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된 앤트 보림어린이문고
베치 바이어스 지음, 마르크 시몽 그림, 지혜연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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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쥐기에도 딱 좋은 이 얇은 동화책은 7-8세 정도의 아이들이 혼자 읽기에 무리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4-5세 정도로 뵈는 동생과 8-9세 정도로 뵈는 형이 나누는 알콩달콩한 대화가 엿듣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 어른들의 마음으로 보면 언제나 아이들의 마음세계는 미개척지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연구대상(?)이지요. 한없이 이기적인 것 같다가도 아량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것 같다가도 뭔가 꽉 찬 열매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심리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듬고 예리하게 짚어내는 이런 류의 동화는 계속 등장하나 봅니다.

네 가지의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이 동화책은 앤트와 그의 형이 나누는 대화가 전부입니다. 형의 친구와 엄마가 아주 잠깐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곤 두 사람의 일상적이며 짧은 호흡의 대화 속에 갖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주로, 앤트가 말하고 '내'가 대답하는, 탁구공 튀는 것 같은 대화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짓게 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는 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형이 보는 동생 앤트에 대한 것이자, 형제에 대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요구가 많고 질문이 많은 남동생 앤트가 있습니다. 겁도 많은 앤트는 자기가 곰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겁이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존심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형이 그러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외부의 악당('나'의 친구)  앞에선 의기투합할 줄도 알고,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도 둘이 닮아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어른들이 간섭하고 중재하는 일이 없네요. 이 점이 마음에 듭니다. 아이들 스스로 부딪히고 느끼고 마음이 자라는 것이겠지요.

이층방의 유리창을 밤에 똑똑하고 두드리는 사람에 대한 앤트의 상상력과 농구선수가 그려진 삽화 앞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창가에 서 있는 나무만큼 키가 큰 사람!  사실 앤트는 형의 간절한 말을 받아들이고 나무에게 잘 자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잠을 들이지만, 그 농구선수처럼 다리가 긴 사람에게 말 걸고 싶은 눈치입니다. 꿈에서라도 악수를 나눌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머러스한 삽화는 또 이어집니다. 앤트는 소방관이 불을 끌 때 도끼로 무찌른다고 생각하는 아이랍니다. 도끼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앤트!  앤트와 '나'는 장래의 꿈이 같습니다. 그것은 커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지요.  '어른'이 된 다음에 어쩌면 소방관이 될지도 모르고, 농부나 의사, 선생님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여기서 '나'는 참 넉넉한 형입니다. 결코 잘난 체 하지도 않고 면박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동생의 꿈을 한껏 희망적으로 치켜세워줍니다. 어릴 때는 어른이란 존재 자체가 다다라야할 꿈이었지 않나요. 엄마를, 아빠를, 선생님을 막연히 우러러보며 닮고 싶어하기도 하구요. 그렇게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다 될 것 같았던 생각, 아주 오래 전 우리들의 생각이기도 하면서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품음직한 생각입니다.

<나무는 좋다>의 마르크 시몽의 삽화는 묘사 없이 간결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한결 풍부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삽화가 없다면 이 책은 그저 밋밋한 반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짙은 윤곽에 부드러운 채색, 간결한 선만으로도 개성있는 표정을 살려놓은 인물이 여백의 하얀색과 함께 산뜻합니다.

마지막 삽화는 형이 앤트의 낮은 어깨에 한팔을 두르고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이 때 앤트는 고개를 한껏 올려 형을 쳐다보고 있네요. 아마도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주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 봅니다. 발에 끌리는 그림자가 하나로 이어지며, 질문이 많은 동생과 넉넉한 품을 지닌 형의 이야기는 내일로 이어집니다. 이들에게는 하루도 신기하지 않은 날이 없을 것 같네요. 내일은 또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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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넉넉한 형이 되고도 싶고, 넉넉한 형을 키우고도 싶습니다.

프레이야 2004-09-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저도 맏딸이자 맏딸이랑 사는 사람이라... 넉넉한 형도 되고 싶고 희원이를 넉넉한 형으로 키우고도 싶어요.^^ 게다가 맏며느리까지... 어쩔 수 없이(^^)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겠네요.

2004-09-21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4-09-2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맞사옵니다. 근데 님 실명은? 궁금해지네요.
 
 전출처 : 밥헬퍼 > 소파 방정환의 단편소설 '금시계'

*자료,염희경, '금시계'개작으로 본 방정환의 문학적 변모 (계간 어린이창비, 2003,.가을 통권 제2호,156-159쪽)

                                                         금 시 계

                                                                                                            방정환

  흥수는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몸은 피곤할 대로 피곤하였고 머리는 아까부터 무겁고도 흐리기 짝이 없다. 그의 입에서는 힘없는 한숨이 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석양에 비추이는 잡초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넘어가려는 저녁 해는 그의 몸을 비추어 잔디 위에 검은 그림자를 던졌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들어 창천(蒼天)을 쳐다보았다. 중천에 뜬 소리개는 느리게 원을 그리고 있다.  한숨을 휘-쉬는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다.

  가련한 고학생 김흥수는 갈 곳이 없는 청년이다. 저물어가는 하늘에 종잘거리는 것은 제 집을 반기는 새떼의 노래요,  멀리 뵈는 무학현(無鶴峴) 고개에 걸음이 급한 이는 귀가하는 촌인(村人)이로다, 아아 화락한 가정의 따뜻한 즐거움! 흥수에게는 그것이 없다. 

  저녁때가 되었다. 태양은 서산 너머로, 짐승은 숲속으로, 사람은 집으로, 세상은 어둠 속으로 제가끔 기어드는데 이 몸만 홀로 갈 곳이 없구나 생각하매 하염없는 눈물이 금할 새 없이 흐른다.

  그는 XX고등보통학교 3년생이다. 학력은 그다지 우승(優勝)치는 못하나 품행일는지 성근(誠勤)일른지 여러가지 방면으로 그는 전교의 모범적 학생이었다. 홀로 계신 모친은 외삼촌댁에 계시고 자기는 냉동(冷洞), 삼촌 댁에 부쳐 있어 통학하더니 그 삼촌이 사업에 실패를 당하여 작년 가을에 북간도로 옮겨가신 후 흥수는 자기가 스스로 주선하여 OO목장에 있어 우유배달을 하여가며 고학을 하던 터이다. 그 혹독한 작년 겨울의 추위도 능히 굴하지 않고 지내어왔다. 학교 교원은 물론이요 목장의 주인까지 그의 성실함에 감동하여 여러가지로 그에게 좋도록 편의를 보아주었다. 자력자급, 노동생활은 계속되었다.

  이와같이 고생스러운 통학을 하고 있는 흥수에게 일매(一枚))의 비보가 이르렀다.그것은 시골 외삼촌댁에 계신 모친의 병보(病報)였다.......빈한 집에 부쳐 계신 모친, 그 모친의 중병. 아아 약 한첩도 못 쓰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흥수는 그날 밤, 또 그 이튿날 밤을 잠도 못자고 생각다 못하여 목장 주인에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두 달치 봉급을 미리 주시면 좋겠다고 청하였다. 흥수의 모친이 중병인 것과 그 외삼촌댁의 빈한한 것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주인은 두 달치 봉급을 미리 주면 그 두달 동안 봉급 없이 흥수가 고생할 생각을 하고 흥수를 위하여 거절하였다.

  기후(基後) 오륙일 후에 목장 주인의 부인이 순금반지를 경대 위에 놓았다가 잃어버렸다.

  금반지를 잃었다고 미친 듯이 날뒤는 부인은 벌써 흥수를 의심한다. 두 달치 봉급을 달라는 대로 주었더면 반지나 잃지 않았을 걸 하고 남편을 원망한다. 부인뿐이 아니라 목장 내 전부가 흥수를 의심하는 모양이 흥수의 눈에도  띄었다. 아아 무실(無實)의 죄명! 이것도 내가 빈한한 까닭이다. 가슴을 껴안고 부르르 떠는 그의 뺨에는 원한과 분노가 엉킨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그 자리에서 변명을 하고 싶었으나 누가 자기에게 직접으로 가져갔다는 이도 없는데 먼저 변명을 하면 도리어 그네의 의심을 두텁게 할 뿐이겠으니까 잠자코만 있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무리거나 주인은 결코 흥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성실, 그의 인내, 그의 정직에 깊이깊이 감동한 주인의 가슴에 그렇게 용이하게 의심이 일어날 리도 없고 일으킬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그까짓 변변치 않은 일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자미(滋味)롭지 못하다 하여 그 일은 그대로 덮어버렸다.

  그때부터 일주일 후인데 이번에는 주인의 금시계가 없어졌다. 목장 내는 전보다 더 소동이 되었다.  그런데 의외에 기(基) 시계는 흥수의 책상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면 그렇지. 흥수가 아니면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금반지도 분명히 흥수의 짓일세, 그렇고 말고 흥수밖에 누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나? 하고 의론(議論)이 분분한데 흥수는 이런 소동이 생긴지도 모르고 목장 뒤뜰에서 운동하는 소떼를 지키고  있다. 

 

뜰의 한모퉁이 돌 위에 힘없이 앉아서 손에 들고 있던 물리책 갈피에서 아까 풀숲에서 주운 종이를 꺼내 펴들고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그 종이는 순금반지 한개를 십오원에 전당잡힌 전당표이다. 전당잡힌 자의 이름은 최흥봉이라고 있는데 최흥봉이는 이 목장의 급사로 있는 아해이다. 지금 그 전당표를 주인에게 보였으면 자기의 변명은 훌륭히 된다. 그러나 흥수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흥수는 흥봉의 집 형편을 대강 짐작한다. 요사이는 흥봉의 집이 석 달치 집세 십삼원 오십전을 내지 못하면 집을 내놓게 되는 가련한 영편(影便)) [형편(刑便)의 오식인듯-편집자]에 있는 것도 안다. 흥수는 가련한 소년 최흥봉의 일을 자기의 신상에 비하여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때 저곳에서 달음질하여 오는 소년은 주인의 명령으로 흥수를 부르러 오는 최흥봉이다. 흥수는 아무 말 없이 전당표를 흥봉에게 주었다. 흥봉이는 그 표를 보더니 얼굴빛이 노래진다. 한참이나 그 표를 든 채로 우두머니 섰더니 이윽고 그의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이 비오듯 한다. 아아 이것을 주인에게 고하지 않고 나에게 넌지시 주는 흥수의 아름다운 마음! 나는 이렇게 착한 흥수에게 죄명을 씌우고자 이번에 주인의 금시계를 흥수의 책상에 감추었구나......아아, 못할 짓도 하였다.......깊이깊이 뉘우친 흥봉이는 일체를 흥수에게 자백하였다......흥수는 주인에게로 갔다. ......

  흥수야 이 시계가 네 책상 속에 들어있으니 어쩐 일이냐. 나는 요전 금반지 일도 설마 네가 그러하였으랴 하였더니 이젠 너의 짓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하는 주인의 말에 흥수는 자기의 변명을 위하여 자세한 일을 고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무 대답도 아니하였다. 주인은 암만하여도 이 일이 흥수의 짓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실이 증명하는 이상에는 그것을 이유없이 부인하는 수도 없다.  그래서 체면상 그대로 둘 수 없으므로 본의는 아니나 흥수를 해고시켰다.      

  이렇게 하여 오늘 아침에 목장을 나온 흥수는 무실의 죄명으로 인하여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는 몸이 되었다.

  한학년에서 수학하는 학생의 집에서도 그를 반기지는 아니하였다. 반기지 아니할 뿐 아니라 흥 모범학생이지 저 꼴에......하고 비웃었다. 이러한 덧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흥수는 해가 아주 진 것도 모르고 여전히 잔디 위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만일 내가 그때 사실대로 주인에게 고하였던들 가련한 소년 흥봉이와 그 흥봉이의 보탬이 많은 빈한한 가정은 어찌 되었을까......이러한 생각을 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 눈물 고인 눈 속에는 자기가 목장 문을 나올 때 판장(板薔) 옆 오동나무 밑에 울고 섰던 흥봉이의 모양이 아련히 보인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집집에는 전등불이 반짝거리고 어두워가는 하늘에는 어린 별들이 우는 듯이 끔벅거리는데 갈 곳없는 흥수는 힘없이 일어서더니 어디로 가는지 굽어진 산길로 한걸음 두걸음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1918. 10 소파생(小波生)      <신청년 창간호 1919년 1월호>


 

 

 

 

 

*그림 Shinobu Mat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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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열차
헤미 발거시 지음, 크리스 K. 순피트 그림, 신상호 옮김 / 동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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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아이들이 '피난 열차'라고 하면 그게 무슨 기차인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흔 셋의 연세로 지금도 건강하신 내 아버지는 피난열차에 몸을 싣고 남으로남으로 내려왔던 이야기를 내 어릴 적에 종종 들려주셨다. 이 책에서처럼 정말 열차의 지붕에까지 빽빽히 올라앉아 가는데 바로 뒤에서는 폭파음과 함께 한강다리가 끊어지더란다. 걷고 또 걸어서 발가락은 동상이 걸리고 발바닥 허물도 몇번이나 벋겨지더란다. 그렇게 부산까지 왔다고 하셨다.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무슨 옛이야기처럼 듣고 자랐는데 하물며 요즘 아이들에겐 무슨 무용담쯤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피상적으로 알고만 있는 6.25전쟁과 휴전상태, 그리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 정신적 상실감 같은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않다. 이 책은 아이들이 겪지 못했던 과거 우리의 아픈 역사를 좀더 생생하고 실감나게, 좀더 피부에 와닿게 묘사하여 보여주려는 노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잊히기 쉬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아이들에게 잘 접근시켜주는 것이 어린이책이 지향해야 길 중 가장 의미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글쓴이와 일러스트레이터 모두 한국과 관련이 깊은 사람들이다.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도 들어있지만 대부분 작가의 가족들이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썼다.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수미의 딸이다. 수미는 외할머니로부터 피난열차의 아픈 기억을 듣는다. 수미가 '나'를 내세워 독백을 하듯이 서술하고 있는 편안한 문체에 아이의 외로움이 묻어난다.

엄마는 앞날을 설계하기 위해 군대를 가고, 외할머니와 꽃마을에 사는 수미는 4시면 지나가는 기차를 놓치지 않고 꼭 본다. 멀리 떠나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수미의 어깨를 다독이며 외할머니는 이산가족의 아픔으로 문드러졌을 속내를 살며시 꺼내 들려준다. 긴긴 이야기 속에 우리역사의 혼란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다. 정든 고향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것을 종용하는 전쟁. 4식구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 숲길을 숨죽여 걷고 암흑의 강을 위태로운 배을 타고 건너고 또 하염없이 걷는다.

드디어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는 가족의 운명 앞에서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하고, 외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때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수미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야기는 잦아든다.

절정의 장면은 물론 피난열차가 그려진 장면들이지만, 장면마다 수채화로 그린 삽화가 무척 강한 인상을 준다. 풍부하고 사실적인 인물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삽화를 그린 사람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한다. 그리고 작가와는 부부관계인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와 한국의 선조께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가 인상적이다. 아프고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이렇게 똑바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만든 이 책은 정말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들은 모두 우리랑 닮은 얼굴이고, 외할머니의 주방은 서양식으로 꾸며져있지만 가스레인지 위에는 뚝배기가 놓여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단란했던 시절의 그 당시 우리네 집안 세간살이와 옷매무새도 세심하게 잘 그려놓았다. 비단 보료에 자개문갑, 신선로, 청자백자, 아름다운 병풍 그리고 고운 색감의 한복을 볼 수 있다. 북한군이 서울로 밀려오고 가족이 지하실에 숨어있는 장면에서도 한 켠에 작은 항아리가 놓여있고 가족은 돗자리위에 서로 기대어 앉아있다.

첫번째 삽화와 가장 마지막의 삽화를 보고 있으면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맑고 시원스런 수채화 풍경 안에 길다란 기차가 오랜 세월의 긴긴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기적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 쳐 들리지 않으면 이제 기차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수미는 그렇게 그려본다. 외할머니는 모진 세월의 바람을 따라 그리움일랑 모두 떠나 보내고, 엄마를 보고 싶다고 뾰루퉁해있는 손녀를 위해 숄을 덮어 감싸준다.

이 책의 원제는 Peacebound Train 이다. 평화를 손에 쥐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닐게다. 표어처럼 남발하는 단어이지만 정작 그게 얼마나 소중한 단어인지,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가슴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한편의 생생한 이야기는 집안사정으로 엄마와 당분간 헤어져 지내야하는 수미의 아픈 마음과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차'라는 매개물로 하나로 엮어낸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쉽게 풀어서 나눠볼 수 있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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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박두순

 

구름을 올려 놓았다가

바람을 올려 놓았다가

몸을 비우고

 

안개를 덮었다가

빗발을 덮었다가

몸을 비우고

 

새 소리를 올려 보았다가

눈송이를 올려 보았다가

몸을 비우고

 

하늘에

말을 걸어 본다.

 

 

<깨금발로 콩콩콩>은 '내 책상 위에 시 한 편' 시리즈로 나온 동시집 2권이다. 탁상달력처럼 올려두고 한장씩 넘기며 시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어느 한 작가가 쓴 동시가 아니라 여러사람의 것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느낌들도 다양하고 동시의 형식이나 소재도 가지가지로 흥미롭다. 쉽고 사소한 것들에서 보석같은 느낌을 길어올리는 마음의 눈이 빛난다.

아이들이랑 수업하는 서재방의 책장 한 켠에 올려둔 이 동시집을 넘기다 <나무>가 들어왔다. 내게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든든함의 이미지이다. 나무는 주는 게 참 많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든지면 교과서적인 답들을 주섬주섬 잘도 뱉는다.

난 이 동시의 '몸을 비우고'라는 구절이 좋다. 이제 좀 있으면 나무들은 이파리를 다 떨궈내고 홀로 우뚝 서서 금세 다가올 겨울을 맞을 것이다. 그처럼 화려했던 울울창창 여름의 신록과 그 위로 한껏 얹은 구름과 바람의 잔치를 이제 끝내고 차분히 몸을 비울 것이다. 마음을 비울 것이다. 헛된 자랑과 애증의 짐들을 다 털어낼 것이다.

삼십 고개를 이제 막 다 넘어가고 있는 내가 아닌, 동시를 읽는 우리 아이들은 '몸을 비우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오늘 수업할 4학년 여자아이들에게 이 동시를 감상할 수 있게 낭송해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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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곡명 : 윤도현-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멀리 가는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날 저물도록 몰랐네..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의 흐림을 보면서 선선한 가을 공기를 들여 마시다가 나에게도 잊혀진 사랑이 하나쯤은 있고, 이제 너무 많은 세월이 흐른 탓에 그 때만큼 그대를 그리워하지 못한다 하여도 이 서늘한 가을 아침에 누군가에게 그립다는, 보고 싶다는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싶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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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9-0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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