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 나의 아버지 - 햇볕은 쨍쨍 3
황선미 지음, 김병하 그림 / 두산동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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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황선미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때면 느끼는 것이 있다. 소설 혹은 동화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있음직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지면 위의 아름다운 건축물. 우리는 그곳을 한발한발 들어가며, 애둘러가며, 한 귀퉁이에 앉아 가슴을 치기도 하며 조용히 '나'의 이야기에 젖어 든다. 내안으로 침잠하여 마알간 얼굴로 새로이 떠오르는 '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그런 힘이다. 특히 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로 동화의 소재를 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동화의 원제인 '내 푸른 자전거'도 작가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썼다고 들었다. 어려운 시절,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꿈을 버리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던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줄곧 나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이제는 고희를 넘긴지도 두 해가 된 늙으신 아버지. 옆길을 모르고 고지식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오신 아버지. 열 아홉에 피난내려와 의지가지없는 곳에서 자수성가하신 아버지의 힘든 세월을 갉아먹고 단발머리 여학생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한 때는 사교적이지도, 융통성이 있지도 못한 아버지를 답답하게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아버지의 단단한 어깨가 어느 날 슬퍼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늘 나를 믿고 힘든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셨다. 하시고 싶은 말씀도 꼭꼭 마음 속에 두시고 그저 바라보시기만 하다가, 속 깊은 곳에서 달군 회초리로 일침을 놓으신다. 눈치도 못 챌 정도로 짧게.

주인공 찬우의 아버지는 찬우에게 있어 자전거 바퀴와도 같다. 나를 태우고 팽팽 달려가는 자전거의 두 바퀴. 나는 그 바퀴에 의지하며 몸을 싣고 세상을 달린다. 바퀴는 닳고 닳지만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아버지란 이름은 묵직하면서도 슬프다.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내가 굴려 갚아야 하는 빚이다. 내가 갉아 먹고 자란 세월만큼 나의 아버지는 주름이 깊이 패인 얼굴을 하고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신은 상록수의 곧은 잎처럼 푸르다. 아버지의 힘은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은근하고 거대하다. 오늘도 열심히 나의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겠다.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나의 인생이라는 빛나는 자전거를 말이다. 그 아래에선 언제나 든든히 아버지가 받쳐주고 계신다. 아버지,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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