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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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많은 것이 바뀌고 빠르고, 융통성 없는 고향이 되어 있다면 헛! 그거야 말로 심신이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 온 빌브라이슨. 변해버린 도시와 새로운 문화에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인간미는 떨어지고, 상업화되어 버린 미국에서 그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화난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지 않는다. 유연하게 대처하고 웃는 얼굴로 말하지만, 그 속에 담긴 뼈있는 행동과 생각들. 재밌게 꼬집고, 즐겁게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한다.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곤욕스러운 것은 터무니없는 요리 이름이다. 뭔가 있어보이기 위해 꾸며놓은 것 같지만, 요리 하나 먹자고 치뤄야 하는 과정들이 너무 힘들다. 동네 카페에 가서 좌석 안내를 받지 않고 맘대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좌석 담당 매니저는 자리를 안내할 때까지 기다렸어야 하지 않겠냐고 훈계한다. 규칙화된 사회. 융통성 없는 사회. 

비행기에 탑승하고 가족들의 좌석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걸 알았다. 스튜어디스에게 2살, 4살 난 어린 아이들과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바꿔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규정상 절대 안 된단다. 어린 아이들을 따로 따로 혼자 앉힐 수밖에 없단다. 결국, 아내가 아이들을 위해 자리를 찾아 나선다. 다음번에는 탑승권을 잘 확인하고 탑승하라는 스튜디어스 말에 이젠 이용할 일이 없을 거라는 것과 칼럼에 이 사건을 싣겠다고 말한다. 유머스럽게 그는 항공사가 어디였는지를 밝힌다.
 
정크 푸드가 일상화 되어 있고,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의 홍수,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사대는 사람들. 볼보에서 컵홀더가 없는 자동차를 출시하는 바람에 자동차 내부 디자인을 바꿔야 했던 사건, 정부기관이라는 CIA, FBI의 어이없는 실수와 행동들, 콜레스테롤 수치 때문에 죽을까봐 걱정하면서 운전할 때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집 안에 총기를 아무렇게나 놔두는 사람들. 자동차 렌트와 세금 신고서의 복잡한 과정 등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어떤 사회든 맹점은 있기 마련이다.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행동과 생각을 변화시킨다면 그 비판은 비판다운 비판이 될 것이다. 빌 브라이슨처럼 유쾌하고 재미있게 사회를 비판한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심각한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빌 브라이슨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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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
헴미 요 지음, 최성현 옮김 / 삼신각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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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 씨 말대로 왜 이렇게 좋은책은 빨리 절판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영숙 씨의 말에 따르면, 이 좋은 책이 출판사에 재고로 7,000권쯤 쌓여 있다는데 그래서 중고 시장을 뒤져 샀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경건해지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기자의 눈으로 찾은 세계 곳곳에 식(食).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기억이 잠재되어 있고 문화가 숨쉬고 있는 식(食)에는 미각을 사로잡는 달콤함과 넘쳐 흐르는 폭식은 없다.
식에는 삶의 아픔이 가득차서, 그것이 맛있는 것인지 맛없는 것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생존과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방글라데시에서, 구 유고에서, 소말리아에서, 체르노빌에서, 한국에서...

음식찌꺼기를 먹는 사람들, 인건비보다 비싼 고양이용 통조림을 만드는 사람들, 인육, 네스카페에 팬이 되어버린 필리핀 원주민, 경제발전과 먹는 속도의 상관관계, 독일에서 팔리는 터키 음식 도나 케바프, 공연을 위해 먹지 않는 서커스 단원, 우간다의 에이즈 환자들의 고립된 식사, 러시아 군인들의 죽을만큼 배고픈 식사, 위안부 할머니들의 잊혀지지 않는 삶, 잊혀지지 않는 맛 등.

그가 찾아다닌 식(食)은 유희가 아니라, 생존이었고, 고통이었고, 강제였고, 억지였고, 슬픔이었고, 발버둥이었다. 묻는 이도 고통스럽고, 대답하는 이도 힘든. 밥통의 자유가 없는 세상. 진실된 눈으로 보고자 했기에, 진실을 글로 옮겼기에, 더 아팠고 쓰렸다.

잔반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잔반을 먹으며 생존하는 사람들에겐 먹다 버린 음식들은 돈이고 희망이다. 개발에 미친 국가들에서 버려지는 음식들은 굶주리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양보다 차고 넘친다. 일본으로 팔리는 고양이 사료용 통조림은 제조 공장 노동자 월수입의 1/3. 노동자가 먹는 밥은 최고급 통조림보다 못하다.
군인들의 밥을 팔아 돈을 챙기는 러시아 관료들 덕분에! 군인들이 사망하기까지 이르렀으나, 변함없이 시중에는 군인들의 밥이 돌아다닌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거리로 나와 첼로를 켜는 어린 소녀. 그녀의 어머니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다. 고기를 먹기위한 몸부림. 손이 곱은 소녀는 누가 알아볼까봐 슬프다.
위안부 할머니가 일본으로 끌려가던 날 배 안에서 먹다가 빼앗긴 찹살떡. 연행 도중,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가케 우동. 한을 품은 할머니들이 눈물을 삼키며 먹는 밥.

15년이 넘은 이야기들이다. 작가가 발품을 팔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느낀 식(食) 이야기.
진기한 식사처럼 보여도 이 세상에 진기한 식사가 하나도 없다는 작가. 그것을 먹고 있는데 충분한 이유와, 먹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관한 사연이 있단다. 보이지 않는 먹거리는 기억. 그 기억을 주인으로부터 나누어 받아 먹은 것도 있다.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고, 상상의 목구멍에서도 꽉 막혀 넘어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먹는다'는 '산다', '살았다', '살아야 한다'가 혼합된 처절한 행위이다. 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계 어딘가에서 먹기 위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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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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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말라위에 사는 '윌리엄 캄쾀바'. 어린 아이의 생각과 행동이 아프리카에 희망을 만들었다. 바람을 따라온 희망에서 아프리카의 빈곤과 고통을 씻어줄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MBC 시사 프로그램 <W>를  볼 때면, 내가 우리가 얼마나 많은 풍요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지 느낀다. 하지만, 돌아서면 결국 내가 갖지 못한 것들 때문에 투덜댄다. 내가 배고픈 현실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가난과 고통은 가슴 아픈 이야기일 뿐이니.

캄쾀바는 어릴 때부터 가난과 배고픔을 경험한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단지 밥이 없어서 굶는 것 이상이다. 먹을거리가 풍요롭지 않은 나라에서 배고픔이란, 먹을 게 거의 없다는 뜻이다. 2주 동안 세끼 정도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나조차 상상이 되지 않는다.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게 되는 상황도 슬프지만, 먹을 것 때문에 죽고 죽이는 상황은 끔찍하다. 정부의 부패와 타락이 국민을 배고픔으로 내몰고, 무지가 환경을 척박하게 만든다. 벌목으로 나무가 사라지니 홍수와 가뭄은 반복된다. 농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타거나 썩어버린다. 실낱같은 희망이란 것도 없다.

캄쾀바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학교만은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학교에 갈 수 있는 돈이란 없다. 배우고 싶지만, 배울 수 없는 이 현실에 캄쾀바는 절망한다. 하지만,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본다. 책 속에는 많은 세계가 있었고, 캄쾀바의 눈을 잡아끈 것은 과학이었다. 과학만 있다면, 반복되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과학을 믿지 않는다. 모든 재앙은 마법사가 쫓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캄쾀바의 무모한 도전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 비웃음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배운 것들을 시도해 보려면 쓰레기장을 뒤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필요한 것들은 쓰레기장을 뒤져 쌓아야 했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캄쾀바를 모두 비웃고 미친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캄쾀바는 전기 바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했고, 고철 덩어리를 모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냈다.
그는 풍차를 직접 본 적이 없었지만, 풍차를 만들었다. 말라위에 부는 바람을 풍차에 모아 전기로 만들 수 있었다. 직류와 교류에 대한 고민, 전력에 대한 고민, 사람들 모두 전기를 쓸 수 있다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 풍차에는 그가 고민하는 모든 것이다. 

말라위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바람을 모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바보여서가 아니다. 그들은 몰랐다. 알 수 있을만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존과 싸운다. 빈곤은 대를 이어 그들을 괴롭히고, 어린 아이들의 노동으로도 가난은 해결되지 못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입에 들어가야하는 걱정을 하는 아이들이 과학, 예술, 인문학을 접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캄쾀바는 자신의 힘으로 풍차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큰 메시지를 주었다. 기자들이 찾아가고 세계에서 그를 주목할 때 그는 말했다. "난 해보고 만들었어요." 그 말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그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계속 공부를 해나가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현실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은 감동 이상이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현실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심은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캄쾀바가 해 낸 일은 아프리카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일이다.

캄쾀바의 처절한 고백들은 눈으로 읽고, 느낄 수 있을 뿐 내가 경험한 것은 아니다. 그가 얼마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을지 희망을 느끼지 못한 채로 얼마나 방치되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의 이야기로 나는 풍요로운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무것도 없이 풍차를 만들기 시작한 한 아이가, 많은 것을 만들어 냈다.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 캄쾀바는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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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5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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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식 e는 줄곧 하나의 이야기를 해왔다. 여러 개처럼 보이는 이야기도, 사람이었고, 정의였고, 사회였고, 올바름이었다. 간결한 카피와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 울대가 뜨거워지며 짜릿한 눈물이 치솟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몇 줄 때문이었고, 짧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식 e 5>에는 사람들을 모았다. 기존의 폼은 유지했지만, 사이사이 테마와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해 실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인터뷰는 사회와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인간'과 '인생'은 벗어날 수 없는 테마다. 그 안에는 '인권', '생활권', '생존권' 등 처절한 싸움이 담겨있다. 개인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임에도 우리는 외면하고 사는 것들이 많다. 다른 방향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의 오늘을 묻게 했다. 

결국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무시되는 사회는 성장할 수 없다. 획일화된 생각과 독단적인 결정에 순응해야 하는 사회라면 미래가 없는 것이다. 그저 로봇처럼 조종하는 대로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오늘과 내일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산거별 등반 전문산악인 김세준, 축구저널리스트 서형욱, 팝아티스트 낸시랭, 판화가 이철수, '노리단' 퍼포머 강희수, 마임이스트 유진규, 공연연출가 탁현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인드라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도법 스님, 뮤지션 한대수, 친환경에너지 발명가 황성순, '미디어몽구' 운영자 김정환, 용산 철거민 참사 유족 김영덕,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 '슬로 라이프 운동' 지도자 쓰이 신이치.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다. 다른 목소리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목소리다. 그들의 생각과 삶을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이해 가능한 목소리다. 생각해봐야 할 목소리다.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문제의 발생으로부터 시작된다. 문제가 제기되고 나면, 다른 목소리들은 멈출 수 없다.

그들의 목소리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목소리는, 용산 철거민 참사 유족 김영덕 씨의 목소리였다. 애원도 통하지 않고, 인권이 말살 당하고, 약자에게 불을 지르는 사회를 경험한 그녀의 처절한 목소리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 묻는다. 오늘의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었나? 그들이 찢어질 듯 외치는 악다구니가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그녀는 몰랐다고 내가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냐고 했다. 한 가정이 산산조각나며 뿌리까지 흔들렸다. 단 하나의 사건, 단 하나의 결정, 단 하나의 외면 때문이었는데도 내가 아니니까 고개 돌리지 않았던가. 나는 부끄러운 오늘의 나에게 묻는다. 그녀가 말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누구를 찍었냐고요? 내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녀의 뼈아픈 후회가 사무친다.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의 목소리는, 부끄럽게 했다. 우리와 피부색이 달랐을 뿐인데, 이유도 없이 욕을 먹고 동행한 여자까지도 치욕스러운 말을 들어야 했다. 공권력은 도와주려 하지 않았고, 그가 교수라는 말조차 믿지 않았다. 신분 위장일 거라며, 제대로 신원 조회도 해주지 않았다. 경찰도 시민도 한통속이 되어 그의 피부색만으로 그를 차별했다. 그는 모멸감을 느끼고, 고소했다. 힘겨운 싸움이다. 그는 피곤하다. 이런 한국 사회가, 피부색으로 우월한 인종과 무시해야 할 인종을 나누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희망을 찾아야 할까?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있기에 우리는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건투를 빈다.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그녀 같은 사람이 없다면 우리의 사생활은 무사할 수 있을까? 그녀의 투쟁은 우리 모두의 투쟁이 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청의 합법화라니 온 국민을 통째로 관리하겠다는 것인가. 목소리가 있지만, 목소리가 없는 시대가 될 것이다. 박원순 선생님은 자신은 도청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연한 그의 말이 난 두려웠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누군가와 떠드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면. 우리가 막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올바르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이대로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우리 시대의 다른 목소리가 널리 널리 퍼지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의 나도 다른 목소리에 귀기울이길 바란다. 공부만 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시대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 사람의 목소리에는 큰 울림이 있다. 상상의 세계란 없다. 현실이 될 수 있는 세계만 있을 뿐.
<지식 e 5>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다른 목소리의 힘은 그곳에서 나온다. 노력, 행동. 절망을 말하기엔 때 이르지 않은가? <지식 e 5>는 희망을 말하기에 묻는다. 당신의 오늘은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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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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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에서 재기 발랄한 문체를 뽐냈던 요네하라 마리의 <미녀냐 추녀냐>는 통역의 세계에 관한 내용이다. 언뜻 보기에 제목이 왜 저리 생뚱맞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미녀'와 '추녀'가 어떤 의미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군가의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갖게 되는 직업은 몇 개나 될까?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쌓은 노하우로 승승장구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직업을 바꾸다 보니 처음에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직업은 모두 다를 테고,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생활하게 되니,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범주에는 통역사도 포함된다.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였다. 그녀가 주로 한 일은 러시아어 동시통역. 어릴 때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고, 도쿄로 와서도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했다. 그녀의 성장 환경은 그녀가 러시아어를 동시통역하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미녀냐 추녀냐>에는 그녀가 현장을 뛰면서 쌓은 지식과 어려움 재미있는 에피소드, 방법론 등이 어렵지 않게 쓰여 있다.

옐친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담대했던 그녀는, 간결하고 정갈한 통역으로도 유명했다. 한 기자는 요네하라 마리가 통역 부스에 앉아 있으면, 안심을 했다고 하며, 옐친 대통령이 일본 사람들을 욕하다가도 그녀가 나타나면 '마리, 마리'라고 부르며 반가워했다고 하니 그녀는 단순히 통역사만으로 존재한 것은 아닌 듯싶다.

그녀는 통역과 번역을 들어, 통역에 대해서 설명한다. 언어를 바꿔 사람이 알아듣게 하는 것은 번역과 통역이 있지만, 시간적 조건이나 환경이 너무도 달라 통역과 번역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을 할 때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자료를 찾아 해결할 수 있지만, 초를 다투는 통역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생겨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통역사가 완벽하게 누군가의 말을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연설을 하거나 강연을 할 때 용어적인 말이 많이 첨가된다. 용어적인 말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음, 그렇다면 말이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말인데요, 말하자면 말이지요, 저, 그게" 등 요점을 전달하는 데 방해되는 얼버무림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말을 다 통역하자고 들면, 결국은 요점은 모호해지고 듣는 사람은 도대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통역사를 무시한 채 자기 할 말만 하기도 하고, 한 구절 말하고는 통역사를 바라보고, 또 한 구절 말하고는 통역사를 바라보며 통역해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단다.
통역사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통역해야 할 일도 생기기 때문에, 의학, 과학, 공학 등 전혀 알지 못하는 전문 분야의 용어를 공부해야 할 때도 있다. 어쨌든,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하며, 기지와 재치도 발휘해야 한다.

통역사들은 자기들끼리 통역사를 '미녀와 추녀'로 분류하는데, 원문에 충실하고 원 발언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좌표축으로 정숙함을 측정하고, 원문을 잘못 전달하고 있거나 원문에 어긋난 경우에는 부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문의 좋은 정도, 역문이 정돈된 정도, 편안하게 들리는 정도에 따라 여자의 용모에 비유하여 정돈된 경우에는 '미녀', 아무리 봐도 번역한 티가 나면서 어색한 역문일 때는 ;추녀'라고 분류해 '정숙한 미녀, 부정한 미녀, 정숙한 추녀, 부정한 추녀'로 분류한다.
다들 '정숙한 미녀'를 선호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황에 따라 '부정한 미녀'가 선호되기도 하고, '정숙한 추녀'가 선호가 된다고 하니 말이다. 지나친 '정숙'도 상황에 따라서는 큰 죄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어떤 분야나 '정도(正道)'만 걷는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는 다른 통역사들의 에피소드와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알았으며, 경험을 통해 배워나갔다. 그리고, 이 책이 통역이란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물론, 통역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말하는 통역은 말만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두 자기만의 문화와 생활이 있으니, 그것을 잘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게 통역사가 가져야 할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통역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라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통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통역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그 '현장'은 매번 바뀌고, 어떤 '현장'에서 통역을 해야 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통역사는 매춘부와 같다는 이상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론을 펼치기도 했지만, 자신이 일하는 곳은 항상 다른 '현장'이기에 통역사는 일을 그만둘 때까지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라는 결론도 내어 놓는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곤두세워야 하고, '연사'가 매번 달라 그들의 말투나 발언 습관에 적응해야 할 때도 있고, 난감한 상황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통역사라는 직업에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그 매력에 압도되어 있었다. 분, 초를 다투는 일이지만, 언제나 즐겁게 일을 해냈고, 알아주는 통역사였지만 통역 전날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거나, 긴장의 고통에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통역사라는 직업을 놓지 않았다. 아마도 행복했던 것 같다.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일, 애환, 노하우에 대해 차곡차곡 정리한 <미녀냐 추녀냐>는 단순한 에세이라고만 보기는 곤란하다. 그녀는 이 책에서 통역사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을 다독이고 있으며, 돌파구를 찾아낼 방법들을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통역사라는 직업 뒤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들을 털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종종 읽는 이가 통역사라도 된 것처럼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할 것이다. 그녀의 글에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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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