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왕강 지음, 김양수 옮김 / 푸른숲 / 2006년 4월
품절


어린 시절의 우울함은 종종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물론 우리의 우울함은 죽음이 아니고 탄생에 관한 것이다.-17쪽

엄마와 아빠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으며 황쉬성이 나에게 국제음성기호를 가르쳐주었다. 그때 그 달콤한 향기가 창밖에서 흘러 들어와 내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주었다. 이런 기쁨은 어쩌면 봄이 가져다준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황쉬성이 가져다준 것일 수도 있다. <중략> 어쩌면 이런 기쁨은 영어가 가져다준 것인지도 모른다. '잉글리쉬'말이다.-59쪽

나는 나중에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이런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을 때, 내 속에 모종의 악한 품성이 꿈틀대고 있음을 발견했다. 비록 나 스스로 그것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설령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가능한 회피하려고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내 마음이 가벼워지곤 하는 심리는 어쩔 수가 없다.-65쪽

사람이란 그런 건가 보다.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준다. 가장 잔인한 행동은 종종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심리적인 면에서 말이다.-111쪽

내가 그때 문화적 소양을 그토록 열렬히 원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미스터리하다. 다른 애들이 영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나는 정말 제대로 영어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었다. <중략> 아득히 먼 곳에 사는 미국인과 영국인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분명 기뻐했겠지? 톈산 자락 아래 우루무치의 한 어린아이가 아주 삭막했던 시절에 영어를 좋아했던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영어는 도대체 무슨 힘으로 우리 같은 아이들을 정복한 거지?-140쪽

영어시간이 없어지자 난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 당시에 유행하던 말이 하나 떠올랐다. 하루를 배우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고, 이틀을 배우지 않으면 내리막길을 걷고, 사흘을 배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257쪽

내가 조숙한 아이여서일까? 내 영혼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무언가가 채워져 있어서일까? 왜 난 다른 애들하고 이렇게 다른 걸까? 남자애들은 항상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깔깔대면서 거리를 쏘다녔다. 열네 살이란 바로 이렇게 놀 나이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계집애처럼 근심하며 슬퍼하고 있다.-299쪽

엄마는 내 행복의 걸림돌이다. 물론 나를 아껴주지만 그런 사랑이 사람을 잡는다. 그때 그 시절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그런 일은 다반사처럼 발생한다. 톨스토이의 시대는 물론 미셀 푸코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란 말이다.-313쪽

사람들의 말은 모두 단어로 되어 있고, 영어사전에는 무궁무진한 단어가 실려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사상도 모두 사전에서 나왔다. 그들의 사상이 사전에 있는 단어를 새로 배열하고 조합하는 데서 나왔기 때문에 사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며 성경만큼 중요하다.-320쪽

나는 일찍이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내 꿈을 왕야쥔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을 가져야 해. 방에 창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5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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