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박두순

 

구름을 올려 놓았다가

바람을 올려 놓았다가

몸을 비우고

 

안개를 덮었다가

빗발을 덮었다가

몸을 비우고

 

새 소리를 올려 보았다가

눈송이를 올려 보았다가

몸을 비우고

 

하늘에

말을 걸어 본다.

 

 

<깨금발로 콩콩콩>은 '내 책상 위에 시 한 편' 시리즈로 나온 동시집 2권이다. 탁상달력처럼 올려두고 한장씩 넘기며 시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어느 한 작가가 쓴 동시가 아니라 여러사람의 것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느낌들도 다양하고 동시의 형식이나 소재도 가지가지로 흥미롭다. 쉽고 사소한 것들에서 보석같은 느낌을 길어올리는 마음의 눈이 빛난다.

아이들이랑 수업하는 서재방의 책장 한 켠에 올려둔 이 동시집을 넘기다 <나무>가 들어왔다. 내게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든든함의 이미지이다. 나무는 주는 게 참 많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든지면 교과서적인 답들을 주섬주섬 잘도 뱉는다.

난 이 동시의 '몸을 비우고'라는 구절이 좋다. 이제 좀 있으면 나무들은 이파리를 다 떨궈내고 홀로 우뚝 서서 금세 다가올 겨울을 맞을 것이다. 그처럼 화려했던 울울창창 여름의 신록과 그 위로 한껏 얹은 구름과 바람의 잔치를 이제 끝내고 차분히 몸을 비울 것이다. 마음을 비울 것이다. 헛된 자랑과 애증의 짐들을 다 털어낼 것이다.

삼십 고개를 이제 막 다 넘어가고 있는 내가 아닌, 동시를 읽는 우리 아이들은 '몸을 비우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오늘 수업할 4학년 여자아이들에게 이 동시를 감상할 수 있게 낭송해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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