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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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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산 사람은 결코 앞을 어떤 세계로 건너 가는 것. 죽은 자들만이 알 수 있을 그 무엇. 되도록이면 죽음의 시간을 늦추고 싶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을 앞당겨 먼저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 두려운 시간이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그것.

 

며칠 전, 아는 선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그야말로 아는 선배였다. 나와 밀착된 관계를 맺지도 않았으며, 학교 다닐 때도 가끔 오다가다 마주쳤을 뿐, 십년 넘게 연락도 모르고 살아왔던 한 사람. 그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이 끝일 것이라고 믿으며, 삶을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죽었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생각하기도 싫고, 두려운 게 죽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죽음을 쉽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괴로움, 고통의 끝에서 죽음을 택하는 게 왜 이렇게 쉬워졌을까? 심장박동이 정지하고, 신체 기능이 정지하며, 영혼이 사라지고, 멈춰버린 육체만 남아있게 되는 죽음. 생물학적인 의미 말고, 그 이상의 의미는 찾지 못했다. 죽음 이후의 어떤 그것. 영혼이 안식을 찾기 바라고, 세상과 단절되기 바라는 선택. 혹은 자연스러움. 그러한 죽음을 왜 그토록 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이길래.

 

이 책의 저자는 물리주의자라고 말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이원론, 인간은 육체만 존재한다는 물리주의. 사실 그의 이론에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물리주의자의보다는 이원론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에 대한 이론은 약간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단정지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그가 물음,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라는 부분에서는 꼭 그것들을 분리해서 따져보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떤 관점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죽음의 의미는 달라지는데, 사실 죽음 이후의 생존하느냐 아니냐는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죽음'을 어떤 논리로 설명한다는 자체가 논리적이지 못한 건 아닌가 자문해본다. 죽음은 그가 말한 것처럼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생물학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거나 내가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이 끝났을 뿐이다. 어느 순간, 나의 삶은 막을 내렸고, 내가 살아온 삶들은 어딘가 떠돌고, 티끌만큼이라도 이 세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내가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지만,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죽음의 가치를 따진다거나, 삶을 꼭 죽음과 연결지어 살아갈 필요는 없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치롭게 살아야 한다거나, 죽을 수도 있는 인생이기에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거나, 행복을 쟁취해야 한다거나 무엇이 되어야한다거나. 나는 죽음을 의식하며 삶을 살아가진 않는다. 적어도. 죽음과 삶은 함께 나아가고 있지만, 의식 속에서 죽음은 분리되어 있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거나, 행복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거나,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이 소중하기에 마음껏 느끼고, 기꺼이 즐긴다.

 

죽음을 어떠한 논리로 정의하고, 옳고 그르고, 그 생각을 따라가고, 어떤 이론으로 정립해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든다. 또한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저자에게는 더더욱. 나는 우리의 삶이 풍요로운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죽음 뒤에도 영혼은 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믿는다. 육체가 전부인 게 인간이라면, 이런 것들을 따지고,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좀 더 깊은 죽음에 대한 성찰에 대해 듣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성과 논리로 파헤칠 수 있는 게 죽음이라면, 이 세계에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죽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죽음에 관한 여러가지 측면의 이론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다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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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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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의 병 하나 없는 이 있을까? 마음에 병이 있다고 해도 꽁꽁 싸매고 숨겨야하는 현실. 누구에게 위로받기 보다는 인내하다 골병이 들거나, 결국 죽음을 택하는 아픈 시대.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시대는, 사회는 개인에게 능력을 강요한다. 공부를 잘해야한다,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권력을 가져야 대접받는다,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수많은 강요 속에서 강박을 느끼면서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병들어 가면서, 병들어 버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것이 '나'이며 '너'이며, '우리'이다.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이 내게 꽤 큰 위로가 될 거라고 느낀 것은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부터다.

 

서점에 나와 있는 심리학 책들은 하나같이 "너의 마음의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해법은 이와 다르다.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자신의 관계망과 배치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와 접속해야 한다. 서로의 욕망이 긍정되어 기쁨으로 가득차고, 서로를 사랑해서 변해가며 자신의 독특한 가치에 공감하는 공동체 속으로 자신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에 따라 점차 마음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사실 심리치료사나 정신분석가, 상담사의 영역도 공동체의 돌봄과 치유의 영역을 사유화한 것에 불과하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 글은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재배치', '공동체와의 접속', '관계의 변화', '사랑'. 스피노자가 내놓는 해법들은 그리 특별하지도 놀랍지도 않지만, 우리가 잊고 사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 해준다.

 

1671년을 살고 있는 스피노자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스무여덟의 백수 김철수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이쪽과 저쪽 세계, 시대를 넘나드는 만남. 한 철학자와 21세기의 전형적인 백수가 얼굴을 맞대게 된 것이다. 이런 기이한 일이. 한 사람은 철학에서 한 획을 그엇던 '스피노자', 한 사람은 꿈도 희망도 잊은 채 사회의 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전형적인 백수. 그 둘의 만남은 기상천외하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철수. 그의 상황만 보고도 숨이 턱턱 막힌다. 제 몸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숨소리조차 죽인 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는 자랑스럽지 않은 남자친구이며, 가족에게는 취직도 하지 못해 얼굴도 들  수 없는 아들이다. 그 불안한 상황 속에서 끝도 없는 터널을 건너는 듯 두렵고 외롭다. 그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고, 가족일 수 있으며, 친구일 수 있는,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슬픈 시대의 모습이다.

 

그런 철수가 스피노자와 만났다. 그리고 철수와 스피노자는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마음의 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

불안하고 두렵고, 경쟁적이며,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 시대에서 누구나 이런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병이 생겨도 자각하지 못하고, 자각해도 치유받지 못하는 게 다반사. 갑갑한 마음을 숨겨야 하는 현실. 껍데기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해답을 스피노자와 철수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철수의 주변 인물들은 위의 병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 관계를 맺게 되는 아이, 한별이는 우을증에 걸려 있었고, 한별이의 엄마는 자로 잰듯 정확한 강박증이 있다. 여자친구 직장 상사는 경계선 인격 장애를 갖고 그녀를 괴롭혔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병'을 설명할 충분한 소재가 되며, 스피노자와 철수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 해답들을 실행하고 결국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결과가 된다. 그들이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이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속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

새롭게 관계망을 재배치 하는 것,

세상과 색다른 관계를 맺으며 생활에 혁명을 만드는 것,

변용 즉, 몸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

나를 유한한 존재로 인정하고 욕망을 긍정해 보는 것,

'되기'를 통해 나를 변화 시키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 기본이 된 다는 것.

 

사실 이렇게 요약해서 말하면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의미들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것들에 예속되어 있고, 수많은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지 느끼게 된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욕망하는 것과 무한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 욕망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병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은 나 혼자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똑같은 상황 안에서, 똑같은 관계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마음만 컨트롤하고,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뿐.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함께 느끼고 감싸고 위로해 줄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 안의 관계 속에서 나를 재배치하고, 고정된 관념 속에서 벗어나 나의 생활에 혁명일 이루어내는 것이야 말로 나를 위로하고 나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겐 모두 내재적 능력이 있다. 비뚤어진 사회와 시대가 만들어 놓은 곪아 버린 무대 위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임에도 그 시선과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고통과 상처를 키워 내 안에 상자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쩔쩔매면서 더욱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 나 혼자 하기 어렵다면, 나를 도와줄, 나와 함께할 공동체와 손을 잡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기 원한다. 그 위로는 사실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함께 무엇인가를 해보고, 박수치고, 응원하고, 함께 웃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이 책을 읽고, 철수만큼 나도 큰 위로를  받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생각에 강요 받을 필요도 없는데, 그렇게 흘러가는 무리들에 섞여 아니라는 말도 못하고 휩쓸려 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미련과 후회가 남는다. 그 미련과 후회들로 보낸 시간이 슬픔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긴 시간을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 때문에, 지금 많은 이가 고통받고 있다. 왜 고통받아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자신을 원망한 채, 사회를 원망한 채, 외로움에 몸부림친 채 그냥 떠나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내려야 할 답은 변화다. 그 변화가 여기서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 시작된 생각들이 지금 내게 전해져 위로했듯이. 많은 사람이 위로받기를. 그리고 우리 함께, 위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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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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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다해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연도 끊고, 관계도 끊고, 하나를 위해 살아가는 이는 얼마나 될까?

 

김영갑 그는, 제주도를 사랑하고 제주도의 사람을 사랑하고, 제주도의 바람과 비와 공기와 풀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진밖에 몰랐고, 사진에서 자신을 발견했고, 처절하게 자신을 고립한 채로 사진을 찍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돈도, 공간도, 아무것도 없는 채로 뭍에서 온 그는 섬사람이 되었다.

 

그의 사진은, 아름답다. 그 말 이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사진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가 기다려온 시간, 그가 참아낸 시간, 그가 이겨낸 시간.

바람의 움직임, 구름의 움직임, 나무의 움직임. 제주도의 세월이 제주도의 흔적이 그의 사진에 담겨 있다. 제주도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를 존재하게 했고, 그를 살아가게 했다. 제주도가 있었기에 그는 고통을 참았고, 외로움을 참았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제주도의 순간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기뻤다.

 

작가는 한 줄을 쓰기 위해서 몇 년을 고민하고, 화가는 선 하나를 긋기 위해서 또 몇 년을 고민한다. 사진가 또한 그런데, 왜 사진은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느냐는 그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영혼을 바치는 사람들, 주위의 냉대와 비웃음에도 우직하게 한 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 그런 일은 팔자 좋은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게 세상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삶을 판단한다. 다른 생각으로,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며, 다른 것을 꿈꾼다.

- 44p

 

그는 제주도를 찍는 일이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과 가족의 걱정이 사진을 찍는 일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 단절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 180p

 

제주도에 와서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이, 제주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원하는 장면만 보고 싶어한다. 그 모순에 그는 안타깝다. 바람의 기다림을, 파도의 기다림을 모르는 이가 과연 제주도를 찍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제주 살이를 십수 년 해 온 그는 사진도, 제주도도 사람들이 제대로 봐주길 바란다.

 

허기짐 속에서, 고통 속에서, 냉대 속에서 제주도를 찍었던 그는 루게릭병과 맞닥뜨린다. 신은 왜 이리 불공평한 것일까? 하나만 알아왔던 그에게 다른 세상을 보라고 그런 고통을 내린 것일까? 그의 병은 그에게 사진을 빼앗아 가지만, 사진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폐교를 갤러리로 꾸민다. <두모악 갤러리>는 그렇게 탄생된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그때 그는 다시 새로운 일을 벌인다. 갤러리를 꾸미고 사진을 전시하고 그는 그렇게 병과 싸우고, 시간과 싸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대로 가지만 한참을 걷다 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 190p

 

버려야지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미련인 줄 알면서도, 그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병에 대한 집착으로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사그라지는 그의 몸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의 고집스러움, 그의 신념이 안타깝다. 왜 화해하지 못했을까? 그렇게까지 애를 쓰지 않아도 될 텐데. 그는 마음으로 미안하고, 마음으로 감사해 하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표현하지 못한다. 죽는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 미안함과 고마움이 차오르는 것을 두고 가는 게 힘들었을지 그가 써내려간 글에서, 그가 남겨놓은 사진에서 느껴진다.

 

사람은 없는 제주도 사진. 그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사진 어디엔가 흩뿌려놓았을 감정들이 느껴진다.

그 섬에 그가 있었다. 그 시간에 그가 있었다. 그 바람 사이에 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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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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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말로는 참 쉽지

희망을 꿈꾸다 급기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남의 일 같다. '평범'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샌가 '일반', '보통', '보편', '평범'이라는 단어들이 멀게 느껴진다. 세상은 자꾸 나를 밀어내기만 하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는다. 희망을 꿈꾸었지만, 절망의 밧줄이 온몸을 옥죄어 오고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기만 한다. 이러다 세상이 끝날 듯, 암흑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있다. 언제쯤 이 절망의 터널을 끝낼 수 있을지.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런지. 막막한 삶 앞에서, 주먹을 쥐어본다. 언제나 실은 .

 

내가 이책 한 곳에 쓰여진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날 이런 일기를 썼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었을 뿐인데도 이런 글을 쓴다. 그들이 겪어내는 고통과 절망, 쓰디쓴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낸 듯, <현시창>을 덮으며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글들을 읽어내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이 나쁜 현실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는 '작은 의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는 '분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온몸을 밀어내며 그 시간을 견뎠을 사람들의 슬픔이 속까지 깊게 전해져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이쪽 아니면 저쪽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이쪽도 안 되고, 저쪽도 안 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왜 안 되냐고 악다구니를 써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현실. 그것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비슷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치게 만들 그런 이야기다.

 

 

나는 이들 그 누구도 위로할 자격이 없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마트 지하에서 죽어간 장남,

밤늦은 새벽 전기로 청소를 하다 쇳물에 녹아내린 청춘,

온갖 부당함을 다 견뎌내고 성실하게 일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버리는 기업과 사회,

희망을 품고 삼성에 입사해 백혈병으로 죽어간 소녀,

위험한 질주를 부추기는 기업과 사회에 죽음으로 내몰린 피자배달원,

진실을 규명하지 못해 20년 동안 묻히지 못한 한 청년,

살인적인 경쟁을 괴로워하며 죽어간 카이스트 학생들,

경쟁과 학벌 사회에 갇혀 살인자가 된 강남키드,

아빠가 휘두르는 폭력과 공부감옥에 갇혀 두려움 속에 살았던 세자매,

매일 열심히 일해도 불투명한 미래에 마음이 답답해지는 어느 영업맨,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영구임대아파트의 청소년들 

아무리 희망을 품어도 밀어내는 사회 앞에서 절망에 빠져든 가난한 명문대생,

대출 사기단에 걸려 가짜 결혼을 한 젊은 청춘,

회사의 성희롱과 지난한 싸움을 벌였던 용감한 여자,

끝도 없는 감정노동에 자신마저 잃고 있는 항공사 콜센터 직원,

아무도 관심갖지 않아 더욱 외로운 성매매 여성들,

돈으로 팔려와 폭력과 무시를 견뎌야했던 캄보디아 신부,

탈북 소녀의 결혼 이야기,

도움받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견뎌야하는 미혼모,

만삭의 의사부인 사망사건 뒤 감춰진 이야기,

온라인에서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하고 죽음에 이른 공익근무요원,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며 사회의 편견과 싸우는 예비 법조인,

쥐식빵 사건, 그 안의 진실,

부모에게 살해당하고도 가는 길마저 외로웠던 세 살배기 아이까지.

 

한 줄 설명만으로도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는 그들에게 어떤 위로도 전할 수 없었다. 어떤 문제든,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철저한 신자유주의, 그로 인해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인간이라는 존재보다 돈이 우위를 차지했다. 모든 이야기는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돈'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과거에는 신성시했던 결혼도 돈만 있으면 사람을 사서 할 수 있다. 대학은 학생들의 학문 쌓기를 독려하고, 학생들의 꿈을 독려하기 보다 취업률에 열을 올리고, 제 몸집을 불려나가기 바쁘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명문대에 들어가야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주입당하기에, 과도한 경쟁은 아주 자연스럽다. 잘 사는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낮은 곳을 거들떠보지 않고, 가난한 이들은 서로를 위로할 힘도 없이 사그라든다. '돈'이라는 주도권을 잡는 건 남자의 비율이 높아,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약자일 수밖에 없다. 돈 때문에 개인정보를 팔아 넘기기도 하고, 신념을 내세워 큰 목소리를 내면 돈을 가진 권력자들이 찍어내린다. 편견은 뿌리박혀 있어, 평범함에서 조금만 밀려나도 색안경을 쓰고 보기 일쑤다. 이런 모든 상황들이 매일, 매번 가슴 아프고 쓸쓸하고, 분통터지는 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너무도 극단적이기에 싸움마저도 힘겹고, 외롭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이들을 위로하지 못한다. 위로하기 버겹다. 위로해도 위로받을 수 없을 것이기에, 위로하지 못하고 생각만 많다.

 

하소연해도 듣지 않는 사회

한 사람 한 사람 쏟아낸 말들이 가슴을 찌른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과의 싸움을 마친 딸의 아비가 딸의 무덤 앞에서 "아비가 약속을 지켰다. 유미야."라고 했단다. 글자가 들린다. 산재 증거를 유족이 대라는 나라에서 그 말도 안 되는 싸움을 했을 황유미 씨의 아버지의 속은 얼마나 까맣게 탔을까?

"지금도 막막한데 앞으로가 더 막막해요."라고 말하는 가난한 명문대생은 한 달을 살기도 벅차다.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다고 만든 제도가 가난한 학생을 불안하게 떨게 했으니, 그 결론 앞에서도 뾰족한 해결점도 없었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성매매 여성.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병에 걸린 부모, 남동생 학비를 짊어져야 한 한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몸 하나로 가족을 지키고 있지만, 사회는 등을 돌리기만 한다.

"1년에... 두 번쯤은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빠의 공부 압박과 폭력까지 견뎌야 했던 세 자매 중 큰 딸은 아빠와 사는 동안 1년에 두 번쯤 외출했다고 한다. 매일 문제집을 풀고, 폭언을 들으며 살아야 했던 삶. 부모도, 사회도 그녀에게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현실은, 시대는, 진창이다. 어쩜 이리도 사회는,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 최적화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아니, 나약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최악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안 된다면, 그냥 하지 말아."라고 말한다. "그럼 할 수 없는 거지. 어쩌겠어?"라고 말한다. 온 세상은 희망이 있다고 떠들고, 온 기업은 사회에 힘이 되겠다고 떠드는데 도대체 현실은 그런 것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 이 아픈 사람들에게 하나 도움이 되지 못할 사회라면, 그 나쁜 사회를 방관하고 만들어낸 게 우리라면 이제 죄책감을 갖고 바꾸려는 시도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 매번, 외로운 누군가가 혼자 앞에 나서고,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지만 그 뿌리 깊은 편견과 이기심은 버리지 못한다. 이 모든 사람들은 계속 하소연하고 있었다. 좀 도와달라고, 우리를 돌아봐달라고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안 되겠냐고. 온몸으로 하소연하고 있지만, 누구도 대답하는 이 없다.

 

정말, 계속 이렇게 살아갈 건가요?

우리는 스스로, 기어이 경쟁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남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뒤쳐질까봐 그 무리에 끼어들지 못하고 내침당할까 무서워 기어이 들어간다. 그게 불구덩이 속인지 모르고. 괜찮다고 하면서, 이미 마음 이곳저곳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치고, 깨지고, 찢어지고. 그래도 아무 말 못하고, 꾸역꾸역 버틴다. 그렇게 하다보면,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이 너무도 굳건하여,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간다. 그렇게 앞만 보고 살다가, 앞만 보고 사는 삶을 누군가에게 강요한다. 누군가를 짓밟고, 못살게 굴고, 싸우는 삶을 주입하고 지속되게 만든다. 이렇게 현실이 시궁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현실이, 시대가, 진창이 되고 말았다. 정말, 계속 이렇게 사는 게 옳은 걸까? 언젠가 청춘을 맞이할 아이들을 이렇게 살게 내버려둘 건가? 과연 그래도 좋은가?

나쁜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청춘들이 품었던 희망은 조각나 가루가 되고, 탈출구를 찾기도 전에 사회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래놓고 우리는 뻔뻔하게 위로란 걸 하고 있다. 위로만 하면 다일까? 위로 받는 다고 모든 상처가, 고통이, 쓰라림이 다 사라질까?

 

'희망'이 부끄럽지 않게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에게 자꾸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방관하는 시간들이 더 큰 고통을 만들 거라고, 결국 누군가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될 수 있다고 자꾸 경고한다. 내 아이가 경쟁에 밀린 게 고통스러워 어느 날 죽음을 선택할지 모르고, 내 삶이 어느날 한꺼번에 무너져 빈곤이라는 늪에 빠질지도 모른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어디선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될지 모르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불행한 일들은 내가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그런 일이라는 걸, 우린 너무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아닐 거라는, 나는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릴 절망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희망이 대안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그래도'라고 중얼거려본다. '그래도, 언젠가는, 시간이 좀 지나면'이라는 헛될지도 모르는 중얼거림. 그래도 그들에게 꿈꾸던 어떤 날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 어떤 날 누군가를 만나 손을 맞잡고 "희망을 가져요."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시간이 찾아올까? 그렇게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매번 속으면서도, 헛된 희망. 그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자꾸 자신없는 생각들을 해본다. '희망'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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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래.전민진 지음 / 남해의봄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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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비슷한 꿈들

꿈에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비슷한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 같다. 특히, 부모들이 자식에게 품는 꿈은 무엇보다 비슷하다. 상점 진열대에 세워놓고, 어떤 게 더 맛있을까, 저렴할까, 잘 팔리는 걸까 고르는 것도 아닌데, 부모들은 아이의 꿈을 이리저리 골라 주입하고 재단한다. 아니, 그러기 쉽다. 화가나 사진작가가 되고싶다는 우리 딸은, 외할머니의 한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돈 많이 들어가고, 돈은 못버는 직업이야!" 나는 기겁하고 말았다. 아, 어른들은 저런 기준으로 꿈을 재단하시는 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런 생각을 주입당하며 살아왔겠지. 이제 초등학교 2학년 밖에 되지 않은 우리 아들. 친가에 가면 매번 듣는 소리, "공학박사가 되야해.", 혹은 "장군이 되어야해.", 혹은 "대통령 어떠니?". 이 대목에서도 나는 기겁한다. 아, 이런 내가 보기엔 뭐하나 좋아보일 것 없는 직업들인데, 그것도 아이의 생각이 여물지 않은 지금 이때부터 이런 말들로 꿈을 주입해야 하다니! 요즘 부모들이라고 다른 것도 아니다. 자식이 명문대에 가길 원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일하는 게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부모들이 꽤 많다. 대대로 내려오는 악습을 이어 받는 것도 아니고, 가끔 말문이 막힌다. 이렇게 아이의 인생을 재단하여, 코스대로 움직이도록 스케쥴을 짜놓고, 그 스케쥴에 맞춰 코스대로 인생을 시작하고 살아가는 삶. 과연, 행복할까? 꿈을 꿀 틈조차 없는 시간들, 타인의 시선대로 끌려가는 인생. 비슷한 꿈 안에 갇혀, 비슷하게 밟아 가는 인생의 코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서른이 다 되어서다. 나도 늦게 철이 든 셈이다.

 

 

내가 가는 길은 내가 만든다!

직선으로 난 길을 좋아하는 사람, 매끈하게 잘 닦인 길을 좋아하는 사람, 구불거려도 즐거운 풍경이 가득한 길을 좋아하는 사람, 높아도 정상을 향해 뻗어 있는 길을 좋아하는 사람, 미끄럽지만 눈쌓인 길을 좋아하는 사람, 자갈이 많아도 흙으로 덮인 길을 좋아하는 사람, 논두렁 사이로 뻗은 좁은 길을 좋아하는 사람, 샛길로 난 길을 좋아하는 사람.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고,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길도 다 다르다.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길도 있지만, 지날 수록 멋이 느껴지는 길도 있다. 편한 길이 좋은 길은 아니며, 예쁜 길이 기억에 남는 길은 아니다. 인생에 정답도 여러가지이듯, 가는 길도 다 같을 수는 없다.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길 같다.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길 중, 자기만의 길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가는 길에 굳은 신념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 사람들이 걷는 다 같은 길보다,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가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열정보다는 용기가 돋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을 인간답게 여기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는 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받아들이는 각자가 가진 가치는 다르겠지만요. 사실 대기업이라는 곳이 높은 연봉을 주는 안정된 직장의 표상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그곳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요. 취업난이 바로 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요. 모두들 자신이 위대하다고 착각하며 사는 게 아닌가. 회사로 따지면 지점은 싫고 본점만 선호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사실 행동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배우고 해보면 용기가 생기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겠다는 목표도 생길 텐데 회사의 조건이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죠.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아티스트와 관계 맺으며 즐겁게 일하는 저를 보며 부럽다고 얘기하곤 해요. 하지만 선뜻 그 길을 선택할 용기는 없다고 말하죠. 그만큼 일의 즐거움보다는 다른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겠죠."

 

- 붕가붕가레코드 김설화 팀장(27세, 입사 3년차)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일침! 내가 꾸려가는 삶이고, 내가 만들어가야 할 인생인데, 많은 이들이 비슷한 길로 걸어간다. 왜 그럴까? 타인의 시선? 안정? 사실, 대기업이 안정을 주는 것도 아니다. 20대 중반에 들어가, 기껏 열심히 일해도 40대가 되면 불안불안하다. 이게 안정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높은 연봉이 채워주는 안정감도 있겠지만, 높은 연봉은 가진 사람일 수록 빚이 많다니, 이것도 아니러니. 자신의 길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회사의 그림자에 갇혀 살아가기 마련이다. 대기업을 가는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을 원하는 구체적인 이유와 꿈이 없는 그 자세가 바람직하지 못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퍼진다. 내가 가는 길은 내가 만들겠다는 의지, 일 안에서의 자유로움, 착착 쌓아 나가는 아름다운 꿈.

 

 

즐거워, 신나, 자랑스러워!

나를 믿는 다는 것, 그것이 힘

잘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며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했던가? 일 안에서 자유를 즐기고, 일 안에서 성장을 즐기고, 일 안에서 재미를 찾고, 일 안에서 상상력을 찾는 사람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겁고, 신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위대한 경영자들의 말보다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작은 회사 안의 작은 회사라는 생각이 저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작은 회사 안에서는 내가 어떤 작업물을 만드느냐에 따라 그 회사의 이미지가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특히 젠틀몬스터는 독특함을 내세운 곳이라 계속해서 창의적인 생각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는 곳이거든요."

 

- (주)스눕바이 젠틀몬스터 우빛나 대리(25세, 입사 2년차)  

 

작은 회사에 가서 또 다른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거나 스스로 만족한다면 참 다행이고요,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차츰 스스로 발전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계속 만족하지 못하고 '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거야' 하는 생각만 하고 지내면 무협지의 조연밖에는 될 수 없어요. 은둔형 고수 밑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는 것에 불만만 품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으로 전락하는 캐릭터처럼 말이죠." 

 

- 땡스북스 김욱 실장(35세, 공동창업 2년차)

 

 큰 영화 홍보사도 있는데, 주로 보도자료 쓰는 사람은 보도자료만, 광고 담당하는 사람은 광고만, 기획서 쓰는 사람은 기획서만 써요. 반대로 저희 같은 경우엔 한 작품을 홍보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함께하죠. 만약 저희 회사에서 일하다가 다른 회사에 가면 무슨 부서를 가더라도 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영화 한 편에 대한 전체 홍보 작업을 다 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학교 같이 다 배우는 거죠. 물론 일이 많아서 힘들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 수 있고, 책임감도 보람도 느껴요. '난 보도자료만 썼어'가 아니라 '내가 다 했어'가 되는 거죠." 

 

- 아담'스페이스 민지영 대리(29세 입사 2년차)

 

 모든 일은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잖아요. 제 바로 옆에 저를 이끌어 주는 사부와 동료가 있죠. 의리나 믿음이 없으면 따라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데 저는 그들을 믿고 따르고 있기 때문에 나아가고 있어요. 또 항상 높은 퀄리티로 사진을 찍으려면 개인적인 기복을 줄여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믿으며 협업하지 않으면 좋은 사진이 나오기 힘들어요.  

그냥 나 혼자만 잘난, 대한민국 최고로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되면 뭐해요. 기술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인격도 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함께 일하려고 하지 않겠죠. 저는 그래서 제가 있는 키메라스튜디오가 참 좋아요.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만나 소통하는지, 사진 한 컷에 어떻게 그 소통이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배울 수 있는 곳이니까요."

 

- 키메라스튜디오 박진주 포토그래포(30세, 입사 6년차)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장인이라면 하루에 대부분은 일을 하며 산다. 그 일이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전락한다면, 일도 사람도 불행하다. 청소부 아저씨가 깨끗하진 거리를 보며 즐거워 하듯, 배관수리공이 막힌 구멍을 뚫었을 때 뿌듯해 하듯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작은 회사에 다니든 큰 회사에 다니든 무슨 상관일까? 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일이라면, 그 마음 간직하고 갈 수 있는 일이라면 일하는 사람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꿈과 즐거움, 일이 맞닿아 성장하는 기쁨.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마음 간직하고, 자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에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남해의 봄날이 꾸는 꿈이 담긴 책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을 만든 '남해의 봄날'이라는 출판사에 주목한다.

'봄바람'이라는 스토리텔링 회사의 공동대표, 봄 정은영 씨가 독립해 통영에 둥지를 틀고 만든 '남해의 봄날'.

비슷한 일을 하고 있기에, 관심있게 보아 왔던 '봄바람'은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회사였다. 그 회사의 공동대표가 독립해 만든 '남해의 봄날' 또한 그러리라 의심치 않는다. 통영에 자리를 잡은 것 또한, 또 다른 행복을 좇고자 내린 결단이었을 거라는 생각 또한 든다.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하는 느낌, 이 책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틀을 깬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는 느낌. 남해의 봄날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또한, 용기와 행복과 즐거움을 품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이 책이 달리 보였고, 이 책을 쓴 작가들과 편집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남해의 봄날이 꾸는 꿈을 담았을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즐겁게 걷고 있지만, 가고 있는 길이 걱정이 되고, 고민이 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보다,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니~

 

 

남해의 봄날 블로그

http://blog.naver.com/namhaebomnal 

 

남해의 봄날 홈페이지

http://namhaebom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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