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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전설 (dts)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Nineteen Hundred"(1900) 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가 있었다. 버지니아라는 배 위의 고급손님을 위한 홀 한 구석에 놓인 피아노 위에 버려진. 마침 그 때가 1900년이라서 이 아이의 이름은 "Nineteen Hundred"가 되었다.
'드라마 같지만, 현실 가능성은 많이 떨어지는 판타지인 이 영화를 감독은 왜 만들었을까?'란 생각을 잠시잠깐 해 본다. 그래도 제법 유명한 이 감독은(대표작은 "시네마 천국","말레나", 현재 국내에서 상영중인 "언노운 우먼"의 감독이기도 하다.) 배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음악천재의 이야기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고, 배안에서 평생을 보내다 육지에 내리길 거부하는 천재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내 보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둘다 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 둘 다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수 많은 인파의 환송을 뒤로 배가 출항하고 얼마 후 푹풍우가 치는 밤, 배 안의 세상은 어느것 하나 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못한다. 의자들은 이리저리 미끄러지고, 객실에 벗어놓은 신발들도 복도에서 파도의 출렁임에 따라 흐느작 거리며 복도 위를 흐르는 그 밤의 순간. 배 멀미를 참지 못한 우리의 화자는 파도의 출렁임을 이기지 못해 비틀 거리며 속을 게워낼 곳을 찾아 헤맨다. 그 와중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경쾌하게 그 흔들리는 속을 태연하게 걸어가는 'Nineteen Hundred'. 더 멋진 장면은 그 와중에 파도의 흔들림에 따라 미끄러지는 피아노를 놀이기구 타듯 타고서 태연히 피아노를 치며 앉아있는 장면들이다. 피아노는 용케도 어느 기둥 하나, 가구 하나에도 부딪히지 않고, 홀 안을 미끄러지고 빙글빙글 돌아 다닌다. 결국 복도에 면한 아트글라스를 와장창 깨뜨리고 그대로 직진으로 복도를 통과한 피아노가 선장의 객실로 돌진하고서 그 장면은 종료되지만.
그가 절대음감을 갖고 있고, 피아노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어느새 피아노 천재가 되어 있고, 사람들이 모두 떠난 배 안에서 식량도 없이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에 대한 것은 현실에서라면 정말 궁금한 사항들이겠지만, 영화에서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영화이니까.
그가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이면서도 육지에 발 디디길 두려워하며, 끝내는 거부하는 심정도 나라면 다르게 행동했을지언정, 이해가 될 것도 같다.
** 어린시절 누가나 그렇듯이 잠시잠깐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현재 우리집엔 피아노가 없기 때문에 그때 배운 피아노를 치는 방법은 지금은 전혀 기억해 낼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굉장히 매료되곤 한다. 아마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긴 하다. "노다메 칸타빌레", 와 "말 할 수 없는 비밀"같은 류의 영화들.
이 영화에서도 피아노 배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누가 이기게 될 지 뻔히 알면서도 피아노 배틀같은 장면에 쏙 빠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