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 > 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

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로 징계를 앞둔 상동고 이용석 교사의 심경 고백…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된 자신을 돌아보며 전체주의에 반대하기로 결심

▣ 이용석 부천 상동고 교사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아침이다. 교문지도를 해야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아 참! 오늘은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잖아.

아침 7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의 수업 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교문으로 나간다. 난 학생생활지도 담당 교사이다. 내 손에는 이미 나에게 잘 길들여진 단단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다. 교문에서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진입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봐야 한다.


△ 지난 7월 징계위에 불참한 이용석 교사는 고민 끝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8월4일 출석에 앞서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 교사의 모습.

등교하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 교복 상태, 운동화 종류, 왼쪽 가슴에 부착돼 있어야 하는 이름표, 남학생의 넥타이와 여학생의 리본 착용 여부 등 이 모든 걸 한눈에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 개개인을 모두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왼쪽으로 일렬을 지으며 들어온다. “너, 머리!” “너, 운동화!” “너, 야! 너 말이야! 왜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엉?” 색출된 아이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손 들고 서 있게 한다.

가장 싫어하는 인간과 닮아버린…

아침 7시50분. 등교 시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모두 지각생이다. 지각생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일렬로 ‘엎드려뻗쳐’를 시킨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제정신이냐?” “넌 또 지각이야?” 지각생들은 엉덩이를 맞는다. 잘 부러지지 않게 다듬어놓은 몽둥이로 초범과 재범 등을 가려내어 엉덩이를 때린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벌이니까. 지각했으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바로잡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직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사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아침 9시.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시작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저 뒤에서 시시덕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서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지금 국기에 대한 경례 하는 거 몰라?”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중이다. 아이들의 줄이 흐트러지고 여기저기서 잡담이다.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정강이 차기, 뒤통수 치기, 꿀밤 주기 등 온갖 잡기를 동원해서 ‘질서’를 잡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장, 시작하자”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교사 1년차 때 나의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1년 내내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다. 국기 경례에 대한 다른 의견도 다양성으로 포용하지 못한다.

군대 시절에 많이 맞았다. 군기를 잡기 위해, 부대가 원활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 상명하복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많이 맞았다. 그때 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느꼈다. 인간으로서 존중이 아니라 오로지 계급에 의해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고 치를 떨었다.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그 폭력이 내면화돼 있었다. 당연히,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각인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똑같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사가 된 뒤 1년을 보내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가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그로부터 1년 뒤,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몽둥이를 들지 않은 손과 입과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말이다.

‘하지 않는 것’으로 출발하다

여학생들에게 여자다움을, 남학생들에게 남자다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성적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꾸중을 듣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을 해서 교무실에 불려와 교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수치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돌아가는 모습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머리 모양과 똑같은 복장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라고 힘있게 말하는 마이크 소리에서 군대식 복종 문화가 자리잡은 학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들지도 않은 학생 두발 규정에 의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아이들의 인권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에 모두가 국기만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국가주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화된 가치관과 그것이 반영된 제도가 ‘상식이고 정상’이라고 말하는, 단지 차이일 뿐인 것을 차별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소외된 약자(없는 자, 여성, 청소년, 성적 소수자, 장애인)의 권리는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미덕’이고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획일화된 상식’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획일화된 상식의 폭력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아마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장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금의 학교 구조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몇 명의 학생이 남았는지가 교사의 학생지도 능력으로 이해되는 입시지옥 학교 현실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인권은 사치가 되어버린 학교의 몰인권적 문화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무기력함이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것인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주입시키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삶으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삶에서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나의 삶이 획일적 상식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대상에게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말이다.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을 강요하는 모든 경향성을 반대한다. 그 경향성은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결국 모두에게 개인의 삶을 부정하는 억압과 폭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경향성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획일화된 문화와 규범에 반대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개인과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학교장의 지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학교 구조에 반대한다. 그것은 일방적 복종만을 통해 이 사회를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힘들 것 없는 동작과 몇 마디밖에 안 되는 문장이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 이 교사의 행동은 수구보수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에 이용되고 있다. 8월4일 집회에 나온 민주노총 조합원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은 과연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지금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나는 내 삶에서 작은 것이라도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하고 싶다. 국기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나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시켰고,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은 나를 교단에서 영구 퇴출할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나를 ‘편향된 가치관 교육’의 문제 교사로 낙인찍었다. 그리하여 나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의결 예정을 통보받았다. ‘획일화된 상식’의 벽이 아직 매우 높다는 것에 마음이 우울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나 자신에 대한 시험장이 될 것 같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

이 교사 사건은 수구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와 연결돼

▣ 수원=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이용석 교사의 징계위원회가 열린 8월4일 오후, 수원은 섭씨 35도까지 올랐다. 경기도교육청 앞에서는 40여 명의 동료 교사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땡볕 속에서 장시간 집회를 벌였다. 이 교사는 고민 끝에 징계위 출석을 결심하고 나왔다. 그는 “위원회에 들어가 징계의 부당성을 말하겠다”며 집회 군중을 뒤로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징계위는 오후 2시께 시작됐다.

국기 경례를 하지 않고 ‘편향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 회부까지 이어진 이용석 교사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수구보수 세력의 일련의 ‘전교조 죽이기’ 속에서 돌출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도교육청의 ‘장학지도’로 해결되던 사안이 <조선일보>에 의해 대서특필돼 사회 문제화되고, 급기야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가 개입하기 시작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조선일보> 등 수구보수 세력들은 전교조 부산지부의 통일교재 사건 등과 함께 이 교사를 지목하며 사상 공세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사 사건은 근본적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 개인에게 과연 불이익을 줄 수 있느냐는 논쟁적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은 이 교사의 행위가 공무원의 품위 유지와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화인권연대 등 39개 단체가 모인 인권단체연석회의는 8월3일 성명을 내어 경기도교육청의 징계 시도를 “우리 사회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검열하고 교사가 소신 있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징계위는 5시께 끝났다. 온도는 2도밖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 교사는 “가치관에 관한 문제는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답변을 했다”며 “이 때문에 징계하려면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해 이 교사에게 통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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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3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당^^

소나무집 2006-08-3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전출처 : 소나무집 > [퍼온글] (펌)설득형 엄마 밑에 '논술왕' 명령형 엄마밑에 '논술꽝"

중앙일보 이원진] "우리 반 애들은 전부 휴대전화 있는데…."

"너 또 휴대전화 타령이니."

초등학생 아이를 둔 부모 A씨. 이틀 걸러 한번 씩 아이가 꺼내는 말에 슬슬 짜증이 난다. 하지만 화는 참자. 자녀를 '논술왕'으로 키울 생각이라면 무조건 혼내기보다 '작전 타임' 시간을 갖고 아이를 설득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현명하다. 부모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아이의 논술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논술 비중 강화를 골자로 한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발표된 뒤 학부모들 사이에서 '논술'이 1순위 관심사로 떠올랐다. 초등학교 평가방식도 이에 발맞춰 서술.논술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조급한 마음에 학원을 기웃거리지만 정작 해답은 가까운 데 있다.

"논술 우등생은 가족이 만든다."

학교 안팎에서 논술지도를 맡아온 한 교사가 10여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을 펴냈다. '선생님도 엄마도 쉽게 가르치는 초등 논술(㈜ 노벨과 개미)'의 저자인 서울 금성초등학교 소진권(50.사진) 교사가 그 주인공.

소 교사는 "논술학습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네 살 때쯤 시작되며 논술 최초의 학습장은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아이들은 벌써 논리적으로 사고하게 되는데 이 때 부모가 즐거운 말상대이자 친절한 도우미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논술왕 부모'가 되기 위해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항목들을 소 교사로부터 들어봤다.

◆ 나쁜 대화 습관부터 고쳐라=평소 결벽증이 있는 부모들은 노파심에서 "안 돼"를 자주 외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하면 안 돼요?"라는 부정적 화법을 쓰게 된다. 또 부모가 타박을 많이 하면 '~ 같아요'라는 자신감 없는 표현을 쓰며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 부모의 말습관이 아이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소 교사는 "하나를 말해도 주장과 근거를 갖춰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찡그리거나 무조건 다그치는 것은 금물이다. 무조건 허용하거나 무조건 만류하는 것은 모두 비논리적인 말투다. 위의 학부모 A씨의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아이의 말습관을 따져본다. 아이는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과장했다. 또 자신감 없이 말끝을 흐렸다. 논리적인 부모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있는 거 맞니? 그렇지는 않겠지? 그래, 그럼 친구들이 휴대전화를 '많이' 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자기 삶에서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부모가 진지한 태도를 보이게 되면 아이들은 부모와 대화를 즐거워하게 된다.

◆ 일주일에 두 번은 대화해라=자녀와 약속한 시간에 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중요하다. 평일과 주말 등 비교적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골라 식사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튼다. 처음부터 논술을 염두에 두지 말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문제들로 시작해 자녀와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같이 찾아내 보는 것. 패스트푸드, 컴퓨터 게임, 휴대전화 사용, 귀 뚫기, 학원 다니기 등이 아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이므로 좋은 소재다. 방법은 간단하다. 부모와 의견이 갈리는 문제라면 먼저 입장을 바꾸어 대화를 나눈 후 다시 본래 자기의 입장으로 돌아와 두 번에 걸쳐 토론한다. 이런 토론이 익숙해지면 하루는 신문을 보고, 다른 하루는 뉴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하루에 5개 주제를 스크랩한 뒤 그중 가장 관심 있는 주제를 택해 글을 쓴 다음 토론을 시작한다.

◆ 사고의 5단계 계단을 밟아라=독후감이나 일기와 달리 논술이나 구술은 독자나 청취자를 설정하고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

횡설수설하는 아이들은 생각은 많지만 자기 글이나 말에 취해 논리정연하게 정리할 줄을 모른다. 반면 어떤 질문에 단답형으로 짧게 끝내는 아이는 적절한 논리적 구성을 끌어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논술은 원고지 5장 이상의 비교적 긴 글을 써야 하는데 사고의 깊이가 깊지 않은 아이들은 '서론-본론-결론'이란 형식적 구성만으로 글을 쓰기 어렵다. 이런 경우 의문을 통해 다음 단계를 구상하도록 이끄는 논리적 5단계 구성이 좋다. ▶상황을 제시하고 ▶그 문제의 원인을 밝힌 다음 ▶그에 따른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그 대안의 근거를 밝히는 순이다. 논리적인 각 단계를 연습할 수 있도록 자꾸 질문을 던지는게 중요하다.

◆ 콘텐트는 미디어에서 찾아라=단락 구성 연습이 잘 되면 뉴스 등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찾는 'MIE(Media in Education)'에 도전해보자. 일상문제 해결에서 나아가 사회화되는 과정이다. 1~3학년은 미담기사, 비판적 능력이 생긴 4학년 이후에는 고발성 비판기사를 다루는 게 좋다.

예를 들어 국제면을 스크랩하면서 세계지도에 해당 나라에 스티커를 붙여가다 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미국.일본.중국 아닌 다른 문명권을 찾아 탐구하고자 한다. 3개월 꾸준히 하면 무려 100개 정도의 나라와 수도를 외울 수도 있게 된다. 특정 나라 편식현상을 없애 다양한 문명권을 접하다 보면 글로벌 교육이 따로 없다. 아이들이 눈 뜨자마자 "오늘 신문 왔어요?"라고 외치면 반은 성공이다.

이원진 기자 jealiv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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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1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8-31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전 직업이지만 제 아이들과는 그리 많은 시간을 별도로 갖지 못하고 있어요. 그저 팀수업 중에 하는 정도로.. 대신, 말하기 좋아하는 작은 딸이랑 함께 어딜 가는 길에 시간을 이용해요. 자기 생각을 근거를 들어 펼 수 있게 유도질문을 차례로 던져주는 것이죠. 큰딸 어릴 땐 동화책 읽고 나면, 아이가 못 느끼게 질문을 던졌어요. 엄마한테 이야기 들려달라는 식으로, 등장인물 중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왜 그런지, 등등... 엄마가 수다쟁이가 되는게 아니라 질문쟁이가 되어주는게 좋을것 같으네요^^ 질문이 구체적이고 단계적이면 좋겠지요..

2006-08-31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8-3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아이의 대답이 길든 짧든, 내용이 그럴듯하든, 그렇지 않든, 다 수용해주어야합니다. 그리고 질문의 범위를 좁혀서 해주어야하구요. 엄마의 생각을 먼저 말하고 넌 어떻게 생각해?, 라고 던져보시는 것도... 아이가 몇살인가요?

2006-08-31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감성 발달을 위한 사계절 그림책
린리쥔 지음, 린리치 그림, 린리치웅 미술편집, 심봉희 옮김 / 베틀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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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출생의 세자매가 글과 그림, 기획과 편집을 맡아 보석같은 그림책이 나왔다. 감성발달을 위한 사계절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의 미덕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림과 시적인 글에 있다. 우선 일러스터레이션을 보는 순간 단번에 유혹된다. 너무나 섬세하고 따뜻하며 맑고 풍부하다. 생태적으로도 정확한 세밀화를 그렸을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가미된 그림도 아름답고 수채화풍의 풍경 그림은 아주 맑은 기억을 들추어준다. 색감이 손에 묻어날 것처럼 선명하며 신선하다.

아버님은 간혹 중국의 세자매가 나오는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신다. 내가 두 자매를 키우고 있는 걸 빗대어 딸 하나를 더 낳아 훌륭한 세자매를 배출해보라는, 어찌 들으면 우습기도 한 말씀을 하시곤 했다. 이 그림책을 낳은 세자매는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서정적인 글과 그림으로 잘 그려냈다.

나래이션 격인 주인공 아이는 그림속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목소리만으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아이를 숨겨놓아, 그 아이는 철저히 내가 될 수 있고 또다른 아이인 '너'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더 계절마다 느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 수 있게 했다. 대신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하고 성품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소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때그때 변하는 아이의 살아있는 표정이 마음 속에 그려진다.

봄에 발견한 새집, 그 새집 안에는 새 대신 꿀벌들이 둥지를 틀고, '봄이 왔나요?' 하고 묻는 것처럼 생긴 연한 고사리도 봄에 만난 친구다. 아침 햇볕을 즐기고 있는 무당벌레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생태학적인 면과 함께 시적이면 다정다감한 말투를 잊지 않는다. 새싹을 기다리며 씨앗을 심었지만 조바심만 나는 아이에게 엄마가 들려주는 한 마디는 아이를 자라게 한다. 그건 바로 한 가지가 빠졌기 때문이라는데 바로 '인내심'이라지. 민들레는 토끼 몫으로 남겨두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민들레를 동물들에게 양보하겠다는 아이의 마음은 또 얼마나 예쁜지.

여름이면 여러가지 종류의 나비들을 관찰한다. 민들레 홀씨를 불며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림으로 그려진 아이의 소원이란 게 정말 깜찍하다. 거창한 게 아니라 말하자면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다. 아이의 보물상자를 들여다보면 아이가 대자연 속의 보물찾기를 얼마나 재미있어하는지 알 수 있다. 솔방울, 열매들, 조개껍질들, 조약돌, 깃털 한 장, 몽당연필까지 아이들의 마음이 어쩜 이리 아가자기하게 담겨있는지. 바닷가 소라껍질을 귀에 대고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성과 상상력까지 갖춘 아이가 사랑스럽다.

가을이면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나무는 옷을 갈아입는다. 갖가지 버섯들을 발견하고 독버섯도 세밀하게 관찰한다.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를 만날 수 있다. 도토리를 숨겨두고 잊어버리는 다람쥐를 엄마는 이해한다. 잘 잊어버린다는 공통점을 꼭 집어낸 게 유머러스하다. 숨겨두고 못 찾아먹은 열매에서 싹이 나고 작은 나무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 꼬마나무가 귀여운 다람쥐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도 따스하다. 숲속 우체국 소인이 찍힌 그 편지에는 "내가 자라거든 열매를 아주 많이 선물할 테니까, 꼭 나를 찾아와야 해!" 라고 적어두어 생명의 순환과함께 나누는 것의 미덕까지 느끼게 해준다.

겨울이면 강에 찾아온 겨울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가을에 모아둔 자연의 보물을 가지고 예쁜 화관을 만들어 추운 겨울밤을 따뜻하게 보낸다. 화관이 정말 아름답다. 붉고 푸른 열매들의 색감이 풍성하다. 맑은 겨울날,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옮기느라 바쁜 개미들의 행렬도 놓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의 푸근한 기억과 함께 아이는 아이다운 상상의 세계로 마술빗자루를 타고 날아간다. 신비한 자연 속의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를 태워줄 마술빗자루는 마른가지와 솔잎만 있으면 가능하다.

마지막 장, 마술빗자루를 타고 이야기가 스물거리는 무채색의 겨울숲을 날아오르는 아이를 어떻게 그려놓아나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귀염둥이가 내지르는 호이~ 호이~ 기합소리도 들어보시길... 아이는 다람쥐, 토끼, 고양이, 나비, 강아지, 꿀벌, 고니 한 마리도 될 수 있다. 끝까지 주인공아이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보는 이가 그 아이가 될 수 있게 여백을 둔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마술빗자루를 타고 자연의 신비로운 세계로 호이~호이~~  생태그림책이면서도 한권의 풍경화집 같기도 하고 사진집 같기도 한 이 그림책을 덮는 순간 마음이 참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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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마술빗자루 타고 동화 속 세상으로 가고 싶네용
호이~ 호이~
오늘은 '작은아씨들'한테 가 볼까나~~~~~~

바람돌이 2006-08-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아름다운 그림책이네요. 우리 아이도 좋아하겠어요.

프레이야 2006-08-2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1학년 아이와 함께 보았는데요.. 정말 아름다운 그림책이에요. 보면서 엄마랑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도 아주 많지요.

비자림님, 호이~호이~ 해보니까 정말 기분이 좋아지죠.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 몸무게 땜에 아니되려나..ㅎㅎ

속삭님, 마법에 걸리면 신나겠죠..^^

푸훗 2006-09-1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림동화책을 참 좋아해요. 가끔 구입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협박해 책을 얻어 내는데 이 그림책도 참 좋을 것 같네요. 요즘엔 유리 슐레비츠에 완전 빠져서 그의 그림책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어요. ^_^

프레이야 2006-09-1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훗님,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저도 마음결을 다듬고 싶으면 그림책을 보는데 글도 그림도 좋은 그림책이 참 많죠..^^
 
 전출처 : 水巖 > 아이의 성공을 위해 부모가 바꿔야 할 습관들


아이의 성공을 위해 부모가 바꿔야 할 습관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면 엄마의 홈스쿨링은 개학을 맞는 셈이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지만, 오히려 더 자주 잔소리를 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는 않았는지. 아이를 바꾸고 싶을 땐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 노하우를 알아보았다.  


첫 번째 - 아이 탓을 하지 않을 것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 탓을 한다. “엄마가 이렇게 하지 말랬지, 왜 말 안 들어!”라고 화를 내는 순간, 아이들 역시 남 탓하는 것을 배운다. 화를 낼 때 내더라도 지금 내야 할지, 아니면 좋게 타일러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실수했구나, 쏟아진 우유가 아까우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하자”라고 얘기하는 것이 보다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 - 끝을 생각하고 행동할 것

매일 화내면서 살고 싶어하는 부모는 이 지구상에 없다. 나는 정말 어떤 엄마이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글을 써보자. 그 뒤에 아이와 함께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방학이 끝났을 때 어떤 것들을 이뤄놓으면 좋을지를 함께 얘기해본다. 짧게는 방학, 길게는 1년 또는 인생이 될 수도 있다. 컴퓨터 앞에서 방학을 모두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 번째 - 소중한 것을 먼저 할 것

인생에는 급하고 중요한 일, 급한데 안 중요한 일,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 이렇게 4가지의 일이 있다. 아이가 무엇을 빠뜨리고 갔을 때 부리나케 큰일 날 것처럼 가져다주는 부모들이 많지만, 사실 그것은 급할지는 몰라도 중요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네 번째 - 아이의 뜻을 존중할 것

방학 동안 보낼 영어캠프나 학원 등 유명하다는 곳을 다 알아두었다 해도 그것은 부모가 마음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아이가 원치 않는다면 방학 동안 집은 거짓말과 싸움의 장이 되고 만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먼저 물은 후 부모에게도 좋은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다섯 번째 - 칭찬을 약으로 쓰지 말 것

아이에게 칭찬을 자주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기 위한 칭찬은 결코 좋지 않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잘했는지를 칭찬하되, 예전 모습의 이야기를 꺼내며 비교하는 것은 피한다. 잘못했던 일을 부모가 계속 기억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여섯 번째 - 아이의 태도를 이해할 것

만약 아이가 느리게 행동한다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원래 아이의 성격이 그러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의 느린 행동은 자신의 뜻을 강한 부모에게 바로 표현하지 못해서 생긴 소극적인 태도이다. 이런 아이에게는 혼내고 잔소리하면 할수록 더 관계가 나빠진다는 점을 유의하고 아이의 우울증이나 분노를 이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곱 번째 - 부모 혼자 괴로워하지 말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굉장한 기쁨인 동시에 심적 부담이 뒤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과 또는 옆집 부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옳지 않다. 부모를 위한 카페( www.bumocafe.net)나 부모교육 강사들의 상담소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보자. 부모가 힘겨워하면 아이 역시 정서적으로 불안해한다.


알|아|두|세|요

부모를 위한 7계명

1_ 부모는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되 절제 있는 사랑을 한다.
2_ 부모는 서로 협력하여 일관된 철학으로 교육한다.
3_ 부모는 일등이 되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기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르친다.
4_ 부모는 공부를 대신 해주기보다는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스스로 하도록 도와준다.
5_ 부모는 자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 그리고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여 진로 결정을 도와준다.
6_ 부모는 말로 하기보다 본인 스스로가 실천해 보임으로써 좋은 본을 보인다.
7_ 부모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성장해가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내용 중 발췌)

여성조선
진행_김혜인 기자  사진_조원설  모델_이효진
도움말_정명애(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모교육강사),
부모상담실(02-414-8119 www.kac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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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6-08-2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이 끝나는 마당에 반성을 하게 되는군요.

프레이야 2006-08-2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 저도 반성해요.. 역시 부모의 정서가 안정되어있고 마음이 편하면 아이도 닮는 것 같아요. 부모가 모든 일에 조바심 내면 아이는 금방 그걸 알아채고 더욱 조바심을 내죠. 우선 나부터 편안한 마음을 먹는 게 좋은 듯해요..

프레이야 2006-08-2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휴일 잘 쉬세요.. 전 좀 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러 나갑니다.. 비가 잠시 그쳤네요^^
 

 

모든 것에 자기 시간이 있다

 

                                                                                                             안셀름 그륀   
 

       

 


 
모든 것에 자기 시간이 있다


“너희에게는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이것은 인도의 한 노인이 굉장히 바쁜 백인 사업가에게 한 대답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삶의 요구와 가능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또 이 대답에는 시간에 대한 기계적인 이해와 정신적인 이해가 얼마나 크게 대립하고 있는지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를 구분한다. ‘크로노스’는 계량할 수 있는 ‘시간’, 즉 세월이다. 시계와 같은 크로노미터(측시기)가 이 단어에서 나왔다. 서구인들은 계량할 수 있는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 우리는 분 단위로 약속을 잡고 끊임없이 시계를 보며, 상대가 약속시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이 약속시간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 내에 해결되어야만 한다. 계량할 수 있는 시간은 우리에게 인생을 좁은 코르셋 안에 꼭꼭 쑤셔 넣으라고 강요한다. 크로노스의 신은 폭군이다.


인도인들은 카이로스의 신을 더 숭상한다. 카이로스는 좋은 순간, 환영받는 시간이다. 크로노스가 양적인 시간을 의미한다면, 카이로스는 시간의 특별한 품질을 일컫는다. 카이로스는 내가 나에게 몰입하는 순간, 내가 완전히 나로 존재하는 순간이다. 인도인들은 시간을 ‘결정적인 순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시간(여유)을 준다. 그들은 시간을 즐긴다. 그들은 시간을 경험한다. 크로노스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은 것, 즐거운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것으로 경험한다. 인도인들은 시간을 인지한다. 내가 완전히 ‘순간’에 존재한다면, 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시간은 종종 멈춘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 바로 멈추어야 할 가장 적절한 때라는 것, 일을 해야 할 때라는 것, 생명을 번성시켜야 할 때라는 것,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라는 것을 경험한다.


구약성서의 현자는 그리스 지혜와 이스라엘 지혜를 결합한 <전도서>에서 이러한 시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애곡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다.” (전도서 3,1-4)


시간을 느껴라

 

“모든 사람이 시간 죽이기쪰를 시도한다. 하지만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역설적인 내용을 담은 프랑스 격언이다. 우리는 시간을 죽인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죽이면서, 죽음 자체에서는 벗어나길 원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시간을 죽이고, 다른 이는 자신의 시간을 헛된 일로 꽉 채우면서 시간을 죽인다. 어떤 이는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피한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이 흘러가길 바란다. 그들은 시간과 있으면 시간의 한계를 인지하기 때문에 시간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한계를 지닌 죽음은 우리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죽음은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에 대한 본질적인 경계선이다. 우리는 죽음을 대면하느니 차라리 시간을 죽인다. 하지만 죽음을 대면하는 자만이 시간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체험하게 된다.


죽음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우리의 성공도, 우리의 재산도,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도. 우리는 단지 우리의 텅 빈 손을 뻗어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길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산다면, 우리는 사물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차분히 살 수 있다. 우리의 일, 우리의 재산, 우리 주변의 사람들, 이 모든 것에는 각기 적당한 한계가 있다. 죽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현재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생이란 결국 선물이라는 점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우리의 업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생명의 시간은 죽음을 인지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죽음이 억압당하면 시간은 죽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역된 의미는 ‘아무것도 안 하며 시간을 낭비한다’는 뜻이지만, 본 글에서 그륀 신부는 ‘시간을 죽인다’는 단어 그 자체의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시간’과 ‘죽음’의 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번역 / 이온화(이화여대 독문과 강사)   http://blog.daum.net/desertgo 에서 담아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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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5 0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25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리포터7 2006-08-2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정말이지 인도인들은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시간대에 사는 사람같아요..늘 우리에게 생각이 번쩍뜨이게 하는 말을 하죠...

비자림 2006-08-2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한 글이네요. 얻어 가옵나이당^^

해적오리 2006-08-2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셀름그륀의 책들은 대부분 다 괜찮은것 같아요.. . 수도생활의 깊이가 사람에 대한 이해로 나타나는 게 참 좋아요. ^^ 퍼갈께요.

프레이야 2006-08-2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들, 오늘도 온몸으로 부르는 매미노래소리에 가슴이 싸아해집니다.. 어제 심야로 김기덕의 '시간'을 보고 들어와 시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보았드랬어요. 오래된, 어려운, 상대적인 주제 앞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또 사람인가봐요^^ 영화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랑 거의 맞닿아 있는 글이라 생각되었어요..

잉크냄새 2006-08-25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인에게는 다음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와 순간을 감지하고 즐길수 있다고 하더군요. 시간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볼수 있는 글이네요. 저도 추천하고 퍼갈께요.^^

프레이야 2006-08-2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네.. 저도 그런 생각으로 저를 다시한번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다음,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온전히 지금에 몰입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