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원이는 오늘 초등학교 졸업식에 앞서 한 가지 수료식을 했다.
6학년 한 해동안 교육청 주관 과학영재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이면 차로 30분을 가야하는 초등학교에서 2시간 가량 수업을 했다. 토요일마다 어떤 엄마랑 번갈아 가며 아이들 두명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서 기다렸다가 데려오기를 일 년을 했다. 별로 힘든 일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힘들지 않은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버스가 한 번만에 가는 게 있으면 좋았으련만 그렇지도 못하고 전철 코스도 아니고 여학생 혼자 택시를 태워보내기도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희원인 이 과정을 수료하고 나더니 더이상은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2월에 중학교 프로그램에도 응시해볼까 하여 의향을 물었더니 단호하게 반응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남들보다 조금더 시간을 내어 공부해야한다는 점이 싫은 건지 과학에 더 많은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건지, 둘 다인지 그저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 교육청강당에서 치른 수료식에서는 수학, 과학, 정보, 창작 분야의 초등6학년, 중학3학년 학생들이 모였다. 수학부분의 우수성적학생은 두 명이 모두 희원이 학교 아이였다. 마지막 순서로 창작영재 여중학생이 나와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에머슨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며 제법 다부진 글을 발표했다. " 세상에 위대한 그 어떤 것도 정열이 담기지 않은 것은 없다." 라는 말과 함께 저희들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란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여 시작하였고 즐겁게 공부하며 시각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이런 점이라고 했다.
수료식을 간단히 마치고 2월의 맵싸한 바람을 맞으며 희원이와 나는 막간의 데이트를 했다. 나는 집에 와 수업을 해야했고 희원인 학원에 가야했다. 난 달콤한 초콜릿이 듬뿍 덮인 도넛이 먹고싶어졌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상가에 있는 도넛매장에 들어가 우리는 마주했다. 오똑한 콧날을 하고 단발머리가 찰랑이는 큰딸은 어느새 나보다 몸이 커져있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성장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삶일 거야. 아까 그 언니가 쓰고 읽은 글 잘 들었지. 희원이도 읽고 쓰는 걸 게을리 하지 않으면 좋겠다. 사실 과학보다는 글쓰기(창작)쪽에 더 소질이 있다고 엄마는 생각하거든. 네가 게으름을 부려서 그렇지. 영재과정이다 뭐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 스스로 꾸준히 읽고 쓰고 생각의 폭을 넓혀가면 좋겠다. 한 해동안 열심히 했으니 축하해. 꽃다발 대신 도넛~ 괜찮지?
희원인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요새 사춘기인지 불만도 많고 표정이 우울할 때도 자주 있다. 그런 과정들이 뭐란 걸 조금은 아니까, 안달이 나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와 정서적으로 밀착되지 못한 나이기에, 내 딸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엄마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래도 아이에게 내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긴 하다. 오늘처럼 희원이가 포함된 그룹 수업을 할 때이다. 오늘 저녁 <마두레르를 위한 세상>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주제의 이 책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음 주에 글쓰기 과제를 통해 희원이가 어떤 생각으로 여물어지는지 엿볼 수 있을테니, 은근히 기대된다. 일기장도 5학년 2학기 때부터는 절대 보여주지 않으니, 이런 기회마저 없으면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희원이와 나는 도넛 3개를 나누어 먹었다. 학원도 가기 싫어할 때가 종종 있지만 어차피 피하지 못하고 해야할 일이라면 즐겁게 주도적으로 하기를 바란다. 희원아, 요새 기분이 우중충하다면 달콤한 그 맛에 기분도 달콤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