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 된 희원이가 또 아프다. 신학년 증후군인지 모르겠다. 그저께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질질 짜더니, 오늘은 머리도 제법 뜨겁고 억지로 먹은 저녁도 토해버렸다. 열감기쯤이라면 다행인데, 2년전처럼 축농증이라면 어떡하지. 

 3학년 초 3월 중 3주정도를 축농증 약을 먹고 다녔다. 머리가 아프고(특히 고개를 숙이면) 속도 울렁거리고 먹는 것도 잘 안 넘어가고,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라는 표정이었다. 학교가는 걸 즐거워했던 아이가 아침마다 식탁에 앉아 징징 울먹이며 학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때 아는 엄마에게 희원이의 이런 증상을 걱정스레 꺼냈더니, 그 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기 큰 딸도 신학년만 되면 그런단다. 그러면 막 야단쳐서 보낸단다. 평소 재미있는 사람이라 그렇거니 웃으며 받아넘겼지만 뾰족한 수도, 그렇다고 위로도 못 얻은 나는 허탈했었다.

음엔 감기인가 싶어 동네 소아과에서 약을 처방 받아 좀 먹이다가 도저히 차도가 없어 종합병원을 찾았더니 코 촬영을 하자고 했다. 부비동염이라는 처음 듣는 병명을 이야기하며 그게 아주 증세가 고약하단다. 음식을 넘기려하면 비릿한 냄새가 거꾸로 올라오며 속이 울렁거린다고 의사가 말했다. 당연히 머리도 아프고... 재발하지 않게 털이 북실한 곰인형 같은 건 가까이 두지 말라고 해서 희원이가 좋아하는 하얗고 커다란 곰인형을 멀리 치우기도 했는데 이사와선 다시 가까이 하고 있었다. 제발 축농증이 아니어야 할텐데.

사실 다른 의심이 드니 더 걱정이다. 새집증후군이 아닐까, 하는 거다. 3년은 지나야 유해물질이 거의 없어진다는데 말이다. 작년 여름에 이사했지만 그동안 겨울에는 내가 환기를 좀 게을리 했다. 무슨 광촉매물질을 분사하여 나쁜 물질을 차단해주는 시술을 집에 하자고 제안했다가 Y에게 거부당하고 환기를 잘 했어야하는데...  생각해보니, 희원이도 희령이도 머리 아프단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온갖 유해한 물질을 몸으로 다 마시고 있다 생각하니 속이 상해 죽겠다.

희원인 옥매트에서 기운 없이 자고 있다. 내일 아침엔 병원에 가보자고 달래서 재웠다. 엄마가 너무나 무심하다. 뭐가 더 중요한 건지, 참.  요즘은 이야기 나눌 틈도 별로 갖지 못하고 맹숭맹숭한 모녀지간이 되어, 이래선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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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0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학교 대신 병원에 데려갔다. 새집증후군 운운했더니 의사는 별 반응을 안 보이고 요새 아이들 열감기를 많이 한단다. 약을 처방 받고 약국으로 가지 전 보이는 미용실에 들어가 아이의 앞머리를 동그스름하게 자라고 뒷머리도 좀 잘랐다. 훨씬 귀엽고 발랄해 보인다고 말해줬더니 입이 함박만하다. 그래도 새집증후군이 자꾸 신경쓰인다.^^

다연엉가 2004-03-0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학년 증후군인가봐요. 소현이가 첫날 눈이 좀 빨개지더니 오늘 아침엔 아예 한쪽 눈이 감겨 버렸네요. 그리고 무지 욱신거리고 아프데요.
지금 아이가 돌아오자 마자 안과에 가야 겠네요.
신학년 첫날 부터 왜 이러는지...

다연엉가 2004-03-0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현이의 기분전환을 위해서 머리를 손질해야 겠네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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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하여 제제는 이제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을 다시 번역하여 완역으로 재탄생시킨 박동원님은 에필로그에서, 처음엔 브라질의 문화를 모르고 글만 번역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인디오의 피가 흐르는 엄마와 포루투갈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제제는 지독한 가난과 무관심, 매서운 매 앞에서 세상을 향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가 뽀루뚜까를 만나 세상을 보는 사랑의 눈을 뜨게 된다. 

이 한편의 성장소설은 작가 바스콘셀로스의 자서전적 소설이며 제제는 작가의 어린시절 자화상과도 같다. 남다른 감수성과 상상력을 감안하더라도 좀 이르다싶은 나이에 너무 가혹하다할 정도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부화하는 제제가 어쩌면 우리 정서에는 이질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아적 기억은 아련하기 마련이고 성인이 된 작가는 그 기억의 줄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 부여하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우리 정서에도 잘 부합하지 않고 주제도 평범하기까지 한 이 소설이 오래도록 읽히는 것은 그 속에 담겨있는 세 가지의 보편적인 정서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정은 세상 모든 것과 세상 어느 사람과도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이다. 나를 그대로 이해해 주고 나의 눈높이에서 나를 보고 나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하면 그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우정을 근본으로 한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이 지배적이던지 설교나 훈계를 늘어놓으려한다던지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장하려한다면 우정은 성립되기 어렵다. 부모자식간이든, 사제지간이든, 나무든, 새든, 우정이 바탕에 깔린 감정만이 온당한 관계를 맺어준다.

제제는 어린 라임오렌지나무와도, 작은새와도, 아리오발도씨와도, 동식물과 연령을 초월하여 우정을 맺을 줄 안다. 아버지의 정에 굶주린 제제는 뽀루뚜까에게 아버지의 정을 애원하고 뽀루뚜까는 가식적이지 않은 연민과 사랑의 감정으로 제제를 품어준다. 제제는 뽀루뚜까와의 우정으로 세상은 사랑이 있는 살 만한 곳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우정은 우리를 성장케하는 참된 의미의 정서가 아닐까.

또 하나는, 성장에 필요한 통과의례는 비밀스럽다는 점이 매력이다. 기억의 내밀한 저장창고에 숨겨둔 몇가지의 일들을 어른이 된 사람이면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만 통과하고 나면 눈부신 바깥세상이 나올 거라는 걸 어렴풋이 믿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저마다의 통과의례를 치른다. 제제는 뽀루뚜까와의 꿈같은 시간이 저만의 백일몽이란 걸 깨닫게 되지만, 꿈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몸 담아야하는데에 필요한 고통은 어느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비밀스럽기 때문에 책임 또한 자신의 몫이다.

내 영혼의 비밀스런 통과의례에 동참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기장, 엄마도 모르는 어느 친구, 일기장에도 쓰지 않고 가슴에만 새긴 어떤 일들?

마지막으로, 우리네 정서는 슬픔의 그것에 닿아있다는 점이다. 박동원님은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운다고 하면서, 제제의 슬픈 정서의 원류를 포루투갈인에게서 찾는다. 포루투갈 어느 해변 가파른 절벽에 제 몸을 부딪는 시퍼런 파도를 배경으로 파두를 소개한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 때 내가 느꼈던 서늘하리만치 가슴을 때리는 그 사진의 슬픈 정서가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무엇을 대하든 슬픔을 먼저 만나는 형이었다. 지금은 기쁨을 먼저 만나는 형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나에게도 슬픔의 근원모를 샘이 숨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제가 극단적인 애증을 보였던 아버지와 뽀루뚜까가 모두 포루투갈인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 한편의 성장소설이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더이상 돌아갈 수 없는 알껍질 속의 세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은 모두 철이 들어야하나요?"라고 던지는 물음 속에 철이 들고 싶지 않았다고 발버둥이라도 치고 싶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기형도의 분석을 빌리면 이 책의 감동은 '철들기 전의 세계'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에 있다.

흐릿한 기억의 유년시절로 뒷걸음쳐 달아나고픈 욕망을 느낀 적이 있다면 제제의 혹은 바스콘셀로스의 그런 어리석어 보이는 물음이 얼마나 절실하게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말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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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은 사고뭉치 동화는 내 친구 7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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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유명세만큼 기대롤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말광량이 삐삐 못지 않은 취학전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통통한 볼이 귀여운 에밀은 가족과 마을사람들에게, 누나 라니가 말하듯, 말썽을 부리든 농장전체가 발칵 뒤집어지든 둘 중 한 가지의 나날을 제공하는 아이다. 싹이 노랗다고 말하는 마을사람들의 기우와는 달리 훗날 회장님이 된다는 에밀이 저지르는 사고는 하나같이 기발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 이유를 대는 에밀의 심중에 들어가보면 여동생 이다를 생각해주는 마음도 엿볼 수 있고 임기응변으로 둘러대는 변명이라하더라도 미워할 수 없을 만치 깜찍하다.

아스트리드는 말썽꾸러기 손자를 위한 즉흥적인 이야기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 손자가 정말 이런 지경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손자에게 쩔쩔매는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눈매가 그려져 마음이 참 훈훈해진다. 에밀이 벌이는 사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날마다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데, 이 동화에서는 크게 세가지를 대표적으로 소개하는 형식이다. 날짜와 요일을 구체적으로 써 놓아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기사문의 형식으로 써보거나 일기문의 형식으로 써보며 짧게 줄거리를 요약해 보게 하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기자가 되어 에밀을 인터뷰하는 시간도 좋다.

에밀의 사고 중 압권은 국기게양대에 어린 여동생을 게양한 사건이다. 멀리 있는 무슨 마을이 보고 싶다고 오빠에게 매달리는 동생을 위해 동생을 게양하고 동생은 꼭대기에서 비행기처럼 매달려있는 모습의 삽화를 보면 아이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엽기적이기도 하여 박장대소하며 얼굴이 환해진다. 삽화도 어찌 귀여운지 에밀도 이다도 아주 작은 천사처럼 귀염성있게 그려져있다. 에밀은 이 사건으로 예의 그 목공소에 갇히고 그 안에서 능숙한 솜씨로 목공인형 한 개를 만들고 난 뒤, 아무도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으니까 드디어 에밀은 혼자 힘으로 그곳을 빠져나오기로 결심하고 높은 창문사이로 널빤지를 대고 옆건물의 식품저장실로 옮겨간다.

아빠는 에밀이 사고를 칠 때마다 목공소에 가두지만 이젠 슬슬 걱정이 되고 누나는 손님들을 위해 엄마가 준비해둔 소시지를 다 먹고 그곳에 소시지처럼 모로 누워있는 에밀을 발견한다. 못 말리는 에밀을 변함없이 사랑스런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역시 엄마다. 엄마에겐 에밀도 이다도 귀엽고 사랑스런 작은 천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마 아스트리드의 마음이 엄마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그 모든 결점에도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엄마의 다정한 눈길이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온전하게 아름답게 그러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저버리지 않고 자라면 좋겠다.

독후활동으로 곧 입학하게 될 에밀에게 학교선배로서 주는 편지를 쓰는 시간에서 한 여자아이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생글생글 눈이 늘 웃고있는 이 아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충고들을 열거한 뒤 마지막에 "에밀아, 그렇다고 학교에서 너무 얌전하지는 마. 그러면 아마도 에밀답지 않을 거야." 라고 써놓았다.  늘 내 맘에 안기는 글을 써서 아무도 몰래 나를 기쁘게 하는 이 아인 이제 4학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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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 2004-03-1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들렀다가 제가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 퍼갑니다. 미리 감사를!

프레이야 2004-03-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린님, 봄이에요. 좋은 날 내내 맞으세요.^^
 
 전출처 : waho > 아이들의 재미있는 답변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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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2-2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에도 문제가 있는데요^^

당면사리 2004-02-2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핳.. 넘 재밌네요.. 남편이랑 한참 웃었어요. 정말 이런 답을 쓰는 애들이 있네요. (근데 문제도 쫌 어렵긴 하네요.. )

프레이야 2004-03-0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면사리님, 너무 맛있는 닉네임이네요. 낙지전골에 들어있는 당면사리 아주 좋아하는데요^^

김여흔 2004-03-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을 웃었어요. 아이고 턱이야.
 
 전출처 : 다연엉가 > 어머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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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2-29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웃기기도 하고...
최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아이의 장점은 살리면서 가정에서의 협조도 부탁하는 선생님의 코멘트와, 더이상 그럴 수 없다싶게 직설적으로, 아픈 가슴을 숨기며,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의 코멘트가 대조의 절정이다. 나도 수업을 하고 매달 수업내용과 평가를 코멘트하여 아이들의 화일에 끼워 어머니께 보내는데, 코멘트할 때 상당히 신경써서 한다. 오해의 소지나 괜한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말을 상당히 고르고 골라서 한다. 어머니들의 코멘트도 각양각색이다. 그걸 읽는 것 또한 재미나다.
그런데 '우'를 받은 과목이 무언지 궁금해진다. 요즘은 이런 식의 성적통지표가 아니라,
각 과목별로 소상하게 선생님의 소견이 적혀나오는데...(초등학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