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홍세화.이상대.이계삼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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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전쟁이다. 전쟁 속에서 피칠갑을 하고 나가떨어지는 선생님과 학생. 그들은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두 명의 초등학생을 키우고 있는 나는,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숨이 나온다. 학교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인지, 주입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며 대부분의 학습은 부모에게 맡기고 있다. 아이들의 수준도 생각하지 않은 채 교과과정은 점점 어려워지기만 한다. 국어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하며, 문제는 문제대로 꽈배기처럼 꼬여 해석을 해야 할 판이다.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문제를 풀어야 하고, 학기가 끝날 때마다 치르는 일제고사 덕에 부모도 아이도 스트레스다. 인권을 보호한다는 학교는, 전혀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해주지 않으며, 담임 선생님은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두렵다.

 

어릴 때 내가 만난 선생님들을 떠올려 보면, 냉정한 선생님보다 따뜻한 선생님이 많았다. 무서워도 아이들을 감쌀 줄 알고,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꽤 많았다. 그런 따뜻함 때문이었는지, 미웠던 선생님도 어느새 잊혀져갔고 지금은 좋았던 선생님만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할까? 선생님에게서 포근함과 따뜻함을 얻을까? 그마저도 사치일까?

 

선생님은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안정적인 직업이다. 누구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더 시간을 들여 흐트러짐 없이 직선코스로 달려 얻은 성과이다. 결혼 배우자로 인기 있는 선생님. 사회에서는 좋은 직업으로 인식 되는 선생님이라는 위치.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달라보인다.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불행하게 하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사실 그것은 선생님만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선생님의 상은 얌전히, 조용히, 닥치고 하라는 것만 잘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위에서 하라는 대로 잘 하는 선생님을 선호한다. 불행한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쳐야할 선생님의 위치가 이렇다 보니, 눈치가 빠른 아이들은 선생님을 적대시하고, 무시한다.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은 불온한 9명의 선생님들이 불온해지고 싶은 또 다른 선생님들에게 자신들만의 방법에 대해 썰을 풀어낸 것을 묶은 책이다. 이책은 순응하는 선생님에게 불온해지라고 말한다. 사실, 딱히 대단해보이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냥 교육에 대한 주체성을 가지라는 것이다. 아닌 것에 의문을 품을 줄 알고, 때로는 학생의 편에 서서 학생을 돕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바꿔나갈 줄 아는 선생님이 되라는 것이다.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해되면서도 안쓰러워지는 게 또 선생님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선생님.

안주하고, 성과를 내며 승승장구할 것인가. 아웃사이더로 찍힐지언정 아이들을 위해 교육을 위해 뛰어볼 것인가.

대부분의 선생님이 선택하는 코스를 밟아 안정적으로 살 것인가. 치열하게 연구하고 고민하며 교육 현장을 바꿔나가볼 것인가.

 

이 자리에 모여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선생님들에게는 많은 고민이 있다. 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이 뼈져리게 느끼는 부조리함. 답답함. 학부모는 아주 쉽게 선생님을 욕하지만, 선생님들 또한 이유가 있다. 교사가 되고 싶지만 공무원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장. '아니'라고 말하면 찍혀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회의. 점수제로 언제나 성과점수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 선생님 말이라면 똥으로 알아 듣는 학생들. 치열하게 공부해서 얻어낸 자리지만, 정작 대우 받지 못하는 학교 안의 생활.

뿌리박힌 학벌의식, 관료주의, 성과주의,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집단. 고민보다는 답습, 의문 보다는 순응.

학생이 주인인 학교에서, 학생은 선생님에게 조련당하며 억압당한다. 그것을 죄의식 없이 지켜보는 선생님은 몇이나 될까? 선생님들은 과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침묵하는 것일까?

 

학생이 학교 화장실에 목을 메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도 위기 의식을 갖지 않는 교육. 그것이 선생님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생님이 좀 더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는 게 또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이런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이 반갑다. 적어도,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다. 고민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지 않는가? 청산이 벽계할 혁명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기억할만한 선생님 한 두명쯤 있었으면 바랄 뿐이다. 엇나가는 아이들에게 겁박과 무시, 폭력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를 받아들일 넓은 마음을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스스로 불온하다고 말하는 여기, 이 선생님들은 그러한 작은 싸움부터 시작했다.좋은 선생님은 시험문제를 잘 찍어주고, 애들이 하고 싶은대로 방치하는 선생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식만 귀한 줄 아는 학부모와 싸울 줄 알고, 상처입은 아이들을 위로할 줄도 아는 그런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불온한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불온한 세상이 된다고 하여도~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 조너선 코졸, <<교사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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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를 읽고 꽤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그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벌써 이책을 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전하는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시간론이 궁금하다. 시간에 쫓기듯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말이다.

 

 

 

 

 

 

 

 

 

 

 청춘의 커리큘럼

 

 교단에서 발로 뛰며 이시대의 아이들을 보아 온 그.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더 처절했고 가슴이 아팠으며 와 닿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말보다 함께 고민하는 그를 봐왔기에, 이번엔 청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어른이 좋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어른이다. 그래서 신뢰가 가며, 믿음이 간다.

 

 

 

 

 

 

 

 

  후쿠시마 이후의 삶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이다. 하지만, 그 재앙도 인간에게는 깨달음을 줄 수 없었나보다. 원전의 위험은 대재앙을 불러온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는 짓은 그만해야한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들은 묵묵히 살아온대로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는 이 사고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들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지기 바랄 뿐이다.

 

 

 

 

 

 

 

  언어 감각 기르기

 

유쾌한 마리 여사의 신간이 오랜만에 눈에 띈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글을 쓰는 방식은 참 다채롭고 재미있다. 그녀에게 배우는 언어 감각은 무엇일까?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나를 재미있게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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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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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지적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문명은 발달하고 있음에도 왜 사람들은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치판단을 제대로 못하며,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가는 게 편하고 옳다고 믿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니 이것은 참 절망적이라고 해야할지 황당하다고 해야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어리석은 대표를 앞세워, 그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줄 거라고 믿는 안이한 태도. 한 명이 세상 모든 것을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믿음.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지 궁금했었다. 과연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이것은 비판없이 받아들인 정부의 정책과 수많은 제도가 한 몫을 해온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싸우고 싶지 않은 것은 대중이었고, 그 마음을 교모하게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맞서지 않도록, 덜 피곤하게 삶을 살아가도록, 그리하여 무언가를 바꾸려 하기 보다는 순응하고 살도록 만드는 정치, 정책, 정부. 

 

실로 지난 정부에서 우리는 이것들을 몸소 체험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점점 무기력해져가는 대중을 보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미 그들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대중이 뭉칠 수 없도록 겁박하고 협박해왔다. 미디어를 이용하고, 국가 권력을 이용했으며, 국가 기관을 이용했다. 대중은 똘똘뭉쳐 맞서 싸우려다 힘을 잃었고, 기운을 잃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결국 혼자 아무리 용을 써봐야 되지 않는다는 무기력감을 느끼고, 다른데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아주 민주적이지만, 의아하게 말이다.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듯 하지만, 전혀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태도. 비판과 비난보다는 수긍과 무관심, 모른척이 더 우세하여 벽에 가로막힌 듯한 느낌. 전체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함께 사는 삶보다는 내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이미 민주주의를 지배하고 말았다. 투쟁보다는 체념으로 똘똘 감싸고, 우리의 삶에 심각하게 해를 끼칠 것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재미나 가십 거리의 사건 사고에 더 관심있어 하는 태도. 스스로 무너져가는 민주주의를 본다.

 

그들은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지 않다.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된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약간의 대중만 자신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표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에게 생계가 어려운 대중이 잘 사는 것이 중요할까? 그들이 잘 살게 되어 머리를 깨우고, 생각을 하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일일까? 그들은 대중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들에게 무관심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보기엔 그럴 듯한 정책을 만들고, 달콤한 말로 나라의 공공기관을 사기업에 팔아 넘겨 배를 불리며, 대중들의 피를 빨아먹는데 열을 올릴 뿐이다.

 

하지만, 우린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관심도 없을 뿐더러, 내가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혔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도 거대 권력이 만들어 놓은 최면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진실을 깨닫길 바란다. 우리가 얼마나 퇴행하고 있으며, 권리조차 정복당해 허우적 대고 있는가를.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몰락은 계속될 것이며, 특권은 한쪽에만 치우쳐 더욱 무기력해지고 말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미국의 몰락과 너무도 닮아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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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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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조르바를 보며, 부럽기도 얄궂기도 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굳어진 상식보다는 본능과 생각대로 살아가는 그리스인 조르바. 이 책을 읽으면서 박경철 씨가 어떤 자유를 원했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의 내용은 무척 진중하며, 꼼꼼하다. 사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가 듣게 되는 수많은 정보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역사, 신화, 여행지의 상황까지. 설렁설렁 여행을 따라가고 싶다는 기분으로 읽었다간, 지도를 훑고, 신화에 나온 인물들을 찾아보고, 지역까지 뒤져보게 될지도 모른다.

 

격정과 무기력이 공존하는 그리스. 그들의 상황에서 우리를 본다. 사실, 우리보다야 심하지 않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이 복잡하고 위태위태한 상황이 그리스의 지금 상황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역사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온 그리스에는 수많은 유적들이 존재하고, 그 유적들에는 겹겹이 쌓인 전 세계를 떠돈다. 그 이야기들 사이에 숨겨진 것들은 인간의 삶에 많은 깨달음을 주었지만, 이상하게 역사는 반복된다. 어떠한 교훈도 그저 교훈일 뿐, 신화와 역사 속에서 이미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나타난 일이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일상에서도 잊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를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욕망하며, 번영을 원했고, 절대적이 되고 싶었던 역사 속 신화 속 주인공들이 싸우며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고, 그 비극적인 상황이 결국 돌고 돌아 더 잔인한 형태로 나타났던 사실. 그것들은 지금 우리의 삶과 다를바 없다. 작가는 공간을 이동하며 공간에 남겨진 흔적들을 더듬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쓸어내리는 동안 우리의 모습이 자꾸 겹쳐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군사강국을 지향하며, 강했으나 야만스러웠던 스파르타에서 그가 답답한 마음을 느꼈던 것도,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강자만 살아남게 되는 이 사회에 대한 답답한은 아니었을지. 병약하게 살아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는 죽기를 강요한 사회는, 약자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거나 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우리의 사회와 닮아 있었다. 결국, 스파르타는 인간에게 많은 상처를 입혔다. 우리가 지금 상처 입고 있는 것처럼.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다툼이 일어나고, 그 사이에 문명이 세워졌다. 인간과 역사 사이의 신화, 그리고 그 신화 속에서 전해져오는 신들. 이들이 주는 깨달음은 결국 반복되지 말아야 할 고통과 아픔일지도 모른다. 조금 과장되었거나, 믿지 못할 이야기라도 그 안에는 귀중한 것들이 있다. 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함께 떠났으나, 어떤 마음으로 왜 떠났을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이 책은 단순히 공간에 대한 어떤 이야기라고만 생각할 수만은 없다.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그리스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그리스였을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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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괴짜들 - 무턱대고 나서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국경없는의사회 이야기
신창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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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고 싶어! 난, 세계 평화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은 것은 둘째치고 그 하얀 조끼가 너무 탐나! 그 조끼를 입고 세계 위험지역을 다니며 구호활동을 벌인다면 얼마나 신나겠어. 허락해줘!"

라고 말한다면.

 

"니가 뭘 잘못먹어도 한참 잘못먹었구나! 그렇게 그 조끼가 입고 싶으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던지, 날 죽이고 가라! 세계 평화? 어려운 사람 돕기? 좋아하네. 니 가정이나 잘 돕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지. 이게 어디 헛바람이 들어가지고!"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남들이 하는 일은 대단해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들을 포기하고, 내 주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도 목숨을 담보로 무언가를 하겠다면, 세계 평화는 둘째치더라도 나의 심적 평화를 공격하는 거냐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돕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며,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난관과 현실적 제약들을 벗어던져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주변 사람부터 설득해야 하는 일. 그 중 하나가 국경없는의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국경 없는 괴짜들>을 쓴 이 작가는 그 많은 것들을 돌파하고 '국경없는의사회'로 돌진했다. 그것도 하얀 조끼를 입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고 싶다는 황당한 이유로 말이다. 스펙도 나름 훌륭해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던 사람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결혼할 여인을 설득해 국경없는의사회로 취직하겠다며 지원서를 작성했다. 해외경험도 유학과 몇 번의 여행이 전부, 구호활동을 해본적도 없고, 하얀조끼를 입고 폼나게 살고 싶다는 마음만 충만한 이 사람이 말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겼던 이 지원서가 통과되어 얼떨결에 국경없는의사회 교육을 받으러 갔다. 청운의 품을 꿈고 도시로 상경한 청년의 각오로, 하얀조끼와 위험지역에서 활동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말이다.

 

 

처음 발령 받은 지역은 파키스탄. 이슬람 국가로, 서방 국가들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외국구호단체들조차 적으로 간주하기에 하얀조끼는 물론 옷도 요란하지 않게 입어야 하는 나라. 하얀 조끼를 입고 싶다는 꿈은 저멀리 날라가고, 동료들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는 작가.

이혼하면서 위자료로 부티크를 아내에게 넘기고 우울해하다가 할 일 없어서 국경없는의사회로 오게 된 리카도르.

은행에 다니던 한 가족에 가장이 아이들이 재미없게 산다고 한 말에 충격받아 지원했다는 드니스,

국경없는의사회 벨기에 대표인 남자친구를 따라온 오드리, 사람을 돕고 싶다면서 하이힐이 더러워진다고 차에만 앉아있던 수옹누,

비만 오는 오스트리아의 겨울을 피하기 위해 지원했다는 루드빅.

 

 

그의 황당한 동기만큼, 국경없는의사회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모두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처 박사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 그들에게도 각자의 생각과 삶이 있고, 충동적이지만 자신만의 적절한 이유도 있으니. 작가만 괴짜인 줄 알았더니, 단체에 모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대충대충 설렁설렁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남들은 생전 올 생각도 안 하는 위험천만한 지역으로 발령받길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지만, 각자의 즐거움도 지키려 하는 그들은 술이 반입되지 않은 파키스탄에서 몰래 반입한 술로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하며. 개성만점 옷차림으로 검문소에 걸려 진땀 흘리기도 한다. 병원은 한국에선 창고 수준도 안 되는 곳이지만, 병들고 아픈 이들은 그곳을 찾는다. 탈레반의 테러에 언제나 마음 졸여야 하고, 혹여나 폭탄이 병원 안으로 들어올까 금속탐지기를 설치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여자용을 따로 구비해야한다는 황당한 조건도 들어줘야 했다.

 

 

예멘으로 발령 났을 때는 퍼세식 화장실에 기겁을 했고, 하늘로 쏴올린 총알 때문에 사람들이 병원에 실러오기도 했고,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고용해야 하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대처 훈련 덕에 시체실에서 누워 있는 소름끼치는 일도 있었다.

정부 없는 소말리아는 전기 요금, 인터넷 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쌌고, 사람을 돕겠다고 설치한 난민캠프조차 단체에서 월세를 내야한다는 터무니없는 요구도 들어줘야했다. 단체들끼리는 구호 활동을 경쟁처럼 벌였으며, 그 경쟁에 화가난 난민들이 소동을 벌여 피해를 입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그가 소말리아에 승인 없이 갔다는 이유로, 그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일들은 그가 국경없는의사회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해도 무척 소중한 일들 중 하나이다. 작가는, 심각한 일에 처해도 유머러스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것에 분명하다. 물론, 경험했을 그 상황에서는 무척 심각했을 것이며, 공포에 질리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했을 것이다. 황당해서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을 것이고,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을 것이다. 예측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것, 살아온 모든 경험과 감각을 동원해도 상상하지도 못한 일에 맞닥뜨리며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 모든 심각함을 즐겁게 이야기한다. 객관적 시선으로 보기에는 상상하기도 싫으며, 심각할지 모르지만 경험한 그의 시선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고 보람이다.

 

 

어떤 딱딱하고 재미없는 말로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놨다면 '아! 이 단체는 이런 일을 하는가 보군. 뭔가 무척 위험하고 할 게 못되는 일이군'이라고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석구석 녹아있는 그의 유머에 웃게 되고, 그가 이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그는 괴짜들만 모인 이 단체에 매료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시종일관 심각하고, 진지해야 한다면 불안하고 두려움 가득한 곳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나 있었을까?

 

 

폼나게 살고 싶어 떠난 그 마음. 아직도 간직하고 있겠지?

그는 꽤 괜찮은 보물섬을 발견한 것 같다.

 

 

 

 

경없는의사회 한국 www.msf.or.kr

국경없는의사회 (Médecins Sans Frontières, MSF)는 독립적인 국제 의료 구호 단체로 60여 개국에서 분쟁, 질병, 영양실조, 자연 재해, 인재에 고통 받는 사람들과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긴급구호를 하고 있다. 1971년 나이지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의사와 언론이 힘을 합쳐 설립했고, 긴급 의료 구호에 초점을 맞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구호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독립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3만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27개의 지부에서 현장활동가 모집,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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