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에 본 `헤세와 그림전`은 놀랍도록 행복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전시되어 있는 것들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였고 오래 머물러 있고 싶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헤세와 그의 수채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특히 권유하고 싶다. 11월1일까지 한다.

초등생들도 엄마랑 많이 왔고 대충 봐도 연령대가 다양했다.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많았다.

나는 특히 헤세의 수채화를 아주 좋아하기에 단숨에 달려갔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오전 11시에 이 전시를 기획한 분이 직접 도슨트한다는 걸 알고 그 시간 이전 10경에 도착했다. 

가을을 예감하는 듯 유난히 하늘이 높고 햇살은 뜨거웠던 날!

미디어아트 3D 영상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헤세의 그림들을 보며 그 풍경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2007년 4월에 부산에서 열렸던 헤세전이 떠올랐고, 그때 이후 내마음 가득 들어와 앉은 헤세의 수채화가

이번엔 내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더 미루지말고 내년에는 꼭 수채화를 시작하리라.

찬찬히 둘러보다 유독 `청춘은 아름다워라`의 저 아래 사진 속 글귀가 쏘옥 들어왔다.

그 문장을 직접 책에서 확인하고 싶어 구매한 책이 바로 문지사의 이 책이다.

차분하고 견고한 느낌의 갈색 표지와 '청춘'의 독특한 서체, 액자 같은 내지가 인상적이다.

`청춘은 아름다워라`는 헤세의 단편집이다.
단편소설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작은 삶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로 시작하여 `청춘은 아름다워라`까지 총 6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전적 스토리로 한 사람의 시간적 추이에 따른 일련의 경험처럼 전개되지만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두 다르고 상황도 별개다.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겠는데, 헤세가 수채화로도 그린 달리아를 비롯해 꽃들에 대한

지극한 내적묘사(가을로 흐르는 강물과 같은 꽃이 달리아다, 라고 썼다)와

욕망과 열망 속에서 얻은 삶에 대한 고요한 깨달음이 지긋하게 기억에 남는다.

헤세의 정확한 사유, 고아한 문장 그리고 유년, 사춘기, 청년시절을 거치며 누구보다 예민하고 다감하게

느끼며 겪은 감정을 솔직한 자기고백으로 시나브로 차분히 고양되는 느낌이다.

밤은 우리들로부터 공동생활이라는 습관적이며 허위적인 감정을 멀리해준다. 

이미 하나의 등불도 켜져 있지 않고, 사람의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혼자 눈을 뜬 사람은 고독을 느끼며

외계로부터 단절된 고립무원한 자기 자신을 느낄 것이다. 그러한 때에는 언제나 자신은 피할 수 없이 고독하며, 

또한 고독 속에 살고 그 고독 속에서 고통과 공포와 죽음을 겪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저 가장 무서운 인간의 감정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젊은이에게는 일말의 그림자가 되고 경고가 되며,

약한 자에 대해서는 하나의 전율이 되는 것이다. (206쪽)

 

문제는, 오탈자, 잘못된 띄어쓰기와 교열, 이상한 번역문이 잦아 책 자체가 주는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전시장에서 마음에 담은 저 문장은 이 책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번역의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 같은데, 답답하다.

번역이 이상한 경우의 예를 들자면

˝신앙이라는 것은 사랑과 같은 분별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너도 언제든지 분별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25쪽)

앞뒤 문맥으로 보아 내 생각은,

사랑과 같은 ☞ 사랑과 같이
그러나 ☞ 그러니

게다가 아래의 이런 문장은 용납이 안 된다.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란다. 모든 것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은 진실로 무얼 잘 안다든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잖니. 

그리고 바램은 신뢰와 안심이 필요한 법이란다. ‥‥‥˝ (224쪽)

37쪽에는 같은 문장이 두번 잇달아 나온다.
이 문장이다. - 곧 나는 전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를 지배하였다.


헤세는 사소한 것의 완벽함을 추구한 사람이다.

건망증과 대충주의가 작품전체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하고 정확성과 치밀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잘하게 말하자면, 오자 하나가 책 전체의 신뢰감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작가인데,

자신의 글이 이렇게 어수선한 채로 돌아다니는 줄 안다면, 어떨지. 
그래서 이 책은 `헤세`라서 별 셋이다. 



덧) 수염 기른 헤세, 노년의 그와 꽤 다른 느낌이다.

 누구나 그렇듯 세월의 인장처럼 변해가고 달라지는 사람의 인상, 한참 쳐다보았다.
헤세가 죽은 1962년으로부터 15년 후, 앤디워홀이 작업한 유일한 헌정작 실크스크린으로 탄생된 

헤세의 초상도 볼 수 있고 마광수가 그린 캐리커쳐 같은 헤세의 초상도 볼 수 있다.
특히 내가 예상하지 못한 보너스 중 최고는 헤세의 육성으로 시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독일어가 딱딱하다는 편견은 잘못이었다.  깊은 우물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목소리인데 부드럽고 그윽하다.

헤세(원어) 한 줄에 가수 정원관(번역문) 한 줄, 이런 식으로 시를 들을 수 있는 코너를 만들어 놓았다.

인공이지만 작은 자작나무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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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9-07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보고 싶어요. 흑흑.

프레이야 2015-09-07 14:07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분홍공주 데려가면 좋아할거에요. 어린이들이 많이 왔던군요. 그림이 움직여서 신기해 할 거고 밝은 수채화 때문에 전시장분위기도 편안하고 아이들이 그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요. 작은아이 맡기기가 어렵나요? 유모차에 태워서는 안 될까요~ 앗참 전시장 밖에 아이들 노는 곳도 마련돼있던데요

책읽는나무 2015-09-07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귀가 그냥 눈물이 나네요ㅜ

프레이야 2015-09-07 14:10   좋아요 1 | URL
헤세의 문장은 그런 것 같아요.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하고 바른 느낌. 과다감정이지 않으면서 고요히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정확히 그려내는‥ 노년의세계로 들어가면서 성찰한 문장들은 특히나 감동입니다.

antibaal 2015-09-08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서울까지 올라오셨다니 열정이 대단하세요.

프레이야 2015-09-08 21:06   좋아요 1 | URL
한번 더 가보고 싶어요. 가깝다면 또 가봤을텐데요~

고양이라디오 2015-09-11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서울다녀왔는데, 이 글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ㅠ
그래도 11월 1일 까지라니 그전에 꼭 다녀와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15-09-11 06:38   좋아요 1 | URL
아직 날짜가 많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