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비켜라 고구려가 나가신다 : 광개토대왕 공부가 되는 위인전 1
김남석 지음, 장선환 그림 / 해와나무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고구려에 대한 어린이 책은 여럿 있지만, 이 책은 고구려사 전체를 통사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광개토대왕의 동북아대제국 건설의 꿈과 그 성과에 대한 것에 촛점을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고구려에 대한 책이면서 전쟁사 쪽으로 보아지는 면이 강하다.

삽화가 사실적이며 실제 사진 몇몇도 실어두었다. 예를 들어 광개토대왕이 태자로 있을 때 아버지와의 약속을 하였던 백두산의 사진 같은 것이 그렇다. 천지의 물이 닿는 곳은 모두 고구려의 땅이며 그 땅을 되찾으면 다시 이곳에 오리라던 마음의 약속을 지키려 광개토대왕은 훗날(동부여와 연해주를 정복한 후) 천지를 찾는다.

갑옷과 칼, 관미성을 오를 때 유용하게 썼던 운제 같은 것을 보면 그 당시의 기술이 놀랍다. 일종의 2단 사다리차 같은 운제에는 바퀴가 여섯 개 달려있다. 바퀴를 그렇게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었던 것으로도 그들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돌무덤이라는 특색을 가진 고구려의 무덤과 그 안에 그려놓은 수많은 벽화들에서도 고구려의 발달된 기술과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게 참고자료를 넣어 두었다. 

광개토대왕은 뛰어난 용병술과 지혜를 겸비한 전략가였다. 먼저 민심을 살피고 백성의 생활을 편하게 한 뒤 남변정책에 이어 북벌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선대왕들이 닦아놓은 기반에 세력을 북으로 또 남으로 확장하였던 이 왕은 39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등진다. 그리고 앞으로 200여년 태평성대의 길을 열어둔 셈이다.

이 책의 뒷장에는 2002년 시작되었던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것이 가지는 중국측의 의미와 우리측의 반박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먼저 고구려사를 우리 어린이들이 먼저 알고 하나하나 반박해보면 의미가 있겠다. 인터넷에서 동북공정반대서명운동에 참가해도 좋겠다.

이 책은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을 간단히 순서대로 엮어내고 있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왜구를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약간 과장된 어투로 재미를 주려하고 있지만 좀 어색한 점이 없지 않다. 인물이야기라고 하면 너무 한 쪽 면에 치우쳐있다는 단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고구려사라고 하기엔 아주 미흡하다. 인물이야기책이라고 보아야하겠지만, 그러기엔 정복의 과정에서 보이는 그 인물의 강점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 조금의 망설임이나 고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엔 책의 두께가 부족하였나싶을 정도이다. 집필을 너무 촉박하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프로젝트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역사를 보는 정확한 눈,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에 시선을 맞춘다면 광개토대왕의 동북아대제국건설의 꿈에 동참해보는 것도 좋겠다. 광개토대왕이 오늘날 되살아난다면... , 이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해질 것이다. 광개토대왕과 고구려사에 대한 다른 도서를 함께 접한다면 괜찮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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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의 죽음
원고 쓰고 막 자려다 김선일씨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착잡함에 오늘도 다시 밤을 새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희망적 관측이 흘러나와 기대를 걸었으나, 그 희망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가장 우려 했던 최악의 사태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비디오를 생각해 보십시요.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 처절한 몸짓으로 절규하며 국가에 자신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호소에 귀를 막고 국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추가파병에 변함 없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의 '안보'와 아무 상관이 없는 전쟁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보낸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외려 그 반대지요. 군대를 보내서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습니다. 이것을 저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안보'라고 부릅니다.

김선일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17일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 납치가 이루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파병 준비에 바빴던 노무현 정권이 자국민이 피납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미국도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통보를 해줬는데 우리 정부가 추가파병을 발표하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척 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저들이 말하는 '안보'입니다.  

정권은 김선일씨를 납치한 사람들의 정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약속대로 김선일씨를 잔혹하게 살해함으로써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정권에서는 무슨 자신감에선지 아주 신속하게(!) 파병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라크의 서희, 제마 부대가 얼마나 cool하게 활동하는지 홍보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미국에 협조하는 한국군이 이라크 사람들 돕는 것을 고운 눈으로 보겠습니까?

2.

김선일씨가 납치당했는데도 어제 광화문에 모인 사람은 고작 2천에 불과했습니다. 선거법 위반 발언하다 탄핵 당한 노무현을 구하자고 수만이 모여든 반면, 국가의 부당한 파병으로 생명에 위험에 처한 김선일씨를 구하는 자리에는 고작 2천이 모였습니다. 그 많던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아마 거리는 파병반대의 물결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이게 정치의식입니까?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도대체 이런 전쟁에 반대하고, 파병을 결정한 책임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소위 노빠들의 극성 때문에 파병반대 얘기하는 것도 '모험'이 되어버렸습니다. 파병에는 반대해도, 그 결정을 내린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파병 결정해놓고, 비난도 받기 싫다는 겁니까? 파병을 하되 비난은 받기 싫으면 정권을 한나라당에 넘길 일입니다. 그럼 우리의 비판은 한나라당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 역시 원칙적인 평화주의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전쟁의 경우 9.11로 3천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했고, 그 범죄를 저지른 빈 라덴이 아프간에 있었고, 아프간 정부는 그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고, 그 전쟁은 유엔의 승인을 받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포함해 다국적군이 참전을 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이해를 해 줄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 정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다릅니다. 후세인과 알카에다는 아무 연관이 없고,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고, 그래서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 했고, 누가 봐도 명백한 침략전쟁입니다. 게다가 무차별한 미군의 사격과 폭격으로 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희생당했고, 포로로 잡힌 이라크의 군인들은 감옥에서 짐승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왜 이런 범죄적인 전쟁에 한국군이 참여를 해야 하는지, 누가 제게 납득할 만한 이유 좀 대 주세요.

3.

김선일씨를 죽인 자들은 해방투사들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입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다는 점에서 부시와 똑같은 전쟁 범죄자들입니다. 그들은 규탄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파병할 경우 그들이 파병국 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파병을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기본임무를 져버리는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무책임한 일을 청와대에 앉은 분들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져질렀습니다.

파병을 할 경우, 이와 유사한 일은 앞으로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적어도 파병 때문에 이라크와 그 주변 아랍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 거기서 활동을 하는 우리 상사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이게 현 정권의 '안보' 정책입니다. 그렇게 제 나라 국민을 위험에 빠뜨려놓고,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요? 김선일씨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 삶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분들 계시면 한번 나와 보세요.

김선일씨가 당한 비극은 언제라도 '나'의 불행, 내 가족의 불행, 내 친구의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선일씨의 부모도 파병에 찬성했다지 않습니까? 설마 자기 자식이 거기에 희생당할 것이라 꿈앤들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저마다 다 그건 남의 일이라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불행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희생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김선일입니다.

"한 사람 잡혀간다고 파병철회하는 나라 있냐?" 이게 정부여당의 일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한나라당 애들이야 원래 그런 애들이라고 치고, '개혁'을 외치는 정부여당까지도 이런 무서운 생각을 서슴없이 내뱉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이런 나라에 우리의 생명을 맡겨놓을 수 있습니까? 파쇼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전체주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납치된 상황에서 버젓이 저런 발언할 수 있는 저 대담함, 저런 끔찍한 발언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의 무감함, 그게 전체주의입니다.

4.

미국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배격해야 합니다. 하나는 NL류의 극단적인 반미 전민항쟁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이익이 곧 우리의 이익이라 강변하는 극단적인 친미주의입니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 중요하지요. 하지만 '동맹'이란 무엇일까요?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간까지 빼주는 게 과연 '동맹'일까요?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주종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에게요? 아니지요. 국군통수권은 국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권한을 누가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권한은 부시가 갖고 있습니다. 부시는 대한민국 국군을 아무 데나 갖다 박을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왜? 노무현 정권이 부시에게 국군통수권을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주권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자기의 기본적 직무를 유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조차 부시 정권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해쳤다"는 비난이 나오는 판에, 제 나라 국익을 져버리고 진정한 동맹관계를 해치는 부시의 깽판에 장단 맞춰 춤이나 추는 게 과연 '동맹'입니까? 이것은 한 마디로 무능함과 나태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겁니까? 제 나라 국민이 이국땅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태를 보고도 여전히 부시 눈치나 봐야 합니까? 이 나라에 도대체 외교전략이 있는 겁니까? 안보전략이 있는 겁니까?

파병철회해야 합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라는 한국에서 파병을 거부할 경우, 부시 정권은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대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당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역시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한미동맹' 좋다, 하지만 그 방식은 너희들 멋대로 정하게 놔둘 수 없다. 우리도 너희를 날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시는 미국이 아닙니다. 미국의 절반도 채 안 됩니다.

5.

김선일씨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울부짖던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는 우리에게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호소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점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공범입니다. 파병을 결정한 이들은 주범이고, 파병을 묵인한 이들은 종법이고, 파병을 반대하되 힘있게 밀어내지 못한 모든 이들은 넓은 의미의 공범입니다. 앞으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파병반대, 한국군철수를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정치가 사람들의 의식을 개발시키는 게 아니라, 외려 사람들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킵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 터져도 사람들이 안 모입니다. 특정 정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촛불도 켜지지 않습니다. 이게 그 잘난 인터넷 민주주의의 수준입니다. 어제 모인 2천 명, 그게 이 나라 평화주의 역량의 전부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런 비극적인 일을 막을 수 없는 것이지요.

박노자가 그랬던가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끔찍할 뻔 했다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지식인이라는 분의 정치의식이 이렇게 나이브합니다. 차라리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한국인 특유의 정치의식이 발동하여 아마 지금쯤 거리가 파병반대의 물결로 차고 넘피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정치에 환장을 해도 그렇지, 어떻게 시민들이 저토록 완벽하게 현실의 정당세력에 포섭될 수가 있을까요? 이럴 때는 정말 절망적인 생각이 듭니다.

성급하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절망의 끝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희망이 없어도 저항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열정'에 빠지는 사람은 아직 현실의 냉혹함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열정에 들떠 어떤 일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것은 창조력이 고갈된 가수가 대마초를 피고, 한계에 도달한 운동선수가 약물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진정한 가수는 대마초 없이도 상상력을 가질 수 있고, 진정한 선수는 약물 없이도 체력의 한계를 극복합니다. 진정한 저항은 섣부른 희망이나 뜨거운 열정 없이, 현실의 냉정함을 보고 존재의 밑바닥에서 힘을 끌어올리는 용기에서 시작합니다.

파병반대, 국군철수. 여당과 야당이 동조하고, 조중동의 지원을 받고, 김선일씨의 운명을 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무감함의 덩어리들에 맞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엄두가 안 나지요. 어제 MBC 저녁뉴스에 파병반대 움직임은 테러범들에게 놀아나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하더군요. 그것을 들으며 얼마나 끔찍했던지.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진보의 전선은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도 아니고, MBC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한겨례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바로 거기에 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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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백 2004-06-2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이는 거짓말 하지마라!
김선일씨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죽음이 전벅으로 파병때문 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흑심과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냉정하게 얘기하자. 정부는 김선일씨를 이라크에 강제로 보내지 않았다. 그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고 출국과 해외로의 이동의 자유가 있는 대한만국 국민으로써 스스로 제발로 걸어서 이라크에 간 것이다. 이라크가 전쟁 중에 있으며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김선일씨는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라크로 간 것이다. 결과는 불행하게 끝이났고 정부는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성황에서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김선일씨의 죽음을 이용 하여 정부의 잘못을 터무니없이 부풀리거나 왜곡하여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게끔 몰아가는 것은 김선일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김선일의 호소를 정부가 무시하였다고!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그 주둥아리 놀리지 마라. 그렇게 없는 사실을 자신있게 주절댈 수 있는 너라는 인간의 배짱이 참 부러울 뿐이다. 적어도 책상머리에 앉아 글 몇자 끄적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너보다는 현장에서 애간장 태워가며 한목숨 살리고자 노력한 그 사람들이 훨씬 진정성이 느껴진다.
까대기만 한다고 다 말이 되고 글이 되는 게 아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선동주의적 글쓰기는 당장에는 너를 통쾌하게 만들지언정 어느덧 그 선동주의라는 마약과 약물에 중독되어 너를 기필코 파멸시킬 것이다. 명심해라!
 
 전출처 : 쑥 > [퍼온글] 김훈-김규항-고종석의 문체에 대한 생각(1)

바로 앞 통신문에 계속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번 통신문에서는 문체에 대한 나의 몇 가지 생각을 적고자 한다. 먼저, 자신만의 독특한 얼굴 혹은 손가락을 가진 작가로 제일 먼저 손꼽을 수 있는 사람이 김훈이다. 그는 소설가이기 전에 에세이스트였고, 에세이스트이기 전에 언론사 기자였다. 그는 자신의 직업과 표정을 그렇게 변화시켜가고 있지만, 나에게 소설가로서의 김훈은 좀 낯설다. 문학판의 각광에도 불구하고(그는 두번째 장편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첫번째 단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런 건 그들만의 비즈니스이다. 작품이 있으니까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상이 있으니까 작품을 찾는 것이 문학/출판계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소설가의 손가락이 아니라 에세이스트의 손가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주제를 모른다거나 어리석은 것은 결코 아니다. 에세이로서는 밥벌이를 할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며, 그는 밥벌이의 신성함을 누구보다도 지겹도록 맹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현재 오랜 기자생활을 그만 둔 그에게 소설쓰기는 그의 밥벌이, 즉 그의 비즈니스이다.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게 아닌 이상 남의 밥벌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다. 그건 각자의 문제이다. 그래서 예컨대, 화장실 청소원에게 혹 그것도 밥벌이냐?고 묻는 것은 우스운 일을 넘어서 아주 무례한 일이다. 세상의 밥벌이에는 귀천(貴賤)이 없으므로.

 

나는 김훈의 에세이들을 숭배하지만(나는 그것들이 국어교과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들은 아직 한편도 읽지 않았다. 그의 에세이들은 출간되자 마자 사들였지만(어떤 건 몇 권씩),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세 장편 소설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대했다. <빗살무늬>는 품절된 이후에야 사려고 돌아다녔는데, 결국 내가 샀는지 못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으며, <칼의 노래>는 대폭 할인할 때에야 싼 맛에 샀고, <현의 노래>는 사두지 못한 채 모스크바에 왔다. 그러니 내가 그의 소설들에 대해서 말할 지분은 별로 없는 셈이다.

 

대신에 나는 북매거진 <텍스트>(2004 4월호)에서 <현의 노래>에 대한 두 편의 서평을 읽었고, 이 소설에 대한 그림을 대충 그려볼 수 있었는데, 그건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이하의 인용은 모두 두 서평으로부터의 재인용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그를 잘 안다고도 말할 수 있다(하긴, 소설을 제외한 그의 글과 인터뷰 대부분을 찾아 읽었으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장편소설이라고 표지에 박혀 있더라도, 그런 걸 세 권이나 냈더라도 그는 아직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 그가 쓴 건 에세이스트의 손가락이 쓴 역사 에세이이고, 혹은 그에 대한 판타지이거나 모노드라마들이다. 그건 박상륭의 잡설들이 소설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어떻게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그의 문체 때문이다. 흔히 아름답다 혹은 현란하다고 일컬어지는 것 말이다. 요컨대, 그의 문체는 소설이란 장르, 품위 없고 잡스러운 장르가 요구하는 바 일상적 디테일, 저자거리의 언어를 담기에는 너무 고상하며 품위가 넘쳐난다. 그래서 어색하다. 마치 장미희가 떡장사를 연기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가 아무리 소설이요!라고 외쳐도 내겐 똑 사세요!로 들린다.

 

<텍스트>의 두 서평은 모노톤의 복화술(김용필)문체의 아름다움이 놓친 몇 가지(조은영)란 제목으로 돼 있는데, 서평자들이 지적하는 바나 내가 지금 얘기하는 거나 같은 얘기이다. 그의 소설은 모노드라마이며, 문체의 아름다움 때문에 소설을 망쳤다는 얘기니까. 조은영 기자의 서평은 그렇다면, 김훈의 진정한 3인칭 소설, 최초의 3인칭 소설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조심스러운 진단으로 마무리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물론 신중함은 기자로서의 조건이다). 그는 3인칭 소설은커녕, 소설 자체를 쓴 일이 없고, 앞으로도 별로 쓸 일이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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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6-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의 노래를 읽고 답답하니 느꼈던 내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다. 진정한 이야기꾼의 소설은 아니라는... 불필요한 장식성의 모호한 문체가 걸림이 되고 있었다.
 
라이트형제 - 비행의 선구자들 - 어제의 과학자 오늘의 과학
엘리자베스 매클라우드 지음, 미세기 편집부 옮김 / 미세기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6학년 쯤의 초등학생 이상이면 권하고 싶은 괜찮은 인물이야기 책을 만났다. 아주 얇은 두께에 실제로 손으로 들어보아도 가벼운 책이다. 크기는 프린트용지 정도이다.  '어제의 과학자, 오늘의 과학' 시리즈인데, 과학과 인물을 동시에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의 무게만큼 내용이나 문체도 간결하며 가볍다. 거의 절반의 내용은 소액자에 담긴 사진들과 큰 판형의 사진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원리에 대한 설명을 그림과 함께 알기 쉽게 설명을 곁들여 놓았다. 

인물의 이름이 책의 제목으로 나와있지만, 보통의 인물이야기처럼 인물을 여러각도로 보여주면서 그 인물의 삶을 조명하기보다는, 그 인물의 과학적 업적과 그것의 진화과정에 촛점을 둔다. 빠른 서술방식으로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고 내용의 전개도 일목요연하다. '라이트 형제는 누구인가'에서 '한계는 없다' 까지를 목차로 하는데 과거의 인물이 자신의 열정만으로 이룬 업적이 오늘날을 거쳐 미래에까지 어떻게 상상치도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놀랍다.

이 책은 실제의 인물 사진과 당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험을 거듭한 글라이더를 담은 사진 그외 보충자료가 될 만한 사진까지 적절히 배치해서 보여준다. 기존의 과학인물이야기보다 어렵지 않고 군더더기가 없어서 줄기를 놓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형 윌버는 추진력이 있고 동생 오빌은 발명에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꿈꾸는 듯,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한 눈에도 멋쟁이로 보이는 수트를 입고 있는 이들은 쌍둥이처럼 생각하는 것이 비슷했다고 한다. 비행장치를 함께 만들면서도 동시에 같은 곡을 흥얼거리기도 했다고 적어놓은 작은 글자가 딱딱하기 쉬운 본문의 내용에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군데군데에 있는 만화의 말주머니도 그렇다.

오빌이 한 말 중에 '나는 하늘을 날 때보다 그 이전에 침대에 누워 비행에 대한 상상을 할 때 더 짜릿함을 느낀다' 라는 말이 있다. 오빌은 상상력이 무척 풍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해  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가 아닐까.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동력과 조종장치를 단 최초의 비행에 성공한 직후, 사람들은 이들이 지금 이뤄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윌버와 오빌은 재능뿐만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와 끈기, 남다른 상상력으로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발명품이 전쟁의 무서운 살상무기가 되었을 때 가장 큰 슬픔을 느꼈다고 오빌은 술회하고 있다.

이 책은 단지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이전의 궤적과 그 이후, 앞으로의 우주시대까지 살짝 짚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기 모양의 장치를 스케치한 후로 베르누이의 정리,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조지 케일리 경의 글라이더를 거쳐 결정적으로 라이트형제에게 자극이 되었던 오토 릴리엔탈까지를 비행의 선구자들이라 부를 수 있겠다. 1997년 미국이 발사한 카시니 호는 2004년 토성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진보를 해온 비행의 역사가 미래에는 어떤 발전을 가져올지, 아이들의 상상력에 기대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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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이가 적녹색약이란 걸 알게 된 건 2학년 때 학교에서 하는 신체검사 때였다. 그러니까 3년 전, 신체검사 후 무슨 용지를 가져와서 내게 주었다. 적녹색약으로 검사결과가 나왔으니 조만간에 가까운 안과에 가서 전문의의 소견을 정확히 받아와서 학교에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아빠가 적녹색약이긴 해도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잠재인자로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던데 희원이는 좀특이한 경우였다.

그 때 안과에서 하는 검사를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내 눈엔 보이는 숫자들이 희원이 눈에는 안 보이는 것이었다. 적색과 녹색 계열의 점들이 불규칙하게 섞여있는 가운데에 있는 숫자가 전혀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공계나 산업디자인 같은 쪽으로는 진학을 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했다. 평상시에는 전혀 어려움도 없고 불편도 없다.

이번에 학교 신체검사 결과, 또 적녹색약이니 안과에 가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희원인 이 일에 대해 좀 과민하게 반응했다. 반에서 자기만 그렇다며, 남자아이들이 알면 또 놀릴 거라며 숨기려들었다. 며칠 전 안과에 가서 검사를 하고 의사의 확인서를 받았다. 근데 양쪽의 시력이 0.4 차이가 났다. 난 이게 더 걱정되어 물어보니, 별로 걱정할 바 아니란다. 의사선생님은 꽤 털털해 뵜다. 어쨌든 불편하다고 안경 쓰기를 싫어하는 희원이에겐 다행이다. 2학년 때도 지금이랑 시력검사결과가 꼭 같았는데, 큰일 났다싶어 안경을 당장 두 개나 해서 끼고 다니게 했었다. 원시에 한 쪽만 시력이 안 좋으니, 안 좋은 쪽만 렌즈를 하고 다른 쪽은 돗수가 전혀 없는 안경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불편하다고 안 끼기 시작하더니 그 안경 다 어디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안과에 간 김에, 희령이도 적녹색약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검사를 해 보니 역시 그랬다. 아빠의 인자가  두 딸에게 다 나오다니. 그래서인지, 희원이도 희령이도 더 어릴 때 연두색을 노란색이라고 해서 나를 의아하게 했다. 안과를 나오며 투덜대는 희원이에게 난  "그래도 색맹이 아닌게 어디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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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울 신랑도 적녹색약인데... 증세가 어떤 거죠?
우리 딸이 숫자랑 색은 월령에 비해 굉장히 빨리 익혔는데, 이상하게 보라색만 못 익혀요.
불안 불안 불안...

프레이야 2004-06-0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계열과 적색계열이 섞여있으면 두 색의 구분이 안 되는 거에요. 따로따로 있을 땐 아무 이상 없구요.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근데 마로가 보라색만 못 익히는 건 아직 어려서일 거에요. 마로는 잠재인자이면 좋을텐데...

nugool 2004-06-0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적녹색약이 의외로 꽤 있군요... 정말 신기하네요... 따로 있을 땐 이상없는데 섞여 있을 때만 구분이 안되는 것... 그럼 신호등은요?

프레이야 2004-06-0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호등은 괜찮아요. 따로 있잖아요. ^^ 근데 우리 신랑, 오래 전에요, 벽돌색 면바지보고 카키색 바지 갖다달라고 해서 절 완전히 혼란에 빠뜨린 적 있어요.^^

nugool 2004-06-0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행이네요.. 아~ 벽돌색이 카키색으로 보이는 거군요... ^^;;;

조선인 2004-06-0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좀 안심이 되네요.

프레이야 2004-06-0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새벽별을 보며님, 전 아마 아닐걸요. 그렇다면 저의 아버지가 색약이어야 하는데요.^^
제 남편은 카키색과 벽돌색 바지 헷갈려요. 처음엔 무척 놀랍더군요.

다연엉가 2004-06-0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으니 참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