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은 사고뭉치 동화는 내 친구 7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유명세만큼 기대롤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말광량이 삐삐 못지 않은 취학전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다. 통통한 볼이 귀여운 에밀은 가족과 마을사람들에게, 누나 라니가 말하듯, 말썽을 부리든 농장전체가 발칵 뒤집어지든 둘 중 한 가지의 나날을 제공하는 아이다. 싹이 노랗다고 말하는 마을사람들의 기우와는 달리 훗날 회장님이 된다는 에밀이 저지르는 사고는 하나같이 기발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 이유를 대는 에밀의 심중에 들어가보면 여동생 이다를 생각해주는 마음도 엿볼 수 있고 임기응변으로 둘러대는 변명이라하더라도 미워할 수 없을 만치 깜찍하다.

아스트리드는 말썽꾸러기 손자를 위한 즉흥적인 이야기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그 손자가 정말 이런 지경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손자에게 쩔쩔매는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눈매가 그려져 마음이 참 훈훈해진다. 에밀이 벌이는 사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날마다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데, 이 동화에서는 크게 세가지를 대표적으로 소개하는 형식이다. 날짜와 요일을 구체적으로 써 놓아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사건을 기사문의 형식으로 써보거나 일기문의 형식으로 써보며 짧게 줄거리를 요약해 보게 하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기자가 되어 에밀을 인터뷰하는 시간도 좋다.

에밀의 사고 중 압권은 국기게양대에 어린 여동생을 게양한 사건이다. 멀리 있는 무슨 마을이 보고 싶다고 오빠에게 매달리는 동생을 위해 동생을 게양하고 동생은 꼭대기에서 비행기처럼 매달려있는 모습의 삽화를 보면 아이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엽기적이기도 하여 박장대소하며 얼굴이 환해진다. 삽화도 어찌 귀여운지 에밀도 이다도 아주 작은 천사처럼 귀염성있게 그려져있다. 에밀은 이 사건으로 예의 그 목공소에 갇히고 그 안에서 능숙한 솜씨로 목공인형 한 개를 만들고 난 뒤, 아무도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으니까 드디어 에밀은 혼자 힘으로 그곳을 빠져나오기로 결심하고 높은 창문사이로 널빤지를 대고 옆건물의 식품저장실로 옮겨간다.

아빠는 에밀이 사고를 칠 때마다 목공소에 가두지만 이젠 슬슬 걱정이 되고 누나는 손님들을 위해 엄마가 준비해둔 소시지를 다 먹고 그곳에 소시지처럼 모로 누워있는 에밀을 발견한다. 못 말리는 에밀을 변함없이 사랑스런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역시 엄마다. 엄마에겐 에밀도 이다도 귀엽고 사랑스런 작은 천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마 아스트리드의 마음이 엄마의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그 모든 결점에도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엄마의 다정한 눈길이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온전하게 아름답게 그러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저버리지 않고 자라면 좋겠다.

독후활동으로 곧 입학하게 될 에밀에게 학교선배로서 주는 편지를 쓰는 시간에서 한 여자아이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생글생글 눈이 늘 웃고있는 이 아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충고들을 열거한 뒤 마지막에 "에밀아, 그렇다고 학교에서 너무 얌전하지는 마. 그러면 아마도 에밀답지 않을 거야." 라고 써놓았다.  늘 내 맘에 안기는 글을 써서 아무도 몰래 나를 기쁘게 하는 이 아인 이제 4학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넛 2004-03-1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들렀다가 제가 너무 좋아하는 책이라 퍼갑니다. 미리 감사를!

프레이야 2004-03-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린님, 봄이에요. 좋은 날 내내 맞으세요.^^
 
 전출처 : waho > 아이들의 재미있는 답변들 ㅋㅋ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4-02-2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에도 문제가 있는데요^^

당면사리 2004-02-2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핳.. 넘 재밌네요.. 남편이랑 한참 웃었어요. 정말 이런 답을 쓰는 애들이 있네요. (근데 문제도 쫌 어렵긴 하네요.. )

프레이야 2004-03-0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면사리님, 너무 맛있는 닉네임이네요. 낙지전골에 들어있는 당면사리 아주 좋아하는데요^^

김여흔 2004-03-0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을 웃었어요. 아이고 턱이야.
 
 전출처 : 다연엉가 > 어머니의 마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4-02-29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웃기기도 하고...
최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아이의 장점은 살리면서 가정에서의 협조도 부탁하는 선생님의 코멘트와, 더이상 그럴 수 없다싶게 직설적으로, 아픈 가슴을 숨기며,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의 코멘트가 대조의 절정이다. 나도 수업을 하고 매달 수업내용과 평가를 코멘트하여 아이들의 화일에 끼워 어머니께 보내는데, 코멘트할 때 상당히 신경써서 한다. 오해의 소지나 괜한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말을 상당히 고르고 골라서 한다. 어머니들의 코멘트도 각양각색이다. 그걸 읽는 것 또한 재미나다.
그런데 '우'를 받은 과목이 무언지 궁금해진다. 요즘은 이런 식의 성적통지표가 아니라,
각 과목별로 소상하게 선생님의 소견이 적혀나오는데...(초등학교는)
 
 전출처 : Smila > The Year is at the Spring

Lawrence Alma-Tadema, The Year is at the Spring All is Right with the World, 1902

봄을 기다리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stella.K > [펌] 사랑의 문제

[책마을]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사랑의 문제


며칠 전 찾아왔던 상민이는 4년 전 졸업하고 나서 이제껏 화실에 나가서 만화를 습작하느라고 고정된 직업이 없다.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늘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학교 성적도 좋아서 원하기만 하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상민이는 굳이 만화가의 길을 택했다. 아직 만화가로서 정식 데뷔를 못해서 생활이 너무나 옹색하고 여전히 주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직장 얻어서 남처럼 살라고 하지만 자기는 지금의 생활이 더 좋다는 상민이는 아닌게 아니라 얼굴이 무척 밝았다.

졸업할 때 논문을 16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정치가, 위대한 인문주의자였던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의 정치공상소설 ‘유토피아(Utopia):1516’에 대해 썼었다는 상민이가 재미있는 말을 꺼냈다. 즉 모어가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가 종교적 반역자로 몰려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머리를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내 수염은 잘리지 않도록 조심하슈. 그건 죄가 없으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멋있잖아요, 선생님. 죽을 때까지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것 말이에요.” 상민이는 말하고 나서 곧 덧붙였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유머감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우리 정치인들의 이미지는 어쩐지 엄숙하고 경직되고, 웃어봤자 계산적인 입술근육의 움직임처럼 보일 뿐, 무언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밝고 환한 표정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유명한 정치가들-예를 들어 영국의 벤자민 디즈라엘리나 윈스턴 처칠, 미국의 존 F 케네디 등-은 그들의 탁월한 정치적 수완뿐만 아니라 유머감각으로도 유명하다. 한번은 처칠을 끔찍이 싫어하던 영국의 여성 국회의원 레이디 에스터가 한껏 화가 나서 처칠에게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당신 커피에 독을 탔을 겁니다”라고 말하자 처칠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면 서슴지 않고 그걸 마셨을 것이요.”

사전을 찾아보면 ‘유머감각’이란 ‘우습거나 재미있는 것을 감지하고 즐기고 표현하는 능력’이라도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유머감각은 그보다 좀더 넓은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할 때 상황의 정곡을 찔러 유머감각을 발휘하여 대처한다는 것은 그의 날카로운 상황판단력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 이는 또한 근시안적 판단을 유보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좀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믿음에 관한 확신, 그리고 그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정직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닥터 지바고’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미션’ 등의 각본을 쓴 로버트 볼트(Robert Bolt)는 토마스 모어의 생애를 그린 ‘4계절의 사나이(A Man for All Seasons)’라는 각본으로 1967년도 아카데미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모어가 사형선고를 받자 주변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왕과 타협해서 목숨만은 건지라고 설득하기에 나서는데, 제발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한 친구의 말에 모어가 답한다. “그렇지만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 (a matter of love)이지 않나.”

가끔 상민이처럼 ‘사랑의 문제’를 좇아 삶의 행로를 결정하는 학생들을 본다. 조건 좋은 혼처를 두고 재정적 능력이 없는 장애인과 결혼을 한다든가, 공부를 썩 잘해서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가 되었으면 하는데 갑자기 사제가 되겠다고 수도회에 입회하는 등, 이리저리 손익을 따져가며 ‘이성의 문제’에만 급급해서 살아온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아직도 젊은 우리 학생들은 한다.

목숨까지 바쳐 자신의 신앙과 ‘사랑의 문제’를 끝까지 고수한 토마스 모어는 이제 성인(聖人)으로 추앙된다. 그러나 나는 연구실을 나가는 상민이의 뒷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만화가의 꿈을 접고 월급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을 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나처럼 ‘이성의 문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세상에서 용기 있는 우리 학생들의 꿈과 사랑을 지켜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