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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아뽀아가 가져다 준 행복 - 이그저어느 숲 이야기 ㅣ 중앙문고 35
오카다 준 글.그림, 이선아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만 보면 우선 뽀아뽀아가 뭔지 무척 궁금해진다. 표지에 있는 남자아이의 이름인가?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한손엔 편지, 한손에 무슨 열매를 들고 갸우뚱하고 있는 고슴도치 머리의 남자아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 열매의 이름이 뽀아뽀아인가? 이쯤이면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 출발은 꽤 괜찮은 편이다. 이런 열매가 있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도를 예견해보는 것도 괜찮다.
오카다 준이란 일본동화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참 신기하고 기발하다는 생각에 이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어, 앞 책날개에 있는 작가약력과 사진으로 다시 돌아갔다.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에 전체적으로 동안(童顔)을 하고 있는 작가라,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만화를 잘 그리는 작가답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기상천외한 집들에 탄성을 질렀기 때문이다. 주전자가 옆으로 눈 속에 파 묻혀있는 모양의 집, 고둥 모양의 집, 나무 위의 집, 유리병이 옆으로 누워있는 것 같은 집, 그리고 주인공 스키퍼가 사는 성게호(성게모양의 뾰족뾰족한 안테나가 솟아있는 집), 모두모두 겉모양도 멋지지만, 내부는 더 멋지다. 꼼꼼하게 집안의 모든 걸 그려놓고 필요한 부분은 설명도 달아놓았다. 실속도 있고 아름다우면서 집주인의 생활패턴에 맞게 효율적으로 꾸며져 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특이하고 재미있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씨, 정말로 씨, 사과와 레몬, 설마와 과연, 토마토 씨와 주전자 씨, 무뚝뚝 씨와 제비꽃 씨, 이들은 모두 웃을 줄 모르는 스키퍼에게 다른 행복의 맛을 알게 해 준다. 좋은 번역의 장점일까? 등장인물 이름뿐만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가 맛깔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은 여러번 소리내어 읽고 싶다. '열매가 점점 커지고 점점 무거워질수록 낭창낭창한 가지가 휘늘어졌고, 발갛게 익은 열매가 땅에 닿을 무렵에는 달콤한 냄새가 감돌았어요.'
동화를 읽으면 좋은 점들 여러가지 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 크다. '낭창낭창한'이란 느낌과 '휘늘어졌고'의 느낌을 설명해주기 전에는 모르고 있던 아이들에게 말을 덧붙여주니 좋아했다. 스피드를 즐기고 즉흥적인 요즘 아이들, 스토리도 좋지만 구절구절 아름다운 우리말의 맛을 느끼며 동화를 읽으면 더 좋겠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문장들이 마음에 스미는 느낌이 참 좋기 때문이다. '이그저어느 숲'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듯 떠들석한 이야기들이 가져오는 파장이, 뽀아뽀아 열매로 만든 뜨거운 잼을 넣어 마시는 홍차 한 모금의 맛과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들 준비를 마치고 고갯짓으로 서로 신호를 보낸 다음, 다 함께 눈을 감고 한 모금씩 마셨어요. 아, 이렇게 맛있을 수가! 달콤하고, 산뜻하고, 은은하고, 행복했어요.'
이 책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혼자 차 마시고 혼자 생각하고 화석을 들여다보며 혼자 상상하는 걸 즐기는 스키퍼는 행복한 느낌을 가지고 산다. 부끄럼도 잘 타고 말도 잘 못하고 웃는 일도 좀해서 없는 스키퍼에게 어느 날 뽀아뽀아 열매의 조리법을 알아내야 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 열매를 들고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열매를 나눠주고, 도움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숲속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 많아지면서 스키퍼의 행복은 예전의 것과는 좀 다른 종류로 다가온다. 숲 속 사람들이 자신의 상상 속에 자주 등장하고 모험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차를 대접하며 다소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이제 고슴도치 스키퍼가 느끼는 제일 큰 행복은, 사람들이 찾아와 성게 호에서 차를 마시고 돌아간 뒤에 혼자 서재에서 책을 읽고 화석이며 조개를 볼 때의 그 '느긋한 기분'이 몸 속으로 사르르 퍼질 때로 바뀌었다.
행복은 균형에서 오는 게 아닐까! 우리의 의식을, 감정을 지배하는 생활의 균형. 타인과 만나 따스한 정과 마음을 나누고 자신만의 시간으로 돌아와 하루의 경험을 내면화하여, 충만함으로 행복의 열매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린드그렌만큼 신선한 감동과 재미를 준 동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