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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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식견문록>에서 재기 발랄한 문체를 뽐냈던 요네하라 마리의 <미녀냐 추녀냐>는 통역의 세계에 관한 내용이다. 언뜻 보기에 제목이 왜 저리 생뚱맞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미녀'와 '추녀'가 어떤 의미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군가의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갖게 되는 직업은 몇 개나 될까?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하며 쌓은 노하우로 승승장구 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직업을 바꾸다 보니 처음에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직업은 모두 다를 테고,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생활하게 되니,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범주에는 통역사도 포함된다.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였다. 그녀가 주로 한 일은 러시아어 동시통역. 어릴 때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고, 도쿄로 와서도 러시아어학과를 졸업했다. 그녀의 성장 환경은 그녀가 러시아어를 동시통역하기 좋은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미녀냐 추녀냐>에는 그녀가 현장을 뛰면서 쌓은 지식과 어려움 재미있는 에피소드, 방법론 등이 어렵지 않게 쓰여 있다.

옐친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담대했던 그녀는, 간결하고 정갈한 통역으로도 유명했다. 한 기자는 요네하라 마리가 통역 부스에 앉아 있으면, 안심을 했다고 하며, 옐친 대통령이 일본 사람들을 욕하다가도 그녀가 나타나면 '마리, 마리'라고 부르며 반가워했다고 하니 그녀는 단순히 통역사만으로 존재한 것은 아닌 듯싶다.

그녀는 통역과 번역을 들어, 통역에 대해서 설명한다. 언어를 바꿔 사람이 알아듣게 하는 것은 번역과 통역이 있지만, 시간적 조건이나 환경이 너무도 달라 통역과 번역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을 할 때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자료를 찾아 해결할 수 있지만, 초를 다투는 통역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생겨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통역사가 완벽하게 누군가의 말을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연설을 하거나 강연을 할 때 용어적인 말이 많이 첨가된다. 용어적인 말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음, 그렇다면 말이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말인데요, 말하자면 말이지요, 저, 그게" 등 요점을 전달하는 데 방해되는 얼버무림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말을 다 통역하자고 들면, 결국은 요점은 모호해지고 듣는 사람은 도대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통역사를 무시한 채 자기 할 말만 하기도 하고, 한 구절 말하고는 통역사를 바라보고, 또 한 구절 말하고는 통역사를 바라보며 통역해주길 원하는 사람도 있단다.
통역사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통역해야 할 일도 생기기 때문에, 의학, 과학, 공학 등 전혀 알지 못하는 전문 분야의 용어를 공부해야 할 때도 있다. 어쨌든,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하며, 기지와 재치도 발휘해야 한다.

통역사들은 자기들끼리 통역사를 '미녀와 추녀'로 분류하는데, 원문에 충실하고 원 발언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좌표축으로 정숙함을 측정하고, 원문을 잘못 전달하고 있거나 원문에 어긋난 경우에는 부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문의 좋은 정도, 역문이 정돈된 정도, 편안하게 들리는 정도에 따라 여자의 용모에 비유하여 정돈된 경우에는 '미녀', 아무리 봐도 번역한 티가 나면서 어색한 역문일 때는 ;추녀'라고 분류해 '정숙한 미녀, 부정한 미녀, 정숙한 추녀, 부정한 추녀'로 분류한다.
다들 '정숙한 미녀'를 선호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황에 따라 '부정한 미녀'가 선호되기도 하고, '정숙한 추녀'가 선호가 된다고 하니 말이다. 지나친 '정숙'도 상황에 따라서는 큰 죄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어떤 분야나 '정도(正道)'만 걷는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는 다른 통역사들의 에피소드와 조언을 받아들일 줄 알았으며, 경험을 통해 배워나갔다. 그리고, 이 책이 통역이란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물론, 통역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말하는 통역은 말만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두 자기만의 문화와 생활이 있으니, 그것을 잘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게 통역사가 가져야 할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통역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라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통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통역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그 '현장'은 매번 바뀌고, 어떤 '현장'에서 통역을 해야 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통역사는 매춘부와 같다는 이상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론을 펼치기도 했지만, 자신이 일하는 곳은 항상 다른 '현장'이기에 통역사는 일을 그만둘 때까지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라는 결론도 내어 놓는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곤두세워야 하고, '연사'가 매번 달라 그들의 말투나 발언 습관에 적응해야 할 때도 있고, 난감한 상황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통역사라는 직업에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그 매력에 압도되어 있었다. 분, 초를 다투는 일이지만, 언제나 즐겁게 일을 해냈고, 알아주는 통역사였지만 통역 전날에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거나, 긴장의 고통에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통역사라는 직업을 놓지 않았다. 아마도 행복했던 것 같다.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일, 애환, 노하우에 대해 차곡차곡 정리한 <미녀냐 추녀냐>는 단순한 에세이라고만 보기는 곤란하다. 그녀는 이 책에서 통역사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을 다독이고 있으며, 돌파구를 찾아낼 방법들을 속삭이고 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 통역사라는 직업 뒤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들을 털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종종 읽는 이가 통역사라도 된 것처럼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할 것이다. 그녀의 글에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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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1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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