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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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한비야의 책을 이제 손에 들었다. 왜냐하면 매스컴이 떠드는 책은 한번쯤 의심을 하고 보는 습관이 있어서이다. 소문난 잔치집 먹을 것 없더라는 실망을 하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소위 베스트셀러들 중에서는 몇몇, 그것도 아주 나중에야 읽게 된다. 최근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감명을 깊이 받고 자신감을 얻었다기에, 그래 어떤 책이든 나름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다른 종류의 얻음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기꺼이 책을 펼쳤다.

처음부터 눈치보지 않고 톡톡 튀는 어휘로 써 내려가 쉽고 흥미롭게 읽혀지는 장점이 있다. 1년 과정으로 중국을 가게 된 목적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오늘을 사는 목표가 불처럼 명확하다는 점이 나로선 부럽기까지 하다. NGO에서 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필요해서 중국어를 배우려한다고 하면서, NGO에서 일하는 것이 인류애나 뛰어난 봉사정신에서라기 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니, 참 솔직하고 당당하다.

이 책은 관념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발로 뛰고 경험한 것들로 쓰였다는 점이 강점이다. 기행문 형식을 띈 책들 중에서도 유려한 문체와 수채화 같이 아름다운 관념의 언어들이 즐비한 것과는 달리, 배낭을 챙기는 방법에서부터 현지의 언어를 보다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까지를 철저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베이징의 인산인해나 불난 호떡집 같은 풍경이 눈으로 보는 듯 재미있게(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중국인들의 삶에 접근하는 식에도 편견없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화되어 울고 웃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중국생활 1년에서 부족했던 대인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좀더 현실적인 안목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음을 예리하게찌르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세상의 계획표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계획표에 따라 나만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리 조급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마흔을 넘은 나이라는 점을 따져본다는 것 자체가 고루한 생각이겠지. 한비야는 정말 오늘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나이란 어떤 나이인가, 어제 우리가 그렇게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던 날이며, 내일 우리가 그렇게 되돌아가고 싶은 날이 아닌가' 저자는 이런 말로 나이 탓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고 한다. 지금 나의 나이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충분히 누리고 즐기자.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를 연상했다. 한비야가 다름아닌, 그 책에 나오는 빅토리아 공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 시작하는 길, 이 길도 나는 거친 약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떠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지도란 없다.......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늘 잊지 않는 마음이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가려 한다. 끝까지 가려 한다. 그래야 이 길로 이어진 다음 길이 보일 테니까.' 그리고 그 길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동시에 찾기를, 살짝 귀띔한다. 낯선 것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본성을 조금씩 벗어버리길, 오늘을 충실하게 즐기며 자신감 있게 내일을 맞이하기를, 유쾌하게 다짐해 볼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아니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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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 나의 아버지 - 햇볕은 쨍쨍 3
황선미 지음, 김병하 그림 / 두산동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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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때면 느끼는 것이 있다. 소설 혹은 동화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있음직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지면 위의 아름다운 건축물. 우리는 그곳을 한발한발 들어가며, 애둘러가며, 한 귀퉁이에 앉아 가슴을 치기도 하며 조용히 '나'의 이야기에 젖어 든다. 내안으로 침잠하여 마알간 얼굴로 새로이 떠오르는 '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그런 힘이다. 특히 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로 동화의 소재를 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동화의 원제인 '내 푸른 자전거'도 작가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썼다고 들었다. 어려운 시절,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꿈을 버리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던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줄곧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이제는 고희를 넘긴지도 두 해가 된 늙으신 아버지. 옆길을 모르고 고지식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오신 아버지. 열 아홉에 피난내려와 의지가지없는 곳에서 자수성가하신 아버지의 힘든 세월을 갉아먹고 단발머리 여학생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한 때는 사교적이지도, 융통성이 있지도 못한 아버지를 답답하게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아버지의 단단한 어깨가 어느 날 슬퍼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늘 나를 믿고 힘든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셨다. 하시고 싶은 말씀도 꼭꼭 마음 속에 두시고 그저 바라보시기만 하다가, 속 깊은 곳에서 달군 회초리로 일침을 놓으신다. 눈치도 못 챌 정도로 짧게.

주인공 찬우의 아버지는 찬우에게 있어 자전거 바퀴와도 같다. 나를 태우고 팽팽 달려가는 자전거의 두 바퀴. 나는 그 바퀴에 의지하며 몸을 싣고 세상을 달린다. 바퀴는 닳고 닳지만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아버지란 이름은 묵직하면서도 슬프다.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내가 굴려 갚아야 하는 빚이다. 내가 갉아 먹고 자란 세월만큼 나의 아버지는 주름이 깊이 패인 얼굴을 하고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신은 상록수의 곧은 잎처럼 푸르다. 아버지의 힘은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은근하고 거대하다. 오늘도 열심히 나의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겠다.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나의 인생이라는 빛나는 자전거를 말이다. 그 아래에선 언제나 든든히 아버지가 받쳐주고 계신다. 아버지,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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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한빛문고 12
이문열 지음, 김동성 그림 / 다림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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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들은 말이 생각난다. 도가 통하면 뜨거운 눈물이 난다고. 어느 분야에서건 그 도가 통하는 순간이 있다고. 명상에서도 그 순간에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눈물이 있다고 한다. 그런 순간이 바로 하늘을 얻은 기분일까?

우리는 앎에의 끝모를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알기 위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예술작품을 경험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그러나 앎에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이다. 또한 앎 혹은 인식이란 얼마나 불확실한가. 신기루같은 인식으로 미명을 더듬어가고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닐까? 누군가 확실한 인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이라도 꼭 쥐어보고 싶다.

하늘길! 우리가 올라가려고 안간힘 쓰는 하늘이 과연 존재할까? 그저 추상적인 그 단어가 내포하는 것은 진리 또는 진실일 텐데. 그 진리의 꼭대기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하늘의 별과도 같다. 하늘은 존재하지 않고 하늘길만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 길을 열심히 가는 우리는 단련되고 슬기로와질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난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함을 지닐 것이다. 진리를 위해 내딛는 발자국에서 충분한 의미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설화에서 그 모티브를 따와 작가가 하나의 판타지 문학으로 승화 시킨 <하늘길>은, 인간이 하늘에 이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욕심, 거짓 감정, 경험이 빠진 피상적인 책읽기 등이 그것이다. 몸을 피폐하게 하는 찌들린 가난의 원인을 묻기 위해 하늘의 옥황상제를 찾아가는 한 젊은이는 결국 넘치는 복을 받아 부유한 생활을 하지만 또 다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물질적인 풍요가 채워주지 못한 어떤 갈증은 무엇일까? 그것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일을 작가는 권하고 있는 것 같다. 진실 그 자체로 나에게도 남에게도 깨어있어야 겠다. 헛된 욕망을 버리고 진솔한 경험으로 나의 인식의 폭을 넓혀야겠다. 하늘보다는 그 길에서 만나는 것들에 인사하며 따스한 시선을 보낼 줄도 알아야겠다. 그래서 나도 뜨거운 눈물로 씻기고 싶다.

김동성이 그린 풍속화풍의 수채화는 서늘한 감동을 준다. 태평스러운 어조와 환상적인 글의 분위기와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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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날아간 뒤주 왕자
김은숙 지음 / 함께자람(교학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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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불운한 왕자,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이나 사건의 객관적인 기술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히 개입된 역사동화이다.

비유적인 표현이나 작가의 감정이 고조된 묘사가 다소 많아, 오히려 애매하게 와닿은 부분이 적지 않다. 영조 때의 심한 당쟁을 하얀 깃발과 검은 깃발의 비유로 한 것은, 그 시기의 역사적인 사실을 정확한 정보로 설명을 곁들였더라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싶다.

사도세자의 내면에 촛점을 맞추어,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부정을 그리는 마음 그리고 효종의 뜻을 이은 북벌계획에 대한 원대한 꿈 등을 상세히 그린 점이 눈길을 끈다.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점 - 백성의 삶을 제대로 알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 - 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하는 점도 인간적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흔히 잘못 인식되고 있는 인물을 소재로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희망 그리고 올바른 역사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 수 있는 책이다. 다소 지리한 묘사와 너무 잦은 예스러운 어휘들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곳곳에서 걸리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뒤주에 갇혀 우주로, 그가 그토록 그리던 원대한 꿈을 안고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우주로 날아간 사도세자의 내면을 나름의 해석으로 풍부하게 그린 책이므로, 이 시기의 전후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보게 하면 아이들이 좀더 편하게 인물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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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 꿈을 그린 추상화가 어린이미술관 5
임창섭 지음 / 나무숲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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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느껴지는 추상화라는 장르를 어린이 미술관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을 먼저 떠올리기 쉬운 추상화 영역에서, 우리의 화가 김환기의 애잔한 삶과 꿈이 묻어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고 느끼는 나의 감정을 뽑고 뽑아 표현하는 추상화. 그래서 선은 단순해지고 간결해지며, 들여다보면 수도 없이 많은 점들이 그 선을 이루고 있다. 점과 선이 이루어내는 아름다움과 색채의 조화가 빚어내는 어울리지 않는 듯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색채의 향연.

눈을 깜박이지 않고 거리를 좀 두고 들여다보며 가만가만 귀 기울이면, 그곳에선 아주 오래된 영원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우리가 태초에 갖고 있던 꿈들. 그 꿈을 위해 밤하늘 별을 헤며 소망하고 옷깃을 여미는 우리들의 소박한 그러나 영원한 꿈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사슴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마알간 백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눈이 시리게 푸른 강에 비쳐 어른대는 둥그런 달빛의 이야기일 수도, 언제나 그곳에 아버지처럼 버티고 있는 산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환기 화가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쯤에 그렸다는 작품은, 어딘지 엄숙한 분위기에 매료된다. 짙은 색 수많은 별들 사이로 한 곳에서 만나는 여섯 개의 하얀 선, 그리고 위쪽에서 아래로 떨어질 듯 내리꽂히는 형세를 하고 있는 회색의 역삼각형, 그 안에서 빛나고 있는 작은 별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고 화가는 그렸던가? 이별을 예감하고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꿈을 비추는 별과 한 곳에서 만나기나 하려는 듯, 아니면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만나기라도 하려는 걸까? 마음을 그저 경건하게 모으며 화가의 마음이 되어 간결하게 소박하게 꾸밈없이 살아가기로 마음먹어 본다.

직접 환기미술관에도 가 보고 여러가지 소재의 바탕에 여러가지 재료의 색채도구로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책 뒤에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는 '김환기 선생님처럼 해 보기'가 입맛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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