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왕강 지음, 김양수 옮김 / 푸른숲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현재 중국의 우루무치란 지역은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위구루인들과 한족이 대치중이고, 얼마전에는 유혈사태로 인해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바 있는 곳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게 우루무치는 중국 변방의 한 지역일 뿐이었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요새들어서는 우루무치의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걸 보면,이 소설탓이 큰 듯하다. 이 소설에 이 곳의 유혈사태에 대한 어떤 언급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이 출간할 당시(2006년)에도 "중국의 화약고"라며 이 지역을 소개한 글을 보니, 현재의 유혈사태가 전혀 예측 못 할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소설의 배경 시기는 모택동(마오쩌둥)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중국의 현대화를 늦추기 위해 신문화 도입과 현대화 주장을 하던 이론가들을 숙청하던 문화대혁명 시기이다. 흔히 20세기의 분서갱유라고 회고되고 있는 이 혁명은 현대화보다는 정신무장(혁명주체사상)을 앞세운 사회 개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류아이에 다니던 학교에 기존의 위구르어 대신 영어를 채택하면서, 왕야쥔이란 선생님이 오신다. 해박한 지식에 마음이 따뜻하고 세련된 매너를 가지고 있고, 말쑥한 옷차림으로 다니며, 향수냄새를 풍기면 다니는 영어 선생은 현대화에 부르주아에 대한 타도를 외치던 그 시대엔 분명 부자연스럽고, 눈에 띄는 존재 였을 터다. 여느 아이와 다름 없어 보이지만, 섬세한 감성을 갖고 있었던 류아이에게 영어선생인 왕야쥔은 러시아에 유학하고, 중국의 내노라하는 일류대학을 졸업한 건축가들이지만, 현재의 사회구조에 착실하게 종속되어 속물스럽게 살아가는 부모보다도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의 말은 모두 단어로 되어 있고, 영어사전에는 무궁무진한 단어가 실려 있다. 위대한 사람의 사상도 모두 사전에서 나왔다. 그들의 사상이 사전에 있는 단어를 새로 배열하고 조합하는 데서 나왔기 때문에 사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이며 성경만큼 중요하다.-320쪽

 

 영어사전에 대한 류아이의 갈망은 세계적인 시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일어났던 중국의 문화 대혁명에 대한 반항과도 같다. 모든 사람들이 부르주아를 경멸할때, 류아이는 시력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사서 쓰고, 향수를 뿌리고 다니며, 영어사전을 가지고 싶어한다.

 

 현재는 모택동의 권력을 위해 시대흐름을 역행한 잘못된 혁명으로 알려져 있는 '문화대혁명'은 중국인들에겐 집단적인 트라우마의 하나인듯 싶다. 일제치하와 6.25전쟁이 우리 대한민국의 트라우마인것처럼. 어쩌면 그래서 일견 이 책의 내용들은 전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족과 문화가 다른 우리에게도 가슴에 잔향을 남기는지 모르겠다.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읽어던 중국소설들은(허삼관 매혈기, 닭털같은 나날들) 모두 하나같이 풍자적이고 유쾌했던 것 같다. 익살스러운 마당놀이를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 책 역시 마찬 가지였다. 류아이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 책은 어른들의 치졸하고 속물적인 근성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인간적이며 논리적인 행동들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개탄한다. 어찌보면, 이 책 속에 가장 어른스러운 존재는 류아이같다. 어쨋든 굉장히 잘 읽혀지고 재미있게 읽혔던 책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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