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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 것인가

 

그가 정치를 그만 두었다. 유시민이 '시민'으로 돌아왔다. 파란만장했던 정치 생활. 그에게 정치는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한순간, 정치를 뒤로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한 게 많다. 정치를 하는 그도 좋았지만, 나는 책을 쓰는 그가 더 좋았다. 그의 책들은 재미있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나의 삶을.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터 시작된 그의 책. <후불제 민주주의>, <청춘의 독서> 등 그의 책은 언제나 나무랄데없이 나를 기분좋게 해주었다. 그가 정치를 벗어던지고 돌아와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한다. 그렇다면, 난 기꺼이 그를 또 응원하고, 그의 팬이 될 것이다.

 

 

 아주 사적인 독서

 

나에게 독서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나는 왜, 그다지도 책을 좋아하며, 책을 갈구하며, 책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왜 책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에 파고드는 것인지. 독서를 위해 하는 독서인지, 독서에 의한 독서인지, 나를 위한 독서인지 가끔 헤깔릴 때가 있다. 로쟈. 그는 많은 책을 읽는다. 그리고, 별 것 아닌듯 하지만 진중하게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전이 붐이다. 고전에 모든 길이 있다고 말한다. 고전에 매혹되고, 다시 곱씹는 시기에 로쟈 그도 고전 읽기에 대한 책을 냈다. 그가 말하는 고전은 어떤 것일지 사뭇 긍금하다.

 

 

 

철학을 다시 쓴다

 

느닷없이 교수직을 때려 치우고, 공동체를 일구며 농부가 되길 자처한 그다. 모든 삶은 흙에서 통한다는, 생산을 하는 농부들이 바로 서고 힘이 있어야 나라가 다시 선다는 그의 철학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것을 믿기에, 그는 그렇게 산다. 쉽지 않았을 선택이었으나, 그의 삶은 대단해 보인다. 부유해서도, 명예로워서도, 권력이 있어서도 아니다. 함께 어울려 살며, 생각한대로 실천하고 사는 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뿌리를 키우고 있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뿌리를 키워내기 위해 농부의 삶을 선택했다. 삶 위에 실척적인 철학의 열매를 키워내고 있다. 그래서 그가 다시 썼다는 철학이 궁금하다. 그것은 농부의 삶으로 재정립한 철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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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가끔은 내 삶 조차도 어떤 생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석학들의 어떤 생각들이 세상의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는 바뀐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알 것이다. 7명의 석학들과 이메일로 대화하며 인터뷰한 것을 묶었다는 이 책. 석학들의 가치로운 생각이 궁금하다.

 

 

 

 

 

 

촘스키 知의 향연

 

 

 

촘스키의 학문적, 사상적 궤적을 한데 모은 책이라니, 그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돈다. 정치평론, 언어학, 강연 관련 글 등. 촘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저작과 강연, 논문이 한데 모인 이 책이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터.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그에게 다가가고 싶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 의사가 자세히 들여다 본 그리스는 어떤 곳일까?

펠로폰네소스에서 아티카, 그리스 북부 지역인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에 이르기까지. 삶과 문명에 대한 통찰로 보았을 그리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어떤 성찰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싸우는 인문학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시대. 너도나도 인문학을 말하지만, 그래서 인문학을 기웃거려보지만, 인문학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문학도 자기계발의 도구가 된지 오래. 인문학이 변질되어가는 시대에, 인문학을 점검한 여러가지 질문들.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직원을 소모품으로밖에 보지 않는 기업들. 제 배를 불리느라 바빠, 인간의 존엄성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기업들. 그런 기업들 사이에 둘러싸여  서러운 우리들. 우린 언제나 거대 기업에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 자본주의가 탄생 시킨 괴물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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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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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산 사람은 결코 앞을 어떤 세계로 건너 가는 것. 죽은 자들만이 알 수 있을 그 무엇. 되도록이면 죽음의 시간을 늦추고 싶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을 앞당겨 먼저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 두려운 시간이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그것.

 

며칠 전, 아는 선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그야말로 아는 선배였다. 나와 밀착된 관계를 맺지도 않았으며, 학교 다닐 때도 가끔 오다가다 마주쳤을 뿐, 십년 넘게 연락도 모르고 살아왔던 한 사람. 그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것이 끝일 것이라고 믿으며, 삶을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죽었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생각하기도 싫고, 두려운 게 죽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죽음을 쉽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괴로움, 고통의 끝에서 죽음을 택하는 게 왜 이렇게 쉬워졌을까? 심장박동이 정지하고, 신체 기능이 정지하며, 영혼이 사라지고, 멈춰버린 육체만 남아있게 되는 죽음. 생물학적인 의미 말고, 그 이상의 의미는 찾지 못했다. 죽음 이후의 어떤 그것. 영혼이 안식을 찾기 바라고, 세상과 단절되기 바라는 선택. 혹은 자연스러움. 그러한 죽음을 왜 그토록 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이길래.

 

이 책의 저자는 물리주의자라고 말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이원론, 인간은 육체만 존재한다는 물리주의. 사실 그의 이론에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물리주의자의보다는 이원론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에 대한 이론은 약간의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단정지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그가 물음,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라는 부분에서는 꼭 그것들을 분리해서 따져보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떤 관점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죽음의 의미는 달라지는데, 사실 죽음 이후의 생존하느냐 아니냐는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죽음'을 어떤 논리로 설명한다는 자체가 논리적이지 못한 건 아닌가 자문해본다. 죽음은 그가 말한 것처럼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다. 생물학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거나 내가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이 끝났을 뿐이다. 어느 순간, 나의 삶은 막을 내렸고, 내가 살아온 삶들은 어딘가 떠돌고, 티끌만큼이라도 이 세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내가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지만,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죽음의 가치를 따진다거나, 삶을 꼭 죽음과 연결지어 살아갈 필요는 없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가치롭게 살아야 한다거나, 죽을 수도 있는 인생이기에 무엇인가를 해야한다거나, 행복을 쟁취해야 한다거나 무엇이 되어야한다거나. 나는 죽음을 의식하며 삶을 살아가진 않는다. 적어도. 죽음과 삶은 함께 나아가고 있지만, 의식 속에서 죽음은 분리되어 있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거나, 행복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거나,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이 소중하기에 마음껏 느끼고, 기꺼이 즐긴다.

 

죽음을 어떠한 논리로 정의하고, 옳고 그르고, 그 생각을 따라가고, 어떤 이론으로 정립해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든다. 또한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저자에게는 더더욱. 나는 우리의 삶이 풍요로운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죽음 뒤에도 영혼은 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믿는다. 육체가 전부인 게 인간이라면, 이런 것들을 따지고,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좀 더 깊은 죽음에 대한 성찰에 대해 듣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이성과 논리로 파헤칠 수 있는 게 죽음이라면, 이 세계에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죽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죽음에 관한 여러가지 측면의 이론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다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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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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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의 병 하나 없는 이 있을까? 마음에 병이 있다고 해도 꽁꽁 싸매고 숨겨야하는 현실. 누구에게 위로받기 보다는 인내하다 골병이 들거나, 결국 죽음을 택하는 아픈 시대.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시대는, 사회는 개인에게 능력을 강요한다. 공부를 잘해야한다,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권력을 가져야 대접받는다,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수많은 강요 속에서 강박을 느끼면서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병들어 가면서, 병들어 버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것이 '나'이며 '너'이며, '우리'이다.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이 내게 꽤 큰 위로가 될 거라고 느낀 것은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부터다.

 

서점에 나와 있는 심리학 책들은 하나같이 "너의 마음의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해법은 이와 다르다.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자신의 관계망과 배치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와 접속해야 한다. 서로의 욕망이 긍정되어 기쁨으로 가득차고, 서로를 사랑해서 변해가며 자신의 독특한 가치에 공감하는 공동체 속으로 자신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에 따라 점차 마음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사실 심리치료사나 정신분석가, 상담사의 영역도 공동체의 돌봄과 치유의 영역을 사유화한 것에 불과하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 글은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재배치', '공동체와의 접속', '관계의 변화', '사랑'. 스피노자가 내놓는 해법들은 그리 특별하지도 놀랍지도 않지만, 우리가 잊고 사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 해준다.

 

1671년을 살고 있는 스피노자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스무여덟의 백수 김철수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이쪽과 저쪽 세계, 시대를 넘나드는 만남. 한 철학자와 21세기의 전형적인 백수가 얼굴을 맞대게 된 것이다. 이런 기이한 일이. 한 사람은 철학에서 한 획을 그엇던 '스피노자', 한 사람은 꿈도 희망도 잊은 채 사회의 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전형적인 백수. 그 둘의 만남은 기상천외하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철수. 그의 상황만 보고도 숨이 턱턱 막힌다. 제 몸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숨소리조차 죽인 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는 자랑스럽지 않은 남자친구이며, 가족에게는 취직도 하지 못해 얼굴도 들  수 없는 아들이다. 그 불안한 상황 속에서 끝도 없는 터널을 건너는 듯 두렵고 외롭다. 그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고, 가족일 수 있으며, 친구일 수 있는,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슬픈 시대의 모습이다.

 

그런 철수가 스피노자와 만났다. 그리고 철수와 스피노자는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마음의 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

불안하고 두렵고, 경쟁적이며,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 시대에서 누구나 이런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병이 생겨도 자각하지 못하고, 자각해도 치유받지 못하는 게 다반사. 갑갑한 마음을 숨겨야 하는 현실. 껍데기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해답을 스피노자와 철수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철수의 주변 인물들은 위의 병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 관계를 맺게 되는 아이, 한별이는 우을증에 걸려 있었고, 한별이의 엄마는 자로 잰듯 정확한 강박증이 있다. 여자친구 직장 상사는 경계선 인격 장애를 갖고 그녀를 괴롭혔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병'을 설명할 충분한 소재가 되며, 스피노자와 철수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 해답들을 실행하고 결국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결과가 된다. 그들이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이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속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

새롭게 관계망을 재배치 하는 것,

세상과 색다른 관계를 맺으며 생활에 혁명을 만드는 것,

변용 즉, 몸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

나를 유한한 존재로 인정하고 욕망을 긍정해 보는 것,

'되기'를 통해 나를 변화 시키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 기본이 된 다는 것.

 

사실 이렇게 요약해서 말하면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의미들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것들에 예속되어 있고, 수많은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지 느끼게 된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욕망하는 것과 무한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 욕망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병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은 나 혼자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똑같은 상황 안에서, 똑같은 관계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마음만 컨트롤하고,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뿐.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함께 느끼고 감싸고 위로해 줄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 안의 관계 속에서 나를 재배치하고, 고정된 관념 속에서 벗어나 나의 생활에 혁명일 이루어내는 것이야 말로 나를 위로하고 나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겐 모두 내재적 능력이 있다. 비뚤어진 사회와 시대가 만들어 놓은 곪아 버린 무대 위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임에도 그 시선과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고통과 상처를 키워 내 안에 상자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쩔쩔매면서 더욱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 나 혼자 하기 어렵다면, 나를 도와줄, 나와 함께할 공동체와 손을 잡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기 원한다. 그 위로는 사실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함께 무엇인가를 해보고, 박수치고, 응원하고, 함께 웃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이 책을 읽고, 철수만큼 나도 큰 위로를  받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생각에 강요 받을 필요도 없는데, 그렇게 흘러가는 무리들에 섞여 아니라는 말도 못하고 휩쓸려 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미련과 후회가 남는다. 그 미련과 후회들로 보낸 시간이 슬픔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긴 시간을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 때문에, 지금 많은 이가 고통받고 있다. 왜 고통받아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자신을 원망한 채, 사회를 원망한 채, 외로움에 몸부림친 채 그냥 떠나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내려야 할 답은 변화다. 그 변화가 여기서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 시작된 생각들이 지금 내게 전해져 위로했듯이. 많은 사람이 위로받기를. 그리고 우리 함께, 위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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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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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다해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연도 끊고, 관계도 끊고, 하나를 위해 살아가는 이는 얼마나 될까?

 

김영갑 그는, 제주도를 사랑하고 제주도의 사람을 사랑하고, 제주도의 바람과 비와 공기와 풀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진밖에 몰랐고, 사진에서 자신을 발견했고, 처절하게 자신을 고립한 채로 사진을 찍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도, 가족도, 돈도, 공간도, 아무것도 없는 채로 뭍에서 온 그는 섬사람이 되었다.

 

그의 사진은, 아름답다. 그 말 이외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사진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가 기다려온 시간, 그가 참아낸 시간, 그가 이겨낸 시간.

바람의 움직임, 구름의 움직임, 나무의 움직임. 제주도의 세월이 제주도의 흔적이 그의 사진에 담겨 있다. 제주도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를 존재하게 했고, 그를 살아가게 했다. 제주도가 있었기에 그는 고통을 참았고, 외로움을 참았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제주도의 순간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기뻤다.

 

작가는 한 줄을 쓰기 위해서 몇 년을 고민하고, 화가는 선 하나를 긋기 위해서 또 몇 년을 고민한다. 사진가 또한 그런데, 왜 사진은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느냐는 그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매달려 영혼을 바치는 사람들, 주위의 냉대와 비웃음에도 우직하게 한 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 그런 일은 팔자 좋은 사람이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게 세상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삶을 판단한다. 다른 생각으로,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며, 다른 것을 꿈꾼다.

- 44p

 

그는 제주도를 찍는 일이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과 가족의 걱정이 사진을 찍는 일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 단절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 180p

 

제주도에 와서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이, 제주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원하는 장면만 보고 싶어한다. 그 모순에 그는 안타깝다. 바람의 기다림을, 파도의 기다림을 모르는 이가 과연 제주도를 찍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제주 살이를 십수 년 해 온 그는 사진도, 제주도도 사람들이 제대로 봐주길 바란다.

 

허기짐 속에서, 고통 속에서, 냉대 속에서 제주도를 찍었던 그는 루게릭병과 맞닥뜨린다. 신은 왜 이리 불공평한 것일까? 하나만 알아왔던 그에게 다른 세상을 보라고 그런 고통을 내린 것일까? 그의 병은 그에게 사진을 빼앗아 가지만, 사진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폐교를 갤러리로 꾸민다. <두모악 갤러리>는 그렇게 탄생된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그때 그는 다시 새로운 일을 벌인다. 갤러리를 꾸미고 사진을 전시하고 그는 그렇게 병과 싸우고, 시간과 싸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 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대로 가지만 한참을 걷다 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 190p

 

버려야지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미련인 줄 알면서도, 그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병에 대한 집착으로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사그라지는 그의 몸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의 고집스러움, 그의 신념이 안타깝다. 왜 화해하지 못했을까? 그렇게까지 애를 쓰지 않아도 될 텐데. 그는 마음으로 미안하고, 마음으로 감사해 하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표현하지 못한다. 죽는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지, 미안함과 고마움이 차오르는 것을 두고 가는 게 힘들었을지 그가 써내려간 글에서, 그가 남겨놓은 사진에서 느껴진다.

 

사람은 없는 제주도 사진. 그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사진 어디엔가 흩뿌려놓았을 감정들이 느껴진다.

그 섬에 그가 있었다. 그 시간에 그가 있었다. 그 바람 사이에 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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