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ggy Book이라는 원제로 알고 있었던 특이한 그림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제목은 어린이들의 구미를 당기지만, 내용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남아 선호 사상으로 뭉쳐져있는 우리네 아들들은 이 그림책을 보며 생각을 좀 달리 해야 할 것이다. 우선 표지의 그림이 내용을 압축해주고 있다. 엄마는 등에 아빠와 두 아들들을 한꺼번에 업고 있다. 책장을 열면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 집이 나온다. 그런데도 이 집의 풍경은 아늑하다거나 포근한 것 하고는 거리가 있다. 엄마는 가족들과 분리되어 부엌에 있다. 단지 엄마 혼자 바쁘고 다른 식구들은 이것저것 주문이 많다. 엄마는 얼굴을 들 틈도 없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일만 하고 있다. 다른 식구들은 피둥피둥 살찐 얼굴에 느굿하게 쉬고 있다. 모두 바깥에서 일을 하고 들어 온 처지는 같은 데도 말이다. 그러는 새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의 얼굴은 모두 돼지로 변한다. 얼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온 집이 돼지로 가득하다. 군데군데 돼지 얼굴을 찾는 재미도 꽤 특이하다. 엄마는 결국 대반란을 감행한다. '너희들은 돼지야!' 라며 엄마는 집을 떠난다. 이제 엄마가 해왔던, 자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만 해댔던 일들이 쌓여만 가고 집은 돼지 우리가 된다. 엄마가 돌아온 후, 집안 일은 온 가족들이 도와가며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된다. 아빠도 설거지를 할 수 있고 엄마도 자동차를 정비할 수 있다. 아들들도 청소하고 정리정돈 할 수 있다. 성고정 역할이 얼마나 어리석고 불합리한 생각인지 쉽고도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고 우리의 아이들도 고정관념에 묶여 날개를 다 펴지도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이란 자신의 역할을 각자 잘 소화해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역할이란 것을 틀에 박힌 생각으로 옭아매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앞세운다면 서로의 짐을 좀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한 가정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혹시 지금 우리 집은 돼지 우리가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
2학년 큰아이가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라는 제목으로 동시 일기를 써 놓은 걸 보았다. 한 두 시간이었는데, 두근두근하는 두려움과 기다림이 잘 엿보였다.나 혼자 집에 있으면'도둑 오나' 하고 가슴이 조마조마친구없이 혼자책 보려니 심심해서책장이 안 넘겨지고숙제를 하고 있다'딩동' 소리 들리고'희원아!' 부르는 듯하다.아기 여우는 한 두시간도 아니고 꼬박 이틀 밤을 도시로 장사 나간 아빠를 기다린다. 당차고 야무지다. 조금은 무서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씩씩하게 아빠를 기다리며 일상의 생활을 하는 아기 여우의 모습이 아주 귀엽다. 돌아가신 엄마만 계시다면 이런 외로움은 없었을텐데... 한밤중 엄마 생각이 난 아기 여우는 엄마의 어깨걸이를 꺼내 몸을 감싼다. 엄마 냄새가 난다. 아기 여우는 이웃의 정을 받을 줄 아는 마음을 가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남겨두고 말이다. 자연스럽게 받을 줄 아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빠를 기다리며, 아기 여우는 친구들과 산적놀이도 하고 곰 아저씨랑 낚시도 간다. 너구리 집에 쌓아 둔 낙엽더미 위를 구르기도 하고 여자 친구 토끼가 주는 꽃 한 송이에 기뻐하기도 한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던 토마토를 이웃 어른이 주는 샌드위치 속에 들어있으니 달게 먹는다. 정으로 먹으니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너도밤나무 아래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아기 여우는 밤하늘에 웃고 있는 엄마 여우의 얼굴을 본다. 그리곤 잠이 든다. 약속보다 늦게 온 아빠 여우의 사랑의 선물은, 이제 기다림의 시간을 앗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낡았지만 멋진 트럭을 선물로 가져왔으니 이제 아빠가 도시로 장사를 나가도 아기 여우는 혼자 남아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된다. 아기 여우는 처음 경험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튼실해진 느낌이다. 아기 여우의 대견스런 마음이 섬세하고 티없이 그려져 있다.
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책을 펼치니, 누렇게 변한 책장에서 은근한 곰팡내가 난다. 가격은 천오백원으로 씌어있다. 뒤에는 영문으로 실려있는 책이다. 그런데 요즈음 초등학생 용 동화로 이 책을 엮어내는 출판사가 있어 의외였다. 단지 멋진 옷차림의 왕자가 등장한다는 것으로 동화의 느낌을 주기 때문일까? 이 책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뭔가 인생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 숨겨둔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내 눈 앞에 등장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미타 마사히로가 문학가로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생텍쥐페리이기에 그의 '어린 왕자'는 남다른 애착이 갔을 것이다. 마사히로는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어린 왕자의 눈을 통해 그의 인생관과 실패한 그의 연애관을 보여준다. 현실에 부드럽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한 어린 왕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고 싶었던 작가 자신의 회한이 담긴 모습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서는 왕자가 소혹성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생 텍쥐페리의 마음속에 어린 소년의 이미지를 심은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왕자는 작가의 과거에서 왔다.<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꽃과 여우 그리고 사막과 전철수 같은 것들은 작가의 인생에서 만난 대상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빛난다. 자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것같이 생각되는 인생의 항목들에 대한 너그러운 통찰과 예리한 비판이 이것들에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성격을 알고 보면 인간적인 비애가 느껴진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한 사람이 끝없는 모래 사막에 불시착했다. 현실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늘 외로웠던 작가는 사막에서 비로소 외롭지 않음을 느낀다. 하늘에서 비행기 조종사의 눈으로 내려다 보는 세상은 지리학자의 세상읽기와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법이라고.- <어린 왕자>는 작가의 인간적 성숙이 보여지는 작품이다. 유일한 친구 기요메가 죽었을 때 비로로 죽음을 슬퍼할 줄 알게 되었다는 작가가 <어린 왕자>에서 던지는 상징들과의 대화는 자신의 생에 대한 겸손한 통찰에서 나온다. 꽃과의 대화가 그렇고 뱀과의 대화도 그렇다. 마사히로는 <어린 왕자>는 사랑에 대해 쓴 작품이라고 했다. 꽃에 물을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책임이 따르는 사랑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는 말과 같다. '책임'은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요건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결국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완전한 의미의 사랑은 인간적 성숙의 잣대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 '정들어'있다는 인식, 즉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헤어짐을 예견한다. 우리는 너무 늦게 '사랑'을 깨닫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인식은 순진함의 대극에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인식한 순간 이미 그 일에 관해서는 순진함을 잃어버린다. 인식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식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마사히로는 생텍쥐페리의 삶을 돌아보며 그의 '어린 왕자'를 들여다보았다. 마사히로가 보는 시선에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텍쥐페리의 그 이전 작품들을 비교하며, 한 인간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려보인다. 볼이 통통하니, 동안을 하고 있는 생텍쥐페리의 얼굴이 어린 왕자의 얼굴과 오버랩된다. 끝까지 어린 아이다운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려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삶을 좀더 진지하게 꿰뚫어보며 살려는 사람들에게 <어린 왕자>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를 조용히 권하고 싶다.
초등 저학년 눈높이에 맞춤한 이 작품은 생각할 거리들을 여럿 지니고 있다. 그런 것들을, 아주 쉽고 흥미있게, 또래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작가의 숨결이 느껴진다는 점도 좋다. 생각해 볼 거리들과 연관하여 다른 책들을 골라 주면 아이에게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가족의 의미, 친구의 소중함, 병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 대한 애정(특히 마음의 병) 같은 흔히들 다루는 소재이다. 핵가족화 되어감에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잘 모르고 사는 아이들이 많은 요즈음, 무조건적으로 쏟아부으시는 당신들의 사랑을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로 감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빠를 잃고 마음의 병을 얻은 한솔이를 치료하는 유일한 처방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심과 이해이다. 그 아이가 지금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유심히 들여다 본 결과 할아버지는 아빠의 분신과도 같은 감나무에 나무집을 지어준다.그 나무집을 지키기 위해 한솔이 반 아이들이 구청장 아저씨께써 보낸 편지는 요술편지였다. 신기하게도 아이들 모두의 바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픈 친구의 나무집을 지켜준 것이다. 그곳은 한솔이가 아빠와 만나는 곳이고 아빠와 함께 뒹굴며 노는 곳이다. 그런 나무집을 지켜준 친구들 모두를 나무집에 초대하여 즐겁게 떠들고 노는 한솔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기쁨의 방울이 맺힌다.한솔이 반 친구들 중에 휠체어를 탄 친구 하나가 눈에 든다. 그 친구는 아주 밝은 얼굴로 항상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려놓은 점이 눈에 띈다. 모두가 하나로 어울리며 밝은 분위기로 꾸며 놓은 교실 안팎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들었으면 좋겠다.죽음을 아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 아이의 마음. 상처입은 그 마음이 극복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주위 사람들의 사랑이 감동적이다. 얼마 전 실제로 아빠의 죽음을 본 아이가 있다. 죽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어쩌면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하루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성숙해가기를 기도한다. 그 아이의 어연한 모습이 오히려 안스러워 보였던 것은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기를...
아이들은 가족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 바탕에는 끈끈한 애정이 깔려있어 어쩔 수 없이 발을 뗄 수 없는 식이다. 부모 자식간의 미움도 형제간의 경쟁심리도, 한 겹 벗겨 들여다 보면, 거미줄 마냥 얽혀있는 사랑의 실타래같다. 커가면서 이런 것들의 빛이 바래고 색이 변해감을 느낄 때 씁씁한 입맛을 다시게도 된다. 이 그림책은 '너무나 소중한 가족, 영이네 집'의 가을 이야기 편이다. 주인공 영이의 세 가지 이야기가 영이의 마음씀만큼 앙증맞게 들어앉아 있다. 이 이야기가 소중한 것은, 퇴색되고 변질되기 전의 어쩌면 가장 순수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영이라는 어린 아이를 통해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묻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으로 그려진다. 연륜으로 묻어나는 삶의 지혜가 행복한 가정의 보이지 않는 축이다.'할머니 손은 약손'에서 할머니가 어린 손녀의 배를 쓰다듬으며 불러주시는 자장가와 전래동요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좋다. 영이는 그 노래를 더 듣고 싶어 계속 배가 아픈 척 하고, 할머니도 영이가 노래를 그만하라고 할까 봐 은근히 조마조마하다. 몸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이며 불러주시는 할머니의 노래가 그리워진다. 할머니 손은 약손이다.그림도 글도 따스한 기운으로 마음을 감싸주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아이들도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을 할까?'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