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장하준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시대의창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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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자 뉴스엔 한-EU FTA가 사실상 타결됐다는 소식이 떴다. 그리고 그에따른 장, 단점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 텔레비젼 뉴스에 보도 되기도 했다. 현재로선 우리의 자동차나 공업 분야는 유럽보다는 더 강세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리고 돼지와 같은 축산농가나 농업쪽은 우리가 훨씬 약세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예전같으면 별 관심도 안 뒀을 기사였다. 그리고 예전 같았으면 액면 그대로 믿었을 기사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묻기라도 한다면 뉴스에 보도되었던 그대로가 사실이라 믿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들려 줬을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는 조금 달라졌다. 사실 진실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는 나는 그 정보에 접근할 루트가 없긴 하다. 설령 내가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한들 그 정보들의 역할과 미래에 가져올 파장들을 어떻게 예측해 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장하준씨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현재 우리들에겐 소중한 존재들인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에 지금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 이 책이 출간되던 시기에 참여정부는 좌파신자유주의를 외쳤고, 한-미 FTA비준안에 대한 찬성 반대 문제로 국내는 소란스러웠다. 무지몽매했던 나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신자유주의는 대세이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친구겪인 관계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배웠던 학교 교육과 경험으로는 그 모든게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의 생각들이 얼마나 안일하고 어리석은 생각들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하준 교수는 그 전부터도 꾸준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선진국들의 후진국들을 밟고 올라 서려는 행패에 대한 비판을 해 왔다. 그의 책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를 후진국들에게 강요함으로써 가난한 나라들은 현재 하고 있는 생산성 낮은 활동만을 하도록 만든다. 만약 우리 나라가 70년대에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경제 발전을 해 왔다면, 우리 나라에 현재 대표적인 수출품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메모리 칩, LED TV의 생산같은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춘궁기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에서 신자유주의 보다는 보호주의 무역이 한 나라의 경제를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보면 이렇게 확고한 진실도 짚어주지 않는 사람이 없어 알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부는 이런 책들을 "금지도서"로 지정까지 하곤 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게 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안 될 정도다.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선진국 반열에 아직 올라서지 못한 우리에게도 불리한 거지만, 우리보다 못 사는 후진국들에게는 평생 가난할 것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제도인 것이다.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을 윽박질러서 성장 못하게 하면 당장은 거기 있는 관세 내리고 시장에 진출하니까 자기들한테 이익인 것 같지만, 그 시장 자체가 크는 속도고 줄어 들어 버리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그런 이기심에만 호소하는건 아니예요.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그런 얘기도 하는 거라고요. 다만 이기심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후진국들을 도와주는게 좋은 거라는 얘깁니다. [해리포너]4권에 보면 마술학교 덤블도어 교자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선택은 (사실 선과 악이 아니라) 옳은 것과 쉬운 것 사이의 선택이다." 본질은 선과 악의 선택이 아니라는 거죠. 대개 악한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요. 악한 사람은 몇 명 안 되는데, 대개는 '쉽기' 때문에 그 악한 것에 동조하는 겁니다. 옳은 일을 하려면 힘든 게 많으니까요. - 책 속에서

 

 하지만 윗 글에서도 보여지듯이 신자유주의는 후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게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을 뿐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후진국이었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선진국들의 제품들이 이만큼 팔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선진국들의 시장도 줄어드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 자유주의가 아닌 어느정도의 보호주의는 선진국이나 후진국 둘 다에게 이익이 되는 WIN-WIN정책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전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자본시장의 개방을 밀어붙였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이전 정부를 비판하면서 국가의 개입과 보호정책, 재벌과의 사회적 타협을 추구할것을 주장했다.

 

 지승호씨가 장하준교수를 인터뷰한 그대로를 싣고 있는 이 책은 아무래도 글로 논리정연하게 구성한 글들이 아닌, 대담을 그대로 옮긴 형식이라서 (물론, 주제를 어느정도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 갔긴 했지만.) 뭔가 다듬어 지지 않고, 의견들은 중구난방으로 이 주제와 저 주제를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보면 오히려 편하게 하는 대화 형식탓에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이해하기 쉬운 듯한 생각도 든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만큼만 세상이 보인다고 한다. 무지한 상태로 있을때의 세상과 무언가를 알아가면서 느껴지는 세상은 천지차이인것 같다. 과거의 난 내가 알고 있는 전부가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상은 단순하게 생각됐고, 어디에선가 말해지는 진실들을 듣곤 그게 다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숨겨지고, 덮어져서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는 한가지 진실만을 들고서 그게 전부인척 해 버리는지 알게되면 더 이상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장하준 교수도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길 바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꼭 흑백이 아니고, 진실이 한 가지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책 속에서

 

**현재 평택 쌍용 공장에는 해고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때문에 경찰과 대치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비정규직과 해고의 유연성은, 아무런 대안이 없는 노동자에겐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절망감만을 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대규모 시위 상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복지정책이 잘 된 선진국에서는 해고가 되더라도 실업수당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재교육을 받아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을 빨리 이룰 수도 잇기 때문에 해고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복지정책 없이 해고의 유연성만을 도입했을때, 노동자들이 맞게 되는 현실은 절망적이기만 하다. 장하준 교수의 생각처럼 세상의 원칙들이 후퇴하는것 같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점진적인 진보를 이룩해서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내 이후의 내 후손들은 걱정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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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8-2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을 만 하죠. ^^

장하준씨를 우석훈선생은 평하길 "생전에 경제학사에 실릴 수도 있고, 분명히 사후에는

경제학사에 이름을 올리수 있을 것" 이라고 했죠. 저야 과문해서 이 분의 학문적인 깊이를

헤아릴수는 없지만 말이죠. 서울대에 교수자리를 얻기 위해서 3차례 지원했는데 모두 탈락

했다네요. 주변의 확실한 정보라인에서 들은 것중에 장하준 교수가 고대에 가고 싶어하는데

고대에서도 영..... 한국의 경제학계가 일방적으로 치우쳐진 학문분과에서 좌지우지

되는 것같아서 비전공자의 눈에는 걱정스럽네요

습관 2009-08-24 14:5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마찬가지인걸요. 알 수 없는건. 그래서 자꾸 읽어 보는 건데, 항상 관심사가 한 방향이 아니라서 깊이가 없네요. 꾸준하지도 않고, 뭐 전공도 아니고, 관심가질만한 일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흥미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하나에 꾸준하지 않고, 잡다해서요.

그리고 교수 얘기는 들어보진 못했지만,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몰아주기를 잘 하긴 하나 봐요. 다양성 없는걸로는 1등 할 것 같아요.

왠지 씁쓸한데요.

아, 참 반갑습니다. 메버릭꾸랑님.(근데, 메버릭꾸랑은 뭘까요? ㅎ)

다이조부 2009-09-0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버릭은 영어단어 로 꼴통 이라는 뜻이라네요.

꾸랑은 저도 표기는 모르지만, 인도네시아어로 사기꾼 이라는 단어랍니다 ^^

저도 반갑습니다 ㅎ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장하준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시대의창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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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자본시장 개방을 밀어붙이는 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일정한 국가의 개입과 보호정책, 재벌과의 사회적 타협 등을 촉구하고 있다.-007쪽

그는 "시장은 현재 상태를 강화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자유시장은 각국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에 충실할 것을 지시한다. 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가난한 나라들에게 현재 하고 있는 생산성이 낮은 활동을 계속하라는 얘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선진국은 늘 자신들이 먼저 사다리를 올라탄 다음 뒤따라 오는 나라들이 오르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찬다. 한마디로 "니 꼬라지를 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게을러서, 문화적으로 후져서 경제 발전을 못한다"고 비아냥 거린다.-009쪽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 문제가 뭐냐면, 과거 독재정권이 개입주의적이고 규제를 많이 했기 때문에 개입을 안 하고 규제를 푸는게 마치 민주주의 같이 되어 있거든요.-018쪽

주주자본주의가 강화되면서 단기이윤을 많이 내야 하잖아요. 1사분기, 2사분기 이런 식으로 이윤을 발표하니까, 이윤이 떨어지면 당장 주가가 떨어지고, 주가가 떨어지면 (과거에는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서 기업의 인수합병을 어렵게 만들어놨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외부에서 경영권을 위협 받으니까 단기이윤을 많이 내야 합니다.
거기에서 제일 쉬운 방법은 투자를 안 하는 거거든요. 그 다음에 단기이윤을 낸 것 중에서도 주주들에게 배당을 많이 한단 말예요. 예를 들어서 (전형적인 재벌기업은 아니지만) 포스코도 무조건 50퍼센트 이상 배당, 이런 식으로 정책을 세워 놓는단 말이죠. 그러면 결국 거기서 나온 것을 주주한테 많이 나눠 주는 만큼 투자할 능력이 떨어지는 거고, 동시에 단기이윤을 많이 내려고 하다보니까 될 수 있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많이 쓰고, 하청단가 깎고 그래서 노동자나 중소기업에 또 압력을 넣는 거죠.-019쪽

이렇게 자본시장의 변화가 고용 관행의 변화를 불러오고, 고용 관행의 변화와 우리나라 전통의 취약한 복지국가가 결합하면서 자영업이 과잉 비대해진다든가, 아까 말한 대로 모든 능력 있는 이과생들은 의사가 되려고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아주 병리적인 현상들이 나타나는 거죠.-022쪽

저는 복지국가를 얘기할 때 흔히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비유로 들어요.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차를 빨리 운전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브레이크가 없는 차를 몰면 항상 시속20킬로미터 정도로 몰아야지, 안 그러면 사고가 나서 죽는다고요. 브레이크라는 안정장치가 있기 때문에 100킬로미터 이상으로도 몰 수 있단 말이죠. 그런 식으로 개인이 직업을 선택할 때도, 내가 설령 실직하더라도 최소한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다거나 재교육을 받아서 금세 취업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을 때 과감한 선택을 하지, 안 그러면 방어적으로 '어떻게 하면 무슨 자격증을 따서 쫓겨나는 일 없이 먹고살 수 있을까'하는 궁리만 하게 되는 거죠.-023쪽

현실에서 가능한 게 뭔가 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좀 단순화해서 얘기하자면, 자본주의라는 것을 없애기 전에는 어차피 자본하고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자본 가운데 전체 국민경제로 보면 그래도 가장 나은 자본이 뭐냐, 그런 식으로 보는 거죠.-031쪽

왜냐하면 시장이라는 것은 1원1표고, 민주주의는 1인1표니까 시장에서는 내가 당신에 비해 1억분의1밖에 영향력이 없지만, 투표장에 가면 당신도 한표, 나도 한표라고요. 구조적으로, 돈 있는 사람한테 상대적으로 불리한 게 민주주의고요. 그런데 여러 가지 역사적인 이유, 개인적인 잘못, 이런 걸로 해서 민주화 이후에 옛날보다 더 불평등하고, 약자에 대해 더 잔안한 사회가 되어버린 거죠.-039쪽

그런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게, 이런 개개인이 선택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고, 선별적이 되다보니까 개인이 편견이나 이런 게 들어가거든요.-063쪽

"할 수 없이 개방을 한 거다" 또는 "잘못됐다고 하지만, 개방이 대세니까"하는데, 저는 대세론처럼 싫은 게 없어요. 대세론이 옳다면 친일파는 왜 처벌합니까? 오히려 그 사람들 칭찬해야죠, 대세를 따랐는데. 그런 예를 보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071쪽

스위스 같은 나라는 EU가 농업을 엄청나게 보호하는데도 그것도 너무 낮다고 EU 가입을 안 하는 것 아닙니까. 스위스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 최고의 공업국입니다. 1인당 공업생산량이 세계1위예요. 일본보다 25퍼센트나 높고, 미국의 2배가 넘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얘기하냐면, "우리가 지금은 공업국이지만, 우리의 뿌리는 농촌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는 거죠.-112쪽

사람들이 시장논리, 경제논리하고 정치논리를 분리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정치논리가 개입하면 시장의 합리성이 깨진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제가 주장하는 것은 시장이라는 게 뭐냐, 시장은 결국 어떤 일정한 재산권이라든가 사회적 관계, 제도로 규정되는 건데요. 그것들은 결국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거거든요. -148쪽

단기적으로는 문화라고 표현할 수 있는 행태나 사고방식이 다른 것 때문에 경제가 다르게 돌아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요.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를 문화를 규정하는 면이 더 크거든요.-212쪽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게 장기투자를 안 하는 체제예요. 모든 걸 다 열어놓고 움직이기 좋게 만들었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워도 다 빠져나가는 거거든요. 역설적으로 주주가 명목적으로 주인인데 주인의식 제일 약합니다. 제일 빠져나가기 쉽거든요.-278쪽

'세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거구나. 여러 가지 길로 갈 수도 있고, 나름대로 방법을 찾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서 자꾸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재벌 문제가 댔건 WTO얘기가 됐건, 미국 역사에 관한 얘기가 됐건 그런 것이 다 그런 의도에서 하는 거란 말이죠. (중략) 세상이 꼭 흑백이 아니고, 진실이 한 가지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230쪽

미국은 복지국가가 잘 안 되어 있어서 기업이 구조조정하면 갈등이 많아요. 옛날에는 사설탐정 고용해서 쏴 죽였잖아요. 보호주의 압력도 굉장히 강해요. 한미FTA에서 자동차 문제 그렇게 되는 게 지역구 의원들이 자동차 노동자에게 잘못보이면 선거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생각하는 거거든요. 복지국가가 잘 안 되어 있어서 그 사람들 직장 잃으면 끝이거든요. 양극화가 심화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잘리면 너무 말도 안 되는 곳에 가야 하니까 보호무역 압력이 셀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스웨덴, 핀란드 이런 데가 구조조정 더 원활히 할 수 있고, 이런 나라들이 그래서 노조 조직률 80퍼센트, 조세부담률 50퍼센트인데도 무슨 국제경영지수 이런 거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거든요. 바로 이런 나라들의 얘기가 "복지나 분배는 성장에 안 좋다"는 고정관념을 깨주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복지를 잘하면 성장에도 좋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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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전설 (dts)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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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neteen Hundred"(1900) 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가 있었다. 버지니아라는 배 위의 고급손님을 위한 홀 한 구석에 놓인 피아노 위에 버려진. 마침 그 때가 1900년이라서 이 아이의 이름은 "Nineteen Hundred"가 되었다.

 

 '드라마 같지만, 현실 가능성은 많이 떨어지는 판타지인 이 영화를 감독은 왜 만들었을까?'란 생각을 잠시잠깐 해 본다. 그래도 제법 유명한 이 감독은(대표작은 "시네마 천국","말레나", 현재 국내에서 상영중인 "언노운 우먼"의 감독이기도 하다.) 배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음악천재의 이야기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고, 배안에서 평생을 보내다 육지에 내리길 거부하는 천재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내 보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둘다 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 둘 다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수 많은 인파의 환송을 뒤로 배가 출항하고 얼마 후 푹풍우가 치는 밤, 배 안의 세상은 어느것 하나 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못한다. 의자들은 이리저리 미끄러지고, 객실에 벗어놓은 신발들도 복도에서 파도의 출렁임에 따라 흐느작 거리며 복도 위를 흐르는 그 밤의 순간. 배 멀미를 참지 못한 우리의 화자는 파도의 출렁임을 이기지 못해 비틀 거리며 속을 게워낼 곳을 찾아 헤맨다. 그 와중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경쾌하게 그 흔들리는 속을 태연하게 걸어가는 'Nineteen Hundred'. 더 멋진 장면은 그 와중에 파도의 흔들림에 따라 미끄러지는 피아노를 놀이기구 타듯 타고서 태연히 피아노를 치며 앉아있는 장면들이다. 피아노는 용케도 어느 기둥 하나, 가구 하나에도 부딪히지 않고, 홀 안을 미끄러지고 빙글빙글 돌아 다닌다. 결국 복도에 면한 아트글라스를 와장창 깨뜨리고 그대로 직진으로 복도를 통과한 피아노가 선장의 객실로 돌진하고서 그 장면은 종료되지만.

 

 그가 절대음감을 갖고 있고, 피아노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어느새 피아노 천재가 되어 있고, 사람들이 모두 떠난 배 안에서 식량도 없이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에 대한 것은 현실에서라면 정말 궁금한 사항들이겠지만, 영화에서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영화이니까.

 

 그가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이면서도 육지에 발 디디길 두려워하며, 끝내는 거부하는 심정도 나라면 다르게 행동했을지언정, 이해가 될 것도 같다.

 

** 어린시절 누가나 그렇듯이 잠시잠깐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현재 우리집엔 피아노가 없기 때문에 그때 배운 피아노를 치는 방법은 지금은 전혀 기억해 낼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굉장히 매료되곤 한다. 아마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긴 하다. "노다메 칸타빌레", 와 "말 할 수 없는 비밀"같은 류의 영화들.

 이 영화에서도 피아노 배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 이기게 될 지 뻔히 알면서도 피아노 배틀같은 장면에 쏙 빠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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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왕강 지음, 김양수 옮김 / 푸른숲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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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중국의 우루무치란 지역은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위구루인들과 한족이 대치중이고, 얼마전에는 유혈사태로 인해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바 있는 곳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게 우루무치는 중국 변방의 한 지역일 뿐이었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요새들어서는 우루무치의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걸 보면,이 소설탓이 큰 듯하다. 이 소설에 이 곳의 유혈사태에 대한 어떤 언급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이 출간할 당시(2006년)에도 "중국의 화약고"라며 이 지역을 소개한 글을 보니, 현재의 유혈사태가 전혀 예측 못 할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소설의 배경 시기는 모택동(마오쩌둥)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중국의 현대화를 늦추기 위해 신문화 도입과 현대화 주장을 하던 이론가들을 숙청하던 문화대혁명 시기이다. 흔히 20세기의 분서갱유라고 회고되고 있는 이 혁명은 현대화보다는 정신무장(혁명주체사상)을 앞세운 사회 개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류아이에 다니던 학교에 기존의 위구르어 대신 영어를 채택하면서, 왕야쥔이란 선생님이 오신다. 해박한 지식에 마음이 따뜻하고 세련된 매너를 가지고 있고, 말쑥한 옷차림으로 다니며, 향수냄새를 풍기면 다니는 영어 선생은 현대화에 부르주아에 대한 타도를 외치던 그 시대엔 분명 부자연스럽고, 눈에 띄는 존재 였을 터다. 여느 아이와 다름 없어 보이지만, 섬세한 감성을 갖고 있었던 류아이에게 영어선생인 왕야쥔은 러시아에 유학하고, 중국의 내노라하는 일류대학을 졸업한 건축가들이지만, 현재의 사회구조에 착실하게 종속되어 속물스럽게 살아가는 부모보다도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의 말은 모두 단어로 되어 있고, 영어사전에는 무궁무진한 단어가 실려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사상도 모두 사전에서 나왔다. 그들의 사상이 사전에 있는 단어를 새로 배열하고 조합하는 데서 나왔기 때문에 사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며 성경만큼 중요하다.-320쪽

 

 영어사전에 대한 류아이의 갈망은 세계적인 시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일어났던 중국의 문화 대혁명에 대한 반항과도 같다. 모든 사람들이 부르주아를 경멸할때, 류아이는 시력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사서 쓰고, 향수를 뿌리고 다니며, 영어사전을 가지고 싶어한다.

 

 현재는 모택동의 권력을 위해 시대흐름을 역행한 잘못된 혁명으로 알려져 있는 '문화대혁명'은 중국인들에겐 집단적인 트라우마의 하나인듯 싶다. 일제치하와 6.25전쟁이 우리 대한민국의 트라우마인것처럼. 어쩌면 그래서 일견 이 책의 내용들은 전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족과 문화가 다른 우리에게도 가슴에 잔향을 남기는지 모르겠다.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읽어던 중국소설들은(허삼관 매혈기, 닭털같은 나날들) 모두 하나같이 풍자적이고 유쾌했던 것 같다. 익살스러운 마당놀이를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 책 역시 마찬 가지였다. 류아이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은 어른들의 치졸하고 속물적인 근성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인간적이며 논리적인 행동들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개탄한다. 어찌보면, 이 책 속에 가장 어른스러운 존재는 류아이같다. 어쨋든 굉장히 잘 읽혀지고 재미있게 읽혔던 책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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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왕강 지음, 김양수 옮김 / 푸른숲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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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우울함은 종종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물론 우리의 우울함은 죽음이 아니고 탄생에 관한 것이다.-17쪽

엄마와 아빠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으며 황쉬성이 나에게 국제음성기호를 가르쳐주었다. 그때 그 달콤한 향기가 창밖에서 흘러 들어와 내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주었다. 이런 기쁨은 어쩌면 봄이 가져다준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황쉬성이 가져다준 것일 수도 있다. <중략> 어쩌면 이런 기쁨은 영어가 가져다준 것인지도 모른다. '잉글리쉬'말이다.-59쪽

나는 나중에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이런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을 때, 내 속에 모종의 악한 품성이 꿈틀대고 있음을 발견했다. 비록 나 스스로 그것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설령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가능한 회피하려고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내 마음이 가벼워지곤 하는 심리는 어쩔 수가 없다.-65쪽

사람이란 그런 건가 보다.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준다. 가장 잔인한 행동은 종종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심리적인 면에서 말이다.-111쪽

내가 그때 문화적 소양을 그토록 열렬히 원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미스터리하다. 다른 애들이 영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나는 정말 제대로 영어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었다. <중략> 아득히 먼 곳에 사는 미국인과 영국인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분명 기뻐했겠지? 톈산 자락 아래 우루무치의 한 어린아이가 아주 삭막했던 시절에 영어를 좋아했던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영어는 도대체 무슨 힘으로 우리 같은 아이들을 정복한 거지?-140쪽

영어시간이 없어지자 난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당시에 유행하던 말이 하나 떠올랐다. 하루를 배우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고, 이틀을 배우지 않으면 내리막길을 걷고, 사흘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257쪽

내가 조숙한 아이여서일까? 내 영혼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무언가가 채워져 있어서일까? 왜 난 다른 애들하고 이렇게 다른 걸까? 남자애들은 항상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깔깔대면서 거리를 쏘다녔다. 열네 살이란 바로 이렇게 놀 나이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계집애처럼 근심하며 슬퍼하고 있다.-299쪽

엄마는 내 행복의 걸림돌이다. 물론 나를 아껴주지만 그런 사랑이 사람을 잡는다. 그때 그 시절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그런 일은 다반사처럼 발생한다. 톨스토이의 시대는 물론 미셀 푸코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란 말이다.-313쪽

사람들의 말은 모두 단어로 되어 있고, 영어사전에는 무궁무진한 단어가 실려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사상도 모두 사전에서 나왔다. 그들의 사상이 사전에 있는 단어를 새로 배열하고 조합하는 데서 나왔기 때문에 사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며 성경만큼 중요하다.-320쪽

나는 일찍이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내 꿈을 왕야쥔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해.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5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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