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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평점 :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의 병 하나 없는 이 있을까? 마음에 병이 있다고 해도 꽁꽁 싸매고 숨겨야하는 현실. 누구에게 위로받기 보다는 인내하다 골병이 들거나, 결국 죽음을 택하는 아픈 시대.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시대는, 사회는 개인에게 능력을 강요한다. 공부를 잘해야한다,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권력을 가져야 대접받는다,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수많은 강요 속에서 강박을 느끼면서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병들어 가면서, 병들어 버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것이 '나'이며 '너'이며, '우리'이다.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이 내게 꽤 큰 위로가 될 거라고 느낀 것은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부터다.
서점에 나와 있는 심리학 책들은 하나같이 "너의 마음의 태도나 자세를 바꾸어라. 그러면 마음이 치유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해법은 이와 다르다.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내재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자신의 관계망과 배치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와 접속해야 한다. 서로의 욕망이 긍정되어 기쁨으로 가득차고, 서로를 사랑해서 변해가며 자신의 독특한 가치에 공감하는 공동체 속으로 자신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에 따라 점차 마음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사실 심리치료사나 정신분석가, 상담사의 영역도 공동체의 돌봄과 치유의 영역을 사유화한 것에 불과하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 글은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재배치', '공동체와의 접속', '관계의 변화', '사랑'. 스피노자가 내놓는 해법들은 그리 특별하지도 놀랍지도 않지만, 우리가 잊고 사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 해준다.
1671년을 살고 있는 스피노자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스무여덟의 백수 김철수가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이쪽과 저쪽 세계, 시대를 넘나드는 만남. 한 철학자와 21세기의 전형적인 백수가 얼굴을 맞대게 된 것이다. 이런 기이한 일이. 한 사람은 철학에서 한 획을 그엇던 '스피노자', 한 사람은 꿈도 희망도 잊은 채 사회의 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전형적인 백수. 그 둘의 만남은 기상천외하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철수. 그의 상황만 보고도 숨이 턱턱 막힌다. 제 몸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숨소리조차 죽인 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는 자랑스럽지 않은 남자친구이며, 가족에게는 취직도 하지 못해 얼굴도 들 수 없는 아들이다. 그 불안한 상황 속에서 끝도 없는 터널을 건너는 듯 두렵고 외롭다. 그는,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고, 가족일 수 있으며, 친구일 수 있는,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슬픈 시대의 모습이다.
그런 철수가 스피노자와 만났다. 그리고 철수와 스피노자는 이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마음의 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증, 신경증, 강박증, 과대망상증, 도착증, 공황장애, 중독, 경계선 인격 장애, 조울증, 관계망상, 분열증, 공포증.
불안하고 두렵고, 경쟁적이며,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 시대에서 누구나 이런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병이 생겨도 자각하지 못하고, 자각해도 치유받지 못하는 게 다반사. 갑갑한 마음을 숨겨야 하는 현실. 껍데기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해답을 스피노자와 철수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철수의 주변 인물들은 위의 병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 관계를 맺게 되는 아이, 한별이는 우을증에 걸려 있었고, 한별이의 엄마는 자로 잰듯 정확한 강박증이 있다. 여자친구 직장 상사는 경계선 인격 장애를 갖고 그녀를 괴롭혔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병'을 설명할 충분한 소재가 되며, 스피노자와 철수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 해답들을 실행하고 결국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결과가 된다. 그들이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이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속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
새롭게 관계망을 재배치 하는 것,
세상과 색다른 관계를 맺으며 생활에 혁명을 만드는 것,
변용 즉, 몸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
나를 유한한 존재로 인정하고 욕망을 긍정해 보는 것,
'되기'를 통해 나를 변화 시키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 기본이 된 다는 것.
사실 이렇게 요약해서 말하면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의미들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것들에 예속되어 있고, 수많은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지 느끼게 된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욕망하는 것과 무한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 욕망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병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은 나 혼자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똑같은 상황 안에서, 똑같은 관계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마음만 컨트롤하고, 바꾸려 한다면 그것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뿐.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함께 느끼고 감싸고 위로해 줄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 안의 관계 속에서 나를 재배치하고, 고정된 관념 속에서 벗어나 나의 생활에 혁명일 이루어내는 것이야 말로 나를 위로하고 나를 바꿀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겐 모두 내재적 능력이 있다. 비뚤어진 사회와 시대가 만들어 놓은 곪아 버린 무대 위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임에도 그 시선과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고통과 상처를 키워 내 안에 상자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쩔쩔매면서 더욱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 나 혼자 하기 어렵다면, 나를 도와줄, 나와 함께할 공동체와 손을 잡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기 원한다. 그 위로는 사실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함께 무엇인가를 해보고, 박수치고, 응원하고, 함께 웃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이 책을 읽고, 철수만큼 나도 큰 위로를 받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생각에 강요 받을 필요도 없는데, 그렇게 흘러가는 무리들에 섞여 아니라는 말도 못하고 휩쓸려 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미련과 후회가 남는다. 그 미련과 후회들로 보낸 시간이 슬픔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긴 시간을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 때문에, 지금 많은 이가 고통받고 있다. 왜 고통받아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자신을 원망한 채, 사회를 원망한 채, 외로움에 몸부림친 채 그냥 떠나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내려야 할 답은 변화다. 그 변화가 여기서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 시작된 생각들이 지금 내게 전해져 위로했듯이. 많은 사람이 위로받기를. 그리고 우리 함께, 위로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