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가는 대로 마음 가면 그게 타성이더라." 친구가 화두를 던졌다.
올해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절반을 시작하는 첫날, 돌아보니 달마다 여행갔던 기억이 새롭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인 듯 느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게 또 나쁘지 않다.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고 익숙하지 않은 소통 방식에 난감하면서 적응도 되어가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타성이 내게 붙은 것 같다. 조금은 선회해야할 시점이다.
"너는 지금 뭔가와 싸우고 있다. 그래 보인다."
또 다른 친구가 이 말을 한 건 설날 전 날이었다. 오래전, 싸우지 말고 살아,라고 은근히 힘주어 말씀하셨던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던 순간이다. 나 자신과 대개 불화하며 사는 게 타인의 눈에도 보이는구나, 싶었다. 유휴인과 유럽에서는 많은 부분 나아져서 행복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나의 모순이 투사되어 보이는 동행인 때문에 괴로웠다. 그래도 남아 있는 건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는 그 순간의 소중한 기억들과 그럼에도 좋았다는 나름의 위안이다. '나'를 다 내어놓는 게 어색하고 껄끄러운 내 성정이 문제겠거니 하면서도 어떨 땐 대책없이 모조리 다 쏟아놓으니 더욱 황당한 건 바로 나다.
처음으로 엄마와 단 둘이 며칠간 여행을 가기로 했다니까 어느 친구가 던졌던 말에 이마가 시원했다.
"좋은 시간 보내고 포장 잘 해서 들고 와." 이런 재미나고 똑똑한 친구 같으니^^ 고만고만하니 허름한 마음과 누추한 일상에서 건져 올려 정작 보이는 건 포장이었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 아직은 깊어지지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결국 끝까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나'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6개월 동안은 녹음도서가 예전보다 조금 적었다. 정리하고 넘어가자.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이유경 / 다시 봄
녹음시작 2013년 12월 18일 완료
작년 11월 25일에 내 손에 안겨온 소중한 책이다. 12월 18일부터 바로 녹음 시작해서
완료했는데 1차 편집만 남았다.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이 책은 특히
저자의 이런 부분이 미덕이다.
예전에 재능이 없음을 탓하는 내게 누군가 댓글을 남겨줬었다. 성실함이야말로 재능이라고.
그때는 그말이 나에게 와 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말이 가끔 떠오른다. 게다가 재능이
'성실함'이라면, 앞에서 피아노 연주자가 말한 것처럼 '충치'나 '뭉친 어깨 근육'으로 크게
타격받을 일도 없지 않은가.
- 85쪽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한 독서공감 중
산유화 / 정비석 장편소설 / 가리온
녹음시작 2014년 4월 23일, 5월 30일 완료, 6월 11일 편집 시작 진행중
60대 어느 회원이 특별히 신청한 도서다. 옛날에 읽었던 책이라며 절판된 이 책을 어렵사리 구해서
더구나 내가 낭독해주길 부탁했다고. 목소리만으로 누군가와 연결된 것 같아 흐뭇하다. 편히 들으시며
옛사랑의 그림자라도 추억하시면 좋겠다. 이 책은 소설적인 완성도에서라기보다 소월의 시가 적절히
삽입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심정을 표현해준다는 점이 미덕이다.
216쪽에는 양명환이 이런 시를 읊으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구름 - 김소월
저기 저 구름을 잡아 타면
붉게도 피로 물든 저 구름을,
밤이면 새까만 저 구름을.
잡아 타고 내 몸은 저 멀리로
구만리 긴 하늘을 날아 건너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애스러라, 그리는 못한대서,
그대여, 들으라 비가 되어
저 구름이 그대한테로 나리거든,
생각하라, 밤 저녁, 내 눈물을.
프랑스식 세탁소 / 정미경 / 창비
2014년 5월 29일 녹음시작 총 282쪽 중 197쪽까지
일곱 개의 작품이 수록된 소설집. 특유의 날카로움이 다소 누그러진 듯한데
여전히 생의 속살과 사람의 뒤안을 깊은 눈으로 본다.
투쟁 없는 관계가 좋은 관계일까. 그건 평화가 아니라 결핍에 가가운 풍경이다. 정상적인 가족이란, 너무 많은 감정들이 원형을 찾을 수 없이 촘촘히 얽힌 낡디낡은 담요 같은 게 아닐까. 화를 내고 미워하다 후회하는, 상처 주고 후련해하다 후회하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그 담요는 차가운 유리섬유처럼 몸을 찌를 것이다. 뭐랄까, 나는 아버지의 화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결코 깨지지 않는 감정의 균형이 너무 싫다. - '번지점프를 하다' 중 169쪽
그리고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신경숙/ 문학동네
지난 달 편집 완료