 있다. 하나는 정도가 너무 약해 우리를 전혀 괴롭히지 않는 고통이고, 두 번째는 기억하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이다. - 루이스 스머즈
- 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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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은 대체로 두 번째 고통이다. 기억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고통이 불쑥 불쑥 찾아올 때, 감정의 굴곡은 커진다. 마음 속에 짓눌리고 숨겨진 감정들이 어떤 불씨때문에 되살아날 때 화를 내거나, 숨거나, 절망하게 된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좀먹는 정신과 즐거움, 행복들이 안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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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 실은 우울증 저편에 숨어 있는 존재가 더 끔찍했다. 숨어 있는 존재들을 나는 '아주 의미심장한 것들'이라고 부른다. 각자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우울증 극복에 있어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 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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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을증을 극복하는 것은 쉬워보이지 않는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자신이 걸려보지 않았기에 굴 속으로 파고드는, 불쑥불쑥 화를 내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울증이라고 공개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이해받을 수 있겠지만, 공개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거리는 사람의 겨우 더욱 외롭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우울증이 자살로 가기 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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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우울증을 탈출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가슴 아프고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우울증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성적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죄책감을 넘어서서 "신이시여! 나에게 이렇게 굉장한 느낌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 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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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 그것이 우울증 탈출의 첫 번째 단계인 것 같다. 동생이 말한다. "자신이 죄를 지은 거 같고, 그래서 한없이 작아져." 그래서 난 그랬다. "니가 죄를 지은 게 없다. 죄를 지은 게 있다면, 이러한 상황을 만든 나쁜 정치인 새끼들이다. 관계의 악화가 그런 사건으로 일어난 것이다. 살아남은 자에게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그래 니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 동생은 절망할 것이다. 자신의 늪으로 더 빠져들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이에게 용기를 주는 것. 우울증을 극복하도록 돕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감정을 조절하고, 기분을 바꿀 수 있는 방법. 무엇인가를 배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 그런 것들로 조금씩 극복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 안으로 파고들지만 않는다면 감정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 안에서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는 방법. 어쩌면 이 책은 그것을 위한 작은 답을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