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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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쓰레기 더미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미 인간답게 산다는 말을 버린지 오래다. 그저 고된 노동과 매서운 폭력을 피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을 원할 뿐이다. 얼어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맞아죽는 것이 두렵다. 폭력이 두려워 인간답게 자는 것을 포기한 제이크. 이 아이가, 또 다른 한 아이를 만난다. 구두를 잃어버린 로사. 아니 새로운 구두를 원하기에 쓰레기 더미에 구두를 버리고 갔던 아이. 이 둘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어버리면 날 대리지도 못할 거고, 술 마시려고 내가 번 돈을 몽땅 훔쳐가지도 못할 거고, 그리고 돈을 더 벌어오지 않는다고 또 때리지 못할 거야. - 8p  
   

제이크의 생각이다. 그를 때리는 것은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술값을 대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일을 해도 굶주림에 시달리고, 씻지 못하고, 맞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상에서 파업이 시작된다.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파업. 그 속에서 아이는 또 다른 고통을 경험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언니와 엄마는 공장에 다니는 로사. 그녀는 공부만이 새로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선생님에게 주입된 신념은 파업은 나쁜 것이라는 것. 하지만, 엄마와 언니는 파업을 한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모른 상황에서 주입된 신념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린다. 무조건 파업을 반대하고 나선다. 파업을 하면, 가족 모두가 배고파질 거라는 생각, 파업을 하는 자체가 나쁜 거라는 생각.

   
  "제발, 엄마. 엄마랑 애나 언니는 파업하면 안 돼요. 다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폭도들이 난폭해질 거라고요."
로사는 차마 자신의 진짜 생각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우린 뭘 먹어요? 집세는 어떻게 내고요?
"로사 알겠니? 저들은 주급에서 두 시간만큼 임금을 깎겠다는 거야. 그건 우리에게서 빵 다섯 덩어리가 사라진다는 소리야. 일을 해도 내 자식들이 배를 곯고, 파업을 해도 내 자식들이 배를 곯지. 내가 뭘 하든, 우리는 굶주리는 거야. 일하고 굶느니 싸우고 굶는 게 낫지 않겠니, 응?" - 42p
 
   

엄마와 언니는 일을 하고도 굶주리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온몸을 바쳐 일하고도 공장주만 배부르는 세상에 사는 것이 너무나 신물나는 것이다. 하지만, 로사는 이해하지 못한다. 굶주림을 걱정하면서도 새로운 구두를 갖고 싶은 로사. 그녀에게 '빵과 장미'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 삶을 꿈꾼다는 것을, 로사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깨닫게 된다.

제이크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도둑질을 하게 된다. 거리를 떠돌게도 된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집에 들어가면 술에 쩔은 아버지의 매질만 기다리고, 밖을 떠돌면 춥고 배가 고플 뿐. 어떤 현실적인 대안도 없는 제이크는 사회의 피해자다. 도움을 요청할 이도, 도움을 줄 이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성당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고도, 그 돈으로 아버지에 술을 사는 종속적인 삶. 그렇게 살아왔기에, 어떤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에 어린 아이는 부모의 노예가 되었다. 제이크는 탈출하고 싶다. 그리고 마침,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아이들을 '뉴욕'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일 뿐, 노동자의 아이가 아니다. 이 참담한 삶을 벗어나고 싶은 제이크는 떠나고 싶어 한다. 그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모든 것이 자신이 사다준 술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아이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 로사의 뒤를 밟아 기차에 올라탄다.

그들이 당도하게 된 것은 버몬트. 첫 번째 목적지와 다른 곳. 제이크는 어떻게든 뉴욕으로 가 새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버몬트에 도착했을 때부터 쉽게 떠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 안에서 다른 삶이 시작된다. 거짓말로 많은 것을 숨겨야 하는 로사와 제이크의 생활은 위태위태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따뜻한 말, 따뜻한 잠자리, 따뜻한 위로. 결국, 상처받은 제이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 하지만, 거짓말이 탄로나면 쫓겨나고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이크. 그런 제이크를 안쓰럽게 생각해 거짓말을 자꾸 해주게 되는 로사. 그들의 우정 사이에, 제르바티 씨가 있다. 아들을 잃고 상처받은 제르바티 씨는 제이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희망을 얻는다. 제이크 또한, 행복을 누릴 권리를 선물 받는다.

'파업'이라는 소재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고통받는 아이, 가족들. 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원했을 뿐이다.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원했을 뿐, 근근히 버텨가는 삶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원했을 뿐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하지 않은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이루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빵과 장미' 모두를 얻을 수 있었다. 힘을 합하다.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 과정. 인간과 인간이 연결된 끈까지도 느낄 수 있다. 

100년 전의 파업. 파업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안에서 풍기는 따뜻함. 희망. 이런 것들 이외에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빵과 장미의 싸움을 돌아보게 한다. 시대가 흐르고, 예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더 나은 삶이 아님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빵을 구하지 못해 굶주리는 일은 계속 되고 있으며, 장미향을 맡을 여유나 희망조차 없는 이들은 많다. 우리는 제이크와 로사, 버몬트 마을 사람들, 제르바티 씨처럼 서로 연대해야 한다. 상처를 쓰다듬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빵과 장미'의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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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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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있어도 부족한 게 돈이라지? 사람 마음이 그런 것인지? 아님 이 물질로 가득찬 소비 세계 앞에서 욕망을 억누르기 힘든 것인지. 종종 '돈'으로 인해 생겨나는 일들은 인간의 존엄마저 무너뜨리곤 한다. 나 또한 '돈' 앞에서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곳곳이 돈이며, 시간 시간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유쾌한 입담꾼, 인문학자,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 그녀의 유쾌발랄한 비판이 '돈'에까지 와닿았다.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된 이 기획은 '돈'의 욕심과 탐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반성이라면 반성이랄까? 하지만, 쉽게 돈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에서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경제 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돈, 돈, 돈'이 판치는 세상이다. 땅 한 평도 돈으로 환산된다. 얼마나 더 많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을지에 따라 위로 위로 뻗어나가는 건물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900원 짜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인들은 수백만 원도 넘는 가방을 뽐내고, 빚으로 산 집을 뽐내며 대출금 때문에 허덕이고, 뭘 하고 싶어서 돈을 번다기 보다는 돈을 소비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세상. 이러한 상황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이러한 비판이 더 설득력 있었던 이유는, 그녀야 말로 '돈'을 제대로 쓰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소비'는 그녀가 말하는 '순수증여'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욕심과 욕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욕망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도통 쉬워보이지 않는다. 

   
  자본은 화폐의 그와 같은 속성을 극단화한다. 돈이 돈을 낳는 것, 생식하는 화폐, 그것이 곧 자본이다. 자본은 자기 가치를 증식하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특히 금융자본은 이런 화폐의 ‘속성’을 최고의 형태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미다스 왕의 오래 전 예언까지 실현하고야 말았다. 금융자본은 한마디로 버블경제다. 버블이란 거품이요 신기루다. 다시 말해, 산업자본이 가지고 있었던 돈과 인간, 돈과 살림 사이의 최소한의 연관관계도 해체해 버렸다. 마침내 대지가 사라진 것이다! 어떤 목적도, 방향도 없는, 그리고 휴식조차 없이 무한을 향해 달려가는 화폐, 금융자본! 하여, 이 자본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순환계를 파괴하고 잠식해 버린다. 정신분석에서 죽음 본능이 하는 역할, 병리학에서 암세포가 하는 역할을 삶 전체, 세계 곳곳에서 수행한다. 요컨대, 자본과 생명은 본래적으로 정반대의 벡터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필시 존재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 – 67~68p  
   

화폐, 이것이 부른 공포와 재앙. 갈곳 잃은 멧돼지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것은 멧돼지가 포악해서가 아니다. 그 깊숙한 곳을 파헤치면 결국 '신자유주의'가 파헤쳐놓은 자연, 망가져버린 생태계가 있다. 곳곳에서 파헤치고, 짓고 올리고, 팔고 돈을 불리고. 그것이 다 인 것처럼 모두가 재앙을 쫓는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멧돼지'라는 동물은 자본에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 뿐인가. 여기 저기 삽질을 해대며 파헤치고 있는 강바닥의 재앙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개발만이 경제를 살리는 길인지 정확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분별하다. 그것은 다 '돈' 때문임을 우리는 한다. 하지만, 막지 못하고 있다. 갈등 때리고 있는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한다면, 손에 돈을 쥘 인간들이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개발로 땅 값이 오르고, 개발로 건설사가 배를 불리고, 개발로 경제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거라는 착각에 빠지고. 결국 그 '돈'의 망령은 아이들의 소비행태까지 잠식해 나가고 있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가 '외식'이 아닌 '회식'이 된 세상이 왔다. 정말 부모들은 등골빠지게 돈을 벌어도 모자랄 판이다. 초등학교만 입학하면 양손 가득 안겨줘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마련해 줘야지, 생일 파티는 물론이고, 방학 때마다 돈으로 덕지 덕지 칠한 캠프도 보내줘야지. 남들 하는 거 다해주다가 지쳐 쓰러진다. 더 웃긴 건 아이들은 감사해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사랑으로 느끼지도 않는다. 그냥 부모로서의 의무이다. 일반화된 아이들의 생활에 맞장구 쳐주지 못하는 부모는 능력없는 부모일 뿐이다. 그게 서러워 빚이라도 내서 키운다. 그야말로 행복과 평화는 '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사람이 오면 더불어서 많은 것이 함께 온다. 밥과 공부,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 활동, 기타 등등. 현대인은 이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러니 평생 죽어라고 벌어도 항상 모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인복으로 해결한다면? 돈을 버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 151p  
   

그녀는 가까운 예로 <수유+너머>에서의 돈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밥과 공부를 함께 하며, 사람과 함께 '돈'의 필요함을 채우는 공동체. 돈의 노예로 살지 않고, 돈을 나누며 사는 공동체. 이것은 정말 유익하고 필요한 롤모델이다. 조금씩 조금씩 느리지만 천천히 이러한 공동체가 생겨난다면,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쉽게 벌고 싶은 돈'도 많은 문제를 자아낸다. 고생은 하기 싫고, 돈은 벌고 싶고, 뭘 해서 벌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고생은 피하고 싶은 현대인들, 대학에서 죽어라 토익, 토플에 집중해 대기업에 들어가면 재미없는 일을 하며, 무차비한 경쟁까지 견뎌내야 한다. 무조건 견뎌야하는 '직업'은 절대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비교적 돈을 많이 벌 수 있기에 견딘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우리 사회에도 절대 유익한 에너지를 줄 수 없다.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돈'보다 '재미', '즐거움', '행복'에 집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생의 핵심은 몸이다. 생각은 가능한 한 내려 놓고 몸을 주로 써야 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몸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그러면 그 에너지를 주로 정신적인 데 쓰게 마련이다. 여기서 태과/불급이 발생한다. 안 써도 되는 심력을 지나치게 쓰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중적으로 어긋난다. 몸은 너무 안 써서 탈이고, 머리는 지나치게 골몰해서 탈이고, 결국엔 몸과 마음 둘 다 파탄에 이르고 만다. 실제로, 요즘 청년들은 거죽은 멀쩡한데 속은 다들 곯았다. 성인병, 노인병이라 할 것들을 이미 10대, 20대에 앓고들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생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는데, 이건 정말이지 ‘작전미스’다. 거꾸로 해야 한다. 고생살이를 기꺼이 해야 이 모순들이 해소된다. 몸이 수고롭게 되면 마음은 절로 쉬게 된다. – 83p  
   

위부터 반성을 해야 아래도 변화할 텐데. 아니 아래가 변화해야 위가 반성하는 것일까? '돈' 때문에 거꾸로 가는 사회에서 무엇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점점 삭막해져 간다. 우리는 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알면서 놓지 못하는 그 물질. 그것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처에서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미숙 선생님은 언제나 이러한 반성을 끌어낸다.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킨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소유로부터 벗어나건 소유의 현장으로 들어가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유다! – 소유에서 자유로! 존재의 무게중심을 이렇게 옮겨 놓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순수증여라는 ‘비밀지’에 도전할 수 있다. – 194p  
   

물질 안에서 의식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태연해질 수 있다면. 내 것을 '우리'의 것이라고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돈의 순환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을까?

부록에 등장하는 친구들을 보며 어렴풋이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44만 원에 행복해하는 김해완은 돈에 미래를 두지 않고, 자신에게 미래를 둔다. 44만 원으로 유쾌하게 사는 방법을 궁리한다. 시성의 보리기금 보고서는 '돈' 자체를 뿌듯하게 만들어준다. '돈'이 진정한 능력을 뿜는 것은 역시 '소유' 보다는 '자유'라는 말이 공감가는 부분이다.

   
  우리가 삶에서 하는 모든 일은 우리에게서 비롯된다. 재충전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비우고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빈 그릇이 되는 것이며, 한쪽 손을 들고 축복을 받은 후에 다른 손을 열어서 그것을 통해 그 축복이 다른 이들의 삶 속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베어 하트,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1999, 298쪽) – 200p  
   

삶도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해야 잘 굴러간다. 꽉꽉 눌러담기만 하다가는 언젠가 '뻥'하고 터져버린다. '돈'도 마찬가지 아닐까? 축적하여 뽐내는 '돈'은 무가치하며, 재미없다. 자신에겐 한없이 사치스럽지만, 나눔을 모르는 사람은 탐욕스러운 돼지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돈'에 대한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른다. 돈으로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삶. 그것을 꿈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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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6:39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오너 셰프 레시피 - 스타 셰프들이 공개하는 특급 레스토랑 레시피 100가지
배예환 외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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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먹고 싶은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문득 생각나는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있는 요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세상. 입 안으로 들어가는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도 당연. 웰빙, 웰빙 하며 더 맛있고, 더 좋은 것을 찾는 시대이니 만큼 맛과 멋, 그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요즘이겠지. 자, <오너 셰프 레시피>를 여는 순간, 맛과 멋 그 둘다 만족시키는 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것은 그냥 '요리'가 아니다. 셰프의 영혼과 철학이 담긴 요리다. 그래서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땀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숨길 수도 있는 레시피를 떡하니 내어놓은 그들은, 아마 변화를 멈추지 않는 셰프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만의 노하우가 담긴 요리의 레시피를 이렇게 공개하진 못할 터이니.


배예환 셰프, 이탈리안 레스토랑 <예환>



 
 
동화 속에 사는 딸기 공주 같은 배예환 셰프. 그녀의 웃음처럼, 그녀의 요리도 알록달록합니다. 오감으로 따뜻함, 행복을 경험해주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처럼 그녀의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따뜻할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 가지 그라탱. 사진부터 레시피까지 촘촘히 담아놨습니다. 건강과 색의 조화, 그녀가 말하는 행복과 따뜻함이 무엇인지 금방 깨닫게 됩니다. 

 
  
 시금치 쑥갓 볶음 광어 스테이크.
이름도 길고, 독특한 이 요리의 맛은 어떨지. 시금치와 쑥갓, 광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군침이 돕니다.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재료를 만나게 해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도 셰프의 능력이겠지? 한점 물면 행복해질 것 같은 요리. 



사과 파이. 어쩐지, 내가 알던 사과 파이같지는 않다. 사과와 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얹어 구워낸 이 파이는 맛보지 않았어도 달콤함이 느껴진다. 재료가 곧 요리의 맛을 낸다는 셰프의 철학답게 예산 과수원에서 직접 수확한 신선한 사과를 썼단다. 사과 파이 한 잎 물고, 커피 한 모금. 그런 행복, 막 느끼게 해주는 디저트랄까?

닭가슴살, 채끝살, 안심, 새우, 관자, 토마토, 돼지 목살, 항정살, 연어, 광어, 대하 등등 아 이재료의 향연이란? 이탈리안 음식에 빠질 수 없는 토마토. 싱그러움이 가득한 샐러드. 구이 하나도 식상하지 않은 이 요리들. 그녀의 미소가 떠오르는 이 요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예환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만다.


유희영 셰프, 재패니즈 레스토랑 <유노추보>

 

 

그의 손은 어쩐지 입맛을 자극한다. 오동통한 손이 신뢰를 준다고 할까? 그가 써는 회를 낼름 집어 입안으로 넣고 싶다. 그만큼, 괜히 신선한 것 같고 맛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거뭇거뭇한 수염과 동그란 안경, 큰 단추가 달린 유니폼을 입은 그가 내놓는 요리라면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친해지고 싶은 친근감이 있다. 저기 저 오동통한 손에 무한한 섬세함도 숨어 있을 것 같단 말이다. 맛있는 일본 요리를 떡하니 내어놓을 것 같단 말이다.

 

 

참치 무침 산마 야마카케.
아! 이런, 야들야들한 이 빛깔에 사진 위에 혀를 붙이고 날름거릴뻔 했다. 부드러움과 신선함이 한껏 느껴진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산마는 어떻고? 당장 먹을 수 있는 요리도 아닌데, 요리가 내 앞에 떡하니 등장한 것처럼 '왜 이리 양이 작아?"하고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먹어보기도 전에 양을 탓하는 아쉬움이 벌써 솟아 오르는 거다. 이 섬세함은 어쩌고. 붉은 참치 아래 깔린 이 녹색 야채는 식욕을 더 자극한다.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의 손끝에서 펼쳐졌을, 감동의 손놀림을 상상하며.

 



초콜릿 갈릭 페스토 도미 마쓰가와.
이름 한 번 길고 어렵지만,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재밌다. 생선에 초콜릿? 이런 조화가? 흩뿌려진 초콜릿이 굉장한 비법을 가진 소스같이 보인다. 맛의 섬세함은 이런 것인가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하얀 도미살과 브라운 빛 초콜릿의 조화라니.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요?
 



 
사이쿄이소 소스 쇠고기 가지롤.
난 가지가 좋다. 그래서 편협한 내 취향대로 여기 또 나타난 가지 요리를 들여다본다. 뭔가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가지처럼 보이지 않는 이 요리가 재밌다. 일본의 된장인 백색 된장으로 만든 소스를 뿌려 먹는다는 것도 흥미롭다. 각국의 요리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문화마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또 즐겨 먹는 식재료까지 만나게 된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일수록 기대대고, 흥미롭다. 이 요리 또한 그랬다. 카시스, 그레나딘 시럽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양념들을 만날 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셰프들의 비법을 전수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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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페이지에는, 그의 손가락이 많이 등장한다. 굵고 다부진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진 요리들은 어쩐지 맛있을 것만 같다. 일본 요리를 떠올릴 떄 초밥, 회 정도로 머무른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을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 무지한 요리 상식이여. 믿음직한 오너 셰프의 요리만 봐도 우리는 많은 일본 요리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진경수 셰프, 프랑스 레스토랑 <라 싸브어>





고집쎈 장인 분위기가 난다. 정통을 고집할 것도 같다. 웃음기도 없이, 일에만 열중하고 있는 그는 맛이 틀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순수한 미각'에 '순수한 프랑스 요리'만 고수할 것이라는 것을 분위기를 통해서만도 느낄 수 있다. 보이는 대로 사는 사람답게 그는 일관성, 자신감, 심플함을 고집하며 레스토랑을 경영한다. 신뢰를 잃는 셰프가 되지 않기 위해 고집을 고수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프랑스 요리도 신기한 게 많다. 이건 아티초크 찜.
아티초크는 지중해 연안 바닷가에서 자라는 국화과 식물이란다. 꽃봉오리 부분을 따서 익혀 먹거나 갈아서 수프를 해 먹는단다. 통조림으로 판다고 하니, 집에서도 손쉽게 해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으나. 사실, 진짜 맛은 셰프에게 맡겨야 하지 않을까? 뭐가 달라도 다를 테니 말이다. 색만 다르지, 혹 색을 뺀 무화과가 아닌가? 라고 살짝 착각한 요리다.




 
푸아그라 테린.
테린은 가금류나 육류, 돼지의 간, 생선, 게살 등을 갈거나 얇게 저며서 여러 가지 야채들과 버무린 뒤 직사각형의 틀에 층층이 쌓아 젤라틴처럼 굳힌 것이란다. 그걸 또 오븐에 굽는 모양인데, 이건 굽기 전 재료의 모양이다. 음, 푸아그라는 말로만 들어봤지 먹어본 적이 없다. 모양도 아름답고, 뭔가 달라보인다. 흥미와 구미가 당긴다.

 



갈릭허브크러스트를 얹은 양갈비 스테이크.
양갈비는 잘 조리하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 하지만, 맛있는 곳은 살살 녹게 만들어주곤 한다. 그만큼 조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사진만 보고 있어도 맛있는 향이 난다. 아, 셰프가 만들어준 양갈비 구이를 레어로 먹는다면 얼마나 맛있을까? 잠깐 군침을 올려본다. 아무리 촘촘하게 써 있는 레시피라도 이건 못하겠다 싶다. 그래서 셰프는 장인이라고 할까?



 

구운 영계와 와인 소스.
어쩐지 쉬워보인다 생각해 머릿속으로 욕심을 내본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다소곳한 영계는 참 아름답다. 나이프를 들고, 배를 반으로 갈라 그 풍미를 즐기고 싶을 정도다. 닭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구운 영계라니. 간단하면서도 담백하고 맛좋은 요리는 언제든 환영이다!!

 

 


퐁당 쇼콜라.
녹아 흘러내리는 초콜릿이라는 뜻이란다. 와우, 만드는 과정이 참 아름답다. 얼마나 달까? 하지만, 후식은 달아야 하므로, 완성된 쇼콜라의 모양 또한 달짝지근하다. 샐러드, 메인 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정말, 침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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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잘 모르는 사람도 괜히 동경하게 되는 프랑스 문화. 예술의 도시이니 만큼 요리 또한 섬세함이 느껴진다. 셰프의 손길로 탄생된 많은 요리들을 보니 더욱. 색과 맛. 그 조화는 역시 프랑스 요리에서도 빠질 수 없나 보다. 요리 하나 하나에 셰프의 고집 또한 보인다. 그 고집, 나도 먹어보고 싶다!

 

여경옥 셰프, 차이니즈 레스토랑 <루이>

 


사람 좋아서 무엇이든 맘껏 퍼줄 것 같은 셰프다. 다다다다 음식을 손질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은 여느 중국집 사장님과 똑같다고 느껴지지만, 그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타다. 고급스러운 중식 요리부터 서민적인 요리까지 두루두루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그. 불꽃 앞에서 타오르는 셰프의 맛 또한 궁금해진다.




불도장.
이것이 그 유명한 불도장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보양식. '고행을 하고 있는 기인들도 이 음식의 향을 맡으면 참을 수가 없어 담장을 뛰어넘어올 것이다' 도황 황제가 불도장을 맛본 후 읊은 시란다. 닭가슴살, 송이버섯, 해삼, 전복, 돼지목살, 오골계, 샥스핀, 마른 관자, 도가니, 배춧잎까지. 이건 레시피를 보고도, 절대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육해공 재료들이 한 곳에 모여 춤을 춘다니. 흑. 과연 그 맛은 어떨까? 화려한 색은 아니나, 그 속에 담긴 것들은 너무도 화려하여 눈을 뗄 수가 없다.


 


발채 소스 전복.
발채는 중국 티베트나 몽골 등 고원사막 지대에서 봄철에만 자라는 이끼류란다. 이것을 말려 물에 불린 뒤 사용한다는데, 와우 이끼까지 쓰다니. 이 발채라는 이끼의 비밀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비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귀하다는 전복과 만나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중식 요리는 너무 짧은 지식이라는 게 느껴진다. 역시, 끝없고 다양한 세계는 어디에나 있는 법인데 우리는 너무 갇힌 정보 안에서만 버둥대고 있는 것 같다. 

 



통멜론 연시 시미로.
이것 또한, 특이하다. 디저트라고 하는데. 시미로는 열대작물인 카사바의 뿌리에서 얻은 식용 녹말 성분인 타피오카로 만든 디저트란다. 타피오카는 우리가 흔히 '버블티'라고 부르는 음료에 들어 있는 쫄깃한 알갱이라고 한다. 멜론과 연시의 만남? 어쩐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거기에 알지 못하는 재료까지 더해진다. 중식 요리의 후식 또한 익숙치 않아 신기하다.




 
파파야 멜론 코코넛 제비집 수프.
샥스핀, 전복과 더불어 중국 3대 진미라는 제비집. 제비집은 워낙 고급 요리라, 이 스프는 어떤 맛일까 상상만 해본다. 파파야와 제비집? 이것도 어쩐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역시 셰프는 만나지 말아야할 것 같은 재료를 만나게 하는 재주가 있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면서도 믿게 만드는 것이 셰프의 능력이며 재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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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중식 요리들이 등장했다. 짬뽕, 자장면, 탕수육 등 기본적인 요리부터 생소한 요리까지. 역시, 사람은 알아야 한다. 수많은 요리 중 엄선해서 소개했다고 하니, 그럼 더 많은, 더 다양한 요리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셰프들의 요리를 훔쳐보는 내내 재미있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혹시 이런 것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괜한 자만을 부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우선 먹어봐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셰프의 요리는 셰프에게 부탁해야 한다. 그들이 많은 음식을 내어놓았지만, 그들이 직접 만든 요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아류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음식을 만드는 셰프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배운다.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세상의 많은 요리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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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가 군침을 흘리기는 처음이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나도! 회먹고 싶어!"를 외치며 허기짐을 느꼈다. 거기다 보너스는 인생의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달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바다 근처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듯 행복해졌다. 그런, 생생하고 잔잔한 느낌은 나를 마음 따뜻하게 했다.

사람들은 때론 힘들면 여행을 떠나곤 한다. 마음이 허기져서, 상처받아 슬퍼서, 인생이 피곤해져서 떠나곤 한다. 마음이 공허할 때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다가 아닐까 한다. 겨울바다를 보고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람도 있고, 끝이 없는 바다 앞에 서면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사람도 있다. 바다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거기다 더해 많은 것들을 준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는 과한 욕심을 내지 않으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한다. 그 베품 앞에서 우리는 또 겸허해지곤 한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는 수많은 어류들이 등장한다. 작가 한상훈 씨는 안 잡아본 물고기가 없을 정도다. 그 요리법도 꽤뚫고 있어 맛깔나게 설명한다. 게다가 삶이 담긴 에피소드도 엿볼 수 있다. 각각 소재에 얽힌 사연은 마음을 잔잔하게 하고 코끝마저 찡하게 한다. 찡하게 짠하달까?

갈치, 삼치, 모자반, 숭어, 문어, 고등어, 군소, 볼락, 홍합, 노래미, 병어, 날치, 김, 농어, 붕장어, 고둥, 거북손, 미역, 참돔, 소라, 돌돔, 학꽁치, 감성돔, 성게, 우럭, 검복, 톳, 가자미, 해삼, 마지막으로 인어까지 읽다가 배부를 이야기가 가득이다. 

한상훈 작가는 '생계형 낚시'를 한다. 생계형 낚시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물물교환을 하고 이웃에게 그냥 주기도 하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낚시인 것이다.

   
  물론 팔지는 않지만 생계형 아닌 것은 또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종종 주기도 하고 그리고 뭘 받으니까 물물 교환이다. 할머니에게 주면 마늘과 파, 고추를 주신다. 친구에게 주면 술을 사거나 또 다른 고기를 준다. 육지에 보내주면 돼지고기가 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옛날형 낚시인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 주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고기잡이 다녀온 사람은 으레 이웃에게 나눠주곤 했다. "반찬이나 하소" 툭 던져주기도 하고 미안해서 안 받으려는 사람에게는 슬그머니 놓고 휭, 사라지던 모습 흔했다.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 - 58p
 
   

 그의 낚시 철학, 삶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의 낚시가 더 좋아졌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그의 재미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슬며시 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고등어를 어떻게 회로 먹어요?"라고 주로 반응했다. 살아서도 썩는다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요즘은 제주도 직송 고등어회가 왕왕 텔레비전에 나온다. 때문에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들어보니, 역시나 비싸다. 하긴 비행기 타고 간 게 값쌀 리가 있겠는가.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못 사먹는다면 방법은 하나. 낚아 먹으면 된다 - 78p  
   

얼마나 명쾌한 결론인지.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니. 비싸다고 불평불만 말고 바다로 나와 낚아 먹는 쉬운 방법이 있다니. 후훗. 자급자족하지 않고 소비하려는 현대인들에게 명치를 걷어차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에 맞물려 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밤바다라 볼락 낚시를 나갔을 때, 두런 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낚시도 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도 훔쳐듣고 그것은 또 바다 위에서 얻은 이야기가 된다.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사업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내가 말했잖냐"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소."
"먹고살기만 하면 뭐가 문제겠냐. 너무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게 문제지."
보아하니 형제가 밤낚시를 하러 온 모양이다. 육지에서 실패를 본 동생이 고향에 온 거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형님 돈은 어떻게 해서든 벌충해놓을 테니 걱정 마시오."
"......"
"못 갚으면 어디 가서 콱 죽어버릴라요."
"너는 사업도 너무 서두르다가 말아먹더니 죽는다는 말도 꼭 그렇게 하는 구나."   - 104p
 
   

바다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바다에 나간 이들 중 사연 없는 이가 어디있을까? 사람 사는 곳에 바다가 있고, 바다와 함께 사람이 산다. 바다에 나와 삶을 털어내는 형제의 모습. 눈을 감으면 그려진다. 그 깊은 바다에 형제와 함께 서 있는 듯, 그리고 볼락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떻게 먹는 게 맛있는지, 어떻게 하면 잘 잡을 수 있을지 말이다. 사람 맛에서, 생선의 맛으로 넘어간다. 이런 재미가 있다.
 

   
  낚시는 물었을 때와 물지 않았을 때, 두 가지의 인간이 만들어진다. 낚아내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백지장처럼 하얗게 기억이 없다. 생각은 사라지고 몸만 작용을 하는 것이다. 오로지, 도망치려는 물고기와 잡아올리려는 사람 사이 힘의 기우뚱한 균형, 줄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허용하며 녀석을 지치게 하는 긴장의 순간들만 이어진다. 낚시에 빠진 동료작가 한 명은 이 순간을 오르가슴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툭.
채비가 터졌다. 세상에 줄 끊어진 낚싯대처럼 허무한 게 또 있을까. 낚시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몸에서 피가 쭈욱 빠져나가고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집안이 망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절망을. - 174p
 
   

몇 번 바다낚시를 해봤다. 대어를 낚은 것도 아니고 자잘한 물고기들이 배좀 채워보겠다고 낚싯대를 문 것이다. 툭 끊어지는 경험, 굉장히 허무하다. 하지만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허망함과 같을까? 생계형 낚시꾼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그가 써놓은 감정이 어쩐지 잘 느껴진다. 아마도 글 사이사이 낚시를 넘어 바다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보통일이 아니라는 그의  속삭임이 마음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어무이 아버지에게 문어를 잡숫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문어와 씨름한 아이, 새끼를 나은 고양이에게 노래미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줬더니만 미역부터 쭉쭉 뽑아먹더라는 이야기, 시장에서 복국을 팔던 아줌마 이야기, 섬마을에 시집와 친정도 못가본 여인들의 이야기.

이 책은 어류들이 팔딱인다. 회를 뜨고, 탕을 끓이고, 얼리고, 지지고 볶고. 하지만 그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살아있는 이야기. 팔딱거리며 뛰는 물고기들보다 더 팔딱이는 사람 사는 이야기 말이다. 싱싱한 바다 안의 생물들, 싱싱한 바다 밖의 사람들.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도 따뜻해지고 즐거워진다. 그리고 군침이 돈다. 살아야 겠다는 군침, 먹어야 겠다는 군침, 잘 살아야 겠다는 군침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은 이 책이 주는 선물이며, 행복이다. 읽어보시라. 이 군침도는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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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이 글 읽고나니깐 슬슬 배가 고파오네요^^;;
생선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데ㅠㅠ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ㅋ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 한 인문주의자의 피렌체 역사.문화 기행 깊은 여행 시리즈 2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어떤 도시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역사와 시간 속에 잠겨 있는 사람과 예술품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자꾸 잡아 끈다. 그곳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기운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곳에 느껴지는 어떤 아우라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피렌체는 매혹적이다. 중얼거리기만 해도 뭔가 고혹적인 느낌이다. 피렌체에 잠겨 있는 사람들, 예술품들 작가는 그런 것들을 마음껏 풀어 놓고 싶어 한다. 걷고 밟는 길 사이로 탄생했을 명화들, 명작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했을 예술가들. 피렌체가 숨기고 있는 500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카라바조. 우피치 안에 숨겨진 그들. 피렌체에 버티고 있는 메디치의 궁전, 두오모, 바르젤로 미술관 등. 그 작은 소도시 안 곳곳에 숨겨진 시간들. 그것들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역사와 예술 작품의 배부른 탐험이 시작된다.  

한 도시를 탐험하러 떠날 때, 그 도시를 알고 가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은 없다. 피렌체로 떠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고 떠나는 것은 어떨까? 피렌체에 어디로 가면 전망이 좋은지. 교통편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은지부터, 무심코 지나치는 광장이 어떤 문학 작품에 묘사되어 있는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어떤 것인지. 세세하게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시가 가진 기억들을, 작가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피렌체에 담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역사와 문화가 소박하게 느껴지면서도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랑을 담아 쓴, 피렌체 묘사서라고 해두자. 가보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책 속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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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렌체.. 멋진 곳이지만 저에게는 아직 멀고도 험한 동경의 장소ㅠㅠ
이 책 읽고 싶네요. 글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