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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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원(梔園)은 치자를 좋아한 황상을 위해 다산이 지어준 호다.

치자 향기가 짙고 달콤해도 스승께서 내게 치원이란 호를 주신 뜻은 그 때문이 아닐게다.

내 못난 됨됨이를 아셔서 치자를 본받게 하려 하신 것이다.

치자는 서리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다.

눈속에도 푸름을 지켜 낸다.

재목감은 못 되어 나무꾼이 거들떠보지 않으니 제 삶을 지켜갈 만하다.

무엇보다 꽃 하나에서 하나씩의 열매를 맺는다.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결실을 맺으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꽃은 희어 고결하고 씨의 알맹이는 노란 빛으로 꽉 차 있다.

선생님께서 내 자를 子中으로 지어주신 것도 내 성씨가 黃이니 이 치자 씨앗의 '자중황'을 잊지 않게 하시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바야흐로 e-편한 세상이 되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으로 '토크'가 가능하고,

페이스 북에 접속하여 사진을 올리고, 수다를 떠는 일도 가능하다.

트위터에서는 온갖 주제에 대하여 열띤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렇건만,

그 전자 세상 속에서 '삶을 바꾼 만남'을 만나고,

관계를 지속하는 일,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 이야기들이 남아있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조선 시대, 강진에서 서울까지는 부지런히 걸어도 20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편지가 오가기도 힘든 거리였고,

직접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갔을 때 만난 제자 황상과의 인연이

다산사후에도 다산의 아들 정학연, 학유 형제들과 이어지며,

다산과 이어진 초의 선사, 추사의 만남도 황상이 자식 세대까지 연을 맺는다.

 

다산의 강진 유배지는 '사의재 - 마땅히 해야할 네 가지'라고 불렀다.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언동, 무거운 동작... 그렇지 못하면 바삐 고쳐야 한다고...

 

제자 황상에게 내린 편지들은 재밌기도 하고 갸우뚱하게도 하는 구절들이 많다.

 

진실로 능히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뜻으 고쳐, 내외가 따로 거처하도록 해라.(138)

 

헐~ 아무리 과거 공부, 시문 공부가 중하다지만.. 남의 내외 잠자리까지 통제하는 스승이라니 ㅎㅎ

 

대저 살아서 돌아올 뜻이 없어야 한다. 다 말하지 않는다.(156)

 

두려운 스승이다. 차 달이는 제자에겐 삐쳐서 '과거의 사람이... ' 이렇게도 썼다.

연애 편지 말미에, 삐쳤다고 과거의 사람이~ 이렇게 쓴다면, 받는 사람이 얼마나 아뜩하랴.

 

다산은 무슨 공부를 하든,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게 했다.

공부는 기록을 통해서만 누적되어 이전될 수 있다고 믿었다.(185)

 

블로그가 좋은 것이 이런 것이다. 오랜 시간 누적된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

다산은 300년을 앞서 살아간 사람이다.

 

생에서 귀한 것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세.

어찌 꼭 얼굴을 맞대면해야만 하겠는가.

옛 어진 이 같은 경우도 어찌 반드시 얼굴을 본 뒤라야 이를 아끼겠는가.(242)

 

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지음'이라 하였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었던 나무꾼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그만 '절현' 하고 말았다는 고사도 있다.

 

지음은 평생 몇 번의 인연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다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관심을 가지고 그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지음이 다가왔을 때 그를 놓치지 않는 일... 그것이 삶을 바꾼 만남을 만나는 길일 것이다.

 

백아가 나무꾼에 불과한 종자기와도 음률을 나누면서 마음을 공유했듯,

지음은 직업, 연령, 성별, 국적에 상관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일 수 있음은 당근이다.

 

강진에서 유배당해있던 시절이 제자들은, 다산이 해배되어 마재로 올라오자 희망을 품고 다산을 따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출세길에 다산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실망한다. 그렇게 놓치는 사람은 소중한 걸 이해관계에 얽매여 놓치고 만다. 세상 만사 다 그렇다.

 

조선 최고의 학술 집단으로 드림팀의 위용을 자랑하던 다산 학단은 이렇게와해되고 말았다.

다산을 위해서도 제자들을 위해서도 슬픈 일이었다.

한편 어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스승의 상경 이후 사제간 학문의 고리는 이미 끊어졌고,

경제적 수수 관계만 남은 채 오랜 시간이 흐른 결과였다.(398)

 

현대인은 매일 참으로 달콤한 사람들과 많이,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더더욱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눈물짜는 일도 잦다.

그것은, 사람을 만났을 때 이해관계로 바라보아 제 인연을 제가 놓아버리기도 하기 때문이고,

또는 이러저러한 경계선을 스스로 그음으로써, 애써 자기에게 주어진 '일기일회'의 인연을 걷어차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이치고 이치에' 一期一會 란 예쁜 단어가 있다.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인연이란 뜻이다.

이 말은 법정스님 법어집에서도 쓰인 단어인데,

그 인연을 눈 밝게 알아보고, 귀하게 여겨 소중히 떠받들고 사는 이는 행복할 것이요.

귀한 인연인줄 모르고 뻥~ 걷어차 버리는 이는 외로울싸~ 한숨짓는 삶을 살 것이란 이야기다.

 

새해 복 많이 받으란 말을 나는 쓰지 않는다.

복은 주어지는대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짓는다고 술술 닥치진 않아도, 화를 지으면 복이 멀어지기도 할 노릇이다.

 

다가오는 새해엔,

복을 지으며 살 일이다.

그래서 내게 다가오는 복된 인연이라면 귀하게 여겨 소중히 떠받들고 살려는 자세로 살아야

행복한 날이 환하게 밝혀져 올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새해엔... 복을 많이 지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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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의 향낭각시...를 바퀴벌레로 옮긴 것은 못마땅하다. 향낭각시는 노래기를 일컫는 말로 노래기는 장마철에 많이 볼 수 있는 발이 많은 냄새를 풍기는 절지동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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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1-0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책 넘 흥미롭고 재미날 것같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세요

글샘 2013-01-01 22:22   좋아요 0 | URL
네~ 하늘바람 님께도 올해 좋은 일만 가득가득 하시길...

2013-03-09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3-03-09 22:35   좋아요 0 | URL
저는 올해 장안고등학교로 옮겼습니다.
담임도 하고 해서 독서연구회 할 시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ㅋ~
제가 조언을 할 주제는 못 되구요.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학교가 넘 외진데 있어서...
 
화담집 - 종달새의 날갯짓에서 이끌어낸 기의 철학 청소년 철학창고 29
김교빈 지음, 서경덕 원작 / 풀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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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라는 것은 능히 그칠 곳을 알아서 그치는 것이니,

그 그칠 곳이 아닌 데에 그치면,

그 그침은 그칠 곳에 그친 것이 아니다.(이규보, 지지헌기 止止軒記)

 

이 '지지'라는 말은 주역에 나온다고 한다.

서경덕은 보통 '황진이'의 대역으로 섹시 코드를 잠재운 코믹 유학자 내지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깊은 산 속에 어느 님 오랴마는 / 지는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긴가 하노라' 하는

임 기다리는 시조 지은 이로만 알고 있었다.

 

개성의 송도 3절로, 박연폭포와 황진이, 그리고 그를 치는 이유를 난 몰랐다.

화폐에도 이황, 이이는 있지만, 그는 없어서... 그의 위상을 알 바 없었다.

이 책은 청소년용 철학서지만, 간결하고 유용하다.

어른들도 읽어볼 만 하다.

 

조선이란 나라는 국가 질서를 위하여 '성리학'을 도입한다.

성리학적 질서를 위하여 '문자'를 만들 정도로 조선은 이노베이션에 능한 나라였다.

15세기에 주민등록증(호패)을 만들어 백성을 관리한 왕조는 전무후무하다.

다만, 너무 '왕조 유지'에 몰입하다보니, 금속활자 같은 좋은 조건도 '삼강행실'을 가르치는 데나 써먹었단 한계가 있고,

질서 유지를 위해 '삼강행실'을 '도록'으로 만들어 가르칠 정도로 전염성 강한 철학 국가였다.

 

철학서에서 '니체'를 위험인물로 치는 자들이 있듯,

조선의 이기론에서 '기 철학'자인 서경덕을 치지도외 하는 것은 어쩜 당연할지 모른다.

 

주역이라는 책은 '점치는 책'이지만,

그 점의 원리라는 8괘와 64괘는 그 풀이가 모두 자연의 이치를 본따고 있다.

하늘과 땅, 물과 불.... 이렇게 자연을 궁구하여, 그 이치를 본받아 삶의 이치에 빗다는 것이 주역인 바,

서경덕이 주역을 받들어 모시는 것도 '기 철학'의 본류와 통한다.

 

주역에서 이르기를 '머물 만한 때면 머물고 갈 만한 때면 간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생각도 없고 잘못도 없는 경지에 멈출 수 있겠습니까

경건함을 지키고 이치로 물끄러미 보는 것이 방법입니다.

그래서 일이나 물건이 지나가 버리면 곧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맑은 거울의 텅 빔처럼 맑게 될 수가 있어야 합니다.(103)

 

동지를 가리키는 주역의 괘는 '복' 復 괘이다.

가장 어둡고 가장 추울 때가 가장 희망찰 때란 뜻이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뜻도 품은 뜻이다.

 

이렇게 자연을 통해 삶을 바라보려는 학자들의 마음을 새로이 읽어봐야 할 시절이 돌아오니,

마음은 어둡지만 불빛을 찾아 '복 괘'를 뒤적거림도 유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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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 서른 살의 선택, 한비자에서 답을 찾다
김태관 지음 / 홍익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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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가 살았던 세계는 비정한 세계였다.

한편 생각해 보면, 비정하지 않은 세계는 없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썼던 이탈리아의 혼란기나,

중국의 혼란기나 다를 것도 없다.

세상은 늘 혼란하므로... 마키아벨리나 한비자가 '온고이지신'으로 읽히는 모양이다.

 

엄한 가정에는 사나운 노비가 없고,

모질지 못한 어머니 밑에서는 못된 자식이 난다.

후덕함으로 혼란을 막을 수 없다.

 

무릇 남을 설득할 때 힘써야 할 점은 상대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은근히 칭찬하고,

부끄러워하는 일은 은근히 덮어주는 것이다.

상대가 개인적으로 급히 하고자 하는 일은 그것이 공적으로도 타당하다는 사실을 짚어줘야 한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일은 좋은 면을 꾸며서라도 그 일을 계속하라고 부추겨야 한다.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작정 삽질로 밀어붙이는 강함이 아니라,

상대를 제대로 읽고 소통하면서도 덮어주고 짚어주는 지혜를 보여주는 지도자가 리더가 될 것이다.

 

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처음에는 고달파도 나중에는 이로우며,

인으로써 다스리는 것은 처음에는 좋으나 나중에는 곤궁해진다.

 

춘추의 기록에 의하면,

법을 어기고 반역을 일으키는 중대 범죄는 늘 존귀한 대신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런데도 법은 언제나 비천한 사람들만 처벌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더욱 절망하고 억울해 한다.

 

그래서 엄정한 법이 서는 일은 모든 집단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엄한 법이 주소를 잃고 '애먼 사람'을 잡기 십상인데,

신상필벌의 '믿음'은 일벌백계의 '엄함'보다 앞서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에서는 엄정한 법도 비웃음 사기 십상이다.

 

보석을 알아보는 사람이 진짜 보석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마저 비워라.

 

너도나도 앞다투어 달려가는 길이라면, 그대는 발길을 멈춰라.

미련이 많을 때는 미련없이 돌아서라.

인생에는 달릴 때가 있고 멈출 때가 있다.

가장 떠나기 싫을 때가 실은 바로 떠나야 할 때다.

 

글을 읽는 사람일수록, 진짜 보석을 놓치고 만다.

엉뚱한 곳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는 아름답다는 말은 진리다.

그걸 모르고 질질 끌면, 추해진다.

마음에 채워야 할 것과 비워야 할 것을 가끔 정리하면서,

비울 것은 비우고, 비웠다는 생각마저 비워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보석을 알아볼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나도 한 5년은 능히 기다려야 할 듯 싶다.

 

행하지 않음으로써 다스리는 것을 무위지치라 한다.

인위를 버리고 자연을 좇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

 

한비자는 약팽소선을 거론한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작은 생선 굽듯' 하라는 것이다.

자꾸 뒤집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좋다.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애써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단순한 것이 가장 큰 이로움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을 좇아, 가만히 지켜보는 일...

그리고 조심스럽게 약팽소선하는 일...

대교약졸... 단순하게, 기교를 부리지 않는 일...

소인에겐 가만히 있기가 가장 어렵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역시 유행가 가사로 막음하는 것이 가장 깔끔하구나~ ㅎㅎㅎ

 

한비자에서 주워온 구절들이

팍팍하고 냉정한 세상 살아가는 길에 이정표 또는 위로의 한마디가 되기도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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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벗과의 대화
안대회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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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엔 '인생론'이 대단한 건줄 알았다.

이제 나도 반푼은 꺾인 인생이 되고 보니, '인생론'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재밌게 살자."와 "잘 살자." 그리고 "현실적으로 살자." 정도...

그중에 내가 젤 좋아하는 건, 1번이다.

이건 뭐, 내가 찍기 세대라서 찍는 덴 자신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살아 보니깐,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 넣어놓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각들이 아무리 좋아도,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즉, 재밌지 않은 것이라면, 난 할 수 없는 인간이란 걸 나이 오십을 앞두고야 알게 되었다는 거다.

 

아들하고 나하고 참 다르고 달라서, 첨엔 아들을 미워했다.

왜 저자식은 날 안 닮았을까? 생긴 건 쏙 빼닮았는데, 공부는 전혀 안 닮아서 실망이다~

이래서 시작한 게 체질 공부다.

체질 공부를 하면서 아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나니, 아들이 사랑스러워졌다.

그래서 삐걱거리면서 아들과 같은 학교에서 3년을 한솥밥 먹고 살 수 있었다.

 

물론, '잘 살자'는 '건강한 웰빙'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올바른 삶도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 세대는 여기 너무 속박되었던 삶을 산 거 같다.

'현실적'에 대해서는 난 잘 모르겠다.

재밌게 사는 게 왜 승진하는 거보다 가치가 적다고들 여기는지 말이다.

승진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일은... 난 딱, 질색이다.

 

안대회라는 한학자는 늘상 옛사람들과 노는 사람이다. ㅋ~

요즘 정민 선생이 '다산 茶山' 선생을 사숙하더니 '다산 多産'증에 걸리셨다. ㅎㅎ

읽는다고 부지런히 읽어도 도무지 그 자식들을 모두 일별해 드릴 수가 없다. ㅠㅜ

집에 쌓아둔 책들이 '황상과 나눈 편지(삶을 바꾼 만남)', '차이야기(새로 쓰는 조선의 차문화)', '한국학(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등 수북하다.

안대회는 정민에 비하면 '과작 寡作'이다.

그렇지만, 글로 치면 정민 선생보다 조금 더 깔끔한 맛이 더하달까?

작품이란 게 '양적 팽창이 질적 도약'을 보증하기도 하지만,

차분한 속에서 '깊이와 넓이, 그리고 세련미'까지를 얻어내는 것이 안대회의 '멋'이라 본다.

 

이 책은 '소품'이다.

집을 꾸밀 때, 커튼이나 소파 등의 빛깔과 톤은 집안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지만,

막상 그 집을 꾸민 사람의 성정을 알아보게 하는 것은, 적절한 곳에 놓인 자그만 화분 하나, 장난감 하나일 수 있다.

거창한 작업에 몰두하는 정민 선생에 의하여 '다산'이란 거두를 우러르게 하는 작업도 의미있지만,

이런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인 정원이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유유자적 배회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책 속의 글들은 아기자기하다.

 

주제는 무지 방만하다.

그런데 그 다양성이 오히려 아름답다.

다양성이 생물 종의 보존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말처럼,

조선의 글들이 남긴 획일적 사상 (강상의 윤리)에 비하면,

그런 윤리,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탐구와 사유의 펼침이 참으로 다채로워 황홀하다.

그 빛깔이 어느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퍼지고 번지면서 어울린 모습이 마음을 아른아른하게 만든다.

 

홍길주의 <숙수념 : 누가 내 꿈을 이루어 줄까?>이란 작품처럼 '판타지'를 끄집어 내기도 한다.

희망과 절망의 판타지이면서 상상력과 교양의 저작인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박지원의 벗에 대한 편지도 아름답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것은 참으로 보통의 인연이 아니고 보통의 만남이 아니다.

수천 년 흘러온 세월 속에서 하필 그 사람을 벗으로 만나 사귀다니.

이덕무 역시 <느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면서 반색을 한다.

 

법구경에서, <건강보다 더 큰 은혜는 없으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는 구절도 들려준다.

종횡무진, 온고이지신은 특정 방향이 없다.

 

이학규란 시인의 <비해>에서는 번민과 근심의 순간에 더 비극적인 순간을 떠올리면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 글도 재밌다.

번민이 찾아들 때에는 순장을 당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근심스러울 때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떠올려 본다...

 

송나라의 시인 육유에게서 빌려온 '서소'란 말은 참 정겹다. 책방도 아닌, 책 둥지라니... ㅎㅎ

 

내 방 안에는 책이 궤짝에도 들어있고, 앞에도 흩어져 있고, 침상에도 널려 있네.

상하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책 아닌 게 없지.

어쩌다 나가볼까 염을 내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들이 쌓아놓은 마른 장작처럼 포위해서 나가지 못할 때도 있네.

그런 때면 문득 혼자 웃고는 '이야말로 내가 말한 둥지가 아닐까!'라고 자문자답한다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웃고 넘길 수만은 없을 일이다.

이사라도 해보면, 일꾼들이 투덜대는 소리에 맘 약해져 한 오만 원이라도 얹어줘야 했던 기억도 날 거고 말이다. ㅋ~

 

추사의 노규황량사... 글씨는 참 예술이다.

노규(이슬 맺힌 아욱)와 황량(누런 기장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임.

얼마나 단출하면서도 정감으로 가득한 시회였을지를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진다.

 

성호 이익의 '삼두회'도 재밌다.

가까운 친척들을 불러 콩죽, 두부, 된장 등을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눴다는 이야기.

감옥 가는 일을 '콩밥 먹으러 간다'고 할 정도로 현대까지도 콩은 거칠거나 검소한 음식의 대명사였다.

양반이 지켜야할 검약에 대하여 생각할 일이다.

그뿐 아니라,

그 자리에 젊은이와 어른이 모두 모이자 해박한 지식과 굉장한 언변으로 옛일을 말씀하셨다.

자세히 헤아리고 분변하시니 말슴마다 법도에 맞아 구경하고 감화된 자가 많았다.

이런 회합이라면, 콩밥을 거칠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다.

널리 알려야 할 모임의 양태다.

 

이규보가 몸을 기대는 안궤의 부러진 다리를 고치고서 새긴 '기물명(記物銘)'도 이채로운데,

피곤한 나를 부축한 것은 너고,

다리 부러진 너를 고쳐준 것은 나다.

병든 이들끼리 서로 도와준 것이니 누가 공이 있다 뽐내랴?

의유당 김씨의 '조침문' 에 버금가라면 서러워할 감상 아닐까?

재밌다. 삶은 이런 자세로 살면, 힘들지 않잖을까?

옛글에서 이런 마음을 배우는 거... 그런 게 '온고이지신'아닐까?

 

소문으로 듣기만 했던 '마쿠라노 소시(枕草子)'의 세이쇼나곤이란 상궁을 만났다.

1000년 전 일본 여자의 삶과는 아무런 교섭도 없는 내게 이 수필집이 곰살맞게 다가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담백하고도 예민한 감각, 여성적 시선과 언어가 발산하는 멋이 매력적이고,

인생에 대한 통찰이 생동하여 이틀 만에 다 읽기는 했으나 너무 빨리 읽은 것 같아 종내 아쉽다.

 

방 한쪽 구석이나 장지문 뒤에서 들을 때, 식사 중인지 젓가락 소리와 숟가락 소리가 섞여서 들리는 것.

그런 때 주전자 손잡이가 탁 하고 옆으로 넘어가는 소리 또한 마음이 끌린다.

안 선생이 아쉬워할 만 하다.

이런 책이라면 나도 만나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넘친다.

 

스승 이용휴가 제자 이언진의 죽음을 두고 남긴 애도시...

평범한 작은 남자에 불과하지만, 죽고 나자 사람 수 줄어든 느낌일세.

세도에 무관한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많기도 하건만.

박희병 선생이 중점 연구한 호동(골목길) 이언진이어서, 그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제자였지만, 지음의 죽음에 버금가는 아픔 아니었을지... 상상이 된다.

 

살구나무 꽃을 본 사람들은,

왜 고전의 클리셰에서 '도화 행화, 복숭아꽃 살구꽃'이 등장하는지 알 것이다.

내 본적인 고향 역시 '목행동'이란 살구꽃이 들어선지, 복숭아꽃보다 살구꽃이 더 정겹다.

 

 

 

이 책에서 재밌는 사실을 두 가지 찾게 되는데,

 

우선,

우리가 잘못아는데 널리 알려진,

<야설 野雪>을 서산대사의 글이란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바로잡는 부분이 있다.

 

눈발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순조 연간의 시인 이양현의 작품이라고 바로잡는다.

어쨌든, 눈길의 벌판을 떠올리면서 아스라한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명문임엔 변함이 없다.

 

또 하나,

연암 박지원이 '벗은 제2의 나'라고 했는데,

박지원은 이수광으로부터, 이수광은 마테오리치로부터,

키케로의 유명한 로마의 속담을 전해 들은 것을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옛글 속에는 옛사람들이 들어 있다.

허나, 그들은 고리타분하고 고색창연한 사고에 얽매인 '옛사람'만인 것은 아니다.

그들의 글을 통해 그들 역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상상과 발견'의 묘미를 느끼며 살아갔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안대회처럼 그들의 삶을 읽어주는 이를 통하여,

삶을 '즐길 줄 아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일이야말로 독서의 묘미가 아닐까?

 

 

독서를 통해 새로운 인생관을 확립한단 건 억지일 수 있으나,

"재밌다~"는 삶을 살려는 이에게도,

"현실적" 또는 "잘 살기"를 추구하는 이에게도,

역시 독서는 한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일이니,

천년 전 벗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관'을 배우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독서...

한 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한 줄기 소나기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이 책은 그런 한 줄기 소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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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철학 대 철학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도 자체가 신선하다.

그런데... 대결 구도에 어울리는 철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닌 철학자들도 있게 마련인데...

그걸 꼭 vs 구도에 넣으려다 보니 무리한 구석도 있는 듯...

 

그렇지만, 철학이든 문예 사조든...

이전 시대의 정설로 받아들여진 패러다임에 문제제기를 하고,

반대되는 의견의 구조를 수립하려던 거였다보니... 강신주처럼 설명하는 것이 일리가 있기도 하다.

그치만, 모든 철학자들이 그런 구도에서 명확히 대립되는 것은 아닌 바...

더 치중하여 설명하고 싶은 철학자와 개념도 있었을 거고,

가벼이 넘기고 싶은 철학자도 있었을 건데... 암튼, 이런 대작을 기획하여 밀고나온 힘이 부럽고 대단하다.

내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같은 시대에 이런 젊은 철학자가 모국어로 책을 왕성하게 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노릇이다.

 

강신주는 '정신적 키가 한 뼘 정도 자랐다'는 말을 좋아한다.

철학 서적을 탐독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땅딸보 철학자 신드롬'이다. ㅋ

그래서 자기가 무지 큰 줄 알고, 늘씬한 줄 알고, 맨날 짝붙는 티를 입으시나부다.

그게, 철학의 장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한데,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는 점이라면,

철학에서 활용되는 언어가 상당히 도식적이고 분석적이어서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점이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가 주는 약점이라면,

인간의 삶은 늘 뼈대로만 이뤄지지 않고, 실존 인간이 놓인 시대적 사회적 주변 상황과 배경을 고려하여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그 사유의 토대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자칫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었던 곳에서는,

말잘하면 공산당... 취급을 받았던 바,

철학하면 말잘하게 되고, 바로 매카시즘의 공격 대상이 되기 십상인 것이었고...

그래서, 철학적 토론의 토양은 백안시되었던 곳이 이 나라였다.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새로운 배치, 즉 아장스망을 실현하는 일로 인해,

내가 영위해온 삶의 규칙은 완전히 새롭게 재편된다.

타자가 가능 세계라면, 나는 과거의 한 세계이다. (160)

 

들뢰즈의 한 마디는,

철학이 만들어주는 위험한 인간을 규정한다.

타자가 '하나의 위협적인 세계의 가능성'이라면,

철학 역시 '위협적인 세계관의 가능성'을 가진 도구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는 '사랑'의 문제에 탐닉할 수밖에 없는데,

라캉의 <욕망 = 요구 - 욕구>의 공식으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고,

바타유처럼 "에로티즘은 사회적인 것"이라고 규정하는 일도 큰 의미가 있다.

최근 한국의 젊은이들이 <쿨한 사랑>을 외치는 것 역시, 삶의 조건의 팍팍해진 사회적 반영임을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에서 명확히 짚어내지 못하는 일 역시, 바타유를 제대로 못 봐서 그렇다.

같은 작업을 한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사랑의 본질에 명확히 다가가는 것을 보면,

철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명확한 시선을 제공하는 [지혜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긴, 세상은 늘 대립의 연장이다.

강신주가 툭하면 내미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란 말에 대적하는 아감벤.

아감벤은 <정치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에게서 벌거벗은 생명을 분리해 내며,

그것을 자신과 대립시키는 동시에 그것과의 포함적 배제관계를 유지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푸코를 계승한다.

 

이렇게 나누는 일 역시 쉽지 않은 바,

강신주의 철학적 전통에 대한 통찰이 이 책을 이끌어 냈다면,

앞으로도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책들로 그 간극을 가득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서양철학자에 버금갈만큼 훌륭한 동양 철학의 그림도 다양한데,

그의 동양철학사가 목하 집필중이어서 그 부분에서 더욱 세밀한 그림을 그려주길 바란다.

철학자라도 보고싶지 않을 철학 사전에 비하면, 이 책의 발견이야 말로,

<평행으로부터 어긋나는 미세한 차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미세한 편차>를 칭하여,

루크레티우스가 설정한 <클리나멘>의 순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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