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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치원(梔園)은 치자를 좋아한 황상을 위해 다산이 지어준 호다.
치자 향기가 짙고 달콤해도 스승께서 내게 치원이란 호를 주신 뜻은 그 때문이 아닐게다.
내 못난 됨됨이를 아셔서 치자를 본받게 하려 하신 것이다.
치자는 서리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다.
눈속에도 푸름을 지켜 낸다.
재목감은 못 되어 나무꾼이 거들떠보지 않으니 제 삶을 지켜갈 만하다.
무엇보다 꽃 하나에서 하나씩의 열매를 맺는다.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결실을 맺으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꽃은 희어 고결하고 씨의 알맹이는 노란 빛으로 꽉 차 있다.
선생님께서 내 자를 子中으로 지어주신 것도 내 성씨가 黃이니 이 치자 씨앗의 '자중황'을 잊지 않게 하시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바야흐로 e-편한 세상이 되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으로 '토크'가 가능하고,
페이스 북에 접속하여 사진을 올리고, 수다를 떠는 일도 가능하다.
트위터에서는 온갖 주제에 대하여 열띤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렇건만,
그 전자 세상 속에서 '삶을 바꾼 만남'을 만나고,
관계를 지속하는 일,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 이야기들이 남아있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조선 시대, 강진에서 서울까지는 부지런히 걸어도 20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편지가 오가기도 힘든 거리였고,
직접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갔을 때 만난 제자 황상과의 인연이
다산사후에도 다산의 아들 정학연, 학유 형제들과 이어지며,
다산과 이어진 초의 선사, 추사의 만남도 황상이 자식 세대까지 연을 맺는다.
다산의 강진 유배지는 '사의재 - 마땅히 해야할 네 가지'라고 불렀다.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언동, 무거운 동작... 그렇지 못하면 바삐 고쳐야 한다고...
제자 황상에게 내린 편지들은 재밌기도 하고 갸우뚱하게도 하는 구절들이 많다.
진실로 능히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뜻으 고쳐, 내외가 따로 거처하도록 해라.(138)
헐~ 아무리 과거 공부, 시문 공부가 중하다지만.. 남의 내외 잠자리까지 통제하는 스승이라니 ㅎㅎ
대저 살아서 돌아올 뜻이 없어야 한다. 다 말하지 않는다.(156)
두려운 스승이다. 차 달이는 제자에겐 삐쳐서 '과거의 사람이... ' 이렇게도 썼다.
연애 편지 말미에, 삐쳤다고 과거의 사람이~ 이렇게 쓴다면, 받는 사람이 얼마나 아뜩하랴.
다산은 무슨 공부를 하든,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게 했다.
공부는 기록을 통해서만 누적되어 이전될 수 있다고 믿었다.(185)
블로그가 좋은 것이 이런 것이다. 오랜 시간 누적된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
다산은 300년을 앞서 살아간 사람이다.
생에서 귀한 것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세.
어찌 꼭 얼굴을 맞대면해야만 하겠는가.
옛 어진 이 같은 경우도 어찌 반드시 얼굴을 본 뒤라야 이를 아끼겠는가.(242)
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지음'이라 하였다.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었던 나무꾼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그만 '절현' 하고 말았다는 고사도 있다.
지음은 평생 몇 번의 인연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다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관심을 가지고 그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지음이 다가왔을 때 그를 놓치지 않는 일... 그것이 삶을 바꾼 만남을 만나는 길일 것이다.
백아가 나무꾼에 불과한 종자기와도 음률을 나누면서 마음을 공유했듯,
지음은 직업, 연령, 성별, 국적에 상관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일 수 있음은 당근이다.
강진에서 유배당해있던 시절이 제자들은, 다산이 해배되어 마재로 올라오자 희망을 품고 다산을 따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출세길에 다산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실망한다. 그렇게 놓치는 사람은 소중한 걸 이해관계에 얽매여 놓치고 만다. 세상 만사 다 그렇다.
조선 최고의 학술 집단으로 드림팀의 위용을 자랑하던 다산 학단은 이렇게와해되고 말았다.
다산을 위해서도 제자들을 위해서도 슬픈 일이었다.
한편 어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스승의 상경 이후 사제간 학문의 고리는 이미 끊어졌고,
경제적 수수 관계만 남은 채 오랜 시간이 흐른 결과였다.(398)
현대인은 매일 참으로 달콤한 사람들과 많이,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더더욱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눈물짜는 일도 잦다.
그것은, 사람을 만났을 때 이해관계로 바라보아 제 인연을 제가 놓아버리기도 하기 때문이고,
또는 이러저러한 경계선을 스스로 그음으로써, 애써 자기에게 주어진 '일기일회'의 인연을 걷어차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이치고 이치에' 一期一會 란 예쁜 단어가 있다.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인연이란 뜻이다.
이 말은 법정스님 법어집에서도 쓰인 단어인데,
그 인연을 눈 밝게 알아보고, 귀하게 여겨 소중히 떠받들고 사는 이는 행복할 것이요.
귀한 인연인줄 모르고 뻥~ 걷어차 버리는 이는 외로울싸~ 한숨짓는 삶을 살 것이란 이야기다.
새해 복 많이 받으란 말을 나는 쓰지 않는다.
복은 주어지는대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짓는다고 술술 닥치진 않아도, 화를 지으면 복이 멀어지기도 할 노릇이다.
다가오는 새해엔,
복을 지으며 살 일이다.
그래서 내게 다가오는 복된 인연이라면 귀하게 여겨 소중히 떠받들고 살려는 자세로 살아야
행복한 날이 환하게 밝혀져 올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새해엔... 복을 많이 지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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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의 향낭각시...를 바퀴벌레로 옮긴 것은 못마땅하다. 향낭각시는 노래기를 일컫는 말로 노래기는 장마철에 많이 볼 수 있는 발이 많은 냄새를 풍기는 절지동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