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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
임광명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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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무엇인가? 믿음, 신념, 인생, 힘...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종교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종교로 인해 세워진 건축물들은 무엇일까?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들은 종교 때문에 세워진 것들이 많다. 그 웅장함과 거대함 앞에서는 기가 질릴 지경이다. 내가 믿는 종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건축물은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된다.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는 우리나라에 있는 종교 건축물에 대한 탐방기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이런 건축물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특히, 교회나 성당의 건축물에는 관심을 갖지도 않게 될 뿐더러, 그 수만 생각해도 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건축물들은 의미도 있고, 건축적인 가치도 있다. 

 가보지는 못했어도, 상상이 되는 곳. 작가의 따뜻한 문체는 건축물 안의 포근함까지 감싸쥔다. 종교를 떠나, 그 건축물 안에 담겨있는 정신이 찾아가는 이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구포성당은 포근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온갖 현란한 문양과 장식 등으로 사람을 한없이 위축시키는 서구의 성당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포근함이다. 그 포근함의 근원은 먼저 부드러운 곡선이다. - 65p

 
   

 하나의 건축물이 사람처럼, 온기를 느끼게 한다. 그 곳에 들어서는 이들은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라고 생각될 정도의 묘사.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간을 체험하며, 그 느낌을 오롯이 전하는 작가는 편협한 종교인의 눈이 아닌, 건축물을 찾는 순수한 한 사람으로서의 묘사를 담는다. 그것은 종교 건축물에 거부감을 사라지게 한다.  

   
 

 숨을 고르고 계곡을 따라 다시 걷다 보면 비로소 절집으로 향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길을 따라 나무숲이 울창한데, 거기에 묻어 있는 가을색이 완연하다. 송광사 역대 고승들의 부도와 비를 모아 놓은 비름을 지나면, 마침내 일주문을 보게 된다. 짧으면서도 육중한 일주문을 넘어서면, 마침내 송광사 최고 경치라는 우화각을 마주하게 된다. - 146p

 
   

 천천히 다가가는 작가. 건축물 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치와 사물까지 읽는다. 마주하기 전의 그 설렘을 담아내고 있다. 빨리 끓어오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그리고 은밀히 그곳을 탐험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만종감리교회는 올해 95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교회지만, 지금의 교회 건물은 1997년에 연면적 912m² 규모로 완공된 새것이다. 
건축가 백문기 씨의 작품인데, 설계 당시 백 씨는 교회의 모든 건물을 땅 아래에 두고 지상은 공지(空地)로 둘 생각이었단다. 온전히 땅 속에 있는 교회, 한없이 낮아진 교회를 의도했던 것인데, 그 설계안을 본 교회 신자들이 "너무 교회 같지 않은 지나친 발상"이라며 반대해, 외벽은 겉으로 내면서도 교회의 실속은 지하에 두는 것으로 절충한 결과 지금의 모습이 됐다. 여하튼 만종감리교회는 교회당 건축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깨뜨린, 전혀 새로운 시도를 보인 것이다. -199p

 
   

그는 건축물을 찬찬히 둘러보는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목사를 찾아가고, 건축을 한 이의 사정을 파헤친다. 그 뒷이야기를 듣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종교 건축물이라고 왜 사연이 없겠는가. 우리는 그냥 볼 뿐, 그것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사연들은 차고 넘칠 터. 그는 그 궁금함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편협한 편견은 제대로 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깊숙한 곳을 파헤치면 재미없어 보이는 사물들도 재밌어진다는 사실. 종교 건축물을 종교의 의미로만 보지 말고, 시대의 가치로 건축물 자체의 의미로 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 말이다. 그가 소개한 건축물 하나 하나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 믿음으로 채워지는 곳이기에 그 숭고함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믿음으로 채워진 곳. 종교건축물 앞에서는 편견의 신발도 벗고, 배타적인 마음도 벗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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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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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태우며 노동 현장의 절실함을 온몸으로 외쳤던 게 언제였던가? 노동 현장은 1970년대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는가? 표면적으로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그 안의 사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자꾸 쏟아지는 물음들. 한동안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을 궁금하게 만들게 한 이 책의 힘은 대단했다.

노동현장의 진실을 보기 위해, 대학생들은 위장 잠입을 했고 그 때문에 대학생들이 쫓기던 시절이 있었다. 숨기려 하는 자와 파헤치려는 자의 처절한 싸움. 그것은 진실과 더 나은 생활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어쩌면, 그때가 더 인간다웠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4천원 인생>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표면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실상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이는 우리는, 자본이 준 번지르르한 포장에 쉽게 속곤 한다.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그 이면에 관심이 없다. 그게 정말 현실이다.

용감한 기자 넷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 뛰어 들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는 준비했던 것일까? 그 용기도, 생각도 대단하다. 생각만 있고, 용기내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그들이 준비한 프로젝트가 경이롭기만 하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것은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또 다른 상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이 경험한 것들이 더 소중하다.

이 책에서는 4가지의 노동일기가 등장한다. 아줌마들의 식당 노동일기, 젊은이들의 마트 노동일기, 불법 체류자의 노동 일기, 공장에서의 노동일기. 어떤 노동이 더 강도가 세다, 더 힘들다라고 말할 수 없다. 모두가 고통 받으면서 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이 쉬운 것은 아니다. 사무실에 앉아 하는 노동도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고, 외부에서 하는 노동도 또 다른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차이가 있다. 인간다운 대접. 노동을 하는 이들을 부속품처럼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대우. 노동의 대가는 터무니 없었다.

기자들은 한 달 동안 노동을 체험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벗어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본 것이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턱 막혀옴을 느낀다. 기자라는 신분을 숨긴 채 본, 그늘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삶은 참혹한 현실이었다.


아줌마의 노동

식당일이 끝나면 집안일이 시작되는 아줌마 노동자. 빈곤의 악순환에서 자신의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돈 때문에 덜 배운 아이들은, 엄마의 뒤를 따라 식당일을 찾아 나선다. 돌고 도는 것까지 더해서 제대로 아프지도 못한다. 휴일은 한 달에 2, 그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다.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는 식당일. 고약한 사장은 잠시 앉아있는 짬도 주지 않는다. 북적대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나르고, 물컵을 나르고, 반찬을 나르고. 바빠서 잠시 잊으면 손님들은 그녀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12시간의 노동. 그녀들은 은행 일을 볼 짬도, 아파서 병원에 갈 짬도 없다. 떳떳하게 휴일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그녀들은 사회의 약자, 하지만 식당에 온 사람들에게는 제대로된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노예일 뿐이다. 거기다 사장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굴욕적인 대우도 참아야 한다. 나는 반성한다. 고깃집에서 빨리빨리 달라고 아우성치던 내 모습을. 그녀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내며 화냈던 내 모습을. 그녀들의 고달픈 감정 노동에 한 몫한 내 자신을.

 
젊은이들의 노동

마트는 일상화된 곳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으며, 쾌적한 곳에서 장을 볼 수 있으며, 곳곳에 선 이들이 나를 대우해주는 곳이다. 대형 자본은 마트라는 거대 소비 시장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소비자들과 노동자들은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난다. 마트만 이기는 시스템. 업체들은 마트에 입점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업체들에 고용된 젊은이들은 마트의 결정에 의해 노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하루 종일 서서 물건을 사라고 외쳐도, 소비자들은 그들을 없는 이 취급한다. 생각해보니, 마트에 가면 물건을 파는 이보다 물건에만 관심이 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자리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속속 자리를 채우고 있다. 부당한 대우와 환경에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자신이 못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자책할 뿐. 하지만, 그 부당한 시스템에 톡톡한 몫을 한 것이 바로 우리이다. 그리고, 자본이다. 노동하는 청년들은 사회의 피해자이다. 그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누릴 수 있었어야 하는 것, 좀 더 인간답게 대우 받으며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줬어야 할 몫이란 말이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른다. 대형마트 곳곳에 서있는 그들은, 마트라는 자본에게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

불법 사람의 노동

온갖 궂은 일은 다하는 노동자들. 열악한 노동 환경은 고사하고, 단속의 불안까지 감당해야 한다. 부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그들은 마음 편하게 노동하고 싶다. 그것이 정말 큰 욕심일까? 불법 체류해 낳은 아이는, 국적도 갖지 못한 채 추방당한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찾아오는 경찰들, 그들을 피해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그들. 10년 이상을 한국에 체류하고도 자신들이 일하는 지역을 떠나보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과연 단속되어야만 하는 존재일까? 죽도록 일하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까? 피곤에 지쳐 자신들을 돌보지 못하는 시간.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만 같다.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고맙게 활용하면서도, 부당하게 착취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루 12시간 노동, 일주일 6일 동안 잔업.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유해물질들을 켜켜이 몸 속에 쌓이고, 죽도록 돈 벌고 자신들의 나라에 돌아갔을 때는 병과 죽음이 그들을 반긴다. 인간답게 사는 것, 인권을 외치는 우리들은 결국 위선자였던 것이다. 조립식 작은 방에서 한 잔 술과 텔레비전으로 인생을 달래는 그들의 시간.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도 챙기지 못하는 마당에, 왜 불법으로 체류하는 그들의 인권까지 챙겨야 하냐고 소리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그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알려 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누릴 자격도 없다

기계적인 노동

사람이 기계가 되는 시간. 대화도 없고, 생각할 시간도 없다. 가만히 서서 자기 라인에서 해야 할 일만 반복적으로 하면 된다. 보람도 없고, 누가 잘한다고 칭찬해주지도 않는다. 자존감도 없고, 멍 때리는 시간만 늘어난다. 자기를 버리는 시간. 기계가 되어 반복된 일만 하는 시간. 바로 기계적인 노동을 하는 시간이다. 인간이 공장의 기계가 된다. 그렇다고, 정규직과 파견직의 대우가 그렇게 파격적인 것도 아니다. 공장의 기계가 되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잔업, 철야의 반복. 시급 4000원짜리 직장인에게 연애는 사치며, 벌어도 남는 게 없다. 그조차도 파견을 주선한 업체에서 주선 비라는 명목으로 착취해 간다. 하루 만에 질린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런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인격 대 인격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계 대 기계, 공장의 부속품으로 만나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들고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사치이며, 시간 낭비이다.

기자들이 몸으로 때우며보여준 노동. 몰랐다고, 이런지는 몰랐다고 말해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면서 외면하는 노동의 현주소이며, 진실이다. 그들은 기사를 연재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피드백을 했고, 그 관심만으로도 변할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들의 노력과 고된 시간들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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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0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의 구절이 가슴에 와닿네요.. 울면서 읽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저와 관련은 없지만,, 책이든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되면 서글프고 씁쓸하더라구요..
이 글로 인해 각기 다른 노동자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ㅋ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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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제주도 가는 항공권을 검색해 보곤 합니다. 올레를 다녀온 이후, 올레 예찬을 입이 닳도록, 온  힘을 다해 떠들어도 가보지 못한 이는, 그냥 제주도 관광쯤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너무 슬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을 원망하진 않습니다. 제가 느꼈던 감동을, 그들에게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 테지요.

올해, 천안함 생존자로 제대한 제 동생은 작년 서명숙 씨의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 책을 휴가 때 나와서 빌려 갔었습니다.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었고, 그녀석도 제대 후에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그래서 낼름 책을 빼어 빌려줬습니다(참고로, 제 동생은 22살 이전까지 책은 장식용 쯤으로 생각했고, 책을 많이 읽는 누나는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이라고 느꼈던 아이입니다). 배를 타는 동안에는 근무 시간 외에 시간이 많이 남으니, 게다가 말년 병장이니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겠지요. 그렇게 서명숙 씨의 제주 걷기 여행에서 본 올레에 흠뻑 빠진 제 동생은 제대를 하면 동기들과 올레를 걷기로 약속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제대, 그리고 천안함 침몰. 동생의 동기들은 모두 전사했고, 동생은 홀로 남아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거기가 어땠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묻지 않아도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말이죠. 저도 그랬습니다. 직작생활에서 피폐해진 제가, 그 책 한 권을 읽고, 제주도로 떠났고, 자연을 자연으로 보지 않고, 나의 고통을 잊겠다는 욕심에 기를 쓰고 걸었던 길이었으니까요. 3코스, 4코스를 외로이 걷고 다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얻었을 때는 옆에 눈부시게 출렁이는 바다가 야속할 지경이었으니까요.

5코스는 버리고, 같은 처지의 여인들을 만나 6코스를 향하던 날. 그들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절뚝거리면서도 폭설이 내리는 그 날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낳았지만, 포기하고 떠나버리기엔 제게 너무 많은 것을 일꺠워줬던 곳이 올레입니다.

굽혀지지 않는 다리 때문에 울고, 미친듯이 내린 폭설 때문에 야속했지만 7코스를 걷는 날, 느낀 감동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 저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지요. 예전엔 아케이드 상가로 불렸던 그곳에서 족발과 감귤 막걸리를 사들고 돌아온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만남 부산 처녀와 끝없는 수다를 떠들었지요. 헤어짐과 만남 속에서 깨닫고, 정리했던 많은 일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납니다.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넘나들며 버텼던 그 시간들 속에는 올레가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8개월을 잊고 있었습니다. 아니, 잊었다는 표현보다, 모른척 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생각하면 떠나고 싶을 까봐. 언제든 달려가고 싶을 까봐. 그냥 모른척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올레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네요. 이 책은 말이죠. 강릉으로 취재를 떠나던 날 읽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찔끔찔끔 삼켰고, 울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고마워서 말이죠. 

서명숙 씨, 아니 서명숙 선생님이 아니, 올레를 만든 올레를 갈고 닦은 그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말이죠. 어떤 사연을 가진 이가 걷는지도 모르면서, 누가 이 길을 고맙게 생각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뚝심 하나로 길을 내고 사람을 받아들인 그들이 너무 고마워서 말이죠. 이제는 나만 아는 길이 아닌 모두가 아는 길이 되었었어도, 노여워 하거나 화내거나 시기하는 게 아니어서 말이죠. 올레를 지나는 모든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말이죠.

사연이 없는 인생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만키로 올레를 만들고, 지키는 이들도 제각각 인생의 사연을 갖고 있답니다.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그들의 사연이 없었다면, 올레가 이렇게 더 소중해지진 않았을 테죠. 여인들의 쉼터로, 휴식처로, 치유길로 작용하지 않았을 테죠.

누군가를 위해서 살았던 어머니들이 올레를 찾는 걸 환영합니다.
자신의 길을 잃은 이들이 올레를 찾는 걸 환영합니다.
의심하는 이들이 올레를 찾는 걸 환영합니다.
제주를 찾는 누구나 올레를 찾는 걸 환영합니다.

올레가 있어서, 버스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들도, 택시 아저씨들도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던 할망들도 즐거워졌다고 합니다. 황폐한 곳에 산다고 생각했던 도시인들도 길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되지 않았습니까? 올레에 가는 이유. 올레를 걷는 이유.

빨리 간다고 멋지다고 하지 않습니다. 느리게 간다고 바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길은 그곳에 있고, 걷는 이 마음대로 입니다. 그 길 옆에는 바다도 있고, 함께 걷는 이름모를 사람들도 있고, 하늘도, 바람도 있습니다.

죽을 결심을 했는데, 살고 가는 이. 헤어질 결심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는 이. 떠날 결심을 하고 왔는데 떠나지 못하는 이. 올레의 힘은 무엇일까요? 궁금하다면, 가보세요. 그리고 서명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코끝이 찡해오고, 마음으로 느껴지는 사연들이 줄줄이 쏟아집니다. 올레를 올레로만 보지 못하게 되는 사연들 때문에 올레가 더 소중해집니다. 

올레길에서 스탬프를 찍을 때를 기억합니다.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지나치지 못한 스탬프 찍는 곳. 내가 했다는 것을 무엇이라도 증명해줬으면 싶었습니다. 속물이라고, 쓸데없고 괜한 허세라고 해도 좋았습니다. 눈 쌓인 스탬프를 당겨 하얀 올레 패스포트에 찍는 쾌감은 느껴보지 않은 이는 모르겠죠.

아직도 길을 내고 있는 여자. 서명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떠나는 순간, 그리운 길이 될 겁니다. 그 길 사이사이 숨겨진 보물을 찾고, 가슴에 간직하게 되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게 될 겁니다.

그녀의 말처럼. 꼬닥꼬닥 걸어가는 그 길에는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상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숨어 있을 겁니다. 아! 잠깐, 떠나고자 하신다면 꼭!!! 서명숙 씨의 책을 먼저 읽어보세요. 그 길을 걷는 감동이 두배, 세배, 아니 열배쯤 커질 테니까요.

 


단단히 묶인, 그 반가운 리본은 길 잃은 나그네에게 그늘을 내주듯 편한 흔들림이다.

 



새도, 바람도, 하늘도 걷는다. 사람이 걷는 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빛을 , 퍼져나오는 빛을 , 구름 뒤에 숨었던 빛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마지막 날의 만찬,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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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림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이야기 그림 이야기 - 옛그림의 인문학적 독법
이종수 지음 / 돌베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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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많은 그림도 있다. 이야기가 그림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와 그림은 서로 윈윈하며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들기도 하고, 흥미를 끌기도 한다. 형식도 다양하고, 표현법도 다른 그림이 이야기를 감싸고 있으면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해진다.  

<이야기 그림 이야기>는 권, 축, 병풍, 삽화 4가 종류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기에 나오는 그림들은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 설명 뒤에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내용도 있어 이해하기가 쉽다. 이 책이 더 의미있는 점은 현대의 휘황찬란한 그림이 아니라 여백과 선이 살아있는 옛 동양화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이미 알고 있는 그림의 해석이 아닌, 잘 듣지 못했던 그림에 대한 이야기라 더 빛이 났다.  

중국 이야기 그림의 출발이 된 권, 두루마리. 일상생활에서 두루마리 그림을 보기는 쉽지 않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갇힌 두루마리 그림을 보아도 솔직히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다. 두루마리에 대해 모르는 게 많기에 당연하겠지만, 어떻게 해석하고 봐야할지 난감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는 두루마리 그림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림 감상법에 대해 말해준다. 그 친절함이 고맙다. 그림을 읽는 방향, 정도 등 친절한 해석은 그림 이야기를 읽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두루마리 그림 뿐만이 아니다. 하나의 장면으로 보는 축화, 둘러두고 감상하는 병풍, 이야기 책 속에서 서브 역할을 하는 삽화까지. 기본적인 설명은, 그림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이야기 그림에 표현법은 다채롭다. 수많은 상징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는 게 당연할 정도. 그 그림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한낱 그림에 불과할 뿐 이야기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 그림의 이야기 속으로 따라 들어가다 보면, 전래동화나 구전동화를 듣는 듯 그 재미가 쏠쏠하다.  

조조의 아들 조식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두루마리 그림 낙신부도, 마음 속의 바라는 세계, 이상향을 나타낸 도원도, 은자로 살고자 했던 도연명의 삶을 표현한 정선의 귀거래도, 김홍도의 서원아집도, 전통, 패러디가 담긴 유쾌한 삽화들.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록 무릎을 탁치게 만든다. 이야기 그림을 보는 법을 아주 조금, 이제야 걸음마를 하는 것 같지만 알아가고 깨달아가는 것이 쏠쏠하다.  

또한, 옛 선인들이 이야기를 그림에 풀어내는 방법. 그 기지는 배울만 하다. 그림 속에 담긴 정신과 마음 또한 책을 읽는 보람과 소소한 재미를 준다.  옛그림을 누가 고루하고 어렵다고만 하는가? 알려하지 않으니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조금씩 알아가는 옛그림은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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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의 골프 -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18명의 인생 수업
밥 미첼 지음, 김성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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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50대 창창한 나이에 죽음의 기로에 선다면? 신이 찾아와 나와 골프 내기를 해서 이기면 살려주겠다고 딜을 건다면? 아니,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들이밀고 이기면 살려주겠다고 한다면? 과연 그 제안을 쿨하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냥 죽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는 게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산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삶 속에서 배워나가는 게 많은 세상과 갑자기 작별해야 한다면 누구도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 <천국에서의 골프>는 삶과 죽음 사이에 선 주인공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18명과 골프 시합을 펼친다. 그 흥미진진하고도 다채로운 골프 시합. 용어를 몰라도 좋다. 룰을 몰라도 좋다. 엘리엇과 등장하는 인물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하고 새로우니 말이다.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에 대한 물음을 장난스럽지만 유쾌하고 진지하게 펼쳐 나가고 있다.

나의 몸뚱이는 침상에 고이 누워 있다. 나의 영혼은 위대한 천재들과 싸운다. 아 이런 현실에서는 만날 수도 없고, 만나지도 못할 이들이 등장한다. 신과의 골프 내기는 어느 새 위대한 인물들과 맞서 싸우는 내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인물 한 명 한 명 범상한 사람이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이트, 마릴린 먼로, 존 레논, 세익스피어, 피카소, 링컨, 콜롬버스 등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그 여파가 대대손손 면면히 전달되고 있는 인물들. 눈 앞에 일어나는 일이 환상인듯, 그들 모두가 골프를 좋아하고 있었다니. 아직도 골프를 하고 있다고 말하다니. 정말 꿈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위대한 인물들과 좌충우돌 골프 시합에 열중인 엘리엇. 그 모습을 훔쳐보는 것도 재밌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인생을 다시 쌓아나가듯 인물들과 대화, 상황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엘리엇을 만나는 것도 재밌다. 5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도 아직 깨닫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 하다니. 역시 인생은 오래 산다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같다. 엘리엇이 잘 배우고, 학식이 풍부한 대학교수라는 것도 재밌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뭐든 다 알 것 같은, 승승장구였을 것 같은 엘리엇이 깨지고, 깨닫고, 발버둥치는 것을 구경하게 되니 말이다.

결점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위인들도 결점 투성이었고, 흉보고 싶은 것 투성이다. 지금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다고 마구마구 수다를 떨고 싶을 정도로, 재밌고 유쾌하다. 모두나 결점은 있는 것이고, 숨겨진 흉은 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삶의 태도야 말로 정말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이길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에 어이없이 지는 엘리엇. 질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또 어이없이 이기는 엘리엇. 그 속에서 교차되는 감정과 깨달음은 우리 모두가 가진 감정일 것이다. 승리에만 집착했던 엘리엇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승리에만 마음을 집중하려 노력하면서, 엘리엇의 머릿속에는 금속 스파이크가 아스팔트 길에 부딪쳐서 나는 또각또각 경쾌한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또 불쑥 인용구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전도서>였다. "구할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나니." 아직도 성경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말이 떠올랐을까? 아니면 뭔가 더 심오한 뜻이 있는 걸까?
잃을 때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내가 진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얻을 때는? 여기서 내가 무언가를 갈구해야 하는 것일까? 하느님은 나에게 뭔가를 찾으라고 지시하시는 걸까? - 80p
 
   

시합 안에서 생기는 질문, 과정 속에서 찾는 답. 골프는 인생에 비유하며, 길목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 삶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멘토처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점수에 죽네 사네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재미있으니까 치는 거죠!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까지 볼을 때려서 날려 보내는 것도 재미있고, 야외에 나와 있다는 것도 재미있지 않아요? 자유로운 기분으로 나무와 풀, 새와 구름들을 보는 것도 그렇구요" - 93p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인생은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죽네 사네 앞만 보고 위만 보고 달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아래도 보고 살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과 인생에 이끌려 가는 사람. 엘리엇은 살기 위해 죽자사자 골프 시합에 영혼을 걸었지만, 사실 그 자체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골프는 아주 대단한 게임이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아니 내려야만 하는 유일한 경기이니까. 매 순간 신체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을 시험할 뿐만 아니라 사람 됨됨이까지 시험하는 유일한 경기이니까. - 208p


오 골프여! 그대는 내 인생에 축복을 내려주었거든.
힘들게 살아가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지!
하루는 내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주는가 하면
또 다음날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
나 자신의 결점에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저지를 조그만 인간적인 과오들도 알려주었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살펴
죄와 결점을 들춰냈듯이
내 안의 허영심을 보여주었지.
탐욕을, 권력에 대한 욕망을, 눈먼 야망을,
분노 때문에 생긴 광기를, 우유부단함을,
마물과도 같은 질투심을 보여주었지. 아직도 그것들은
내 몸속 구석구석에 살아 있다네!  - 225p
 
   

골프는 인생이다. 엘리엇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인생. 많은 감정들을 시험하고, 돌발적인 상황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공평한 길. 내가 만들어가는 길이기에 불평 불만할 수 없는 길.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자, 결국 엘리엇은 어떻게 될까?
이 위대한 인물들과 싸워 이겨서 새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아니면 패배해서 죽음으로 이르게 될 것인가?
삶은 결국 죽음으로 이르는 해피엔딩.
그리고 인생은 우리에게 언제나 기회를 열어준다는 것.
실패와 성공은 누가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엘리엇의 골프 시합을 따라가다 보면, 엘리엇이 승리해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결국 그의 깨달음을 즐기게 된다. 자 궁금증을 뒤로 하고, 많은 이들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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