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 36 | 3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사는데 중요한 게 무엇이더냐. 사랑이더냐. 돈이더냐. 사람이더냐.

사람과 기생은 다른 게 아니다. 같은 사람일 뿐. 기생이라고 손가락질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뿐.

부용각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사연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 그 뿐이었기에 그의 인생이 박복하다 하여도 삶이고, 다난하다 하여도 삶이기에 그 삶 자체를 인정하며 살아간다.

부용각의 뿌리이자 기둥인 타박네. 시대를 따라 물러나면서도 상처 많은 삶을 싸안고 살아가는 오마담. 오마담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박기사. 부용각을 이어갈 마지막 기생이 될 미스민. 어눌한 사기꾼 김사장. 타박네의 맛을 이어갈 김천댁.

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삶은 참 위트있고도 서글프다. 서로를 감싸안는 마음이, 행동이 서툴러 곱지 않은 말이 먼저 나가면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허구헌날 욕을 해대는 타박네를 미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부용각 사람들은 그 타박들이 자신들에게 향하는 관심과 애정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타박네가 시시때때로 해대는 욕도 들을만 하고, 줄창 해대는 잔소리도 버틸만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 부용각의 사람들은 그 사랑의 증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부용각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악역을 맡는 걸 마다하지 않는 타박네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다. 죽이는 홍어맛을 낸 이유로 하룻밤의 동침과 그로 인해 생긴 아들. 아들을 보내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사연. 한없이 그리운 아들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부용각을 지키려 몸부림 치는 이유도 자신의 핏줄 때문이다. 어미가 할 수 있는 사랑이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자랄 수 있게 하는 것. 하지만 자신의 핏줄을 볼 수 없었던 세월의 고통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 그녀의 마음 속에 깊은 사랑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알콜에 중독되어 목소리 마저 갈라져 버리고 만 소리기생 오마담. 남자들에게 속아 돈을 빼앗기고 있는 것 다 털리고도 그녀는 싫지 않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면서 남자를 믿지 않는다 한다. 그러니 배반해도 자신의 모든 걸 내줄 수가 있다고 한다. 자신은 남자들에게 철새도래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한다.
어쩌면 그녀는, 그렇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니 사랑인척 하는 남자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기생에게 위로받으려 하는 남자들을 따뜻하게 품어 세상으로 내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용각의 마지막 기생이 될지도 모르는 춤기생 미스민. 불우한 집안에서 꿈을 키우던 그녀는 돌연 춤기생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 오마담을 만나고 그녀의 삶을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마지막 남은 제대로 된 기생이 되리라 생각한다. 화초머리를 올리고 당당히 기생이 된 그녀의 마음에도 찬바람은 분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뭉쳐졌지만 부용각 사람들보다 친밀하지 못했던 가족들. 애정이란 것에 의문을 던질 때, 부용각 사람들은 제2의 가족이 되고 그녀는 안식처를 찾는다.

한여자를 두고 각기 다른 사랑을 했던 김사장과 박기사. 능소화에 눈이 멀어 눌러앉게 된 박기사. 그녀는 오마담에 순정을 바치며 기나긴 세월 부용각의 궂은 일,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오마담 방 앞에 넌지시 놓고 간 꿀물은 사랑의 흔적이 되어 마루에 깊숙하게 박힌다. 차마 입을 열지도 다가가지도 못했지만, 그는 그녀를 눈이 멀도록 사랑한다. 그에 비해 김사장은 오마담의 등을 쳐먹기 위해 기회만 기다리는 기둥서방. 이 어설픈 기둥서방은 자신이 다 갖고 도망갈 수 있을 때 오마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도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랑. 결국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기생이라 다른 게 아니다. 망나니라 불린다고 다른 게 아니다. 다 똑같은 사람. 기생들이 하루코를 부러워 하는 것은 그녀가 돈을 많이 번 전직 기생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사람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찾았기 때문에 그녀가 부러울 것이다.

어떤 날, 친구들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발을 들인 남자가 쥐고 있던 검정 비닐 봉지에서 보라색 자잘한 꽃을 피운 화분이 나왔을 때.
그 남자가 아내가 좋아하는 꽃이라서 샀다는 말을 했을 때. 화분을 고르고 앉아 있었을 남자를 상상하며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한동안 말을 잃고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은 그 남자의 아내가 받는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남들이 고작 그런 사랑이라고 말하는 자잘한 사랑이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욕망을 내비치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아닌척 자신의 일에 여념이 없고 또 그런가보다 무관심하다. 하지만,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욕망은 사랑 그것이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지 않을소냐. 내가 택한 삶이든 삶이 아니든, 나 또한 사랑받고 싶은 그냥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20년 전 6월을 모른다


갓 20대를 넘긴 박종철이
퍽 소리에 억하고 죽었던
그날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온몸을 다바쳐 싸웠고
젊음의 열정이 하늘을 뚫었던
그들의 모습을 본적도 없고 기억하지도 못한다


최루탄 연기를 공기처럼 마시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도망치며 살았던
그들의 피맺힌 육신을 알지 못한다


구세대의 보수적이고 발전하지 못하는
뒷모습의 무력함에
비웃음과 조소만 보내기 바빴다

 
과거에 연연하며
과거를 잊지 못하고
그 때는 힘들었어도 찬란했던 열정으로 숨쉬던 때라고
한잔 술에 풀어놓는 넋두리는 바보같이 보였다

 

그들이 살아온, 그들이 살았던
20년 전, 아니 훨씬 더 오래전의
그 날이 역사가 아니라 과거라 생각했다


흘러간 과거를 연연하는 그들은
한장의 사진속에 남겨진 추억같은 거라고


젊은이들의 의로운 분노로
스무해 전 6월은 아름다운 빛으로
기쁨이 넘쳤다


바랄 것 없이 풍족한 우리의
젊은 6월은
덥고, 좁고, 답답하고, 부끄럽다

 

..........................................................................

투쟁이란 단어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나이다. 투쟁이란 단어가 그다지 절실하지 않는 시대이다.

80년은 그 얼마나 눈부시게 열정적인 시대였던가. 우리의 오늘은 그날의 젊음이, 그날의 분노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는 그 시대에 살았던, 그 시대의 분노와 열정과 젊음을 오롯하게 그려준다.

사실 8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은 80년대의 피맺힌 투쟁들에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할 수도 없다. 역사처럼 전해지고 신화처럼, 혹은 있었을까 하는 사건처럼 전해지는 그 날의 일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니었고, 우리는 거기에 없었으니.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 100%는 아니어도 10%쯤은 느낄 수 있고, 이런 시대를 만들어준 8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다. 감히 느낀다는 자체도 부끄러운 그런 책이었다.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출세와 안위보다는 모두의 자유와 정의를 우선시하는 시절이 있었다. 이 어찌 가보고 싶지 않은 시절인가. 젊음을 불태우며 살았던 그들. 우리는 과연 젊음을 불태우고 살고 있냐고 묻고 싶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한 가족의 가장이 되어 뼈빠지게 일해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그 날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그 날의 열정을 기억하는 그들.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우리의 젊음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날의 핍박과 부당함을 이겨내고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진 고문에도 신념 하나로 죽음을 택했던 박종철같은 열사가 있었기에 오늘이 가능했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발벗고 뛰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잊고 살던 우리에게

모르고 살던 우리에게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는 외친다.

역사를 잊지 말아라. 그 때의 젊은이들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오늘을 도약하라.

이 책을 계기로 역사에 살았던 그 젊은이들의 자랑스러운 행동이 자꾸 자꾸 기억되는 오늘이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꿈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그 틈새는 돈과 체면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시간이 갈 수록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같아서, 시간이 갈 수록 큰 눈치를 보게 된다.

그것이 현실이 되어 꿈의 발목을 붙잡는다.

우리는 그렇게 된 꿈을 이상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상이란, 우리가 꿈을 잡지 못하는 어떤 별처럼 치부하게 되었을 때

그럴 듯 하게 내 놓을 수 있는 변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은수의 꿈과 현실의 괴리도 크기만 했다.

꿈이야 누구든 꿀 수 있는 법, 하지만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것은

서른 살이 넘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에게는 큰 모험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나 혼자만 생각해서는 되지 않는, 가족과 주변의 눈치까지 덩달아 봐야 하고

또 돈, 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은수에게 직결한 문제는 연애이며 결혼이었다. 그것은 평생의 숙원 사업인 듯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수순을 밟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또한 행복함의 지름길은 아닐런지 하는 착각 마저 들 정도의

사회적 기준. 이것은 은수에게 크나큰 담이었다. 어쩌면 갇혀 있어야 했던 울타리였는 지도 모른다.

지리멸렬한 하루의 반복과 비슷한 나이의 친구들끼리 오가는 대화는 그녀를 지치게 함이 분명했다.

그러던 중, 태오는 그녀에게 신선한 소재였다.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가야하는 똑바로 걸어야 하는 그 길에

갈림길이 나타난 것이다. 태오는 가보고 싶은 다른 길이었을 지도 모른다.

허나, 은수는 태오 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도 어린, 직장도 없는, 이 남자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 하는 저울질 때문이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털어놓지 못했던 은수의 고민은

현실이었고, 태오는 꿈이었다.

꿈인 태오를 놔두고 현실에서 그럴 듯한 남자 김영수를 만난다.

참, 그럴 듯하다. 나이도 적절하며 성격도 까칠하지 않으며, CEO라는 직함도 달고 있다.

매너도 좋은 편이나 큰 재미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에서 원하는 남자다.

사랑은 꿈이고 결혼은 현실인 것이다. 사랑은 태오와 하고 결혼은 영수와 하고 싶어하는 은수.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적령기를 넘긴 여성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림인 것이다.

꿈과 현실의 중간쯤에 서 있는 것이 유준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 중간쯤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은수가 아니다. 꿈과 현실 이것을 적절히 혼합한다면 은수에게는 어떤 남자가 나타나야 할까.

현실을 선택함과 동시에 그 현실은 모래성처럼 스르르 파도에 밀려나가 버리고 만다.

꿈 또한, 주춤주춤 하는 사이 이상으로 멀어져 간다.

 

현실보다 꿈을 선택한 유희, 현실에 들어갔다가 돌아서 나온 재인을 보며

은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 세상 사람들에게 그럴듯 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

하지만 은수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직장에서 현실만 바라보며 우유부단했던 그녀는 우유부단한 채로 사표를 던진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

그것이 나이가 많다고, 혹은 여자라고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은 양다리 아닌 양다리를 걸치면서도 엄마의 남자친구는 절대로 안된다고 악을 썼던 은수도

깨닫게 되었을 것.

어떤 누구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난 은수를 통해 알았다.

세상 사람들이 현실로 뿌려놓은 몇 가지의 경우의 수 중에서

어떤 것도 잡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그녀의 세상을 향한 펀치가 통쾌하다.

남과 여의 결합이 행복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더욱, 그 뒤의 더 큰 희생이 따른다면 그것은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

현실 속에서 스르르 무너져 사회의 잣대대로 인생을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짓임을 달콤한 나의 도시에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달콤한 나의 도시란,

내가 당당히 만들어 나가는 도시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 36 | 3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