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책을 펼치니, 누렇게 변한 책장에서 은근한 곰팡내가 난다. 가격은 천오백원으로 씌어있다. 뒤에는 영문으로 실려있는 책이다. 그런데 요즈음 초등학생 용 동화로 이 책을 엮어내는 출판사가 있어 의외였다. 단지 멋진 옷차림의 왕자가 등장한다는 것으로 동화의 느낌을 주기 때문일까? 이 책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뭔가 인생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 숨겨둔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내 눈 앞에 등장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미타 마사히로가 문학가로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생텍쥐페리이기에 그의 '어린 왕자'는 남다른 애착이 갔을 것이다. 마사히로는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를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어린 왕자의 눈을 통해 그의 인생관과 실패한 그의 연애관을 보여준다. 현실에 부드럽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한 어린 왕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고 싶었던 작가 자신의 회한이 담긴 모습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서는 왕자가 소혹성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생 텍쥐페리의 마음속에 어린 소년의 이미지를 심은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왕자는 작가의 과거에서 왔다.<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꽃과 여우 그리고 사막과 전철수 같은 것들은 작가의 인생에서 만난 대상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빛난다. 자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것같이 생각되는 인생의 항목들에 대한 너그러운 통찰과 예리한 비판이 이것들에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성격을 알고 보면 인간적인 비애가 느껴진다.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한 사람이 끝없는 모래 사막에 불시착했다. 현실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늘 외로웠던 작가는 사막에서 비로소 외롭지 않음을 느낀다. 하늘에서 비행기 조종사의 눈으로 내려다 보는 세상은 지리학자의 세상읽기와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법이라고.- <어린 왕자>는 작가의 인간적 성숙이 보여지는 작품이다. 유일한 친구 기요메가 죽었을 때 비로로 죽음을 슬퍼할 줄 알게 되었다는 작가가 <어린 왕자>에서 던지는 상징들과의 대화는 자신의 생에 대한 겸손한 통찰에서 나온다. 꽃과의 대화가 그렇고 뱀과의 대화도 그렇다. 마사히로는 <어린 왕자>는 사랑에 대해 쓴 작품이라고 했다. 꽃에 물을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책임이 따르는 사랑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는 말과 같다. '책임'은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요건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도 결국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완전한 의미의 사랑은 인간적 성숙의 잣대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 '정들어'있다는 인식, 즉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헤어짐을 예견한다. 우리는 너무 늦게 '사랑'을 깨닫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인식은 순진함의 대극에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인식한 순간 이미 그 일에 관해서는 순진함을 잃어버린다. 인식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식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마사히로는 생텍쥐페리의 삶을 돌아보며 그의 '어린 왕자'를 들여다보았다. 마사히로가 보는 시선에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텍쥐페리의 그 이전 작품들을 비교하며, 한 인간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려보인다. 볼이 통통하니, 동안을 하고 있는 생텍쥐페리의 얼굴이 어린 왕자의 얼굴과 오버랩된다. 끝까지 어린 아이다운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려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삶을 좀더 진지하게 꿰뚫어보며 살려는 사람들에게 <어린 왕자>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를 조용히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