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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평점 :
섬머 힐 출신인 작가의 날카로운 시각이 여지없이, 그러나 놀라운 위트로 잘 포장되어 이물감없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게 하는 그림책이다. 보고 또 보아도 새로운 게 보이는, 통쾌하다고만 하기에는 섬뜩한 면이 있는 경고장이다.
어른들의 교육이라는 허울좋은 권위의 탈이 풍부한 상상력의 꽃을 피우려는 아이들의 갖가지 새싹들을 얼마나 무참히 짓밟아버리는지. 그들 정신의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우린 얼마나 인정하고 수용해 주고 있는지 이제는 하던 손 멈추고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제도권 교육의 대안으로 나온 소위 대안학교에서는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 모른다. 아이들의 하루 일과가 온통 놀이다. 그들은 양치질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옷을 입다가도, 학교에 가는 길에서도, 쉬는 시간 10분 동안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놀이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놀이는 다양하고 기발하고 즉흥즉이다. 웃음이 있고 눈물이 있고 대리경험과 대리만족이 있다. 그러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몸에 익힌다.
존은 학교에 가는 길에 하수구를 보며 악어와의 한판 놀이를 하고 덤불에서는 사자와 놀고, 동네의 다리를 건너다가는 파도타기 놀이를 한다. 이 장면들에서의 동물들은 모두 웃고 있는 표정이고 그림은 밝은 톤의 색으로 종이의 전체면을 메우고 있어 존의 즐거운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놀이를 하는 동안은 진실이고 어느 누구의 어른이라도 건드릴 수 없는 아이만의 무아지경이다. 놀이와 생활은 별개가 아니고, 생활의 이곳 저곳에 그들이 상상력을 발동하여 놀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는 널려 있다. 그래서 집안도 너무 정돈되어 있기 보단 적당히 어질러 놓으라고 했나보다.
겉표지를 넘기면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아이의 반성문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빼곡히 씌어있다. 개구장이가 낙서해 놓은 것이 아니라, 이 그림책의 주인공 존이 쓴 것이다. 원판을 보면 I must not tell lies about crocodiles
로 시작한 반성문이 뒤로 가면 I must not tell lise about...로 씌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나 지겨운 일이었는지 철자를 틀리게 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lies 를 lise 로).
존이 놀이를 하는 상상의 장면은 풍성한 그림과 명도와 채도가 높은 채색이 되어 있는 반면, 권위만을 내세우는 상상력 부재의 선생과 그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어 반성문을 일방적으로 명령받는 존의 장면은 간결한 무채색의 그림으로 존의 심경이 보인다. 특히 존이 구석에 돌아서서 '다시는 사자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400번 외치고 서있는 장면은 3개의 선과 표정없이 돌아서있는 존의 윤곽만이 있을 뿐이다.
마침내 존이 학교가는 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존은 제 시간에 학교에 갈 수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정말 마음이 황량해진다. 채도가 낮은 회색톤의 굵고 거친 붓질이 존의 머리와 가슴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생각과 느낌을 공유해 보도록 노력하자. 아이들을 맑은 눈을 통해 잃어버린 상상력의 물줄기도 찾고, 서로간의 신뢰도 회복한다면, 어깨를 당당히 펴고 마음껏 생각을 펼쳐보이는 우리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은 한층 희망적이며 몸을 던져 안겨 봄직한 것이 될 것이다.
마지막 장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 후의 장면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존은 다시는 학교에 늦지 않을까요? 그림의 분위기로 봐서는 존은 학교가는 길에 다시 자신만의 신나는 놀이를 발견할 것 같다. 아이들은 그리 쉽게 자신의 욕구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무 옆 아래에 있는 시커먼 형체의 동물은 코끼리 같기도 하다. 나만의 상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